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건지 바른 말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요즘 애들은 인터넷의 나쁜 영향을 받았는지 비속어가 아주 가관이다. 그리고 일부 위쳇동아리에서 곱게 말해도 돌아오는 건 “벌칙”이다. 시대에 따라 속담도 달라진다고 했던가?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이 험하다.”라고 하는 말도 있단다. 그래서 왜 그러냐고 물으니 내가 편하면 되지 남의 심정까지 헤아릴 여유가 없다는 거다. 자기가 스트레스 받아서 상관없는 사람한테 화풀이하면 당한 사람은 무슨 죄인가? 애들이 순진하지 못한 비속어를 입에다 달고 다니니 참 한심하다. 우리 조카도 어디서 한어비속어를 배웠는지 툭하면 비속어를 쓴다. 나로서 들어주기엔 단어가 너무 거북하다. 애들은 하지 말라면 더 하는 거라 비속어를 쓰지 말라고 하면 더 할 건데 어떻게 말할 수도 없고 참 난감하다. 물론 나도 고칠 것이다. 나도 이제부터라도 조카애랑 동생에게 존댓말과 바른말을 배우게 도와줘야겠다. 조카한테도, 동생한테도 존댓말과 바른말을 써봐야지. 어떤 반응이 나오고 어떤 효과가 생길지 무척이나 기대된다. 왠지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해봤더니 정말 효과가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 해 설 > 이 작품은 1988년에 발표한 시로 인생의 원색과 인간의 운명에 대한 시인의 사고를 담고 있다. 초기 창작과정에서 “나는 구경 누구인가?” 하는 문제를 초보적으로 해결한 시인은 한시기 인생이란 구경 무엇인가? 인간이란 구경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탐구에 노력하였다. 이에 앞서 1986년에 발표한 시 <가랑잎 하나>에서 시인은 이 문제에 대한 탐구를 집중적으로 체현하였는바 거친 물결을 돛도 없고 노도 없는 운명의 쪽배와 같은 가랑잎에 기탁하여 인생도 가는 길이 어딘지 앞날에 굽이돌이와 소용돌이를 얼마나 만나겠는지 알 수 없는 신비와 우연과 의문으로 충일된 과정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깨달음은 인생의 원색과 인간의 운명에 대한 비슷한 접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바 우리는 스스로 돌이나 나사못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서는 이러한 깨달음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결코 생명의 불안에 떨고 있거나 인간의 운명에 복종하는 졸장부가 아니며 용인(범인)이 아니다. 그는 감히 운명에 도전하고 사는 방법을 터득해내고 진리를 견지하는 용기가 있고 지혜가 있고 아집이 있는 새 시기의 문인이다.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올해 아흔네 살 되는 우리 엄마가 이야기보따리를 풀면 제일 먼저 하는 말이 “나는 내 앞가림을 착실히 했다.”라는 말씀이다. 흐뭇한 어조로 말하는 엄마의 얼굴에는 홍조가 어린다. 수많은 세월 속에서 허리는 꼬불었지만 착한 인생을 살아온 엄마의 자존심은 꼿꼿하다. 지금으로부터 62년 전 엄마는 전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남게 되자 시골에 사는 우리 아버지와 재혼하였다. 당시 아버지에게는 여섯 살 되는 딸, 네 살 되는 아들, 그리고 년로한 부모님까지 있었다. 아버지는 엄마보다 십오 년 년상이지만 유식하고 시비 바른 사람이었다. 엄마는 그런 아버지가 존경스럽고 좋았다고 한다. 결혼 뒤 엄마는 일 년 만에 나를 낳았고 몇 년 뒤에는 동생까지 낳았다. 큰집살림인지라 만만치 않았지만 재롱을 떠는 우리가 있어서 행복했단다. 아버지는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우리들을 보면서 학교 가까운 곳으로 이사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엄마와 의논했더니 엄마도 같은 생각이었기에 첫돌도 안 되는 동생을 업고 서둘러 이사했다. 이사한 뒤 아버지 건강은 그다지 좋지 않아 집주변에 심은 채소밭이나 가꾸고 간혹 돼지죽이나 한두 번 주면 그뿐이었다. 엄마는 유일한 로동력이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해설150행에 달하는 이 시에서 시적 주인공으로 나타난 김삿갓은 조선시대 방랑시인이다. 이제는 이미 백골이 진토되었을 옛 방랑시인을 되살려 현대생활의 절주를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디스코를 추게 한 시인의 가설은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현실 그 자체를 중복하는 것과는 더 넓은 뜻에서 상징과 내부함의를 묘파하고 있다. 그러나 작품의 가설성은 결코 현실에 대한 이탈이 아니다. 다만 과장, 변형, 추상, 황당 및 상징적인 일련의 수법과 표현형식을 통해 현실의 내재적 본질을 굴곡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예술과 현실과의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민족의 상징인 김삿갓이 서방문화의 산물인 디스코를 춘다는 것은 동서방문화의 교류, 차용, 결합을 그리려고 한 시인의 지구의식의 표현이며 역사인물인 김삿갓이 현대문명의 표현인 디스코를 춘다는 것은 역사의 흐름과 발전을 보여주려고 한 시인의 역사의식의 발현인 것이다. 시인 주체의 지구의식과 역사의식은 김삿갓이 디스코를 추는, 일련의 신들린 춤을 통하여 생명의지의 승화와 역사를 초월하려는 극복의지의 승화를 통해 실감 있게 엮어지고 있다. 생명의지가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객관세계를 변형시키는 힘이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말 한마디가 천냥무게”, 제목을 달고 보니 기쁨 반 슬픔 반, 야릇한 웃음이 입가로 스쳐 지난다. 그래도 내 맘은 ‘행복한 웃음인데’라고 알려준다. 그래 그랬었지. 그때 그 순간만큼은 행복했고 감격스러웠다. 벌써 13년 세월이 흘렀다. 젊은 나이에 유방암진단을 받고 집안사정으로 지방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어느 날 저녁, 주치의사랑 저녁식사를 마친 남편이 휘청거리며 집에 들어서더니 나를 흘깃 보는데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하였다 순간 신경이 예민해진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의사선생님이 뭔 말씀했길래 저럴까? 설마…... 나는 다짜고짜 남편을 침실로 잡아끌었다. “당신 왜 울어요? 정작 울어야 할 사람은 나인데. 당신이 이렇게 약한 모습 보이면 난 누구한테 의지해야 돼요?” 그러자 입이 천근무게인 남편이 나를 꼭 안아주며 “동무 죽으면 나도 따라 죽겠소.” 라고 하면서 슬프게 우는 것이었다. 맙소사. 내가 뭔 일을 저질렀지 나 때문에 많은 사람 울리고 가슴 아프게 하고 진짜 내가 원망스러웠다. 그러면서도 맘 한구석으로 난류가 흐르고 감격의 물결이 이는 것을 어쩌랴. 맨날 무뚝뚝하고 자기중심적이어서 “돼지”라고 나무람만 했는데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 해 설 > 방천의 사전적 의미는 둑을 쌓거나 나무를 심어 냇물이 넘쳐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을 말한다. 그 둑을 방천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시인은 각주를 달아 “두만강이 동해바다로 흘러드는 지역. 중, 조, 러 3국 국경이 인접해 있다. 중국 쪽으로는 해변에 닿을 수 없다.”고 설명하고 있어 사전적인 의미와는 많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방천’은 훈춘 지역의 한 지명으로, 3국의 국경이 인접해 있는 한 마을의 이름이다. 국경 초소가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이 지역의 유명한 관광명소로 많은 유람객들이 찾고 있다. 우리에게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이라는 노래로 잘 알려져 있는 두만강은 양강도 삼지연군 북동계곡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흘러드는 길이 610킬로메터의 긴 강이다. 두만강은 수세기 동안 한국ㆍ중국ㆍ러시아의 세력 각축장인 동시에 완충지대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왔다. 두만강은 또한 중국ㆍ러시아와 국경을 이루고 있는 국경하천으로서 수많은 우리 선조가 이 강을 건너 간도지방으로 이주했기에 민족 수난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강이다. 이 강의 의미를 시인은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인 방천에 와서 짚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친엄마 아니에요?" 딸애는 종종 의문스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그때마다 나는 짐짓 정색해서 되묻는다. "응? 어떻게 알았지? 내가 고아원에 가서 나 닮은 애를 데려다 입양한 줄을." 그러면 딸애는 이렇게 대꾸한다. "거짓말, 그럼 사람들이 왜 나를 엄마 꼭 빼 닮았다 해? 난 엄마 친딸이야.“ 말이 났으니 하는 말인데 나이 삼십이 다 되어 딸애를 본 우리는 애가 그렇게 귀여울 수 없었다. 쥐면 부서질까 놓으면 날아갈까? 금지옥엽으로 키우면서 애 아빠도 나도 다 애한테만 사랑을 쏟고 애가 없었던 나날들은 어떻게 살았던가 싶을 정도로 아기에게 엄청 집착하였다. 뒤늦은 아이의 탄생은 그 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완전히 다른 즐거움과 쾌락을 안겨주어 우리는 세상의 행복을 다 가진 것처럼 만족하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고중시절 한 숙사에서 가깝게 보내던 동창생이 상해에서 연길로 출장 왔던 길에 아기도 볼겸 그 동안 헤어져 살았던 회포도 풀겸 겸사겸사 우리집에 와서 며칠 묵어가게 되었다. 친구는 자기가 먼저 애를 키워보았노라고 애 키우는데 천방지축인 나를 도와 자질구레한 일들을 거들어주면서 이런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나는 전 씨 가문의 둘째딸로 태어났다. 아들만을 선호하던 그 세월에 둘째는 꼭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엄마는 은근히 바라셨다. 점쟁이도 찾아가고 심지어 첩약까지 잡수셨는데 내가 또 딸로 태어나서 얼마나 락심하고 눈물 흘리셨는지 모른단다. 엄마와 비슷한 시기에 임신한 뒷집 경식이 엄마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떡판 같은 아들을 덜컥 낳았다. 경호를 낳았을 때 그 집은 경사난 집처럼 흥성흥성했고 나를 낳았을 때 우리집은 초상난 집처럼 스산했다니 억울해도 어디 가서 하소연할 데가 없다. 엄마는 나를 낳고 3년 만에 또 녀자아이를 낳았다. 셋째까지 딸을 낳고 엄마는 눈물을 휘뿌리며 아들 없는 설움을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경호네는 경호 아래로 또 남자아이를 낳아서 경호엄마는 우리 집에만 오시면 딸타령을 하셨고 그때마다 엄마는 입만 다시며 어색하게 웃으셨다. 아들 못 낳은 우리 엄마를 위안하는 소리 같기도 하지만 어쩐지 어린 나도 엄마를 비웃는 것 같아 경호엄마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어쨌든 말귀를 알아들어서부터 아들타령을 못 박히게 들어온 나인지라 어떻게 하나 아들 있는 집 못지않게 부모를 기쁘게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해설 조선족 젊은 시인들의 체험이 농경사회적인 문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아직 해체되지 않는 농경사회의 질서 위에서 그들의 시가 ‘행복한 원체험의 공간’과 원체험에서의 원근을 낳는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 일원적 세계내의 불화에 대한 진술인 이 시는 단순하게 읽히지 않는다. 산문으로 풀어서 이 시의 행간을 따라가 보자. 1. 너는 떠났다. 2. 눈감으면 너는 내 앞에 되돌아오는 것처럼 보인다. 3. 너는 떠났지만 햇살로 조각한 너는 남아 있다. 너는 어떤 이유에선지 이 세계를 떠난다. 그 행위에는 단조롭고 평화로운 이 세계에 대한 강한 불만이 내재되어 있다. 나는 너를 말리는데 내 생각에는 네가 가고자 하는 세계가 놀라운 줄 알지만 이 세계와 무엇이 크게 다르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있는데, 한사코 너는 떠나버린다. 그러나 네가 완전히 떠난 줄 알았는데 너는 네 모습을 햇빛에 새겨 이곳에 남겨 두었다. 네가 도착하는 세계가 불화의 세계라면 네가 다시 살아가려는 세계가 너를 파괴하거든 다시 돌아오려고 너는 너도 모르게 네 영혼을 이곳에 영원히 남겨 두었다. 이러한 인식은 근본적으로 세계에 대한 믿음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지금 생각해도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그마한 키에 얌전하게 생겼지만 애교가 전혀 없고 곰처럼 둔하다는 평가를 들으면서 살아온 내가 어떻게 "어머니 학교"에서 유일하게 남편의 편지를 받아냈는지? 몇 년 전, 나는 친구의 소개로 "어머니 학교"를 다녔다. 첫날 특강을 듣고 분조토론을 가졌고 마지막에 숙제를 냈다. 이튿날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분조별로 숙제를 점검하고 대표를 뽑아 발표하게 했다. 첫날 숙제는 어머니한테 편지를 쓰는 것이었고 두 번째 날에는 남편한테 편지 쓰는 것이고 세 번째 날에는 남편이 사랑스러운 리유, 자식이 사랑스러운 리유를 써내는 것이었다. 이 모든 숙제는 자기절로(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어서 다른 어머니들도 숙제를 아주 잘해왔다. 그런데 네 번째 날 숙제는 남편한테서 안해에게 쓴 편지를 받아 오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남편이 해야 하는 숙제였다. 모두들 그 숙제는 어렵다고 의견을 제기했다. 많은 어머니들이 도리질 하면서 완성할 수 없다고 난색을 하였다. (저 어머니들은 왜 저러지? 왜 남편한테 말도 해 보지 않고 포기부터 하시려 하지?) 시어머님 말씀을 빈다면 나의 남편은 "각시 말 잘 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