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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한 살신성인 ‘퓨즈론’ – 연변 6

석화시 감상과 해설23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처절한 살신성인 퓨즈론연변 6

  

 

            냉장고든 전자레인지든

           TV 또는 오디오든

            괜찮은 물건들에는 다 있다

            사람의 그것처럼

            은근히 부끄럼 타는 그것은

            물건들의 뒷부분 엉덩이 쪽에 숨어있다

            구석진 곳에 코 박혀 숨이 칵칵 막혀도

            빛 한줄기 못보고 먼지만 쌓여가도

            처절한 살신성인

            단 한순간의 사명을 위하여 인내하는

            전류든 전압이든 과부하가 걸릴 때

            제가 먼저 새카맣게 타서 끊어져 버리는

            퓨즈는 가전제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냉장고가 다시 찬바람 내고

           TV가 다시 꿈같은 오색의 세계 펼쳐주고

             제 몫을 다한 그것이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때

             예민한 센스 때문에 제 몸 먼저 태우는

             퓨즈가 물건에만 있는 것이 아닌 줄 안다.






해설

석화 시인은 기술문명의 중심부에 서서 인간관계의 병리현상을 통해 사람과 자연 간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진단한다. 사람의 인격과 존엄성을 존중하는 것이 석화 시인의 문학적 기반이라는 것은 그의 시 퓨즈론 연변 6”에서 확인되고 있다.

 

제 몫을 다한냉장고, 전자레인지, TV, 오디오 등의 물건이 폐기물 처리장으로 실려 가듯이 오늘날 시장경제의 메커니즘을 받아들이고 있는 중국 땅에서도 사람은 어느덧 효용성과 기능성의 잣대로 저울질을 당한다. 인격과 존엄성을 갖고 있는 개인이 상품 또는 물건처럼 전락하고 있는 것은 중국 땅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 되었다. 그러므로 석화 시인은 그의 시 퓨즈론 연변 6”에서 효용과 기능이 소진되면 사람도 퓨즈가 끊어진기계처럼 폐기물 취급을 당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비정함을 예리하게 비판하고 있다.

 

사람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사람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며 사람을 도구와 수단으로 이용해 나가는 땅에서는 반드시 자연의 생명력을 착취하는 사건이 일어나게 마련이며 이것은 곧 생태계의 파괴를 불러일으킨다. 1964년 사회생태주의(社會生態主義)를 창시한 철학자 머레이 북친(Murray Bookchin)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것은 인간에 의한 인간지배에서 기인한다.”라고 진단하면서 오늘날 몸살을 앓고 있는 생태문제는 곧 사회문제와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하였다.

 

사람과 사람 간의 사회적 관계가 뒤틀리고 왜곡되면 사람과 자연 간의 생태적 관계도 파행적으로 변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퓨즈론 연변 6”은 이것을 암시하는 좋은 본보기가 아닐까?

                        (송용구 한국 고려대학, “기술문명의 중심부에서 생명의 길을 여는 시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