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산행 (山行) - 박지원(朴趾源) 叱牛聲出白雲邊(질우성출백운변) 이랴 저랴 소몰이 소리 흰 구름 속에 들리고 危嶂鱗塍翠揷天(위장린승취삽천) 하늘 찌른 푸른 봉우리엔 비늘 같은 밭골 즐비하네 牛女何須烏鵲渡(우녀하수오작도) 견우직녀 왜 구태여 까막까치 기다리나? 銀河西畔月如船(은하서반월여선) 은하수 서쪽 가에 걸린 달이 배와 같은데 이 시는 연암 박지원(朴趾源)이 지은 <산행(山行)>이라는 한시로 지은이가 산길을 가면서 아름다운 정경을 동화처럼 노래한 것이다. 연암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소설가로 청나라 고종의 칠순연에 사신단의 한 사람으로 따라가 열하(熱河, 청나라 황제의 별궁)의 문인들, 연경(燕京, 북경의 옛 이름)의 명사들과 사귀며 그곳 문물제도를 보고 배운 것을 기록한 여행기 《열하일기(熱河日記)》를 썼다. 정조 등극한 지 5년째 되는 해인 1780년 5월 25일부터 10월 27일까지 장장 5달 동안 사신단은 애초 목적지인 청나라 서울 연경(북경)까지 2,300여 리를 한여름 무더위와 폭우 뒤 무섭게 흐르는 강물과 싸우며 가고 또 간다. 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연경에 황제는 없다. 그래서 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우리는 학교에서 《해동가요(海東歌謠)》ㆍ《가곡원류(歌曲源流)》와 함께 조선시대 3대 시조집의 하나로 《청구영언(靑丘永言)》이 있다고 배웠습니다. 그 《청구영언》이 지난 4월 26일 보물로 지정되었지요. 《청구영언》은 조선 후기까지 구비 전승된 모두 580수의 노랫말을 수록한 우리나라 첫 노래집(歌集, 시조집)으로, 청구(靑丘)는 우리나라, 영언(永言)은 노래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청구영언》은 조선 후기 시인 김천택(金天澤)이 1728년 쓰고 펴낸 책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 그의 친필인지는 비교자료가 없어 단정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청구영언》은 조선인들이 선호했던 곡을 중심으로 전체적인 틀을 짜고, 작가가 분명한 작품은 작가별로, 작자미상의 작품은 주제별로 분류한 체계적인 구성을 갖추었습니다. 또한, 작가는 신분에 따라 구분해 시대순으로 수록하였지요. 이러한 《청구영언》의 체제는 이후 가곡집 편찬의 기준이 되어 약 200종에 이르기까지 지속해서 펴낼 정도로 후대에 끼친 영향이 매우 지대합니다. 《청구영언》은 우리나라 첫 노래집이자, 2010년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유산으로 오른 ‘가곡(歌曲)’의 원천이 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난 1월 30일 한국방송(KBS) <TV쇼 진품명품> 프로그램에는 “청자 상감포도동자문 매병”이 출품되었습니다. 이 매병은 청자인데 우리 미술을 처음으로 학문화한 학자로서 높이 평가된 고유섭 선생은 “청자는 고려인의 푸른 꽃”이라고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청자의 비색(翡色)은 가마를 막고 산소공급을 차단하면서 생긴 환원염 불꽃으로 구워야 나오는 비취색으로, 철분 함량이 높으면 어두운 녹색, 낮으면 맑은 비취색이 된다고 하지요. 이날 출품된 청자는 전성기 때인 12세기 중엽부터 13세기에 빚은 것으로 추정되며, 어깨가 풍만하고 아래로 내려가면서 몸체가 좁아지는 모양새의 매병입니다. 그리고 이 매병은 몸체 전면에 덩굴진 포도잎과 열매를 백색 상감기법으로 장식하였습니다. 특히 이 매병에는 포도 줄기를 잡고 동자가 노는 모양이 흑색상감으로 새겨져 있는데 포도와 동자 무늬가 함께 들어가 있는 것은 대접이나 주전자에는 종종 보이는데 매병에는 아주 귀한 것이라고 합니다. 옛 미술품에서 나오는 동자는 자손이 끊이지 않고 번성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간송미술문화재단에 있는 같은 이름의 매병은 보물 제286호로 지정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민들레 - 주장성 낮은 곳에 피었다가 시들어 허물어지지 않고 둥근 홀씨로 다시 피어 바람 부는 날 먼 들판으로 날아가는 이복누이 같은 꽃 밭이나 공터처럼 볕이 잘 드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굳은 뿌리를 내리는 여러해살이풀 민들레. 민들레는 봄에 피지만,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꽃일뿐더러 봄을 수놓는 화려한 꽃들에 밀려 두드러지지 않는다. 매화나 벚꽃처럼 화려하지도, 유채꽃처럼 옹기종기 모여 봄의 색을 내지도 않는 민들레. 하지만, 우리 겨레와 오래 같이했고, 싱그러운 향이 나는 소박한 꽃이다. 민들레는 기관지 개선, 항염 작용, 면역력 증가, 항암 효과, 위장 건강, 성인병 예방, 염증 완화, 당뇨 예방, 간 해독, 눈 건강 개선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약재로 많이 쓰인다. 하지만, 민들레는 쓴맛이 강해 호불호가 있는 음식이라고 하며, 민들레의 쓴맛을 줄여주는 방법으로는 끓는 물에 민들레를 살짝 데친 뒤에 찬물에 담가서 쓴맛을 없앤 뒤에 쓰면 좋다고 한다. 특히 민들레는 성질이 차고 독성이 없어서 열이 많은 사람에게는 좋지만, 장이 약하거나 몸이 찬 사람에게는 복통이나 설사의 위험이 있어서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예전 유교식 혼례에서 신랑은 신붓집으로 떠나기 직전 새벽에 사당에 인사드리는 예식 곧 ‘초례’를 했습니다. 하지만, 제주도에서는 혼례 당일 신랑과 신부는 각자의 집에서 문전신(門前神) 곧 민간 신앙에서 집의 대문을 지킨다는 수호신에 절을 하는 ‘문전제’를 했지요. 이는 문전신에게 새로운 사람이 들어옴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다만, 문전제가 끝나고 문턱을 넘을 때는 반드시 신랑은 오른발이, 신부는 왼발이 먼저 넘어야 했습니다. 또 이때 신부 어머니는 잡귀를 쫓기 위하여 신부가 집을 나설 때 소금이나 콩 같은 것을 뿌리고, 신부가 탈 가마에 넣어줄 요강에는 쌀을 채우며 성냥과 실을 넣어 가져가는데 이는 신당에 올리는 제물과 같은 뜻을 가집니다. 특히 신붓집에서 혼인을 승낙하면 신랑 아버지가 신붓집을 방문하며 이때 첫 대면에서 음식을 대접하지 않습니다. 그 까닭은 만일 음식을 대접하면 잡귀가 붙어 혼사가 깨진다는 믿음이 있어서입니다. 이는 신랑이 신붓집에 처음 방문할 때도 마찬가지지요. 그런데 제주 지역은 섬이라 그런지 마을이나 가까운 곳에서 배우자를 고르는 통속혼 성향이 있었으며, 이 때문에 제주 마을은 친족사회를 이루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불이(不二) - 윤향기 갓 지은 따끈한 밥을 푸고 날김 몇 장과 조기 한 마리 들고 마당 탁자에 앉았다 햇살과 인사하느라 잠시 한눈파는 사이에 김은 바람에 업혀 날아가고 조기는 고양이가 낼름했다. 그래 바람은 바람 역할에 충실했고 고양이는 조기 냄새 마다하면 진짜 고양이가 아니지 나는 간장에 밥 비벼 맛있게 먹었다 《유마경》의 <불이법문품>에는 ‘不二禪(불이선)’이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서 ‘不二’는 ‘선과 악’, ‘미(美)와 추(醜)’, ‘삶과 죽음’, ‘너와 나’ 등이 본질에서 그 근원은 같은 것, 그러므로 둘이 아니라는 뜻이란다. 절에 가면 ‘不二門(불이문)’이 있는데 이 불이문을 지나면서 이러한 ‘不二(불이)’의 진리를 깨달아 해탈에 이르라고 한다. 추사 김정희는 유마경을 탐구하다가, 이 ‘不二禪(불이선)’이라는 구절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었고 ‘不二禪蘭(불이선란)’이라는 난초 그림을 그렸다. 여기 윤향기 시인은 그의 시 불이(不二)에서 갓 지은 따끈한 밥을 푸고 날김 몇 장과 조기 한 마리 들고 마당 탁자에 앉았다고 했다. 그런데 “햇살과 인사하느라 / 잠시 한눈파는 사이에 / 김은 바람에 업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시대의 춤꾼, 고 이애주 선생의 1주기를 추념하는 책 출판기념회와 ‘학예굿 이애주 춤’이 5월 27일(금) 낮 2시부터 연속하여 경기도 과천 소재 이애주문화재단(이사장 유홍준)에서 열린다. 세 권의 이애주 책 출판기념회 5월 27일(금) 낮 2시, 이애주 선생의 저작 《승무의 미학》, 《고구려 춤 연구》와 구술채록집 《춤꾼은 자기 장단을 타고난다》의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의 예능보유자인 이애주 선생은 그 자신이 빼어난 춤꾼이면서 또한 우리 춤에 관해 독창적인 사유를 한 깊이 있는 연구자다. 하지만 혼자 쓴 이 책을 내놓기도 전에 급작스러운 병환으로 세상과 등지고 말았다. 이애주문화재단은 이애주 책 출판을 결정하고 선생의 1주기를 맞아 그가 남긴 상당량의 춤에 관한 연구논문과 글을 모으고 주제별로 분류하여 세 권의 책으로 펴냈다. 《승무의 미학》은 한성준으로부터 시작되어 한영숙에게 전수되고 이어서 이애주 선생에 닿은 ‘승무’ 형성의 역사와 더불어 승무 춤사위의 원리와 그 바탕을 이루고 있는 철학적 의미를 정리한 책이다. 한성준에 관한 연구와 승무에 관한 미적 고찰, 그리고 이애주 선생이 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예부터 전해오던 풍속으로 “기자신앙(祈子信仰)”이란 것이 있습니다. 기자신앙은 자식이 없는 특히 아들이 없는 부녀자가 아들을 낳으려고 비손하는 민간신앙의 한 가지입니다. 아들을 중요하게 여겨 씨받이까지 들여 대를 잇고자 했던 사회의 조선시대는 기자신앙이 더욱 발달했지요. 그런데 기자행위는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시조탄생 신화에도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오랜 옛날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단군신화》에서 웅녀는 그와 혼인해주는 이가 없으므로 늘 신단수 아래에 가서 아이를 잉태하고자 빌었다고 하지요. 이런 기자신앙은 신단수, 용왕당, 삼신당, 미륵보살에 빌기도 했지만, 특히 남근(男根)을 닮은 기자석이 인기 있었습니다. 남자의 성기를 닮은 남근석은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신비한 힘을 소유하고 있다는 원초적인 믿음을 옛사람들은 가지고 있었지요. 물론 이런 믿음은 지금의 눈으로 보면 미신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기자신앙에 담긴 여인들의 자식에 대한 간절한 정성과 절박한 염원, 그리고 생명체에 대하여 지녔던 존엄성 따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생각일 것입니다. 또 이러한 믿음을 통해서 부인들은 아들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세종실록》 5년(1423) 2월 10일 다섯째 기록을 보면 “대궐 안에서 신분증을 차고 다닐 사람의 수는….” 하고 시작합니다. 여기에서 보면 당시 요리와 관련된 사옹원에 소속된 실제 노비는 250여 명이 넘었다고 나옵니다. 또 조선시대의 기본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보면 사옹원에서 요리 관련 일을 하는 노비의 숫자는 400여 명이었지만 잔치가 있게 되면 그 수는 더 늘어났다고 하지요. 이 기록에는 요리 관련 직책의 이름들이 나오는데 고기 요리를 담당한 별사옹(別司饔), 찜 요리 전문가 탕수증색(湯水蒸色), 채소요리 전문가 채증색(菜蒸色), 굽는 요리 전문가 적색(炙色), 밥 짓는 반공(飯工), 술을 담그는 주색(酒色)도 있습니다. 특히 재미난 것은 물 긷는 수공(水工), 물 끓이는 탕수탁반(湯水托飯), 쌀을 고르는 미모(米母), 상차림 전문가 상배색(床排色)도 있지요. 여기서 우리는 수라간에서 요리하는 일이 얼마나 분업화되고 전문화되어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 각 수라간에 배치된 미모(米母)와 떡 전문가 병모(餠母)를 빼면 수라간 전문가 절대다수는 남자였다고 합니다. 요즘은 요리가 여자들의 전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보릿고개 - 이영도 사흘 안 끓여도 솥이 하마 녹슬었나 보리누름 철은 해도 어이 이리 긴고 감꽃만 줍던 아이가 몰래 솥을 열어보네.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여덟째로 ‘소만(小滿)’이다. 소만이라고 한 것은 이 무렵에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자라 가득 차기[滿] 때문인데 이때는 이른 모내기를 하며, 여러 가지 밭작물을 심는다. 소만에는 씀바귀 잎을 뜯어 나물을 해 먹고 죽순을 따다 고추장이나 양념에 살짝 묻혀 먹는 것도 별미다. 이때 특별한 풍경은 온 천지가 푸르름으로 뒤덮이는 대신 대나무만큼은 ‘죽추(竹秋)’라 하여 푸른빛을 잃고 누렇게 변한다. “죽추(竹秋)”란 대나무가 새롭게 생기는 죽순에 영양분을 공급해 주느라 푸른빛을 잃고 누렇게 변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마치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어린 자식을 정성 들여 키우는 어미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소만 때 겉으로 보기엔 온 세상이 가득 차고 풍족한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굶주림의 보릿고개 철인 것이다. “보릿고개”를 한자로 쓴 “맥령(麥嶺)” 그리고 같은 뜻인 “춘기(春饑)”, “궁춘(窮春)”, “춘빈(春貧)”, “춘기(春飢)”, “춘기근(春飢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