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그 무서운 괴질이 경성에서도 발생되야 일면 경찰당국은 교통차단을 하고 위생당국에서는 괴질예방주의서를 인쇄하야 돌리고, 일반 인심이 흉흉한데 이에 대하야 의사 김용채 씨는 말하되 “요사히 괴질을 예방하기 위하야 약을 먹어 예방하는 데는 (가운데 줄임) 염산이라는 물약을 양약국에 가서 사서 백배 되는 물에 타서 식후에 하루 삼시로 먹으면 관계치 않을 것이요...” 위는 동아일보 1920년 8월 7일 기사의 일부입니다. 당시도 돌림병이 돌아 사람들이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역력한데 그 가운데 돌림병을 예방하기 위하여 염산에 물 백배를 타서 마시라는 의사가 있었으니 어이가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당시로서도 예방주사를 맞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인지라 3면 머리기사에는 “맹렬한 괴질군! 수(遂)히 경성에 쇄도 속히 주사하라! 속히 주사하라!”는 제목으로 예방주사 맞을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19의 세계적 만연으로 큰 혼란 속에 일본에서 열린 올림픽도 겨우겨우 끝을 냈고, “'코로나19 종식' 선언했던 중국서 확진자 급증.. 항공ㆍ철도망 차단”, “일본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100만 명 넘었다”, “美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복날의 마지막 말복(末伏)입니다. 올해는 초복과 중복이 열흘 만에 온 것과 달리 중복과 말복은 스무날(20일) 차이인데 이를 우리는 월복(越伏)이라고 합니다. 1614년 이수광이 펴낸 한국 최초의 백과사전적인 책 《지봉유설(芝峰類說)》에 보면 복날을 '양기에 눌려 음기가 바닥에 엎드려 있는 날'이라고 함으로써 사람들이 더위에 지쳐있을 때라고 하였습니다. ‘음양오행’에 따르면 여름철은 '화(火)'의 기운, 가을철은 '금(金)'의 기운인데 가을의 '금‘ 기운이 땅으로 나오려다가 아직 '화'의 기운이 강렬하므로 일어서지 못하고, 엎드려 복종하는 때라고 합니다. 그래서 엎드릴 '복(伏)'자를 써서 '초복, 중복, 말복'이라고 하지요. 또 최남선이 쓴 《조선상식(朝鮮常識)》에는 복날을 '서기제복(暑氣制伏)'이라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서기제복에서 ‘복(伏)’은 꺾는다는 뜻으로, 복날은 더위를 꺾는 날 곧, 더위를 피하는 피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복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장마가 끝나고 입추와 말복 무렵이 되면 날씨가 좋아 햇볕이 내리쬐는 시간이 많아서 벼가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평안도 연변(沿邊) 각 고을 구자(口子, 소규모 초소)의 적변을 정탐하는 사람은, 한 군데마다 열 명을 정원으로 하여, 평상시에는 2교대로 나누어 근무하고, 변고가 생기면 번을 합해서 운영합니다. (가운데, 줄임) 그 근무자 가운데 정탐꾼이 4백 9명인데...“ 이는 《세종실록》 28년(1446년) 1월 4일의 기록으로 여기서 말하는 정탐꾼 곧 체탐인(體探人)은 요즘 말로 하면 첩보원으로 조선 초 세종대왕 때 주로 활약했습니다. 그 까닭은 조선 건국 초기 북방 영토를 확정 짓는 과정에서 고려 이래 현지의 토착세력이었던 여진족이 수시로 변경을 넘어와 약탈과 납치를 일삼았고, 이에 조선은 곳곳에 성과 목책을 쌓고 방어에 치중하는 것은 물론 수시로 체탐인(體探人)을 파견하여 여진족의 거주지나 세력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다음 대규모 군사를 동원하여 정벌하곤 했지요. 또한 체탐인은 북방지역뿐만 아니라 왜인들이 드나들던 남해안에서도 활약했고, 대마도에 보내 체탐 해오기도 했습니다. 이들 목숨을 걸고 활약했던 체탐꾼은 하루를 정탐하면 15일의 휴가를 주었으며, 3년마다 50명 중 1명을 뽑아 6품 이하의 산관직 곧 정식 문관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안중근 어머니 조마리아 심정이 되어 - 이 윤 옥 사나이 세상에 태어나 조국을 위해 싸우다 죽는 것 그보다 더한 영광 없을 지어니 비굴치 말고 당당히 왜놈 순사들 호령하며 생을 마감하라 (가운데 줄임) 아들아 옥중의 아들아 목숨이 경각인 아들아 아! 나의 사랑하는 아들 중근아.” 배달겨레의 철천지원수 이등박문을 쏴 죽인 우리의 위대한 영웅 안중근 장군. 그런데 우리의 영웅 안중근 뒤에는 안중근보다 더 당당한 어머니 조마리아 애국지사(본명 조성녀, 미상 ~ 1927.7.15)가 있었다.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길 원하지 아니한다.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刑)이니 결코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떳떳하게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라고 죽음을 앞둔 옥중의 아들 안중근에게 편지를 보내는 어머니 조마리아는 결코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안중근 어머니 조마리아는 1926년 조직된 상해재류동포정부경제후원회(上海在留同胞政府經濟後援會) 위원을 지냈다. 또한, 같은 해 9월 3일 대한민국임시정부 경제후원회 창립총회에서 안창호ㆍ조상섭 등과 함께 정위원(正委員)으로 선출되어 활동함으로써 안중근의 어머니로서뿐만 아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열셋째 입추(立秋)다. 입추는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절후인데 이날부터 입동(立冬) 전까지를 가을이라고 한다. 《고려사》 권84 「지(志)」38에 “입추에는 관리에게 하루 휴가를 준다.”라는 내용이 보인다. 입추는 곡식이 여무는 시기여서 이날 날씨를 보고 점친다. 입추에 하늘이 맑으면 만곡(萬穀)이 풍년이라고 여기고, 이날 비가 조금만 내리면 길하고 많이 내리면 벼가 상한다고 여겼다. 또한 천둥이 치면 벼의 수확량이 적고 지진이 있으면 다음 해 봄에 소와 염소가 죽는다고 점쳤다. 다만, 가을이 들어서는 때라는 입추가 왔어도 이후 말복이 들어 있어 더위는 아직 그대로인데 입추가 지난 뒤의 더위를 남은 더위란 뜻의 잔서(殘暑)라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더위를 처분한다는 처서에도 더위가 남아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옛사람들은 왜 입추를 말복 전에 오게 했을까? 주역에서 보면 남자라고 해서 양기만을, 여자라고 해서 음기만 가지고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모든 것은 조금씩 중첩되게 가지고 있다는 얘기인데 계절도 마찬가지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려면 연결되는 부분이 있어야 하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이 그림은 제 마음대로 그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원래 작품 구상이 있기는 하나 그리다 보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붓끝이 움직이기도 합니다. 이는 곧 이 그림이 한 개인의 의지대로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부처님이 원하시는 대로 그려질 수밖에 없음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 그림들은 40여 년 수행 끝에 부처님의 가피를 입어 태어난 그림이라는 것이지요.” 김태황 작가는 대담에서 자신이 용호도 등을 그리는 정황을 얘기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그림을 볼 때 단순한 그림으로 보지 말고 그림에서 부처님의 가피를 찾기 바란다는 바람을 강조했다. “현몽에 보였다고 해서 무조건 그리는 것이 아닙니다. 혹시 꿈에 보이는 것이 귀신이 장난하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고 또 확인합니다. 만일 귀신의 장난을 그린다면 수행하는 중으로서 할 일이 아니죠. 처음 현몽했을 때 얼핏 보이는 형상이 바로 작품을 그릴 수 있는 기법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 뒤로 7년여를 시행착오도 거치면서 그리고 또 그린 끝에 용호도는 태어나게 됐습니다. 제가 수행하는 과정에서 그렸기 때문에 가능했지, 만일 일반 개인이라면 할 수 있는 일이 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애국가 작사자 규명을 위한 공청회가 국회에서 열린다.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국회의원과 ‘애국가바로잡기국민운동(상임대표 임진택)’은 <애국가 작사자 규명 - 정부의 공식 재조사가 필요하다> 공청회를 2021년 8월 11일(수) 16시 국회 제1간담회실에서 진행한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참작해 비대면 토론으로 진행하며, 유튜브 채널(안민석 TV)을 통해 실시간 중계할 계획이다. 애국가가 작자미상의 곡으로 남겨진 책임은 일차적으로 정부에 있다. 1955년 애국가 작사자 규명을 위해 소집된 ‘애국가 작사자 조사위원회(문교부 산하 국사편찬위원회 소속, 3달 만에 해체)‘가 안창호 작사설을 배제하고 윤치호 작사설을 유력시하다가 작사자 미상으로 결론 내림으로써 오히려 진상을 가리고 진실을 왜곡한 데에서 애국가 작사자 논란이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애국가 작사자 규명> 공청회는 작사자 규명에 있어 정부의 책임과 의무를 분명히 하고, 정부(구체적으로는 교육부 산하 국사편찬위원회)가 결자해지의 자세로 애국가 작사자를 밝히는데 나설 것을 요구하고자 마련되었다. 공청회를 주관하는 ‘애국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양평군(陽平君) 허준(許浚)은 일찍이 선왕 때 의방(醫方, 병을 치료하는 기술)을 펴내라는 명을 특별히 받들고 몇 년 동안 자료를 수집하였는데, 심지어는 유배되어 옮겨 다니고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가운데서도 그 일을 쉬지 않고 하여 이제 비로소 책으로 엮어 올렸다. 이어 생각건대, 선왕께서 펴내라고 명하신 책이 과인이 계승한 뒤에 완성을 보게 되었으니, 내가 비감한 마음을 금치 못하겠다. 허준에게 숙마(熟馬, 길이 잘 든 말) 1필을 직접 주어 그 공에 보답하고, 이 방서(方書, 치료술을 엮은 책)를 내의원이 국(局)을 설치해 속히 찍어내게 한 다음 조정과 민가에 널리 배포토록 하라." 위는 광해군일기[정초본] 32권, 광해 2년(1610년) 기록으로 허준이 《동의보감(東醫寶鑑)》을 완성했다는 내용입니다. 《동의보감》은 2009년 7월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올랐고, 2015년에는 보물 제1085-1호에서 국보 제319-1호로 승격되었으며, 올해(2021년)에는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주관하는 ‘국가중요과학기술자료 과학기술사-3-2(2020)’로도 등록되었습니다. 책 제목의 ‘동의(東醫)’란 중국 남쪽과 북쪽의 의학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축음기와 레코드가 소개된 것으로 알려진 1890년 이후 우리나라의 음반 시장은 우리 기술이나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외국인의 마당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일제강점기 때는 약 20개 정도 음반회사가 등장하기도 했는데, 1933년 이후로는 콜럼비아ㆍ오케ㆍ빅타ㆍ포리돌ㆍ태평 등 5대 음반사가 음반시장을 장악했지요. 하지만 이런 음반사들은 일본 음반사들의 자회사였기에 광복과 함께 이름마저 사라졌습니다. 광복 이후 민족자본에 의한 음반산업이 등장할 기회가 되었는데 1947년 8월 5일 고려레코드가 처음으로 국산 음반을 제작하면서 국내 음반산업이 걸음마가 시작되었지요. 첫 음반은 광복에 맞춰 '애국가'가 그 문을 열었습니다. 그 소개를 보면 합창에 음악대학 합창단, 독창에 송진혁, 지휘에 김성태, 피아노 반주에 최성두가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이 음반에는 ‘조선의 노래’, ‘건국의 노래’, 해방기념가‘, ’계명의 노래‘ 등도 녹음돼 있었지요. 그런데 일제강점기 음반 제작 기술을 배울 수 없었던 우리로서는 힘겹게 음반제작을 이루어낸 것으로 원반 1장을 다듬는 데만 한 시간 이상 걸렸음은 물론, 가수나 반주자가 조금이라도 실수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인간과 예술의 만남은 구도의 완성점으로 지극히 창조적이다. 예술은 인간의 깨달음의 경지를 열어주고, 깨달음은 창조적 깊이를 더해주는 그림 특히 용호선경도와 달마도 등을 그리는 스님 김태황 작가의 제7화 개인초대전이 8월 5일부터 7일까지 서울 보라매 롯데타워 지하 사회적기업 ㈜뱅기노자의 전시공간 ‘뱅기노자 자르떼갤러리’에서 열린다. 김태황 작가는 15살 때 부산 선암사에서 불문에 입문하여 40여 년 동안 수행과 더불어 그림과 돌로서 부처님의 가피를 표현해 오고 있다. 돌과 그림에 온 정성과 영혼을 담아 정진하던 차 마침내 부처님을 뵐 때마다 소이부답(笑而不答, 그저 웃기만 하면서 답을 하지 않는 것)과 염화시중(拈華示衆,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일)의 화답(和答)을 느끼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특히 이번 개인전은 40여 년 동안 수행과 더불어 그림과 돌로써 가피(加被)를 표현하며, 전통적 용을 민화적 표현이 아닌 일필휘지의 기법으로 선묵화에 담은 <용호선경도>, <칠룡도>, <비룡도> 등을 전시한다. 그리고 이 그림들은 천일기도 중에 현몽을 받고 7년 3개월여의 꾸준한 정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