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우부대언(右副代言, 승정원 종3품 벼슬) 원숙(元肅)을 보내어 성균관(成均館)에 궁온(宮, 궁중술)을 주었다. 생도(生徒)들이 두 의정(議政, 영의정ㆍ좌의정ㆍ우의정) 이하 여러 관각 제학(館閣提學, 홍문관ㆍ예문관ㆍ규장각의 종2품 벼슬)에게 율시(律詩)로 시험을 보기 때문이었다. 술이 1백 병인데, 어육(魚肉)을 갖추었다.” 위는 《태종실록》 태종 17년 9월 9일 “원숙을 보내어 성균관에 궁온(임금이 내리는 술)을 주다”라는 제목의 기록입니다. 조선 임금들 대부분은 백성을 사랑하는 일에 소홀히 하지 않았는데 특히 공부를 하는 유생들에겐 공부를 격려하는 뜻으로 술과 고기를 내리는 일이 많았습니다. 태종은 이듬해 8월 술 50 병과 말린 노루, 사슴고기를 성균관에 내려 주었는데 이때 태종은 유생들에게 흥겹게 놀라고 당부하기까지 했습니다. 또 조선시대 임금들은 과거시험 급제자에게 어사화와 함께 술과 과일을 내려주는 게 관례였고, 당상관(정3품 이상의 벼슬)을 지낸 이들 가운데 70살 이상이 되어 벼슬에서 물러난 사람에게 술과 고기를 보내줬습니다. 그리고 궁궐에서 당직을 하는 벼슬아치나 군사, 왕릉을 지키는 능지기, 빙고에 채울 얼음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집근처를 오가며 해금 교습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를 듣고, 호기심 반 취미 반으로 등록하여 배우던 중 지난 4월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국악영재교육원에 신청, 합격하여 해금이라는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서울 도림초등학교 5학년 이호연 어린이는 국악경연대회서 대상을 받았다. 지난 10월 1일 인천 부평아트센터 대공연장에서 인천광역시 부평구(구청장 홍미영) 주최, (사)서도창배뱅이연구보존회(회장 박준영) 주관으로 제16회 부평・전국국악경연대회가 열렸다. 모두 19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이날 수상자는 명인부 종합대상(국회의장상)에 김남순 씨, 명인부 대상(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에는 무용의 강예지 씨가 뽑혔고, 학생 초등부 대상(인천광역시 교육감상)은 도림초등학교 5학년 이호연 학생이 차지했다. 이날 눈길을 끈 이호연 양은 아버지 이성열 씨에 따르면 어려서 피아노도 치고 바이올린도 켜보았지만 가녀린 음색의 해금 연주하는 것을 무척 좋아하기에 집에서는 해금소녀라고 부른다고 한다. 심사위원장을 맡아 이호연 양의 연주를 면밀히 지켜본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한국전통음악학회장)는 “어린 학생인데도 활의 움직임이 활달하여 연주에 힘이 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수원시는 수원화성 축성 220주년을 맞아‘소통과 나눔 그리고 공감’이라는 주제로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을 한다. 정조대왕 능행차는 조선 22대 정조가 아버지 장헌세자(사도세자)의 묘소인 형륭원을 참배했던 1789년 을묘원행(乙卯園幸)을 시 자체적으로 재현해 왔다. 서울 창덕궁을 출발해 수원 화성행궁에 이르는 정조대왕 능행차 전구간이 재현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1997년 나란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각별한 인연이 있는 창덕궁과 수원화성이 이번 능행차를 통해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는 셈이다. 능행차 첫날인 10월8일에는 오전 9시에 창덕궁을 출발해 숭례문과 노량행궁을 거쳐 오후 6시 시흥행궁터에 도착한다. 둘째날인 10월 9일에는 오전 9시에 금천구청을 출발하여 만안교, 안양역(안양행궁지), 의왕시(사근행궁지), 지지대고개, 화성행궁을 거쳐 오후 6시30분에 연무대에 도착한다. 전체 행렬 구간 47.6.km, 총 참여인원 3,069명, 말 408필이 동원되는 역대 최대 규모이다. 처음 공동으로 재현하는 만큼 창덕궁 출궁의식과 배다리, 정조맞이, 격쟁 등 고증을 통해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순성놀이는 성을 한 바퀴 빙 돌아서 도성 안팎 풍경을 구경하는 놀이인데 새벽에 출발해서 저녁에 종을 칠 때에야 마칠 수 있었다. 산길이 깎은 듯이 험해서 마칠 때쯤에는 지친 사람이 많았다.” 위는 유득공의 《경도잡지(京都雜志)》에 나오는 순성놀이 설명입니다. 그런가 하면 서울시에서 만든 세계유산총회 홍보물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내용도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성곽을 따라 걸으면서 도성 안팎의 풍경을 감상하던 순성놀이가 있었다. 과거시험을 보러 상경한 선비들이 도성을 돌며 급제를 빌었는데, 이것이 도성민들에게 전해져 봄과 여름이면 성곽을 돌며 경치를 즐기는 풍습으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조선시대에 순성놀이는 선비들은 물론 온 도성민이 즐기던 것이었습니다. 그 순성놀이가 요즘에 와서 다시 부활되고 있지요. 서울시는 10월 15일(토)에 열리는 한양도성문화제의 하나로 ‘하루에 걷는 600년 서울, 순성놀이’ 참가자를 9월28일(수)부터 선착순으로 모집한다고 밝혔지요. 몇 년 전부터 해오던 순성놀이가 이젠 본격화한 느낌입니다. ’순성놀이’는 코스는 한양도성 모든 구간을 10시간동안 걷는 ‘일주코스’와 ‘반주코스’, ‘구간코스’로 구분됩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은 오는 10월 2일 ‘노인의 날’을 맞이하여, 한 세대와 공동체의 어른인 ‘노인’의 참된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노인(老人)-오랜 경험, 깊은 지혜’ 특별전을 9월 30일(금)부터 11월 8일(화)까지 기획전시실Ⅱ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세월의 깊이만큼 오랜 경험과 지혜를 쌓으면서 열정과 사명감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어른’들이 쓰던 도구 60여 점과 인터뷰 영상, 노인이 직접 제작한 노인 주제 영화 7편을 선보인다.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지혜를 간직한 노인의 이야기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은 사회적 잣대로만 평가되거나 어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공동체에서 소외되고 있다. 하지만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노인은 오랜 경험으로 축적한 깊은 지혜를 통해 후대에 바른길을 제시해 온 사회의 어른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특별한 듯하지만, 평범한 노인 4명의 이야기를 듣고 볼 수 있다. ◦ “기록은 모두 역사다” (농부 임대규: 남, 82살) 농부 임대규는 59년간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노트와 달력에 꼼꼼히 기록하여 보관하고 있는데, 그 자료들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굿은 무당이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노래와 춤으로 길흉화복(吉凶禍福) 같은 인간의 운명을 조절해달라고 비는 제의로 우리 겨레와 오랜 세월 함께 했던 세시풍속입니다. 그 굿 가운데 서울을 비롯한 한강 이북지방과 수원ㆍ인천 등지에서 마을의 평화와 풍년을 목적으로 해마다 또는 몇 년 사이로 정월초나 봄ㆍ가을에 정기적으로 행해지는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 “경기도도당굿(京畿道都堂굿)”도 있습니다. 경기도 도당굿의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마을 동산의 소나무 숲속에 300년이 넘은 도당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신 당가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를 통해 대대로 전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도당굿은 오전에 시작해서 다음날 아침에 끝나며, 집안의 대를 이어 기능을 연마하고 음악과 무용에 뛰어난 세습무당 곧 화랭이들이 진행하지요. 이 화랭이들은 남자무당으로 줄을 타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거나 재주놀이를 하면서 굿을 잔치분위기로 이끕니다. 그런데 굿은 전통적인 마을공동체가 도시화되면서 점차 공연화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사흘 이상 난장을 여는 큰 잔치였으나, 지금은 1박2일의 소박한 행사로 변했지요. 경기도 도당굿은 다른 지방의 도당굿에서는 찾아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9월 26일 늦은 3시부터 남원 만인의총에서는 만인의총 순의 419주년을 맞이하여 순의제향을 지내고 남원사회봉사단체협의회(회장 형창우, 111개 단체 참여) 주최로 “제13회 만인의사 추모 및 만인의총 국가관리 승격기념 만인문화제(대회장 강동원)”가 만인의총 광장에서 펼쳐졌습니다. 이 자리서 나선화 문화재청장은 격려사 가운데 “정유재란 때 남원성 전투는 결코 패전이 아니라 승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요? 흔히 우리가 알기로는 정유재란 때인 1597년(선조 30) 8월 13일에서 16일까지 명군과 조선군 4천여 명이 전투를 하다가 16일 모두 전사하고 18일엔 성이 함락 당했기에 패전한 것이라고만 압니다. 물론 이때 남원성에는 군인과 백성 등 1만여 명이 왜군 5만 6000여 명의 대병력을 맞아 목숨을 걸고 싸웠고, 장렬하게 전사한 건 맞습니다. 그러나 이 때 왜군도 엄청난 사망자와 부상자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지요. 그 때문에 제대로 북상하지 못한 남원성 전투의 좌군은 우군이 직산까지 진격할 때 공주에서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일 남원성 전투에서 왜군에 치명타를 입히지 못했다면 조선은 정유재란을 끝낼 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9월 26일 늦은 3시부터 남원 만인의총에서는 만인의총 순의 419주년을 맞이하여 순의제향을 지내고 남원사회봉사단체협의회(회장 형창우, 111개 단체 참여) 주최로“제13회 만인의사 추모 및 만인의총 국가관리 승격기념 만인문화제(대회장 강동원)”가 만인의총 광장에서 펼쳐졌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나라의 위급함에 남원성에서 왜군을 맞아 민관군 일만여 명이 오직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에 하나가 되어 최후의 1인까지 최선을 다하다 순절하였다. 이를 후세 사람들은 정유재란 남원성전투라 말하고, 그 의인들을 만인의사라 불렀으며, 그 넋을 한곳에 모아 봉안한 곳을 만인의총이라 이름하였다. 이날 행사에는 나선화 문화재청장, 송하진 전라북도 도지사, 이환주 남원시장과 남원시 각계기관장, 유가족, 그리고 시민 등 일천오백여명이 참가 하였다. 이날 강동원 대회장은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올해부터 만인의총이 국가관리로 승격되었다. 이 같은 결정이 있기 까지 가장 큰 공을 세우신 것은 바로 위대한 남원시민 여러분이며, 남원시민 스스로 자축해야 할 당위성이 있다.”라고 감격스러워 했다. 이어 나선화 문화재청장은 격려사에서 “정유재란은 패전이 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줄다리기는 농경의식의 하나인 일종의 편싸움 놀이입니다. 그 가운데 충남 당진 기지시리에 가면 국가무형문화제 제75호로 지정된 “기지시줄다리기”가 있습니다. 이 줄다리기는 마을을 뭍(육지)과 바닷가쪽 두 편으로 나누는데 생산의 의미에서 여성을 상징하는 바닷가 쪽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믿었습니다. 줄다리기는 윤년 음력 3월초에 재앙을 막고 풍년을 기원하는 당제를 지낸 다음 행해졌지요. 전설에 따르면 기지시리는 풍수적으로 옥녀가 베 짜는 모양이어서 베를 양쪽에서 잡아당기는 시늉을 한데서 줄다리기가 생겼다고 합니다. 줄의 길이는 50∼60m이며 지름이 1m가 넘는 경우도 있어 사람이 줄을 타고 앉으면 두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라고 하지요. 또 줄이 커서 손으로 잡아당길 수가 없기 때문에 원줄의 중간 중간에 가늘게 만든 곁줄을 여러 개 매달아 잡아당기기 좋도록 만듭니다. 줄 위에 올라선 대장이 지휘를 하면 줄다리기가 시작되지요. 줄다리기가 끝나면 사람들이 몰려들어 칼로 줄을 끊어 가는데 이 줄을 달여 먹으면 요통이나 불임증에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함께 줄에 양잿물을 떨어뜨리거나 바늘을 꽂으면 줄이 끊어지고 여자가 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경국대전(經國大典)》은 성종 16년(1485)부터 고종 31년(1894)까지 조선왕조를 통치하는 기본 법전이었습니다. 이 《경국대전》에 따르면 궁중음식을 맡아 운영하는 관청으로 사옹원을 두었는데, 사옹원의 총책임자는 정3품과 종3품직 제거 두 사람이었지요. 제거 아래로는 종6품직 재부(宰夫)가 한 사람 있었는데 지금으로 치면 주방장입니다. 그 재부 아래로는 일반 조리사들로 반찬 담당인 선부, 조리 담당인 조부, 불 때는 담당인 임부, 끓이는 담당인 팽부 등 9명을 두었는데 이들이 흔히 말하는 숙수(熟手)지요. 그리고 이 13명의 숙수들은 대전수라간, 왕비전수라간, 대왕대비전수라간, 문소전(태조와 태종의 신위를 모신 사당)수라간, 다인청(내시들의 사는 공간), 세자궁수라간, 세자빈궁수라간에 적절히 배정되어 일을 했습니다. 또 숙수들은 노자(奴子, 사내종)들을 거느리고 조리했습니다. 이 노자들은 각각의 전문 영역을 담당했는데 음식물을 맡아 보던 반감, 고기 다루는 별사옹, 물 끓이는 탕수색, 밥상 차리는 상배색, 생선 굽는 적색, 밥 짓는 반공, 두부 만드는 포장, 술을 빚는 주색, 차 우리는 다색, 떡 빚는 병공, 음식을 찌는 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