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지난해 우리는 메르스 공포로 온 국민이 두려워했습니다. 지금처럼 의학이 발달했어도 전염병이 돌면 전전긍긍하지만 예전에는 더욱 그러했지요. 중종 때인 1524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평안도 전역에 전염성 열병이 크게 번져 많은 백성들이 죽었습니다. 이에 중종은 1525년(중종 20) 의관 김순몽(金順蒙)유영정(劉永貞)박세거(朴世擧) 등에게 명하여 돌림병의 치료에 필요한 처방글을 모아 엮은 한글로 번역하여 《간이벽온방(언해)(簡易辟瘟方(諺解)》를 펴냈습니다. 이 책은 기존에 나와 있던 많은 의학책들에서 전염병과 관련된 내용들을 참고하여 낸 것으로 모두 50쪽으로 되어 있지요. 책은 먼저 병의 증상을 설명한 다음 치료법을 설명하였습니다. 여기 기록된 것을 보면 나이에 관계없이 전염병에 걸리면 열이 몹시 나고 정신을 잃는다고 했으며, 전염성이 강하고 사망률이 높기 때문에 약을 미리 먹어야 한다는 내용도 있지요. ▲ 돌림병의 치료에 필요한 처방글을 모은《간이벽온방(언해)(簡易辟瘟方(諺解)》서문, 가천박물관 치료법과 예방법은 44개의 항목으로 나누어 실었습니다. 특히 예방법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꽃 전체가 바람을 따라 흔들릴 정도로 작고 여리며, 바람처럼 일찍 피었다가 바람처럼 빨리 사라지는 꽃을 아십니까? 이름하여 바람꽃입니다. 잔설이 채 녹지 않은 이른 봄에 차갑게 얼어붙은 땅을 비집고 올라와 봄을 맞이하지요. 바람꽃은 종류도 꽤 많은 것처럼 생김새도 각양각색인데 여성스럽고도 한국적인 아름다움과 성품을 잔뜩 지녔다고 말들 합니다. 전북 변산반도 일대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고 땅이름이 그대로 꽃이름이 되어버린 변산바람꽃, 겨우내 쌓였던 눈이 채 녹기도 전에 이 꽃이 하얀 꽃망울을 터뜨리게 되면, 비로소 그 해의 봄은 시작됩니다. 기후온난화의 영향에 따라 변산바람꽃은 점점 북상하여, 이제는 중부 이북에서도 속속 발견이 되지요. 그밖에 바람꽃 자매로는 너도바람꽃, 홀아비바람꽃, 동이바람꽃, 꿩바람꽃, 만주바람꽃, 회리바람꽃, 들바람꽃, 숲바람꽃, 태백바람꽃, 나도바람꽃, 남바람꽃, 세바람꽃, 쌍동이바람꽃, 외대바람꽃, 긴털바람꽃, 가래바람꽃 따위가 있습니다. 바람꽃 종류들의 속명(屬名, 생물의 분류에 있어 과-科와 종-種 사이에 붙여지는 이름)은 아네모네(Anemone)인데, 그와 관련된 전설이 내려옵니다. 옛날 꽃의 신 플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의 다섯째 절기 청명(淸明)으로 청명은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뜻을 지닌 말이다. 청명은 한식(寒食) 하루 전날이거나 같은 날일 수 있는데 이번엔 하루 차이로 내일이 한식이다. 임금이 내려준 불, 모든 백성에게 나눠주는 사화(賜火)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청명조(淸明條)에 따르면, 이날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 새 불을 일으켜 임금에게 바치며, 임금은 이 불을 정승과 판서를 비롯한 문무백관 그리고 360 고을의 수령에게 나누어주는데 이를 사화(賜火)라 한다. 수령들은 한식날 다시 이 불을 백성에게 나누어주는데,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을 수 없기에 찬밥을 먹는다고 해서 한식이라고 했다. ▲ 임금이 내려준 불, 모든 백성에게 나눠주는 사화, 이래서 찬밥을 먹는 한식이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불씨를 꺼트리면 안 되는 예전에는 이렇게 온 백성이 한 불을 씀으로써 같은 운명체임을 느꼈다. 꺼지기 쉬운 불이기 때문에 습기나 바람에 강한 불씨통[장화통-藏火筒]에 담아 팔도로 불을 보냈는데 그 불씨통은 뱀껍질이나 닭껍질로 만든 주머니로 보온력이 강한 은행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암행어사(暗行御史)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조선 시대에, 임금의 특명을 받아 지방관의 치적과 비위를 탐문하고 백성의 어려움을 살펴서 개선하는 일을 맡아 하던 임시 벼슬이라고 나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암행어사들은 판소리 춘향전에서 만나는 이몽룡과 실존인물 박문수 정도입니다. 그런데 여기 온갖 이상 기후로 흉년이 극에 달한 숙종 때 황해도 암행을 하고 쓴 글 《해서암행일기(海西暗行日記)》의 지은이 박만정(朴萬鼎, 16481717)도 있습니다. ▲ 보물이 된 암행어사 일기, 박만정(朴萬鼎)의 《해서암행일기(海西暗行日記)》 백천군수 이동형은 부임 초기에는 제법 유능하다는 평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가을 열여섯 방의 부유한 백성 300여명을 초청해 소를 잡고 주연을 베풀었는데 여러 사람이 둘러앉은 자리에서 직접 잔을 들어 손님들에게 권한 뒤에 몇 순배 잔이 돌아가자 손님들에게 자신들이 상납할 곡물 수량을 쓰도록 했습니다. 그 가운데 쓴 수량이 많은 것을 기준으로 삼아 이보다 한 섬이라도 모자라면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중간 줄임) 가난한 백성에게 무상의 양곡도 아주 불공평하게 지급해 외롭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정당벌립은 제주도 사람들이 밭일을 하거나 소나 말을 키울 때 썼던 댕댕이덩굴패랭이로 정동벌립, 정동벙것이라도 부릅니다. 이 모자는 맥고모자(麥藁帽子)라고도 부르는 밀짚모자와 모양이나 기능이 비슷하지만 밀짚모자와 달리 머리가 모자 속으로 푹 들어가지 않고 머리 윗부분에 얹히게 만들어 상투를 보호해주는 점이 다르지요. 이 정당벌립도 차양이 넓은데, 대신 윗부분을 말총으로 만든 총모자는 작고 뾰족한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정당벌립은 특히 말이나 소를 치는 사람들에게 아주 이상적인 모자입니다. 그 까닭은 정당벌립에 가시가 걸리더라도 가시는 모자에 닿자마자 미끄러져 모자가 벗겨지지 않고 머리나 얼굴이 가시에 긁힐 일이 없기 때문이지요. 뿐만 아니라 여름에는 갈옷과 함께 따가운 햇볕을 피하게 하고, 비오는 날에는 새풀로 엮은 도롱이와 함께 입어 유용합니다. 숲이 우거진 한라산을 누비며 살아야 했던 제주도 사람들의 생활에 적합한 모자지요. ▲ 제주 사람들의 모자 정당벌립 정당벌립은 한라산에 자생하는 댕댕이덩굴로 만듭니다. 댕댕이덩굴 줄기는 내구성이 강하고 탄력성이 좋을 뿐 아니라 물에 젖으면 잘 구부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어제 3월 29일 저녁 7시 서울 서초구 정효국악문화재단에서는 박춘재・이창배제 “소리의 맥을 찾아서” 공연이 열렸다. 이 공연은 거의 맥이 끊기다시피 한 재담소리를 새롭게 잇고 전승해나가는 백영춘・최영숙 명창의 공연이었다. 재담소리란 무엇인가?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를 고정관념을 탈피하여 익살과 해학으로 상황에 맞도록 재미있게 진행해 나가면서 소리와 춤, 연기로서 관객을 울리고 웃기는 민속극의 한 장르다. ▲ 장대장타령을 하는 백영춘ㆍ최영숙 명창 정효국악문화재단은 작은 공연장인데 이날 몰려든 100여 명의 청중으로 긴급히 별도의 의자를 마련할 정도로 성황을 이뤘으며국악평론가 김문성 씨의 사회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김문성 씨는 “백영춘 명인은 지금 건강이 많이 안 좋지만 재담소리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무대에 선 분이라며 큰 추임새로 응원해달라.”고 운을 떼었다. 본 공연에 앞서 먼저 제자들의 경기민요 한바탕이 벌어졌고 한국전통음악학회 서한범 회장의 축사가 있었다. 서한범 회장은 “2016년 벽두에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평소 국악을 애호해오던 독지가 한 분이 국악의 저변 확대를 위해 서초동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겨울철에 추운 것은 본래 계절에 맞는 날씨지만 만일 혹시 너무 따뜻하면 농사에 영향을 끼칠 염려가 있을 듯하다.라고 정조임금이 말하자 영의정 서명선이 아뢰기를, 이 점은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지난 무술년(1778, 정조2) 겨울이 지나치게 따뜻하여 진달래가 활짝 피기까지 하였으나 이듬해에는 과연 풍년이 들었습니다. 이는《정조실록》6년 (1782) 9월 29일 기록으로 두 사람은 겨울에 핀 진달래가 이듬해 풍년을 가져온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진달래꽃하면 김소월의 시가 떠오르는 것처럼 우리 정서에 아련한 진달래꽃이 온 나라 산에 꽃망울을 터뜨렸습니다. 특히 서울에서 가까운 강화 고려산에는 진달래꽃 잔치(4월 12일~4월16일)까지 마련하여 진달래꽃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강화 고려산의 옛 이름은 다섯 곳에 연못이 있다하여 오련지(五蓮池)로 불렀으나 고려가 강화로 천도하면서 고려산으로 부르게 되었지요. ▲ 강화 고려산에 흐드러진 진달래 정경(고려산진달래축제 제공) 그런가하면 한라산 선작지왓도 진달래꽃으로 이름난 곳입니다. 특히 이곳은 4월부터 6월까지 털진달래의 연분홍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래 사는 것 열 가지를 그린 것을 우리는 십장생도(十長生圖)라고 합니다. 그런데 열 가지가 안 되면 그저 장생도(長生圖)라 부르고, 한 가지씩 그린 것이면 군학십장생도(群鶴十長生圖), 군록십장생도(群鹿十長生圖)처럼 부르기도 하지요. 십장생으로는 보통 해,구름,뫼(산),물,바위,학,사슴,거북,소나무,불로초를 꼽지만 그밖에 대나무와 천도 (天桃)를 그리기도 합니다. 보통 가운데에 사슴이나 학들을 그리고 왼편에 바다와 거북을 그리는데 아름다운 빛깔을 최대한 살려 상상 속의 선계(仙界)를 묘사하며, 대체적으로 8~10폭으로 된 병풍 그림이 많습니다. 새해에 임금이 신하들에게 장생도를 선물로 내렸다고 하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십장생도는 주로 왕실 등에서 세화(歲畵, 새해를 송축하고 재앙을 막기 위해 그린 그림)와 축수용(祝壽用, 오래 살기를 빎) 그림으로 주로 쓰였음을 알 수 있지요.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37호 십장생도, 서울역사박물관 십장생도는 그림뿐 아니라, 조선시대의 도자기, 나전공예품,목공예품, 자수 작품, 벼루는 물론 건물 벽의 장식 등에 광범위하게 쓰였는데 바로 경복궁 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세종실록》 7년(1425) 2월 4일 기록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먹는 것은 백성의 근본이 되고, 곡식은 소의 힘으로 나오므로, 조정에서는 금살도감(禁殺都監)을 설치하였고, 중국에서는 소고기 판매를 금지하는 법령이 있으니, 이는 농사를 중히 여기고 민생을 후하게 하려는 것이다. 라는 말이 문헌에 있습니다. (중간 줄임) 지금부터는 그 실정을 알고도 소고기를 먹는 자에게는, 청컨대, 제서유위율(制書有違律, 제서에 적힌 임금의 명령을 어긴 행위를 처벌하던 법)로써 논단하게 하고, 한성부로 하여금 이를 찾아내 체포하여 엄히 못하게 하소서. 그런가 하면 《숙종실록》 숙종 9년(1683) 1월 28일 기록에 송시열이 가뭄을 걱정하면서 임금에게 말한 내용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소의 힘으로 농사를 지어 먹고 살면서도 소를 잡아먹기 때문에 소의 원한(怨恨)이 천지의 화기(和氣)를 손상시키고 이것이 자연의 운행질서를 깨뜨리는 탓으로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는 평생 소를 부려먹고 그것도 모자라 소의 고기까지 먹으니 잔인하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더불어서 율곡 이이(李珥)는 평생 소고기를 먹지 아니하였으며 그 집에는 지금도 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인사동에 나갔더니 새로 열린 면세점 “SM”이 있습니다. 그런데 SM은 커다란 펼침막에 “문을 열다”라고 써놓았습니다. 어디건 새로 문을 열면 버릇처럼 “OPEN“ ”GRAND OPEN“이라고 쓰는데 견줘 우리말로 펼침막을 단 ”SM“에 칭찬을 해줘야 하겠습니다. ”문을 열다“를 보고 어색하다고 할 사람보다는 신선하다고 할 사람이 많지 않을 까요? 대기업의 우리말 사랑 정신 참으로 흐뭇합니다. ▲ "문을 열다"라고 쓴 펼침막에서 200m쯤 떨어진 곳에는 여전히 "GRAND OPEN"이라고 영어로 범벅을 해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