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여름에 피는 들꽃 해란초는 우리나라 동해안 모래밭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분포합니다. 물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북반구의 다른 나라 비슷한 조건에서 두루 볼 수 있는 꽃이기도 하지요. 다른 이름으로 해빈유천어(海濱柳穿魚), 일본유천어(日本柳穿魚), 유천어(柳穿魚), 운난초라고도 부르고 북한에서는 “바람난초”라고 합니다. 해란초는 여러해살이풀로 높이가 15~40cm인데 꽃은 연한 노란빛을 띄며 또한 꽃 일부분은 진노랑 빛이 돕니다. 해란초는 관상용, 약용으로 쓰이고 맛이 달고 약간 쓰며 성질은 찹니다. 민간에서 줄기와 잎을 황달, 수종(몸이 붓는 병), 이뇨 따위에 약으로 쓰지요. 또 해란초는 해열작용ㆍ해독 작용을 하며 유행성 감기를 비롯하여 열을 동반하는 황달에 효과가 있으며, 치질이나 각종 피부병에도 효과가 있고, 화상치료제로도 씁니다. 그밖에도 두통, 어지럼증, 헛배부름, 변비, 장 무력증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하지요. ▲ 꽃말이 "영원한 사랑"인 해란초, 사진작가 이명호 제공 햇빛, 추위, 건조 등에 강한 편이며 햇볕이 잘 들고 배수가 잘 되는 모래땅에서 잘 자라고 습기가 있는 곳은 싫어합니다. 해란초라는 이름이 들어간 다른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8월 15일은 광복절이다. 일제의 침탈로 주권을 잃고 35년 동안의 식민지 생활에서 벗어나 조국의 해방을 맞은 날이다. 특히 올 2015년은 광복 70주년을 맞는 해로 전국에서 이를 기념하는 각종 행사가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는데, 국악계도 나라에서 주도하는 행사, 지방 정부가 주축이 된 행사, 사회단체가 중심이 되는 공연행사가 줄을 잇고 있다. 그 가운데 노학순 명창이 이끄는 경토리 민요단의 경기소리 공연이 8월 15일 늦은 3시에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렸다. 경토리 민요단이란 말에서 경(京)은 서울 경기지방을 의미하는 말이고, 토리란 그 지역의 특징적인 창법이나 음계, 분위기 등을 가리키는 말로 경토리란 경기지방의 특징적인 음악적 요소로 만들어진 민요를 말한다. 이 민요단을 이끌고 있는 지도사범이 노학순 명창이고, 그의 지도를 받는 회원들과 성동구 문화원 중심의 회원들이 친교와 봉사를 목적으로 만든 단체가 곧 경토리민요단이다. ▲ 노학순 명창 외 20명의 회심곡 ▲ 공연 해설을 하는 한국전통음악학회 서한범 회장 한국전통음악학회 서한범 회장은 경토리민요단에 대해 이 민요단은 순수하게 민요를 좋아하는 애호가 수준을 벌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래 전 신나라레코드에서 나온 녹음테이프 하나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여러 종소리가 녹음돼 있었는데 맨 먼저 성덕대왕 신종 소리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지요. 이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은 봉덕사(奉德寺)종으로 불리는데 에밀레종으로 더욱 유명한 종입니다. 저 깊이에서 응축된 이 종소리는 길게 여울지며 제 정신을 혼미하게 할 정도로 큰 감동이었습니다. 그 안에 녹음된 다른 종소리가 감히 따라오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방사선으로 투시해서 본 결과 보통의 종들과 달리 종신 안에는 기포 하나 없이 매끄럽게 주조되었으며, 종신을 돌아가며 어느 것이든 균일한 두께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지요.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큰 종으로 높이 3.75m, 입지름 2.27m, 두께 1125cm이며, 무게는 1997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정밀 측정한 결과 18.9톤으로 확인될 만큼 엄청난 크기의 종입니다. 종신에 쓰인 글씨에 따르면 경덕왕(景德王)이 부왕 성덕왕(聖德王)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들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다음 대인 혜공왕(惠恭王) 7년(771년)에 이르러서야 완성되었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지금 교육부에서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 병기를 하고 초등 적정 한자 수 지정 방침을 밝히고 있어서 뜻있는 이들이 크게 걱정하고 있다. 이에 한글학회를 비롯한 국어단체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비롯한 교육단체, 학부모단체, 문화운동단체 들이 모여 초등 교과서 한자병기 반대 국민운동본부(상임대표 이대로)를 꾸리고 교육부의 잘못된 정책을 국민에게 알리는 것은 물론 언론과 사회의 관심을 이끌어 내고자 온갖 방법으로 싸우고 있다. 그 과정의 하나로 초등 교과서 한자병기 반대 국민운동본부는어제 8월 13일 10시부터 서울 도심에서 한글 교과서 장례식을 치렀다. 참여자들은 굵은 베옷을 입고 굴건을 쓴 채 초등학교 교과서 표지를 액자에 넣은 영정과 유골함을 들었으며, 한자병기 웬 말이냐 한글 교과서 살려내라라고 적힌 만장 10개가 그 뒤를 따랐다. ▲ 한글학회 앞에서 초등학교 교과서 발인식을 하는 모습 ▲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노제를 마친 참여자들 ▲ 굵은 베옷을 입은 채 뙤약볕 아래서 장레행렬을 이어가는 모습 이 단체 소속 30여명으로 구성된 장례 행렬은 서울 종로구 한글회관을 출발해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노제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예전 선비들은 “풍류(風流)”를 즐길 줄 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풍류란 무엇일까요? 바람 ‘풍(風)’자와 물흐를 ‘유(流)’자가 합쳐져서 된 풍류라는 말을 사전에서는 “풍치가 있고 멋스럽게 노는 일” 또는 “운치가 있는 일”로 풀이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학자는 “속(俗)된 것을 버리고 고상한 유희를 하는 것”으로 풀이하기도 하고, 또 “음풍농월(吟風弄月)” 곧 맑은 바람과 달빛에 취하여 시를 짓고 즐겁게 노는 것“으로 보기도 하지요. 그런데 옛 그림을 살펴보면 선비들의 풍류의 삶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단원 김홍도(1745~1806)는 천하가 알아주는 멋진 풍류객이었는데 그는 꽃피고 달 밝은 저녁이면 거문고나 젓대를 연주했다고 합니다. 그런 그의 풍류는 <포의풍류도(布衣風流圖)>란 그림에서 잘 드러나지요. 그림 속의 선비는 책과 문방구 따위 여러 가지 물건 속에서 당비파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그림 왼쪽에는 “종이창과 흙벽으로 된 집에 살지언정, 평생토록 벼슬하지 않은 채, 거기서 시를 읊조리며 산다네(紙窓土壁終身布衣嘯詠其中)”라는 글을 적어 놓아 단원의 풍류를 짐작하게 합니다. ▲ 작자를 알 수 없는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복날의 마지막 말복(末伏)입니다. 입추가 지난 뒤지만 아직 조금만 움직이면 땀으로 뒤범벅이 되는 때지요. 이렇게 더위가 한창일 때 우리 겨레는 어떤 음식을 즐겨 먹었을까요? 먼저 여름철에는 지나친 체열의 손실과 땀의 많은 분비 탓에 체액과 나트륨 손실이 있게 되어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겨레는 수박화채에다 소금을 뿌려 먹었으며, 복숭아에 소금을 쳐서 끓여 받친 즙으로 지은 밥인 “반도반(蟠桃飯)”을 먹었습니다. ▲ 우리 겨레는 수박화채에 소금을 뿌려 먹었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또 여름엔 땀으로 몸 안의 질소가 많이 나오므로 단백질 보충이 필요한데 콩국수는 이에 좋은 음식입니다. 한편 여름철은 청량음료를 너무 많이 먹어 식욕이 떨어지고, 소화장애가 심해지기도 하는데 이때는 식초가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하지요. 그뿐만 아니라 식초는 산성화 체질을 막아주며, 여름철 음식 변질에 따른 식중독도 미리 막아주고, 물갈이로 배탈 설사가 나지 않게 하거나 손쉽게 치료해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식초를 넣은 미역냉채는 건강에 도움을 주는 음식입니다. 이밖에도 팥죽을 쑤어 먹으면 더위를 먹지 않고, 질병에도 걸리지 않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탑은 불교 문화재 가운데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원래 탑이란 말은 무덤을 가리키는 말인 산스크리트어 ‘스투파(stupa, 한자어 탑파-塔婆)’에서 유래하였는데 본격적인 탑은 부처의 사리를 봉안하는 것에서 시작했다고 하지요. 아시아 세 나라의 탑은 각각 특징이 있으며, 중국은 벽돌로 만든 전탑(塼塔)이, 우리나라는 화강암으로 만든 석탑(石塔)이, 일본은 나무로 만든 목탑(木塔)이 발달하였습니다. 그 탑들 가운데 충남 청양군 정산면 서정리에 가면 높이 6m의 보물 제18호 청양서정리구층석탑(靑陽西亭里九層石塔)도 있지요. 석탑은 2층의 받침돌 위에 9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린 일반형 석탑입니다. 이 석탑은 전형적인 신라 석탑의 양식을 따른 것으로, 상하의 비례가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다만 몸돌에 비해 지붕돌이 평범하고 가볍다는 느낌을 주며, 9층이라는 비교적 높은 층수 때문에 안정감이 떨어진다는 느낌도 없지 않은데 각 세부의 양식이나 수법, 받침돌 안상의 모습으로 보아, 탑을 세운 때는 고려 초기일 것으로 봅니다. ▲ 보물 제18호 청양서정리구층석탑 고려 초기에 건립된 거대한 석탑 가운데, 9층은 참 드뭅니다. 역사 기록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흥양현(興陽縣, 현재 전남 고흥군)은 과거에 대나무의 산지로서 매년 부채 만드는 편죽(片竹)을 1천 5, 6백 자루나 혹은 2천여 자루를 바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근래에는 대밭이 점차 옛날 같지 않아서 여기저기 다른 고을에서 사다가 바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근래 각 읍의 대밭이 곳곳마다 벌거숭이가 된 것이 본 읍과 다름이 없습니다.(중간 줄임) 이후로는 부채 만드는 제도도 오로지 튼튼하고 소박하게 만들도록 하고 부채살 수는 단오선의 살수를 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겉에 뿔을 대어 기교를 부린 것이니, 합죽선, 옻칠한 종이부채 따위들을 일체 엄금하소서.” 위는 《정조실록》 18년(1794) 11월 27일 치 기록으로 양남의 암행어사 서유문(徐有聞)이 정조에게 아뢴 내용입니다. 부채 만드는 것 때문에 여러 고을의 대밭이 쑥대밭이 되었다니 엄살이 좀 심하지 않나 싶습니다만 《성종실록》 23년(1492) 3월 23일 치에도 “단오 때에 진상하는 부채는 비단에 주칠(朱漆)을 하였는데, 사치스럽기만 하고 실용 가치가 없으니, 지금부터는 양대비전(兩大妃殿)에 바치는 것 외에는 다시 그렇게 하지 말라.”라고 성종이 엄명을 내렸다는 것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벽초 홍명희가 만해 한 사람 아는 것이 다른 사람 만 명을 아는 것보다 낫다.라고 했으며, 만공선사는 이 나라에 사람이 하나 반밖에 없는데 그 하나가 만해라고 했다고 한다. 최린 등과 함께 31운동을 주도했던 만해 한용운 선생은 감옥에서 일부 민족대표들이 사형당할 것을 두려워하자 목숨이 그토록 아까우냐?라며 똥통을 뒤엎기도 했으며, 그토록 가까웠던 최린, 최남선, 이광수 등에 대해서도 친일파라며 상종조차 하지 않았다. ▲ 만해마을 잔디밭에서 글쓰기에 여념이 없는 백일장에 참여한 학생들 그 만해 선생을 기리는 님의 침묵 전국백일장이 올해도 어김없이 8월 14일 오후 1시 만해사상실천선양회 주최, 인제신문사 주관으로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열린다. 만해의 정신을 기리고, 한국문학의 토양을 풍부하게 할 이 백일장은 나이 제한 없이 온 나라 누구나 참가할 수 있으며, 시와 시조 2개 부분에 걸쳐 진행된다. 시제는 8월 14일 오후 1시 현장에서 발표하며, 심사는 문단의 중진 문인들에게 위촉해 심사한 뒤 수상자 발표와 시상식은 추후 발표할 예정이다. 참가를 원하는 사람은 인제신문 누리집(www.okinjenews.co.kr)에서 참가 신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열셋째 입추(立秋)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절후인데 이날부터 입동(立冬) 전까지를 가을이라고 한다. ≪고려사≫ 권84「지(志)」38에 입추에는 관리에게 하루 휴가를 준다.라는 내용이 보인다. 입추 무렵은 벼가 한창 익어가는 때여서 조선시대에는 이때 비가 닷새 이상 계속되면 비를 멎게 해달라는 기청제(祈晴祭)를 올렸다. 그런데 입추는 가을이 들어서는 때지만 이후 말복이 들어 있어 더위는 아직 그대로다. 우리 조상은 왜 입추를 말복 전에 오게 했을까? 주역에서 보면 남자라고 해서 양기만을, 여자라고 해서 음기만 가지고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모든 것은 조금씩 중첩되게 가지고 있다는 얘기인데 계절도 마찬가지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려면 연결되는 부분이 있어야 하고, 이 역할을 입추와 말복이 하는 것이다. 또 여름에서 갑자기 가을로 넘어가면 사람이 감당할 수가 없기에 미리 예방주사를 놓아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려면 입추와 말복이 다리가 되어야 한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참고로 입추의 여지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입추(立錐)는 24절기 입추(立秋)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