[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진주박물관에 가면 보물 제637호 “도기 바퀴장식 뿔잔[陶器 車輪飾 角杯]”이 있습니다. 이 유물은 수레바퀴가 붙은 높이 18.5㎝, 길이 24㎝의 가야 토기인데 출토지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토기의 받침은 이 시대 굽다리 접시(고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밑이 벌어진 나팔형인데 긴 직사각형의 굽구멍(투창)이 4개 뚫려 있습니다. 받침 위에 U자형의 뿔잔(각배)을 얹어 놓고, 그 등에는 양쪽으로 고사리 모양으로 꾸밈이 있는데 한쪽은 없어졌지요. 이 U자형의 뿔잔은 액체를 담기 위한 그릇으로 보입니다. 뿔잔의 좌우 옆에는 바퀴를 붙였는데, 둥근 바퀴는 축을 중심으로 마름모꼴 모양의 창을 6개씩 뚫어 바퀴살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회흑색의 바탕흙(태토)은 쇠가 녹슨 듯한 색깔을 띠며, 전형적인 가야 토기의 특색을 보여주고 있는 오리모양ㆍ인물모양ㆍ말모양ㆍ배모양 토기들처럼, 단순하고 환상적인 모습입니다. 이 뿔잔은 어떤 용도로 쓰였을 지에는 다양한 학설이 있습니다. 술잔으로 보는 설과 향로로 보는 설이 있고, 향로로 보는 설은 불교와도 관련되어 이야기되고 있지만 무덤에 주검과 함께 묻는 껴묻거리[副葬品]로 보기도 합니다. 껴묻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옥 가운데 온돌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전통의 맛과 현대화를 추구하는 데에도 중요하다. 그뿐만이 아니라 한옥문화의 해설 또한 중요한 때다. 이에 이와 관련된 전문적인 지식을 중심으로 공유하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 사단법인 국제온돌학회와 사단법인 한국현대한옥학회 주최, 전통온돌기술자협회 주관으로 <제18회 전통온돌기술자 2급>과 <제2회 한옥문화해설사 2급> 교육과정을 모집한다. 교육 내용은 주말주택 건강주택 개요, 온돌(구들)의 개요, 친환경 생태주택 이론과 실제, 전통건축 온돌 체험, 건축과 온돌의 기초이론, 온돌 황토주택의 개요, 전통구들 모형만들기 실습, 황토방구들 짓기 이론 및 실습., 특수온돌(구들) 기초이론, 온돌침대 흙침대 개요 등이다. 교육 과정 수료자에게는 연구소에서 주관하는 각종 교육, 행사 등에 우선 초대, 황토주택 관련 자재 할인 혜택, 전통구들모형만들기 실습, 황토방구들 짓기 이론 및 실습., 전 과정 이수후 소정시험 합격자 전통온돌기술자2급 자격증 수여, 전통온돌기술자2급교육 평생무료참석과 수료증 수여 등의 혜택을 준다. 협력 교육 기관으로는 나무와 흙연구원 (원장: 문재남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천안 출신으로 임시정부 주석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의 큰 획을 그었던 석오 이동녕 선생의 생애와 나라사랑 정신을 느낄 수 있는 기념관이 건립됐다. 기념관은 349㎡ 규모로 석오의 흉상과 태극기를 배치하고, 연대별 활동상을 소개하고 있다. 선생이 자주 애용한 '산류천석(山溜穿石. 흐르는 물이 바위를 뚫는다)'을 새긴 가로 3m 세로 5m규모의 휘호석도 세웠다. 전시관에는 지난해 9월 선생의 손자인 이석희 씨가 보존하던 친필 휘호와 서신, 임시정부 문서, 초상화 등 유품도 전시돼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2010년 2월 23일 언론에는 위와 같이 천안에 독립운동가 이동녕 선생의 기념관이 열렸다는 기사가 올랐습니다. 선생은 1869년 오늘(2월 17일) 충남 천안에서 태어나신 분으로 72살로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독립운동가의 길을 걸었고 임시정부 맨 앞에 서서 대한민국독립운동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입니다. 선생은 스무 살 때인 1896년 만민공동회에 앞장섰다가 투옥되었고,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된 1905년 결사대를 조직하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연좌시위를 벌여 조약의 무효와 파기를 선언하다가 체포되어 옥살이를 하기도 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누나! 이 겨울에도 눈이 가득히 왔습니다. 흰 봉투에 눈을 한 줌 넣고 글씨도 쓰지 말고 우표도 붙이지 말고 말쑥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까요? 누나 가신 나라엔 눈이 아니 온다기에.“ 제목은 “편지”지만 부쳐보지도 못한 편지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민족시인 윤동주(尹東柱, 1917~1945)가 쓴 동시지요. 윤동주가 남긴 동시 선물 37편 가운데 하나인 여기서 윤동주는 말합니다. 글씨 대신 눈만 한 줌 넣은 편지를 부치겠다고요. 그가 정말 깨끗하고 어린 아이처럼 맑은 심성을 지녔음을 우리는 이 동시로써 알 수 있습니다. 조국의 광복을 반년 앞둔 1945년 오늘(2월 16일)은 눈이 안 오는 나라로 간 누나를 몹시 그리워했던 윤동주 시인이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스물일곱 짧은 삶을 마감한 날입니다. 간도 출신의 조선 청년 윤동주는 1943년 7월, 귀향길에 오르려다 일경에 체포된 이래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이듬해 3월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습니다. 일제는 뇌일혈로 사망했다고 통보했지만 윤동주는 학창시절에 축구선수로도 활약할 만큼 건강했었지요. 그러던 20대 청년이 수감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돌연한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어제 경향신문을 보니 보건복지부와 중앙입양원이 함께 광고를 냈습니다. 그런데 광고는 영어를 활용한 것입니다. "남(Other)이 아닌 엄마(Mother)가 되어주세요"입니다. 아이디어는 좋지만 그림에 영어로 "Mother"라고 크게 써놓았습니다. 국어기본법을 보면 "공공기관 등의 공문서는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렇게 영어고 광고한 것은 국어기본법 위반이 되는 것 아닌가요? 제발 정부가 앞장서서 우리말 헤치는 일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1392년 7월 17일 임금에 오른 태조는 다음 날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 왕조가 바뀐 사실을 알리고 이어서 하루 뒤인 7월 19일에는 왕조가 바뀐 사실을 승인해 달라는 사신을 따로 보냈습니다. 이에 명나라 홍무제는 고려의 일은 고려인들이 알아서 하라고 하고 다만, 나라 이름을 바꾼다면 바로 알려 달라고 합니다. 이 소식을 접한 이성계는 당일 신하들을 모아 놓고 나라 이름에 대한 논의를 했는데 새로운 왕조의 나라 이름으로 ‘조선(朝鮮)’과 ‘화령(和寧)이 추천되었습니다. 조선이라는 이름은 단군조선을 이어받았고 기자조선ㆍ위만조선처럼 이미 예전에 있었던 이름이었으며, 화령은 이성계의 출생지라는 점입니다. 이 두 가지를 새로운 왕조의 이름으로 보내자 명나라는 새로운 왕조의 이름으로 ‘조선’을 선택합니다. 《태조실록》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입니다. “1393년(태조 2) 2월 15일. 예문관 학사 한상질이 중국에서 돌아와 명나라 예부에서 보내는 공문을 전달했다. 그 공문에 ‘……동이(東夷)의 나라 이름에 다만 조선의 칭호가 아름답고, 또 이것이 전래된 지가 오래되었으니 그 명칭을 근본하여 본받을 것이며, 하늘을 본받아 백성을 다스려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종묘제례”(宗廟祭禮)는 조선시대 역대 임금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종묘에서 제사를 지내는 의식인데, 이 종묘제례 때 연주하는 음악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은 그 중요성 때문에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은 2001년 유네스코 세계인류구전 및 무형문화유산걸작으로 오른 뒤, 2008년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통합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종묘제례악이 지금까지 전승되는 데는 큰 수난을 겪어왔지요. 원래 조선왕조 때는 이 종묘제례악을 궁중에서 연주하는 음악과 무용에 관한 일을 담당한 관청인 장악원(掌樂院) 악공들에 의해서 연주되어 왔습니다. 이 장악원은 대한제국을 선포한 1897년에 “교방사(敎坊司)”로 이름이 바뀌고 구성원의 숫자는 무려 772명까지 늘어났지요. 그러나 고종이 강제 폐위된 이후 305명으로 줄어들고 1910년 일본이 강제합병한 뒤엔 장악원을 없애고 대신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를 두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구성원도 종묘제례악 연주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도 안 되는 57명으로 대폭 줄였지요. 그러나 조선의 마지막 악공들은 종묘제례악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했습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해금연구회 주관으로 오는 2월18일(토)과 19일(일) 이틀 동안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에 있는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세기의 문호 셰익스피어 4대 비극 가운데 가장 강렬한 운명적 연애비극 로미오와 줄리엣 (Romeo and Juliet)을 각색한 "해미오 & 금이에 (Haemeo and Geumie)" 공연이 펼쳐진다. 해금연구회는 1992년 발족 이래 매년 정기연주회를 열며 전통음악뿐만이 아닌 다양한 해금창작곡 발표와 실험적인 해금창작곡들의 위촉을 통해 해금이라는 악기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여 해금의 저변확대와 신인연주자들의 발굴에 힘써온 단체이다. 해금연구회는 현재 전국의 약 330여명의 해금전공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정기연주회 및 지방 순회연주회 뿐 아니라 음반과 악보집도 펴냈으며, 해금음악의 현대화에 힘쓰고 더 나아가 세계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해금연주자이자 서울대 국악과 교수로 재직중인 양경숙 예술감독은 해금연주의 디바 김애라를 음악감독으로, 고수영(국립국악원 정악단 부수석), 노은아(서울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를 총괄기획, 4년째 호흡을 함께 맞추고 있는 권우 경연출자와 함께 본 공연을 진행한다. 해금, 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에 가면 정월 대보름날 낮에 쇠머리란 도구를 가지고 “쇠머리대기”를 합니다. 동부 마을과 서부 마을로 나누어서 서까래를 엮고 새끼로 묶어 쇠머리 모양의 조형물을 만들고 이를 마을의 힘센 젊은이들이 메고 공터에서 서로 부딪히는데 부서지거나 땅에 먼저 내려앉는 쪽이 싸움에 지는 것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펴낸 《조선의 향토오락(朝鮮の鄕土娛樂)》에는 “목마경쟁(木馬競爭, 목마싸움)“이라 기록되어 있으며, 1960년대에는 목우희(木牛戱) 또는 목우전(木牛戰)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나무쇠싸움・소나무싸움 따위로도 불렸는데 1969년 이 놀이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부터 쇠머리대기란 이름이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정월대보름 놀이로 행하여 오던 것을 1961년부터 3・1절에 행하게 되었지요. 이 고장이 기미 3・1 독립만세운동 때 조상들이 피 흘려 싸웠던 것을 기리기 위해 ‘3・1 민속문화제’를 열고, 이때에 호국 영령에게 제사지내기, 영산의 고유 민속놀이인 쇠머리대기, 줄당기기, 서낭대싸움놀이, 진잡이놀이, 문호장굿놀이 따위를 모두 함께 합니다. 쇠머리대기를 할 때에는 영산의 주민들뿐만 아니라 가까운 다른 마을에서도 많
[우리문화신문= 김영조 기자] 능금 골 열아홉 처녀 / 사진 들고 떠난 하와이 / 물 설고 말 설은 이국땅서 / 받은 설움 물리치고 / 고난의 순간마다 / 태평양 넘어 / 광복의 빛 그리며 / 가시밭길 헤쳐 나온 / 임의 발자국 - 이윤옥 시인의 <태평양 넘은 광복의 빛 '이희경’> 가운데- 일제강점기, 한국 여성들의 독립의 함성은 멀리 하와이부터 드넓은 중국 땅과 일본에 이르기까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들려왔다. 이러한 항일여성독립운동가들은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자로부터, 의병, 기생, 해녀, 학생, 의사, 교육가 등 직업의 귀천을 불문하고 독립운동에 온 몸을 바쳐 뛰었다. 그러나 불굴의 의지로 독립운동에 뛰어든 여성들에 대해 우리는 거의 알지 못하고 지내왔으며 올해 98주년을 맞이하는 3·1절에도 여전히 우리는 그들의 헌신과 희생의 삶에 대해 잘 모른다. 이러한 사실을 알리고자 이윤옥 시인은 시집 《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6권》을 통해 숭고한 삶을 살다간 여성독립운동가들을 널리 알려오고 있다. 이번에 제98주년 3・1절을 맞아 한국화가 이무성 화백은 이 이윤옥 시인의 시에 시화를 그린 작품 33점을 선보인다. 이번 시화전은 노동자 민족차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