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김영조 기자] “김명국은 화가다. 그의 그림은 옛 것을 배우지 않고 오로지 마음에서 얻은 것이었다. 인조 때 조정에서 머리에 필요한 빗,빗솔,빗치개 같은 것을 넣어두는 화장구인 빗접을 노란 비단으로 만들어주면서 명국에게 거기에 그림을 그리라고 했다. 그가 열흘 뒤에 바쳤는데 그림이 없었다. 인조는 노해 그를 벌주려 했다. 그러자 명국이 말했다. ‘정말 그렸사옵니다. 나중에 자연히 아시게 될 것이옵니다.’ 어느 날 공주가 새벽에 머리를 빗는데 이 두 마리가 빗 끝에 매달려 있었다. 손톱으로 눌러도 죽지 않아 자세히 보니 그림이었다.” ▲ 김명국의 대표작 / 검은 비단에 금물로 그린 사시팔경도(이금산수), 달마도 위 내용은 조선 후기의 문신 남유용(南有容, 1698∼1773)의 ≪뇌연집(雷淵集)≫에 실린 화원 김명국에 대한 글입니다. 위 글에서 보면 빗접에 그린 그림이 아마도 세심히 보지 않으면 눈에 뜨이지 않을 만큼 실물크기로 게다가 극사실화로 그렸던가 봅니다. 조정에서 건넨 것은 빗접을 건넸지만 김명국은 장난스럽게도 빗접이 아니라 공주의 빗에 이를 그려 넣은 것입니다. 처음 빗접을 받은 공주는 빗에 이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를 죽였지만 그대로 있
[그림경제=김영조 기자] 전북 순창은 고추장의 고장이다. 그 역사는 길다. 1800년대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순창과 천안의 고추장이 유명하다고 나온다. 그보다 앞선 1740년대 나온 ≪수문사설≫에는 순창 고추장의 제조법이 기록돼 있을 정도이다. 이로 미루어보면 조선 중기에 이미 순창 고추장은 특산품으로 인정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순창에서는 가정집에서 고추장을 담가 아는 사람들끼리 선물하는 정도에 그쳤다. ▲ 순창고추장민속마을과 순창장류축제 1980년대 후반 우체국 택배 덕분에 순창 고추장도 덩달아 온 나라로 팔려나갔고 유명해졌다. 이후 순창 고추장 유명세를 타고 순창에 식품공장이 들어서면서 공장 고추장이 순창 고추장이라는 이름으로 팔렸다. 현재는 이에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드는 순창 고추장을 만들던 이들을 보호하려고 1997년 순창읍 백산리에 순창고추장 민속마을이 만들어졌다. 이 마을에는 40여 가구가 전통적인 방식으로 고추장을 담그고 있는데, 고춧가루와 콩, 쌀 등 모든 재료를 순창의 농가에서 공동구매를 하고 있다. 그리고 해마다 순창군과 순창장류축제위원회 주최로 순창고추장민속마을, 강천산군립공원, 순창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백관들의 근무복이었으나 백성들의 혼례복으로도 허용되었으며, 요즘도 전통혼례에서 신랑이 사모에 청단령을 입는다. (김경옥 전통복식연구원장 제공) ▲ 청단령에 쓰는 사모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조선의 농촌은 파멸의 그 밑에까지 다달앗으므로 이제는 바야흐로 그 갱생을 부르짖어 마지아니한다. 그러므로 전북 옥구군 내에 있는 원우, 둔덕 등 23개 촌락에서는 “갱생의 길은 자급자족”이라는 표어 밑에서 진흥회라는 모음을 조직한 후 촌락인 전부가 짚신 외에는 일체 다른 신발은 신지 아니 하기로 하였다 한다. 그리고 군에서는 농촌구제책의 일조라 하여 금후로는 일원을 목표로 하고 적극적으로 장려를 하겟다 한다.“ ▲ 농촌에서 고무신 대신 모두 짚신을 신기로 했다는 1933년 동아일보 기사, 짚신 위는 1933년 10월 1일 치 동아일보 기사 일부입니다. 농촌에서 쌀을 수확하면 대부분 일본으로 강탈해가니 먹고 살게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농촌에서는 대부분 굶기를 밥 먹듯 하고, 곡식 대신 먹을 수 있는 구황식물을 찾아 헤맸으며, 지세를 못내 수많은 소작농들이 고향을 등지고 야반도주를 하곤 했습니다. 이에 궁여지책으로 생활비를 절약한다고 고무신 대신 짚신을 신기로 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1934년 4월 18일치 “짚신으로 도라가는 농촌”이라는 기사를 보면 농촌에서는 전년도에 비해 고무신 판매가 131만족 감소하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말이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순천 선암사에 가면 그 유명한 뒷간이 있다. 명당 전문가들에 따르면 그곳은 최고의 명당 자리란다. 그곳에서 볼일을 보면 큰 기운을 받는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거기까지 같으면 볼일을 보아야만 손해볼 일도 없을 터이다. 뒷간 앞에는 간판이 하나 붙었는데옛글씨로 뒷간이라 붙어 있다. 오른쪽부터 읽는다.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강원도양양 하조대에는 텔레비전 애국가에 등장했던 바위에 외롭게 선 소나무가 있다. 저 소나무처럼 우리 겨레는 그 어떤 고난 속에서도 꿋꿋하게 세상을 향해 포효할 것이다.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公은 흉년 배고픈 시절 황금을 털어 가난을 규휼했네 주민들 송덕비 세워 1920년대 기근 때 연못과 12假山 만들어 마을사람들에게 일자리 마련해줘 춘궁기 소작인들에게 받은 토지세 돌려주고 돈 빌려준 채권 장부도 불태워 용호정원도 담장 밖 마을 어귀에 지어 '개인정원' 아닌 '만인의 정원'으로 ▲ 박헌경 선생이 기근 구제 차원에서 취로사업으로 만든 용호정과 연못 공의 높은 덕은 자비와 사랑으로 공평하고 균등했네 힘을 다하시어 조상을 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고 황금을 덜어내 가난을 구휼했네 흉년 배고픈 시절에 고달픈 사람들을 구제하여 백성을 편케 했네 바다와 같은 은혜요 산과 같은 자비심이네 집집마다 기리는 소리 넘치고 사람마다 입을 모아 이 비를 만들었네 온 마을이 정성과 감격으로 돌을 세워 이웃으로 만들었네 이는 진주 박헌경(朴憲慶) 선생 송덕비에 적힌 글이다. 경남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에 가면 용호정(龍湖亭)이란 정자와 연못 그리고 한국식 정원 용호정원(龍湖亭園)이 있다. 정원으로 들어가는 들머리(입구)에는 크고 작은 송덕비 7개가 나란히 정원을 찾는 이를 반갑게 맞이한다. 이 송덕비는 포악한 지방 수령의 눈치를 보다가 마지못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우리는 가끔 저 밴댕이 소갈머리(소갈딱지)라며 혀를 끌끌 차는 어르신을 봅니다. 또 속이 밴댕이 콧구멍 같다.라는 말도 합니다. 물론 주변에 이런 사람 꼭 한 명씩은 있을 텐데 속이 좁고 너그럽지 못한 사람, 별스럽지 않은 말에도 쉽게 토라지는 사람, 오로지 자기주장만 옳다고 고집하는 사람들을 일러 밴댕이라는 생선에 견줘 말하는 것이지요. ▲ 속은 좁지만 맛은 일품인 밴댕이, 밴댕이회, 밴댕이구이, 밴댕이젓갈(우갤러리 블로그 제공, 왼쪽부터 시계방향) 여기에 등장하는 밴댕이는 청어과에 속하는 다 자라도 몸길이가 12㎝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물고기입니다. 이 까닭에 다른 바닷물고기와 달리 밴댕이는 속이 좁아 내장이 있는 듯 없는 듯하지요. 그래서 속이 좁다는 비아냥을 듣기도 하는데 게다가 밴댕이는 성질이 급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 합니다. 밴댕이는 그물이나 낚시에 걸리면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몸을 이리저리 비틀다가 물 위로 올라와선 파르르 떨면서 죽어버리니 성질 급한 밴댕이는 화가 나면 속이 녹아 죽는다.라는 말까지 있습니다. 그런데 밴댕이를 이렇게 안 좋은 데 견주지만 뜻밖에 오뉴월 무렵의 밴댕이 맛은 농어나 도미 회에 견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 원하지 가장 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 백범 김구 선생(왼쪽)과 백범 선생이 안두희 총탄에 맞아 서거하신 경교장 위 말은 백범 김구 선생이 하신 말씀입니다. 겨레의 큰 스승이신 백범 김구(金九, 1876. 8. 29~1949. 6. 26) 선생은 한국의 독립운동가로 제6대, 8대, 10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과 주석을 지낸 분이십니다. 호는 백범(白凡)인데 이는 미천한 백성을 상징하는 백정의 ‘백(白)’과 보통사람이라는 범부의 ‘범(凡)’ 자를 따서 지었다고 합니다. 1999년 “한겨레21”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20세기 정신사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 으뜸으로 백범 선생이 뽑혔지요. 그러한 백범 선생은 안타깝게도 1949년 6월 26일 안두희의 총탄에 의해 서거하셨는데 내일은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지난 2월 12일 미국 브루클린 박물관의 수장고 스터디룸에서 조선시대 임금 것과 장군 것으로 보이는 투구가 혜문 스님의 노력과 브루클린 박물관의 협조로 공개되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함께 공개된 것으로 12세기 고려청자의 걸작품 청자연꽃 모양 주전자도 있었지요. ▲ 브루클린 박물관에 소장된 12세기 고려청자의 걸작품 청자연꽃 모양 주전자 이 청자연꽃 모양 주전자는 몸체와 뚜껑이 모두 연꽃으로 형상화 되었습니다. 또 뚜껑 손잡이에는 아직 피지 않은 연꽃 봉오리를 표현했지요. 그 옆에는 백토로 나비를 만들어 붙여 마치 나비가 연꽃에 앉은 듯합니다. 손잡이와 굽 부분은 대나무 무늬를 형상으로 되어 있어 더욱 아름답습니다. 이 주전자 제작기법은 주로 양각과 음각인데 상감기법을 쓰지 않은 것으로 보아 12세기 중반 무렵에 빚은 것으로 보입니다. 브루클린 박물관은 미국 7대 미술관 중 하나로 특히 고대 이집트 미술수집품이 유명합니다. 브루클린 박물관은 1974년부터 한국전시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국보급의 아미타삼존도 등 우리 문화재 665 점을 소장하고 있지요.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이곳 브루클린 박물관을 네 차례 조사한 끝에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