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삼복더위 값을 하느라고 날마다 30도를 오르내리는 습기 차고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복더위에는 녹음 우거진 숲 속 약수터에서 샘솟는 시원한 약수 한 대접이 생각난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약수는 대부분이 탄산약수로 전국에 약 90 곳의 탄산약수터가 이름난 곳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탄산약수는 편마암류와 화강암 지역에 주로 분포하고 있으며 이들 지역의 단층과 같은 지질구조선을 따라 치솟는 지하수가 지하의 암석이나 탄산염광물과 반응하여 탄산이온의 농도가 높은 탄산수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탄산약수입니다. 탄산약수는 남한지역 50 곳, 북한지역 37 곳이 특히 유명하며 남한의 경우 강원도 12곳, 경상북도 16곳, 충청도 3곳에 몰려 있습니다. 북한은 이미 11곳의 약수터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바 있으나 우리나라에는 2011년 1월 13일에서야 강원도 양양군 서면 오색리의 오색약수, 홍천군 내면 광원리의 삼봉약수, 인제군 상남면 미산리의 개인약수 등 3건을 문화재청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기에 이릅니다. 이들 약수는 미네랄 함유량이 많고 수질, 역사, 설화, 경관 따위가 우수하여 보존가치가 큰 곳입니다. ▲ 천연기념물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우리 겨레의 오랜 먹거리인 떡 가운데 인절미는 유교의 경전인 《주례(周禮)》에 인절미를 “떡 가운데 가장 오래인 것.”이라 하였고, “떡 가운데 별미는 단연 인절미라, 찰지면서 쫀득한 맛을 으뜸으로 여긴다.”고 나옵니다. 이 인절미에 관해 조선 인조 때 전해지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괄이 난을 일으켜 한양이 반란군에게 점령당하자, 인조는 공주 공산성으로 피란을 갔는데 어느 날, 임씨라는 농부가 찰떡을 해 임금께 바쳤는데 그 떡 맛이 좋고 처음 먹어보는 것이었지요. 신하들에게 그 이름을 물었으나 아는 사람이 없어 임금이 친히 떡 이름을 지어 내렸는데 임 서방이 절미한 떡이라 하며 <임절미>라 한 것이 “인절미”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인절미는 혼례 때 상에 올리거나 사돈댁에 이바지로 보냅니다. 찰기가 강한 찹쌀떡으로, 끈적거리고 잘 들러붙는 성질을 생각하여 시집간 딸이 친정에 왔다 돌아갈 때마다 “입마개떡”이라 하여 인절미를 들려 보냈습니다. 이는 시집에서 입을 봉하고 살라는 교훈을 담은 것이며, 또 한편으로는 시집 식구에게 비록 내 딸이 잘못한 것이 있더라도 이 떡을 먹고 너그럽게 봐 달라는 뜻도 들어있지요. 그뿐만 아
[한국문화신문 =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열째인 하지(夏至)입니다. 이 때 해는 황도상에서 가장 북쪽에 자리 잡는데, 그 자리를 하지점(夏至點)이라 하지요. 한 해 가운데 해가 가장 높이 뜨고 낮의 길이가 가장 길기 때문에 북반구의 땅 위는 해로부터 가장 많은 열을 받습니다. 따라서 이렇게 쌓인 열기 때문에 하지 이후로는 기온이 올라가 몹시 더워집니다. 또 이때는 가뭄이 심하게 들기도 하고, 곧 장마가 닥쳐오기 때문에 농촌에서는 일손이 매우 바쁩니다. 누에치기, 메밀 씨앗 뿌리기, 감자 거두기, 고추밭 매기, 마늘 거두고 말리기, 보리 수확과 타작, 모내기, 늦콩 심기, 병충해 방재 따위는 물론 부쩍부쩍 크는 풀 뽑기도 해주어야 합니다. 남부지방에서는 단오를 전후하여 시작된 모심기가 하지 무렵이면 모두 끝나는데, 예전엔 이모작을 하는 남부 지역에서는 하지 ‘전삼일, 후삼일’이라 하여 모심기의 알맞은 때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하지가 지나면 오전에 심은 모와 오후에 심은 모가 다르다.”라는 속담도 있지요. ▲ 하지에는 모내기를 마치고, 감자전을 부치며, 감자떡 해먹는 감자 환갑날 감자가 많이 나는 강원도 평창에서는 하지 무렵 감자를 캐어 밥에다 하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장장채승(長長彩繩:오색의 비단실로 꼰 긴 동아줄) 그넷줄 휘늘어진 벽도(碧桃, 선경[仙境]에 있다는 전설상의 복숭아)까지 휘휘 칭칭 감어 매고 섬섬옥수(纖纖玉手) 번듯 들어 양 그넷줄을 갈라 잡고 선뜻 올라 발 굴러 한 번을 툭 구르니 앞이 번 듯 높았네. 두 번을 구르니 뒤가 점점 멀었다. 머리 위에 푸른 버들은 올을 따라서 흔들 발밑에 나는 티끌은 바람을 쫓아서 일어나고 해당화 그늘 속의 이리 가고 저리 갈제” ▲ 혜원 신윤복의 <단오풍정>, 그네뛰기와 창포물에 머리감는 모습이 나온다. 이 구절은 판소리 <춘향가> 가운데서 춘향이가 그네 타는 장면인데, 그네뛰기는 단옷날의 대표적 민속놀이다. 우리 겨레는 예부터 설날, 한식, 한가위와 함께 단오를 4대 명절로 즐겼지만 이제 그 명맥이 끊길 위기에 놓였다. 단오의 이름들과 유래 단오는 단오절, 단옷날, 천중절(天中節), 포절(蒲節 : 창포의 날), 단양(端陽), 중오절(重午節, 重五節)이라 부르기도 하며, 우리말로는 수릿날이라 한다. 단오의 '단(端)'자는 첫 번째를, '오(午)'는 다섯으로 단오는 '초닷새'를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내일은 우리 겨레의 명절 단오입니다. 단오는 단오절, 단옷날, 천중절(天中節), 포절(蒲節 : 창포의 날), 단양(端陽), 중오절(重午節, 重五節)이라 부르기도 하며, 우리말로는 수릿날이라 합니다. 단오의 '단(端)'자는 첫 번째를, '오(午)'는 다섯으로 단오는 '초닷새'를 뜻하지요. 중오는 오(五)의 수가 겹치는 음력 5월 5일을 말하는데, 우리 겨레는 이날을 양기가 왕성한 날이라 생각했습니다. 음양사상에 따르면 홀수를 '양(陽)의 수', 짝수를 '음(陰)의 수'라 하여 '양의 수'를 길수(吉數), 곧 좋은 수로 여겼지요. 따라서 이 양의 수가 중복된 날은 명절로서 단오와 함께 설(1월 1일)·삼짇날(3월 3일)·칠석(7월 7일)·중양절(9월 9일) 따위가 있습니다. 단오의 대표적인 세시풍속은 단오장(端午粧)입니다. 단옷날 부녀자들은 창포뿌리를 잘라 비녀로 만들어 머리에 꽂아 두통과 재액(災厄)을 막고, 창포 삶은 물에 머리를 감아 윤기를 냈지요. 또 단옷날 새벽 상추잎에 맺힌 이슬을 받아 분을 개어 얼굴에 바르면 버짐이 피지 않고 피부가 고와진다고 생각했습니다. 남자들은 단옷날 창포뿌리를 허리에 차고 다니는데, '귀신을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요즘은 건강에 해롭다고 하여 정부가 담뱃값도 올리는 것은 물론 음식점이나 중앙차선 버스정류장 등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합니다. 또 보건소에서는 담배를 끊기 위한 도움도 주고 있지요. 그래서 이젠 흡연인구가 점차 줄어드는 추세입니다만 예전엔 참으로 골초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성군이었던 정조임금과 500여 권의 책을 썼던 정약용도 골초였습니다. 그런데 그 골초를 옛 사람들은 용고뚜리나 철록어미라 불렀습니다. 여기서 “용고뚜리”는 병자호란 때 조선 침략을 주도한 여진족 장수 용골대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용골대는 엄청난 골초로 담배 맛을 잘 분간하며, 담배를 탐욕스럽게 구했을 정도였습니다. 용골대뿐이 아니라 서울에 온 여진족 칙사는 장소를 불문하고 입에 담뱃대를 물고 연기를 뿜어대 여진족들은 예절도 모르는 골초라는 인상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강하게 박힌 것입니다. ▲ 우리는 담배 골초를 "용고뚜리" 또는 "철록어미"라 불렀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그런 관계로 여진족을 상징하는 용골대는 여진말로 잉굴다이였는데 이 잉굴다이가 용고뚜리로 바뀌었다고 하지요. 19세기 박물학자 조재삼이 쓴 《송남잡지(松南雜識)》에도 “청나라 용골대가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곡 한 번에 노래 한 곡 부르고서 술 한 잔을 따라 붓노라니 술잔이 윤회하듯 하루 종일 오가네. 기경(耆卿)은 벌써 죽고 사사(師師)도 늙었으니 강남에서 부는 구슬픈 옥피리를 그 누가 알아주랴! ▲ 기생 한섬, 자신을 돌봐준 이정보 대감 무덤 앞에서 온종일 곡하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위 시는 조선 후기의 여항시인(閭巷詩人, 중인 이하 계층 시인)인 추재(秋齋) 조수삼(趙秀三)이 쓴 《추재기이(秋齋紀異)》에 나오는 기생 한섬의 이야기를 노래한 시입니다. 한섬(寒蟾)은 전주 기생으로서 예조판서를 지낸 이정보(李鼎輔)가 집으로 데려다 가무를 가르쳐 온 나라에 이름을 날렸지요. 한섬이 나이가 들어 집으로 돌아간 뒤 한해 남짓 지나 이정보가 세상을 떴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한섬이 곧바로 이정보의 무덤에 달려와 한번 곡하고 술 한 잔 따르고 그 술을 마시고 노래 한곡을 부릅니다. 다시 두 번째 곡하고 술을 따르고 그 술을 마시고 또 노래를 부르며, 하루 온종일 술과 노래로 슬퍼한 뒤에야 집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한섬은 다른 기록에 계섬(桂蟾) 또는 계섬(桂纖)으로도 나오는 사람으로 실존인물이지요. 한섬이 무덤 앞에서 한 행동은 당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우리의 전통 민속놀이 가운데 조선시대 가장 인기가 좋았다는 쌍륙놀이를 아십니까? 쌍륙(雙六)은 겨울철 특히 설날 무렵에 많이 놀았던 주사위 놀이로 악삭·쌍륙(雙陸)·상륙(象陸, 이두식 표기)·상육이라고도 하였습니다. 쌍륙판(雙六板, 말판)과 서른 개의 말[馬] 그리고 두 개의 주사위를 가지고 승부를 겨루는 놀이인 쌍륙은 주사위 두 개를 던져 나오는 숫자대로 말을 가는 놀이지요. 혜원 신윤복(1758~?)의 “혜원풍속도첩”에도 “쌍륙삼매(雙六三昧)” 곧 “쌍륙놀이에 빠지다”란 그림이 있습니다. 그림의 오른쪽 남자는 배자만 입고 탕건을 벗어 왼편에 놓아두고 있어 놀이에 푹 빠졌음을 보여주지요. 그리고 이 남자의 놀이 상대인 기생으로 보이는 여성 쪽에 말 두개가 판 밖으로 나와 있는 걸 보면 놀이는 이제 막 시작되었나봅니다. 그러나 오른쪽에 써놓은 시를 보면 “기러기 나는 울음소리 역력한데, 인적은 고요하고 물시계 소리만 아득하다.”라고 하여 이들이 상륙 삼매경에 푹 빠졌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 신윤복의 <혜원풍속도첩>에 나오는 "쌍륙놀이에 빠지다" 신윤복의 그림뿐만 아니라 고려시대 이규보(1168-1241)의 문집인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광채가 나는 얇게 간 조개껍질을 여러 무늬로 만들어 물체에 붙이는 것으로 박아 넣거나 붙여서 장식하는 공예 기법을 “나전(螺鈿)”이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자개라는 고유어를 씁니다. 나전칠기는 나전무늬를 물체에 붙이고 위에 옻칠을 해서 만들어낸 공예품을 일컬으며, 나전장은 이러한 기술이나 기능을 가진 사람을 말하는데 무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어 있지요. 이러한 나전칠기 문화재로 삼성미술관 리움에는 가야지방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하는 거울인 국보 제140호 “나전화문동경(螺鈿花文銅鏡)”이 있습니다. 8∼10세기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어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나전 공예품인데 지름 18.6㎝, 두께 0.6㎝입니다. 이와 같은 모양의 나전문경이 일본 쇼소인(正倉院)에 보관되어 있다고 하지요. ▲ 국보 제140호 “나전화문동경(螺鈿花文銅鏡)” 거울 뒷면 가장자리에는 둥글게 구슬모양의 띠를 두르고 그 안에 작은 꽃모양들이 있으며, 꽃잎 안에는 호박을 박아 놓았습니다. 뒷면 전체에 화려한 모란무늬로 장식하고 좌우에 각각 사자와 새가 자리 잡았는데, 무늬 사이에는 두꺼운 칠을 한 푸른색 옥을 박았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는 선소리산타령을 특별한 날 특별히 받게 되는 소리의 선물이라고 했다. 또 서 교수는 80을 넘긴 경서도 소리의 최창남 명창이 노익장을 과시하며 올해에도 소리판을 펼친다. 이제껏 소리를 지키며 살아온 것처럼, 생을 다하는 그날까지 산타령을 위시한 경서도 소리길을 충실히 지켜가려는 노 명창의 의지와 집념은 실로 존경받아 마땅하리라.면서 크게 칭찬을 한다. 어제 6월 12일 늦은 3시에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 풍류에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 선소리산타령 최창남전수소 주최, 문화재청ㆍ한국문화재단ㆍ국악방송 후원으로 제8회 최창남 선소리산타령 정기공연이 열렸다. ▲ 불편한 몸에도 혼신을 다해 소리를 하는 최창남 명창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 선소리산타령 에능보유자 최창남 명창은 이번 정기공연에서는 제자들과 함께 선소리산타령을 위시하여 경서도 전반에 걸쳐 옛날부터 전승되어 오고 있는 소리들을 원형 그대로 감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무대에 올린렸다.라고 말했다. 공연은 먼저 식전행사로 김영미 명창의 시창 십이난간, 온질음시조 기러기떼와 곽정희 외 3명의 토속민요 방아소리로 시작되었다. 이어서 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