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나는 큰 고을의 원님이 되었네. 마침 자네가 사는 곳과 가까우니 어머니를 모시고 이곳으로 오시게. 내가 봉급의 절반으로 그대를 대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거니, 결코 양식이 떨어지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네. 자네와 나는 처지야 서로 다르지만 취향이 같고, 자네의 재주가 나보다 열 배는 뛰어나지 않은가? 그렇지만 세상에서 버림받기는 자네가 나보다도 심하니, 내가 언제나 기가 막히게 생각하고 있다네. 나는 비록 운수가 기박해도 몇 차례 고을의 원님이 되어 먹고 살 수 있지만, 자네는 입에 풀칠하는 것조차 어려우니 안타깝구려. 위 내용은 시대의 풍운아 교산(蛟山) 허균(許筠, 1569~1618)이 공주목사로 부임한 뒤 자신의 절친한 벗 이재영(李再榮)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입니다. 이재영은 어머니가 노비로 서자보다 못한 얼자(孼子)였지요. 철저한 신분사회였던 조선시대에 얼자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도 못하고 형에게 형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처지였습니다. 허균이 쓴 《홍길동전》의 홍길동과 같은 처지인 것이지요. ▲ 《홍길동전》을 쓴 허균, 얼자와도 절친하게 지냈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허균은 신분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우리 마을을 지켜 주는 나무예요. 한국전쟁 때 전쟁터에 나가게 된 사람들은 나무 앞에 술 한 잔 바치고 절을 올리면서 무사히 돌아올 수 있기를 기원했지요. 그 험한 전쟁에서 다친 사람 하나 없이 성하게 돌아온 것도 모두 나무 덕이지요. ▲ 신비스러운 위엄을 지닌 천연기념물 제289호 합천 화양리소나무(문화재청 제공) 위 내용은 서울신문 2012년 10월 24일 기사 한 대목입니다. 경남 합천군 묘산면 화양리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289호 합천 화양리소나무를 두고 한 말입니다. 산첩첩 물겹겹 길 없을까 하면 나타나는 해발 500m 정도 깊은 산속 두메 마을에 있는 소나무지요. 나이가 5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이 소나무는 키 17.7m, 둘레 6.15m의 크기로 가지는 3m쯤 높이에서 갈라져 다시 아래로 처지 듯 발달하였는데 그 모습이 매우 독특하고 아름답습니다. 나무껍질이 거북등처럼 갈라져 있고 가지가 용처럼 생겼다 하여 구룡목(龜龍木)이라고도 부르지요. 연안 김 씨의 후손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광해군 5년(1613)에 연흥부원군 김제남이 영창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려 한다는 모함을 받고 역적으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삼성동 한국문화의집(코우스)에서는 화성 재인청 도대방을 지낸 이동안 선생의 수제자로 알려진 이승희 선생 공연이 있었습니다. 이때 이 공연을 본 관객들은 상당한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지요. 그것은 이승희 선생의 춤이 그동안 우리가 봐오던 춤들과는 다른 모습이었기에 그랬던 것입니다. 춤추듯 멈추고 멈춘 듯 춤추는 그날의 춤은 기교와 교태를 싹 뺀 그야말로 담백한 모습 그것이었습니다. ▲ 심우장 마당에서 승무를 추는 이승희 선생 경상대학교 민속무용학과 김미숙 교수는 우리 춤사위가 정중동(靜中動)과 동중정(動中靜)이 내포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정재(呈才) 곧 궁중무용은 궁중무용대로 멈춘 듯 움직이며 흐르고 있는 유장미를 내재하고 있고, 민속춤은 민속춤대로 즉흥성을 띠고 정중동과 동중정을 드러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살풀이춤이나 승무는 물론 영남의 덧배기춤, 탈춤, 풀물굿의 채상모놀음에서도 그것을 분명히 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 불교가 성했던 고려에서 청자가 발달했던 것과는 달리 성리학이 최고의 가치였던 조선에서는 담백한 모습을 담아낸 백자가 유행했듯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 국립국어원 온라인소식지 <쉼표마침표> 최근호 첫화면. "'어멍''아방' 남다른 맛의 제주도 방언"이라는 제목이 보인다. ▲ <쉼표마침표> 표에 ‘제주 방언 가사’이란 칸에는 “어멍 아방”이 나오고 그를 견준 ‘표준어’ 칸에는 ”마더(mother) 파더(father)“라고 써놓았다. 국립국어원에는 <쉼표마침표>라는 온라인소식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호에는 “얼마 전, 한 예능 방송에서 제주도 출신인 아이돌 가수가 싸이의 노래 ‘젠틀맨’을 제주 방언으로 바꾸어 열창하였습니다. 인기곡 ‘젠틀맨’의 멜로디에 놀랍도록 자연스럽게 얹힌 제주 방언은 마치 외국어로 된 가사처럼 낯설고도 신기하게 들렸습니다. 무엇보다 후렴인 ‘마더 파더 젠틀맨’을 “어멍 아방 젠틀맨”으로 재치 있게 바꾸어 시청자들의 폭소를 자아냈습니다.”라는 글이 보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글 가운데 ‘제주 사투리 가사’와 ‘싸이의 가사’를 대조한 표에 있었습니다. 표에는 ‘제주 방언 가사’이란 칸에는 “어멍 아방”이 나오고 그를 견준 ‘표준어’ 칸에는 마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고인돌은 박물관이 아니라 자연 현장에서 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청동기 시대 유적입니다. 이 고인돌은 전 세계에서 발견되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남북한을 통틀어 세계 고인돌의 40퍼센트 이상에 해당하는 4만이 넘는 고인돌이 발견되어 실로 고인돌 왕국이라는 불릴 만합니다. 그런데 최근 안성, 창원, 춘천, 제천, 포항 등 그동안 밀집되어 발견된 화순, 고창, 강화가 아닌 여러 곳에서 또 다른 고인돌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 '강화역사박물관' 앞에 있는 사적 제137호 강화 부근리 고인돌 고인돌은 보통 땅위나 지하의 무덤방 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얹어 만드는데 덮개돌의 형태에 따라 크게 탁자식과 바둑판식, 개석식, 위석식으로 나눕니다. 탁자식 고인돌은 잘 다듬은 판석 3~4매를 땅 위에 고임돌로 세워 돌방을 만들고 주검을 놓은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얹은 모습이고, 바둑판식 고인돌은 땅 아래에 판석을 세우거나 깬돌을 쌓아 무덤방을 만들어 주검을 묻고 땅 위에 고임돌을 낮게 놓은 상태에서 덮개돌을 얹은 모습입니다. 고임돌 없이 덮개돌만 얹은 것이 개석식 고인돌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조선시대 왕실이나 양반가에서는 유모 곧 젖어멈이 아이를 키우는 게 하나의 풍습이고 문화였습니다. 아이는 젖어멈을 친어머니처럼 여기며, 젖어멈의 품성을 그대로 닮는다는 게 옛날 사람들의 믿음이었지요. 그 때문에 유모를 고르는 것은 왕실이나 가문을 길이 보전하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특히 왕세자의 젖어멈은 왕세자의 첫 스승을 뽑는 의미였기에 유모나 보모로 부르지 않고, 자사(子師)라 부르고, 임금의 젖어멈은 봉보부인(奉保夫人)이라는 종1품 벼슬을 내리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젖어멈의 역할은 첫 스승과 함께 병이 걸리면 병을 치료하는 몫까지 담당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젖어멈을 고를 때는 젖어멈의 잔병이 아이에게 전염되지 않게 하기 위해 건강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한 과정이었습니다. 특히 아이가 병에 걸리면 아이에게 약을 직접 먹일 수 없기 때문에 젖어멈이 아이에게 먹일 약을 대신 먹었지요. 그러면 아이는 유모의 젖을 통해 치료약을 간접적으로 먹게 됩니다. 따라서 젖어멈의 젖은 의료기구의 하나이자 의약품인 셈이었습니다. ▲ 조선시대 왕실이나 양반가는 아이가 아프면 아이 대신 젖어멈(유모)이 약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정월보름 달떡이요 이월한식 송병이요 삼월 삼짇 쑥떡이로다 떡 사오 떡을 사오 사월파일 누티떡에 오월단오 수리치취떡 유월 유두에 밀전병이라 떡 사오 떡을 사오 칠월칠석에 수단이요 팔월가위 오려송편 구월구일 국화떡이라 떡 사오 떡을 사오 시월상달 무시루떡 동지달에 새알시미 섣달에는 골무떡이라 떡 사오 떡을 사오 두귀발쭉 송편이요 세귀발쭉 호만두 네귀발쭉 인절미로다 떡사오 떡을 사오 먹기 좋은 꿀설기 보기 좋은 백설기 시금털털 증편이로다 떡 사오 떡을 사오 위는 평안도민요 떡타령입니다. 떡은 우리 겨레가 즐겨 먹던 먹거리로 떡과 관련된 속담도 참 많습니다. 예를 들면 떡도 먹어 본 사람이 먹는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떡 주고 뺨 맞는다, 떡 해 먹을 세상, 잘되는 놈은 엎어져도 떡함지라, 죽은 사람 손에서 떡 빼앗아 먹겠다. 앞집 떡 치는 소리 듣고 김칫국부터 마신다, 꼴에 떡 사 먹겠다, 여름비는 잠비 가을비는 떡비, 친아비 장작 패는 데는 안 가고 이붓아비 떡 치는 데는 간다따위가 있습니다. ▲ 올해 병신년은 잘되는 놈은 엎어져도 떡함지라가 될 것(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삼국시대 이전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희 놈은 상긔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레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니 우리가 익숙히 들어왔던 남구만의 시조 동창이 밝았느냐 노랫말이다. 무대에서는 보통의 시조창보다도 훨씬 느리면서도 장중미가 느껴지는 노래가 펼쳐진다. 박문규 명인이 전통가곡 남창 평조(平調) 초수대엽(初數大葉) 동창이 밝았느냐를 부르고 있다. 세상에 어찌 이렇게 느린 노래, 뱃속 저 깊이에서 울려나오는 노래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저 무대에 앉은 이는 선비인가, 가객인가, 신선인가? ▲ 박문규 명인의 전통가곡 발표회 ▲ 장중하게 전통가곡을 노래하는 박문규 명인 오늘 우리는 박문규 명인의 전통가곡 발표회에 와있다. 문화체육관광부 2015 원로예술인 공연지원, 한국정가악(正歌樂)연구원 주관으로 1월 23일 늦은 5시 서울 삼성동 한국문화의집(코우스)에서 열린 것이다. 동창이 밝았느냐로 문을 연 공연은 남창가곡 평조(平調) 이수대엽(二數大葉) 강호에 기약을 두고와 황숙경 명창의 여창가곡 평조(平調) 우락(羽樂) 바람은 지동치듯 불고가 이어진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지지난해 우리는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蔚州 大谷里 盤龜臺 岩刻畵) 주변 가변형 임시 물막이 설치 문제로 시끄러웠습니다. 그런 암각화가 경상북도 고령군에도 있는데 바로 보물 제605호 고령 장기리 암각화(高靈 場基里 岩刻畵)입니다. 이는 장기리 알터마을 길목에 있는 높이 3m, 너비 6m의 암벽에 새겨진 바위그림이지요. 암각화란 선사시대 사람들이 그들의 생각이나 바람을 커다란 바위 같은 성스러운 장소에 새긴 것을 말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암각화는 북방문화권과 관련된 유적으로, 우리민족의 기원과 이동을 알려주는 자료로 볼 수 있습니다. ▲ 보물 제605호 고령 장기리 암각화(高靈 場基里 岩刻畵), 문화재청 제공 바위그림은 겹둥근무늬(동심원)와 십자무늬, 얼굴 모양 같은 것들이 새겨져 있지요. 세 겹의 동심원은 4점으로 해와 달을 상징하고, 십자형은 부족사회의 생활권을 표시한 것으로 짐작되며, 사람의 얼굴 형태를 하고 있는 것은 모두 17점입니다. 전문가들은 상징과 기호를 이용해 제단을 만들고 농경을 위해 태양신에게 소원을 빈 농경사회 신앙을 표현한 것으로 말하고 있지요. 가까운 곳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의 맨 마지막 날 대한(大寒)입니다. 이름으로는 가장 추운 날이지만 우리나라에선 작은 추위라는 소한에 가장 추운 날의 지위를 빼앗겼습니다. 이날은 세끼 가운데 한 끼는 꼭 죽을 먹었지요. 그것은 나무나 한두 짐씩 하는 것 말고는 대부분 일하지 않고 쉬는 때이므로 삼시 세끼 밥 먹기가 죄스러워 그랬다고 합니다. 또 겨울에 양식이 있다 하여 아끼지 않으면 보릿고개 때 굶을 수 있기 때문에 미리 대비하는 뜻도 있습니다. 요즈음 매서운 추위에 사람들은 쩔쩔매지만 온난화 때문에 예전 같이 살을 에는 추위는 아니지요. 그러나 예전엔 추위도 추위지만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 집과 추위를 막아낼 옷가지도 변변치 못했기에 백성은 참으로 힘든 겨울을 보내야 했습니다. 심지어 《삼국사기(三國史記)》 권제10 신라본기 애장왕조 801년 10월에 보면 큰 추위가 있어 소나무와 대나무가 모두 죽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의 추위와는 견줄 수도 없을 만큼 추웠나 봅니다. ▲ 고려 제10대 임금 정종(靖宗), 대한을 맞아 귀화한 사람들과 오랑캐에게 잡혀갓다 되돌아온 사람들에게 면포를 주라고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