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대호군 윤중부(尹重富)가 백자(白磁)에 푸른 꽃무늬가 있는 큰 술잔 한 벌을 바치니, 쌀·콩 20석을 내렸다(세종실록 44권, 1429)” 라든가 “임금이 왕세자와 백관을 거느리고 태평관에 거둥하여 하마연(下馬宴)을 베푸니, 사신이 백자 청화 대접(白磁靑化大) 4벌을 바쳤다 (세종 46권, 1429)”와 같이 조선왕조실록에는 임금이 연회를 베풀 때 술잔이나 대접과 같은 백자 그릇을 바쳤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특히 백자에 푸른 꽃무늬의 큰 술잔이란 청화백자를 말하는 것으로 조선시대 궁궐에서 청화백자를 귀하게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청화백자 가운데 ‘청화백자산수무늬 항아리(靑畵白磁山水文壺)가 있는데 흰 바탕에 푸른색으로 그린 그림이 한 폭의 동양화를 느끼게 하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조선 왕실 자기를 굽던 관요에서 만들어진 백자 항아리로 몸체 양쪽 면에 능화모양의 창을 만들고 산수화를 그려 넣은 것이 특징으로 꼽힙니다. ▲ "청화백자산수무늬 항아리(靑畵白磁山水文壺)", 국립중앙박물관 가을 밤 절벽 위에 인물과 멀리 동정호(洞庭湖)에 떠오른 둥근 달을 그렸는데, 이러한 소상팔경이 능화모양 창 안에 한 폭의 산수화로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권기옥은 근대문명의 꽃인 비행사가 되어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는 독립운동을 했던 신여성이었다. 그의 생애는 ‘식민지-근대-여성’ 이라는 문제가 어떻게 관련 맺고 구체적인 모습으로 펼쳐지는지를 잘 드러내주고 있다. 권기옥은 인맥과 활동 반경, 실천 양태에서 여성독립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젖혔다.(중간 줄임) 그의 발자취는 한반도가 대륙적인 지평을 가졌던 한 시대를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식민지 시대를 살았지만 그는 세계인이었다.” 한국 최초의 여성비행사 권기옥을 다룬 “날개옷을 찾아서”를 쓴 정해주 작가는 작가 후기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지금도 비행사가 되기 쉽지 않은데 1917년 열일곱의 나이로 권기옥은 미국인 아트스미스의 곡예비행을 보고 비행사가 되기로 다짐합니다. 그리고 스물셋의 나이에 여학생을 받아 주지 않는 중국의 항공학교 입학허가서를 받아 쥐고는 남자들과 똑 같은 고된 훈련 끝에 조종사 자격을 손에 거머쥐게 되지요. 그는 1961년 ‘여원’ 잡지와의 대담에서 ‘비행사가 되어 왜놈을 쳐부수고 싶었다.’라는 고백을 합니다. 권기옥 지사는 1925년 비행학교 졸업 뒤에 임시정부 소개로 중국의 풍옥상(馮玉祥) 휘하 공군에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에는 토끼섬이라 불리는 섬이 있습니다. 이 섬에는 천연기념물 제19호로 지정된 아름다운 꽃 문주란이 자라고 있는데 원래 이 섬 이름은 난(蘭)이 자라는 섬이라 해서 난섬이라 불렸지요. 960여 평의 넓이의 백사장과 10여 미터 높이의 현무암 동산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섬은 썰물 때에는 걸어갈 수 있는 곳으로 바위와 모래밭 언덕에 문주란 군락이 볼만한 곳입니다. 1927년에 주민 윤석후 씨가 토끼를 이곳에 풀어놓아 '토끼섬'으로 불렸다는 이야기와 7-8월에 새하얀 꽃으로 뒤덮인 섬의 모습이 토끼모양이라 토기섬이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토끼섬의 "문주란" 자생지(문화재청 제공)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자라는 문주란은 난(蘭)으로 부르지만 사실은 난과(蘭科)식물이 아니라 수선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높이 60~70센티미터까지 자랍니다. 겨울에 말랐던 잎이 봄을 맞으면 파랗게 새잎이 돋아나고 7월말쯤부터 백설 같은 꽃을 연달아 피워 9월까지 온 섬을 하얗게 물들이는데 그윽한 꽃향기가 온종일 풍기다가도 해가 지면 슬그머니 사그라진다고 하지요. 문주란은 머나먼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식물인데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高堂六月盛炎蒸 고대광실 오뉴월 푹푹 찌는 여름날에 美人素手傳淸氷 여인의 섬섬옥수 맑은 얼음 내어오네. 鸞刀擊碎四座편 칼로 그 얼음 깨 자리에 두루 돌리니 空裏白日流素霰 멀건 대낮에 하얀 안개가 피어나네. 滿堂歡樂不知暑 왁자지껄 떠드는 이들 더위를 모르니 誰言鑿氷此勞苦 얼음뜨는 그 고생을 그 누가 알아주리. 君不見 그대는 못보았나? 道傍갈死民 길가에 더위먹고 죽어 뒹구는 백성들이 多是江中鑿氷人 지난겨울 강위에서 얼음뜨던 자들이란 걸.” ▲ 장빙군(藏氷軍), 한강에서 얼음을 뜨던 백성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위 한시는 조선 후기의 문신 김창협(金昌協, 1651 ~ 1708)의 “얼음 뜨는 자들을 위한 노래(鑿氷行)”입니다. 처서가 지났지만 아직 더위가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습니다. 예전 냉장고가 없던 조선시대엔 냉장고 대신 얼음으로 음식이 상하는 것을 막으려했지요. 그래서 한겨울 장빙군(藏氷軍)들이 한강에서 얼음을 떠 동빙고와 서빙고로 날랐는데 이들은 짧은 옷에 맨발인 자들도 있었다고 한시는 전합니다. 그렇게 저장된 얼음은 한여름 궁궐의 임금과 높은 벼슬아치들 차지였는데 그들은 얼음을 입에 넣고 찌는 듯한 여름에도 더위를 모른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열넷째 처서(處暑)다. 여름이 지나면 더위도 가시고 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는 뜻으로, 더위가 그친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흔히 처서는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고 할 정도로 여름이 가고 가을이 드는 계절의 이치를 잘 보여주는 때다. 또 이즈음은 농사철 가운데 비교적 한가한 때여서 어정거리면서 칠월을 보내고 건들거리면서 팔월을 보낸다는 어정 칠월, 건들 팔월이란 말도 한다. 옛 사람들은 처서 때를 3후(候)로 나누어 초후(初候)에는 매가 새를 잡아 늘어놓고, 중후(中候)에는 천지가 쓸쓸해지기 시작하며, 말후(末候)에는 논벼가 익는다고 하였다. 처서 무렵의 날씨는 한해 농사의 풍흉(豊凶)을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비록 가을의 기운이 왔다고는 하지만 햇살은 여전히 따가워야 하고 날씨는 맑아야 만이 벼의 이삭이 패고, 잘 성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한꺼번에 성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를 때 처서에 장벼(이삭이 팰 정도로 다 자란 벼) 패듯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처서 무렵의 벼가 얼마나 잘 익어 가는지 보여주는 속담이다. 경남 통영에서는 처서에 비가 오면 십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는 8월 24일(월) 오후 2시부터, 한국교원대학교 교원문화관 대강당에서 2015 개정 교과 교육과정 시안 공청회가 열린다. 이번 공청회의 해당 교과목은 '한자교육'으로 주제는 한자교육 관련(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 포함) 공청회다. 교육부가 2018학년도부터 초등학교 3학년 이상의 도덕이나 사회 교과서 등에 한자를 한글과 병기하는 방식을 검토하겠다고 밝히고, 공청회 등을 거쳐 오는 9월 한자 병기 여부를 확정하기 위한 과정인 것이다. ▲ 지난 8월 13일 열린 초등학교 교과서 창례식 중 한글학회 앞에서 발인하는 모습 지난 8월 1일 한글문화연대, 전국국어교사모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민족문제연구소 등 전국 46개 한글, 교육 학부모,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반대 국민운동본부(상임대표 이대로, 아래 국민운동본부)는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출범식을 갖고 교육부의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 병기 방침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연 적이 있었다. 출범식에서 전교조 변성호 위원장은 정부는 우리 아이들의 행복한 웃음을 바라지 않는 것 같다. 아이들은 너무 과도한 학습노동으로 힘들어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행복한 미래와 꿈을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별감 : 자네는 어느 장에 무슨 장산가? 생선장사 : 나는 마포장에 생선장수올시다. 뼈 없는 문어, 등 굽은 새우, 흉물흉측한 오징어란 놈은 눈깔을 빼서 꽁무니에 차고, 생선가게 망신은 꼴뚜기라, 키 큰 갈치, 썩어도 준치, 맛 좋은 꽁치, 뼈대 있는 집안 멸치라. 별감 : 자네는 어디서 왔는가? 엿장수 : 저 화개장터에서 온 엿장수요. 찢어진 시계나 채권 삽니다. 머리카락 빠진 것, 고무신짝 떨어진 것, 놋대야 깨진 것, 신랑신부 뽀뽀하다 금이빨 빠진 것, 자!~ 고물 삽니다. 고물.~~ ▲ "장대장타령" 공연중인 노학순 명창 ▲ "장대장타령" 공연중인 백영춘 서울시문화재 보유자와 노학순 명창(왼쪽) 위는 재담소리 장대장타령에 나오는 한 대목입니다. “재담(才談)소리”란 재치 있는 문답을 주고받아 흥미를 이끌어내는 이야기를 하면서 소리도 하는 국악의 한 장르를 말합니다. 재담소리 가운데는 장대장타령이 가장 많이 알려졌는데 장지영(張志暎) 장군과 무당 출신 첩(妾) 사이의 이야기를 사설과 창으로 엮어 익살스럽고 재미나게 꾸민 내용의 하나의 소리극입니다. 조선 말기 모흥갑이란 소리꾼이 재담소리를 하면 십리 밖까지 들렸다는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 음력 7월 7일은 칠석입니다. 칠석은 목동 견우(牽牛)와 베 짜는 공주 직녀(織女)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간직한 날로 예부터 아낙네들의 길쌈 솜씨나 청년들의 학문 공부를 위해 밤하늘에 별을 그리며 소원을 빌곤 하는 풍속이 있었지요. 은하수 양끝에 사는 견우성(牽牛星)과 직녀성(織女星)은 서로 사랑하던 사이였는데 옥황상제의 노여움으로 한 해에 한 번 칠석 전날 밤에만 은하수를 건너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때 까마귀[오(烏)]와 까치[작(鵲)]가 날개를 펴서 다리를 놓아주는데, 이 다리를 오작교(烏鵲橋)라 했지요. ▲ 남원 광한루원에 있는 오작교(烏鵲橋) 칠석 전날에 비가 내리면 견우와 직녀가 타고 갈 수레를 씻는 '세거우(洗車雨)'라고 하고, 칠석 당일에 내리면 만나서 기뻐 흘리는 눈물의 비라고 하며, 다음 날 새벽에 내리면 헤어짐의 슬픔 때문에 '쇄루우(灑淚雨)'가 내린다고 합니다. 또 까마귀와 까치는 오작교를 만들려고 하늘로 올라갔기 때문에 이 무렵에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유난히 부슬비가 내린다는 말도 전하지요. 북한의 덕흥리 고분에는 견우와 직녀 벽화가 있습니다.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견우는 염소만 한 크기의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이리 오너라. 안에 아무도 없느냐?” “몇 분이시온지요?” “벗과 둘이 왔소이다.” “네 술과 안주를 준비하겠습니다.” 술 한 순배 마신 뒤 “술 한 주전자 더 청하오이다.” “알겠사옵니다. 혹여 매운탕도 준비할까요? “거 좋지요.” ▲ 주인은 코빼기도 안 비치는 이상한 <내외술집> -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조선 말기의 문인 유재건이 쓴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에 이런 내용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 나옵니다. 분명히 술집인데 손님만 보이고, 주인은 코빼기도 안 비칩니다. 이름하여 <내외(內外)술집>이라 하는 곳이지요. 그야말로 이상한 술집입니다. 주인이 나와서 아양을 떨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굳게 닫혀있던 중문이 살짝 열리고 개다리소반을 바닥에 내려놓으면 손님이 술상을 가져다 먹습니다. 그러면 이런 <내외술집>은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조선시대엔 남편이 죽으면 아내는 평생 수절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어머니가 재혼을 하면 음란하다는 사유를 붙여 자녀안(恣女案)에 오르고 그러면 그 자식들은 관직에 임용될 수 없는 불이익을 받기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수절하면서 재산이나 있으면 괜찮지만 끼니를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대한민국은 국가통치체제와 기본권 보장의 뿌리를 헌법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면 조선시대는 어떤 것이 기본 법전이었을까요? 고려시대에는 문서로 만든 법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법을 집행하는 사람 마음대로 곤장을 5대 때리기도 하고 100대를 때리기도 했다고 하지요. 그래서 조선 왕조는 건국 이후 통치 규범을 보다 확실히 하기 위해 문서로 만드는 작업을 꾸준히 했습니다. 조선 건국 직후에 정도전이 《조선경국전》, 《경제문감》 등을 펴냈고, 조준이 여러 조례를 모아 《경제육전》을 지은 것이 그것이었지요. 그런 작업의 결정판은 바로 보물 제1521호《경국대전》입니다. 《경국대전(經國大典)》은 세조 때 최항, 노사신, 강희맹 등이 집필을 시작하여 성종 7년(1476년)에 완성하고, 16년(1485년)에 펴낸 것으로 조선건국 전후부터 성종 때까지 약 100년 동안에 나왔던 《조선경국전》 등과 왕명ㆍ조례(條例)ㆍ교지(敎旨) 따위를 수집하여 엮은 법전이지요. 물론 조선의 법전이 경국대전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경국대전은 영조 때 《속대전(續大典)》, 정조 때 《대전통편(大典通編)》, 고종 때 《대전회통(大典會通)》으로 이어졌습니다. 시대가 변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