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프랑스의 소설가 뒤마(페르)의 소설에 삼총사(Les Trois mousquetaires, 三銃士)라는 게 있다. 가스코뉴 출생의 쾌남아 달타냥은 삼총사와 함께 종횡무진 활약을 한다. 국악을 이런 소설에 견주는 것이 적절할지 모르지만 어제 서울 이북오도청 강당에서는 국악삼총사의 엄청난 활약이 청중들을 한눈팔지 못하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야말로 렉쳐콘서트 ‘창작아리랑’ <우리아리랑>의 향연이 (사)평안남도 향두계놀이보존회 주최로 벌어진 것이다. 그들 삼총사의 주인공은 바로 작사⋅작곡 세한대 이상균 교수, 아리랑 초연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전수조교 유지숙 명창, 사회⋅해설 한겨레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상임이사다. ▲ <우리아리랑> 사회와 해설 김연갑, 14곡 모두 완창한 유지숙 명창, 작사⋅작곡의 이상균 교수 “아리랑”이란 배달겨레의 대표적인 민요이다. 어디서고 아리랑을 부른다면 그들은 배달겨레인 것이다. 나라 안에서만 해도 진도아리랑, 정선아리랑, 밀양아리랑을 비롯해서 수천 가지의 아리랑이 존재하며, 독립군아리랑, 연변아리랑, 치르치크아리랑 등 나라밖 교포들이 부르는 아리랑도 참으로 많다. 우리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사)서울전통문화예술진흥원(이사장 유창)은 12월 5일(금) 저녁 7시30분,국립극장 KB청소년하늘극장에서 (사)서울전통문화예술진흥원, 송서율창보존회 주관, 서울특별시 후원으로 “글의 울림, 소리의 울림” 정기공연을 연다. 주최자는 서울특별시무형문화재 제41호 송서율창 예능보유자인 유창(본명 유의호) 명창이다. 이번 공연은 전통과 창작을 아우르는 레퍼토리를 통해 송서율창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내다 볼 수 있다. 유창은 2009년 3월 5일 예능보유자 인정 이후, 그동안 송서율창의 전승과 보존, 정립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왔다. 전수생 교육과 이수자 배출이라는 보유자의 중요한 역할과 더불어 해마다 지속적인 공연 및 학술대회 등을 통해 송서율창의 지평을 넓혀온 것이다. 유 명창은 그간 2010년 국립극장에서의 송서율창보존회 정기공연, 2011년 7월 국악로 천우극장에서의 <오래된 미래, 성독(聲讀)․송서(誦書) - 길을 찾다>, 2012년 9월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에서의 <2012전통음악학회 추계학술대회>, 2013년 3월 국악로 천우극장에서의 <송서율창, 그 길(道)과 문(門)>, 2013년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조선시대 도(道) 이름은 행정구역 가운데 인구가 많은 두 목의 이름 앞 자를 따서 불렀습니다. 그때 충청도 가운데 인구가 많은 목 가운데 충주가 으뜸이었고, 청주가 그 다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충청도가 된 것이지요. 그렇게 충청도였던 것이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잠시 이름이 바뀐 적이 있었습니다. ▲ 충청도 옛지도, 한 때는 "공청도"였다. 첫째는 충주 가흥창에서 근무하는 모영하 등 4명이 충주의 세곡 5천 석을 물에 불려 팔아 이익을 취한 일이 어영청에 들켜 모두 처형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또 충주목의 유석주라는 자가 가을에 걷어 들인 환곡을 팔아먹으니 봄에 충주 백성들이 씨앗을 구하지 못해 한 해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탓에 먹을 것이 없게 된 충주 백성들은 굶어죽거나 다른 지방으로 떠나갈 수밖에 없었지요. 범인 유석주는 체포되어 탐관오리로 처형되었습니다. 이 두 사건이 조정이 보고되자 이조는 “죄인이 살던 곳이라 하여 충주목사를 충원현감으로 강등하고 인구 셋째인 공주를 앞에다 붙여 충청도를 공청도로 부르게 되었지요. 정3품 목사가 다스리던 고을이 종5품 현감의 근무지로 강등되었으니 고을 백성의 권리는 줄고 의무는
▲ 우리아리랑 음반 표지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우리 민족의 숨결과 애환이 담겨 있는 아리랑은 각 지역별로 다른 곡조와 가사를 가지고 전해오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정선아리랑 등이다. 아리랑은 전국적으로 70여종이 전하고 5천수가 넘는 가사를 지니고 있다고 하나 현재 대중적으로 알려진 아리랑은 그에 견주면 매우 적다. 지난 2013년 1월에 북한지역의 아리랑을 모아 아리랑의 재발견(신나라레코드)을 발표한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전수조교인 유지숙 명창(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악장, 평안남도 무형문화재 제2호 향두계놀이보존회 이사장)은 이러한 아리랑을 전승하고 보전하고자 아리랑을 주제로 새 음반을 발표하였다. 아리랑이 전하지 않는 지역의 전설과 문화를 바탕으로 하여 강화경산김해남한산성대전복사골연성강동제주포천양주평택천안아리랑 등 14곡의 아리랑을 우리아리랑 음반에 담은 것이다. 이 음반에 담긴 곡들은 세한대학교 이상균교수가 각 지역의 음악어법인 토리를 바탕으로 작곡하고 매 곡별로 지역의 설화와 경치 등을 담아 작사하였다. 작사ㆍ작곡을 한 이상균 교수는 천안아리랑을 만드는 도중 진전이 없자 새벽 2시에 차를 몰고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웃음손뼉과 노래로 웃음치료를 하는 웃음전도사가 있다. 자신의 행복만이 아니라 이웃의 행복을 위해 노심초사 하는 이들이다. 그 웃음치료사가 정작 본인의 진한 행복을 찾은 이야기가 여기 있다. 바로 극단시민극장이 빚은 행복전도사 박달재다. 이 연극은 지난 11월 30일 대학로 김동수 플레이하우스에서 늦은 2시 마지막 무대의 문을 열었다. ▲ 공연 전 배우 안병경(박달재 분)이 관객들에게 웃음손뼉을 유도한다. 행복전도사 박달재는 첫 무대인 11월 11일이래 만석 행진을 이어왔는데 마지막 공연인 이날도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시작은 주인공 박달재 역인 중견배우 안병경의 웃음치료, 행복전도로 선 보였다. 행복한 웃음을 웃고, 힘차게 손뼉을 침으로써 얼마든지 건강을 지켜낼 수 있음을 강조했다. 이어서 본격적으로 연극은 시작된다. 인기를 얻는 박달재 가수, 하지만 벌어들이는 돈을 족족 엉뚱한 데다 쓴 것은 물론 도박을 하고 엄청난 사채까지 얻어 쓴 아내, 결국은 이혼하기에까지 이른다. 이후 자포자기로 살다가 왕순애(하미애)를 만나 불같은 사랑에 빠지는데, 그렇게 행복한 순간도 잠시 아내는 치매에 걸린다. 남편도 알아보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이은관 하면 배뱅이굿, 배뱅이굿 하면 이은관이었다. 그만큼 이은관과 배뱅이굿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고, 한 시대를 풍미한 그리고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공연이었다. 그러다가 올해 이은관 명창은 세상을 하직했다. 이제 어찌해야 할 것인가. 그러나 이은관 명창은 제자 박준영 명창을 남겨놓고 갔다. 이은관 명창의 수제자였던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전수조교 박준영 명창이 지난 11월 29일(토) 늦은 3시 서울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풍류극장에서 (사)서도창배뱅이연구보존회 주최, 서울특별시.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전수회관 후원으로 배뱅이굿과 북녘소리 공연을 했다. ▲ 영변가를 부르는 박준영 명창과 제자들 ▲ 공연의 사회와 해설을 맛깔스럽게 해준 단국대학교 서한범 명예교수 공연의 시작은 북녘소리 곧 서도소리로 시작했다. 약산(藥山) 동대(東臺)의 유명한 진달래꽃의 아름다운 경치를 읊으면서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했다는 영변가를 박준영 명창과 12명의 제자가 힘차게 무대를 열어젖힌다. 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공연 내내 단국대학교 서한범 명예교수의 맛깔스러운 해설이 곁들여졌다. 서 교수는 지금 북녘에선 이 소리들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고려 공민왕 때 충신 모은(茅隱) 이오(李午) 선생은 고려가 망하자 제현들과 함께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결의를 하고 함안으로 내려와 산인면에 고려동을 짓고 은거했던 분입니다. 선생은 자신이 끝까지 고려왕조의 유민임을 나타내기 위해 담 밖은 신왕조인 조선의 영토이지만 담 안은 고려유민의 거주지인 고려동임을 선언했으며 고려동 앞의 고려 밭과 논에서 나오는 곡식을 먹고 지냈지요. 물론 이런 신념을 지녔기에 조선 태조의 조정에서 여러 번 불렀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 고려 충신 이오(李午) 선생이 함안에 내려가 만든 고려동 마을(문화재청 제공) “나라를 잃은 백성의 묘비에 무슨 말을 쓰겠는가, 내가 죽으면 할 수 없이 담장 밖에 장사할 것인즉 혹 조선의 땅에 묘비를 세울 경우 내 이름은 물론이고 글자 한 자 새기지 말라”고 남겨 자손들은 묘비에 글자가 없는 백비(白碑)를 세웠습니다. 또 아들 개지(介智)에게 경계하기를 “너 또한 고려왕조의 유민이니 어찌 신왕조에 벼슬할 수 있겠는가. 내가 죽은 뒤에 절대 신왕조에서 내려주는 관명은 사용하지 말고 또 내 신주도 고려동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겨서는 안 된다”고 할 정도로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한 대기업의 회장이 느닷없이 라디오 방송에 나와 울먹이며 자기 그룹의 모든 기업을 정부에 헌납하고 기회를 준다면 전문경영인으로 남겠다는 발표를 하여 경제계는 물론 전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사건이 있었다. 때는 1979년 1026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에 이어 전두환, 노태우 등 젊은 장교들이 주도한 1212 사태가 일어난 뒤였다. 이름하여 신군부라고 부르는 이들은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국정 전반에 걸친 실권을 장악하였고 전국적으로 일어난 반정부 시위를 강경 진압하였음은 물론 순수한 광주시민들의 민주항쟁을 피로써 진압하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신군부는 정치, 사회적으로 그 기반이 약한 것을 만회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권력 강화를 위해한 힘을 남용했다. 권력강화란 말 이면에는 강자로부터 유린당한 약자의 인권유린이 존재하는 법으로 신군부의 권력강화 작업 역시 많은 부작용이 뒤따랐다. 가장 대표적인 인권유린 작업이 악명 높은 사회정화작업이다. 1차 희생양은 240여 명이나 되는 국가 고급 공무원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단지 고위 공무원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들은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내 몰려야 했다. 이러
▲ 하와이아리랑 책 표지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무릇 그림이란 연습하고 길들여서 되는 것이 아니라 천성적으로 그림을 좋아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나이 들어가면서 느끼게 되는데 송전 선생이야말로 진정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번 하와이아리랑에 선보인 그림들을 보면서 그가 천부적인 소질과 열정적인 창작열로 작품을 빚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는 한국화가 이무성 화백이 송전 선생에게 하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송림에 달빛이 교교히 비치는 내 고향 진도 송월에서는 누구나 시인이 된다라고 말한 송전 선생의 표현을 빌려 재일본한국문인협회 김리박 회장은 송전 선생이 시인이 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며 대자연을 품은 고향 진도가 그를 시인으로 만든 것이라고 단언한다. 저는 이상윤 선생의 이스턴갤러리에서 한국의 훌륭한 예술을 배우고 익혔습니다. 하와이 시민들도 그가 하와이 땅에서 펼치는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이해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송전 선생에게 깊은 존경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말은 호놀룰루 시장 커크 칼드웰이 송전 선생의 회고록 하와이아리랑에 쓴 축사 가운데 일부이다. 하와이아리랑은 올해 하와이 이민 35년째를 맞이하는 송전 이상윤 선생
[한국문화신문 =김영조 기자] 어려운 전문용어와 외국어외래어를 남용하는 공공기관, 선정적이고 품격 낮은 언어가 자주 나타나는 방송인터넷, 비속어와 외계어, 과도한 축약어를 무차별적으로 사용하는 청소년 등 일상생활 속 언어 파괴로 우리 사회의 말과 글은 상처받고 있다. 이렇게 상처받은 우리말과 글을 치유하고 가꾸기 위한 언어문화개선운동이 범국민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의 하나로 문화체육관광부(장관 김종덕, 이하 문체부)와 문화융성위원회(위원장 김동호)가 주최하고, 전국 국어문화원연합회(회장 소강춘)와 언어문화개선 범국민연합이 공동으로 주관하는 언어문화개선 범국민연합 제2차 토론회가 언어문화개선운동의 현황과 앞으로의 발전 방안 - 더 나은 언어문화를 만들어 갑니다라는 주제로 11월 27일(목) 늦은 2시부터 국립한글박물관 강당에서 열렸다. ▲ 개회사를 하는 전국 국어문화원연합회 소강춘 회장, 축사를 하는 문화체육관광부 김희범 차관, 제1단계 언어문화개선운동 성과 보고를 하는 국어단체연합 국어문화원 김슬옹 부원장(왼쪽부터) 이날 행사는 전국 국어문화원연합회 소강춘 회장의 개회사에 이어 문화체육관광부 김희범 차관의 축사가 있었고 국어단체연합 국어문화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