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1979년 3월 3일 <해설> 이 시는 시인이 1979년에 쓴 것이다. 이는 력사적으로 “문화대혁명”이 금방 지나간 시기이며 문학적으로는 “몽롱시”의 사조가 금방 대두하기 시작될 때이다. 시인은 이 때 소년시기로부터 청년으로 과도하는 단계에 머물렀으며 황당한 력사를 자신의 체험으로 느꼈다. 이 시에서는 한차례의 거세찬 정치적인 운동아래 사람들에게 남은 정신적인 공황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면서 시인의 감상적이고 허무한 사상을 드러내고 있으며 시의 주제가 명확하지 않다는 리유로 당시 시단에서 일부 사람들의 비평을 받은 시이다. 위 시에서 보이다시피 시인은 정신적인 고통에서 모대기여 자신의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정거장을 찾고 있다. 한차례의 맹목적이고 추종적이고 황당한 력사적인 사건아래에서 해탈은 또 일련의 고통과 슬픔과 허무를 불러일으킨다. 시에서 시인은 여러 이미지를 동원하여 “무서운 꿈”의 고통에서 모대기는(괴롭거나 안타깝거나 하여 몸을 이리저리 뒤틀며 움직이는) 정서를 드러낸다. 여기에서 “무서운 꿈”이란 “문화대혁명”의 아픈 기억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력사는 지나가고 추억으로 남았건만 시인의 가슴속에 지우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오늘 오래 만에 소꿉친구 해숙이를 만났다 40대 중반을 넘어서도 한 미모하는 예쁜 친구와 함께 커피숍에서 이야기 보따리를 푸노라니 우리는 30년 세월이 지나도 미스터리로 남은 전봇대사건이 또 화두에 올라 이리저리 추측을 하면서 웃기도 하고 시무룩해지기도 했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머리가 갸우뚱해지면서 서글픈 웃음이 나간다. 해숙이는 우리 마을 십여 명되는 여자애들 가운데서 제일 이뻤다. 하야말쑥한 피부에 그 세월에 염색이란 것도 없었는데 특이하게도 약간 파도치는 금발의 머리에다 크고 까만 오목눈에 상큼한 콧날, 작은 입술을 가진 인형같은 여자애였다 우리가 초중을 다닐 때니 열댓 살이라 하겠다. 버들방천에서 우리 마을 여자애들이 엇바꾸어 보초를 서가며 목욕을 하다가 해숙이 피부가 너무 고와서 황홀하게 바라보며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예쁜데다 성격도 부드럽고 유순하여 애들한테 인기도 있었다. 해숙이가 이렇게 이쁜 건 자기 엄마를 똑빼 닮아서이다. 해숙이 엄마는 농촌에서 사는 여자치고는 너무 미인이다. 우리 엄마들의 파마머리는 항상 꼬실꼬실하였지만 해숙이엄마는 굽실굽실 파도치는 파마머리를 어깨까지 곱게 드리우고 삔으로 량옆
[신국문화신문=석화 시인] *언녕 : 진작, 좀더 일찍이 < 해설 > 중국 조선족 3세인 시인 석화는 1958년 중국 룡정 출신으로 다른 조선족들보다 비교적 넉넉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1982년 연변대학 문학부를 졸업한 뒤 월간 《연변문학》 편집을 맡게 된다. 등단과 함께 “아리랑문학상”, “압록강문학상”, “도라지문학상” 등 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연변조선족사회에서는 일찌감치 자리 매김을 확실히 했다. 시인 석화는 다른 연변조선족시인들에 비해 다채로운 시작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유리컵과 사랑학 개론”, 이 시이라든가 “작품” 연작시가 그것인데 이는 다른 시인들의 작품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참신성과 기발한 소재채택에서 자본주의로 가고 있는 연변의 문화를 체함 없이 소화해내고 있다. 바로 여기에 연변조선족사회에서 그의 시가 주목받는 이유가 있다. 예술이란 그 분야를 막론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도전정신과 그것을 내 것으로 하려는 의지를 필요로 한다. 쉽게 서정이라 불리는 자칫 무력한 시풍에서 벗어나 사물을 기호화하고 끊임없이 뻗어 가는 정신세계를 시로 끌어들이려는 그의 노력은 그래서 귀한 것이다. 위의 시에서는 시인의 언어적 탐구가 외적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설핏 잠들었다가 깨고보니 외로운 등불이 왜 벌써 일어나느냐는듯 나를 빤히 내려다본다. 나는 어지러이 널부러져있는 책들을 보며 픽 웃어버린다. 이게 벌써 한두날도 아니고 거의 한달째 계속되는 일상이다. 자다말다 깨서는 책 보고 보다가는 자고... 그러니까 그게 지난해 12월 12일이였구나. 널 대련에 미술공부시키느라 데려다준 날이 바로 그날이였지. 나는 눈을 집어뜯으며 다시 안경너머로 폰에 저장된 날자를 확인해본다. 네가 없는 이 한달동안 엄마는 너의 방에서 맴돌았단다. 매일 시집들을 찾아 읽고 시도 써보면서. 겨울의 긴긴밤을 지새운적은 그 얼마였던가. 지금도 이 글을 쓰노라니 또 너희들 생각이 절로 나는구나. 우리 함께 대학입시를 향해 손잡고 달리던 날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구나. 오, 맞다. 네가 고중2학년이 된 다음부터였지. 저녁마다 젊은 청춘에 쏟아지는 잠을 쫓느라 커피를 타 마시기도 하고 그 추운 겨울에 창문을 활짝 열어놓기도 하며 넌 그야말로 공부에 온 정력을 쏟고 있었지. 그러는 너를 지켜보다가 난 감기 걸린다고 창문 닫으라고 소리쳤지. 그러면 잠들어 공부 못하면 엄마가 책임지겠는가 하는 너의 날카로운 대답질이 들려오고.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가감승제와 방정식 ―작품 36 철근+시멘트+타일+…+땅=벽체 벽체 X 유리 X 페인트 X … X 하늘=빌딩 √빌딩․³√빈병․⁴√소음․…․ⁿ√물=도시 도시÷문패÷전화번호÷…÷공기=사람 사람―사랑―진정―…―달나라=X <해설> 다양한 수학공식을 패러디한 이 시는 이상의 일련의 시들을 연상하리만치 전형적인 패러디 시로서 사회와 인간에 대한 시인의 독특한 인식을 표현하고 있다. 시의 제1행은 별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다. 철근, 시멘트, 타일과 같은 건축재들을 땅 위에 적절하게 세워놓으면 벽체가 된다는 상식적인 이야기이다. 제2행에서는 많은 벽체, 유리의 복합물에 페인트칠을 하는 등 수식을 하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 것이 빌딩이라는 설명이다. 그런 빌딩에 그 빌딩에서 살고 있는 인간이 만들어낸 빈병 같은 쓰레기에 역시 인간이 만들어낸 소음과 같은 공해 및 자연으로서의 강물, 눈, 비와 인간이 만들어낸 폐수까지의 복잡한 혼합물이 도시의 풍경을 이룬다. 그런 도시 가운데 마치 이름처럼 인간에게 부여된 문패나 전화번호를 가려내면 사람이 된다. 여기에서의 사람은 어느 특정한 인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렇고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동년, 하면 나의 눈앞에는 항상 이모네 집이 먼저 떠오른다. 이모는 화룡 동성 명신에서 사셨는데 나는 학교 다니기 전 이모네 집을 제집처럼 다녔었다. 이모네 집은 독집이고 앞뒤 텃밭이 아주 컸다. 그 텃밭은 내가 온종일 꿰지르고 다녀도 싫증나지 않는 나만의 락원이였다. 어른들이 일밭으로 가고 언니 오빠들이 학교에 간 뒤면 혼자 남은 나는 텃밭을 찾는다. 노란 꽃을 달고 디룽디룽 꺼꾸로 매달린 오이도 먹음직스럽지만 찬란한 햇빛 아래 파란 잎사귀 뒤에 반쯤 숨어 빠꼼히 내다보는 빨간 토마토가 더 유혹적이다. 하나 뚝 따서 옷섶에다 쓱쓱 문질러서 그 자리에서 쓱쓱 냠냠 먹어치운다. 뭐니 뭐니 해도 텃밭에선 꽈리의 유혹이 제일 컸다. 꽈리를 뜯어서 겉껍질을 뜯어내고 겉껍질과 이어졌던 자리를 약한 나무꼬챙이로 구멍을 뚫는다. 꽈리즙과 씨가 구멍으로 나오도록 엄지와 식지(집게손가락)로 살살 비비고 우벼낸다. 꽈리 속을 다 우벼낸 다음 껍질만 남은 빈 꽈리를 입에 넣고 공기를 들이그으면* 똥똥 불어난다. 이때 꽈리 허리를 깨물면 꽈르륵 귀맛 좋은 소리*가 울린다. "꽈르륵 꽈르르륵 꽈르륵 꽈르르륵" 끊어질 듯하다가도 이어지는 꽈리소리는 유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탑 에 게 다 같이 땅 위에 사는 주제에 왜 자꾸만 하늘에 대고 삿대질이냐 버러지들은 버리지만큼의 하늘을 토끼는 그의 모두뜀에 알맞은 하늘을 날개 가진 참새나 제비도 저만큼씩 맞춤한 하늘을 가졌을 뿐인데 왜 자꾸만 하늘이 낮다고 또 높다고 삿대질이냐 천 년 전부터 또 후에까지 목제, 석제, 철제… 숲처럼 일어선 탑 일어설 탑 그 끝에 찔리어 멍이 든 하늘 퍼렇게 구겨져 있는 저 하늘 찢어질듯 펄럭거릴 저기 저 하늘 <해 설> 시인이 가진 “버림”의 시학실천은 도시화에 따른 피폐된 사회상과 기형화되고 팽창 되어가는 인간들의 물욕에 대해서도 의문과 아픔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시 “탑에게” 등이 바로 그런 주제의식에 바쳐진 작품들이다. 시 “탑에게”는 도시문명이 생태환경에 대한 파괴를 감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시인은 “멍이 든 하늘”, “퍼렇게 구겨져 있는 저 하늘”에 대한 아픔을 통하여 아름다워야만 할 무욕의 세계가 파탄되어감에 하소연을 보내고 있다. 훌륭한 시인은 창조된 세계를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다. 시인 석화는 도도한 시적 선언을 하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나와 준호, 란이 우리 셋이 한 마을 소꿉친구들인것처럼 우리들의 아빠, 엄마들도 한 마을친구들이셨다. 며칠 전 란이엄마 칠순잔치소식을 듣고 나는 한달음에 달려갔더니 준호도 와있었다. 란이엄마 칠순잔치는 풍성하게 잘 차려졌다. 한잔 거나해진 하객들이 어르신의 만년장수를 빌며 권커니작커니 하면서 분위기를 한껏 띄워 올렸다. 손자, 손녀들과 함깨 덩실덩실 춤을 추는 란이엄마를 바라보며 나도 응당 기뻐해야겠지만 어쩐지 가슴이 짠해 지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당황한 나는 부랴부랴 가방을 챙겨들고 일어섰다. 그런데 문가에는 준호가 먼저 나와서 담배를 피우고 서있었다. 저 친구의 심정도 나와 마찬가지이리라. 란이엄마는 칠순잔치를 펼치는데 같은 년배였던 준호아빠와 우리 엄마는 벌써 이십년 전에 하늘나라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기쁨이 넘치는 란이엄마의 얼굴에서 우리 엄마의 모습을 떠올린 것과 마찬가지로 준호도 너무 일찍 돌아가신 야속한 아버지가 생각나 더 앉아있지 못했으리라. 준호는 나를 보더니 어색한 웃음을 한번 짓고는 말도 없이 돌아서 가버렸다. 그의 심정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나도 가슴을 눅잦히며* 준호가 간 반대방향으로 발걸음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처절한 살신성인 ‘퓨즈론’ – 연변 6 냉장고든 전자레인지든 TV 또는 오디오든 괜찮은 물건들에는 다 있다 사람의 그것처럼 은근히 부끄럼 타는 그것은 물건들의 뒷부분 엉덩이 쪽에 숨어있다 구석진 곳에 코 박혀 숨이 칵칵 막혀도 빛 한줄기 못보고 먼지만 쌓여가도 처절한 “살신성인” 단 한순간의 사명을 위하여 인내하는 전류든 전압이든 과부하가 걸릴 때 제가 먼저 새카맣게 타서 끊어져 버리는 퓨즈는 가전제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냉장고가 다시 찬바람 내고 TV가 다시 꿈같은 오색의 세계 펼쳐주고 제 몫을 다한 그것이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때 예민한 센스 때문에 제 몸 먼저 태우는 퓨즈가 물건에만 있는 것이 아닌 줄 안다. 해설 석화 시인은 기술문명의 중심부에 서서 인간관계의 병리현상을 통해 사람과 자연 간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진단한다. 사람의 인격과 존엄성을 존중하는 것이 석화 시인의 문학적 기반이라는 것은 그의 시 “퓨즈론 –연변 ․6”에서 확인되고 있다. “제 몫을 다한” 냉장고, 전자레인지, TV, 오디오 등의 물건이 폐기물 처리장으로 실려 가듯이 오늘날 시장경제의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누가 세수시켜 놓았는지 오늘따라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은 높고 푸르다. 주는 대로 꼬박꼬박 먹다보니 어느새 벌써 반백 나이가 되였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찾지 못했던 추억속의 모교를 정말 오랜만에 찾았다. 연길시조양천1중이라는 간판을 보노라니 어느새 학교 때 추억이 해변가 파도처럼 철썩이며 밀려온다. 그게 몇 학년 때 일이였지? 아마도 고중1학년 후학기 문과반에 다닐 때 일이었던 것 같다. 수많은 이야기들을 싣고 흐르는 세월 속에서 모든 것이 빛바랜 흑백사진 속에서 희미해지지만 사춘기 때 짝사랑을 했던 일은 아직도 내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다. 나는 그때 향화라는 녀자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맨날 하학종이 울리면 손에 손을 잡고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백양나무사이를 누비였다. 소곤소곤 밀담을 하면서 네가 좋아하는 남자애는 누구냐? 내가 좋아하는 남자스타일은 누구다. 그러면서 쏙닥쏙닥이 끝이 없었다. 내가 반했던 남자애는 초중 때 못 보던 애였다. 고중에 올라가면서 다른 지방에서 우리 학교에 입학해 온 것이다. 키가 훤칠하게 크고 쭉 빠진 롱다리, 우리 반뿐만 아니라 전교 녀자애들 환심을 사기엔 충분했다. 게다가 왜 검실검실한 얼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