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도라지 ―연변ㆍ8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심심산천에 백도라지 연길 네거리에 내려와서 칼라 도라지로 변신 하였대요 싸리나무 꼬챙이에 꿰인 채로 순진한 촌티 내며 서로 껴안고 동시장 서시장에 몰려있을 때가 첫 걸음이었고 수돗물에 알뜰히 가랑이 씻겨 “경희궁”, “경복궁”에 “서울한식관” 쟁반마다 하나 둘씩 담겨 나가는 것 둘째 걸음이래요 내친걸음 한 달음 확 달려가 된장, 고추장에 식초라 간장 맵고 짜고 시고 단 온갖 것들 뒤집어쓰더니 지지고 볶이고 무치고 데워져 세상의 구미에 맛들어져 가는 것이 넷째 다섯째 걸음이라나요 그 다음엔 해가 진 뒷골목 가로등도 희미한 모퉁이에까지 막 가버려 자정 넘은 노래방 빈 방에서는 가사 없는 우리민요 “도라지” 노래가 반주곡 멜로디로만 울리고 우리말을 잘 못하는 한족사람들이 “또라지, 또라지”* 이렇게 따라 부르더라고요. 도라진지 또라진지 모르겠지만 심심산천에는 백도라지요 연길 네거리엔 칼라 도라지, 또라진가 봐요. * 주: “또라지”라는 발음은 중국어로 “쓰레기를 버리다”라는 뜻인 “倒垃圾(daolaji)”라는 말이다. <해 설> 석화의 아닌 보살하고 슬쩍 튕기는 능청스러운 유머는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하늘을 때리는 요란스런 굉음과 함께 비행기는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벌써 남쪽으로 쏜살같이 날아간다. 공항에서는 울음보를 터뜨리는 애들이며 누가 볼세라 돌아서서 눈물을 훔치는 안해들이며 배웅나왔던 사람들이 삼삼오오 흩어지며 서운한 발길을 돌린다. 그러나 나는 두 발이 자석에라도 붙은 듯이 멍하니 서서 비행기가 날아간 하늘만 쳐다보았다. 텅 빈 사막에 홀로 서있는 기분이다. 타향에 가는 언니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 길 옆의 락엽이 쓸쓸히 나뒹굴고 을씨년스런 찬바람에 머리카락이 얼굴을 마구 가린다. 같은 부모한테서 태어났어도 언니와 나는 색깔이 전혀 다르다. 언니는 조용조용한 성격에 배려심도 많다. 단아한 반달눈썹에 새물새물 웃는 눈, 동글납작한 작은 이마에 검고 윤기 나는 단발머리, 소녀 같은 맑은 피부에 호리호리한 몸매까지 누구 봐도 천상 여자였다. 우리 삼남매 중 언니와 나는 년년생이라 유난이 끔찍했다. 어릴 적부터 내가 언니 뒤를 졸졸 따라다녀서 언니친구도 다 내 친구로 돼버렸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친구얘기만 나오면 우리 둘은 신이 나서 밤 세는 줄 모르게 수다를 떤다. 엄마의 말씀을 따르면 나도 아주 착했다고 한다. 어릴 적에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피 안 기실 모두가 저쪽에서 건너온 것이지만 지금은 그저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엷은 안개가 가물가물 피어오르는 한줄기 강물, 먼 서쪽나라의 어느 하늘밑을 흘러가는 요단강처럼 우리는 누구나가 다 한줄기 강물을 갖고 있다 피안 혹은 대안이라 부르는 저쪽켠의 강기슭 아슴푸레 바라다 보이는 저쪽 기슭으로 늘 건너가보고 싶지만 피와 살과 뼈가 너무 무겁다 기실 모두가 다 다시 저쪽으로 건너갈 것이지만 지금은 그냥 그저 건너가보고 싶은 생각뿐이다 지금 저쪽 기슭에서 이쪽을 건너다보고 계실 어느 분도 이와 같은 시를 쓰고 있을까 해설 한 사람의 시인을 평가할 때 우리에게 주어진 한 권의 시집만으론 지극히 일차적인 형식비평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형식주의 비평은 작가의 사상이나 감정, 작품에 다루어진 사회상, 혹은 그것이 미친 영향 등을 세밀히 분석하고 평가하는 역사주의 비평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필자는 동시대를 살고 있으면서 동명의 이름을 가졌다는 남다른 친근함으로 그가 가진 시의 눈과 마음과 심장을 열어보기로 했다. 태어나고 자란 곳 그리고 삶의 뿌리가 나와 다른 그가 살고 있는 연길이라는 지역을 탐험하며 조심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1999년 가을, 나는 사이판에서 귀국한지 며칠 만에 아들애의 손을 잡고 시장구경에 나섰다. 몇 년 만에 와보는 서시장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처음 들린 과일매장에는 형형색색의 과일들이 주런하였다. 나는 저도 모르게 군침을 꿀꺽 삼키며 아들애한테 물었다. “뭘 먹을 거야?” 먹을 걸 사주면 좋아할 줄 알았던 아들애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몇 번 권했지만 아들애는 여전히 싫다고 했다. “그럼 놀이감을 살까?” 나는 놀이감 매장 앞에 가서 아들애보고 마음대로 고르라고 했다. 이번에도 아들애는 한사코 싫다고 하면서 집으로 가자고 내 손을 잡아끌었다. “그럼 다른 데로 가볼까?” “아무것도 안 살 거야. 놀이감이랑 먹을 거랑 사구 돈을 다 써버리믄 엄마가 또 사이판에 갈까봐 싫어.” 순간 나는 목구멍에서 뜨거운 무엇이 욱- 올리 밀었다. 엄마 없는 세월이 얼마나 싫었으면 이럴까?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1995년도 다 저물어가던 11월18일, 나는 세 살 난 아들애를 남편한테 맡기고 로무일군들의 행렬에 끼워 사이판으로 떠나갔다. 태평양을 날아넘어 사이판에 도착했을 때는 세 번째 날인 21일 새벽이었다. 행장을 풀고 한 두어 시간 눈을 붙였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코스모스 - 누나에게1 누구와의 약속이었기에 모두가 떠나는 계절 뒤끝에 오히려 긴목을 하고 피어있는 것인가 코스모스여 한줄기 들길은 가을하늘 아래로 아득히 사라지고 이젠 아무도 다시 찾아올 것 같지 않은 길섶에 조용한 웃음으로 그래도 피어있는 코스모스여 작은 꽃잎마다에 지난밤 별들의 눈물자국 같은 이슬방울의 흔적이 남아 길 잃은 나비 한 마리 불러 다리쉼 시키려는가 코스모스여 시절 앞에 피어남도 화사한 뽐냄도 다 그네들 여느 꽃의 제멋 한 생이 천년이런 듯한 주먹만 한 조약돌 곁에서 이 늦은 계절에 엷은 향기 얹어주는 코스모스여 어느 통속잡지 뒤표지에도 오른 적 없는 내 시골누이 같은 코스모스여 하나의 약속을 한 송이 꽃으로 피울 줄 아는 안쓰러움이여 < 해 설 > 석화 시를 이해하고 사귀자면 꼭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있으니 그것이 곧 “누나”라는 낱말이다. 시인 석화가 즐겨 사용하고 있는 시적 대상물로서의 이 낱말은 시인이 꾀하고 있는 인생추구와 인간완성에 있어서 자못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으며 나아가서는 시인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알아보는 데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5년 전, 아직 봄추위가 가시지 않은 5월의 어느 날, 그날도 나는 엄마를 모시고 목욕탕에 가기로 약속을 잡았다. 그때 엄마가 일흔 아홉이었지만 워낙 몸 관리를 잘한 덕에 퍽 젊어 보였다. 그날도 나는 엄마네 아파트 앞에 차를 대기시키고 엄마를 기다렸다. 이윽고 아파트에서 내려오신 엄마는 항상 앉던 앞좌석이 아니라 왠지 뒷좌석에 오르셨다. "엄마, 오늘은 왜 뒤에 앉으세요?" "응, 오늘은 여기가 편한 것 같다." 수다를 모르는 어머니인지라 더 묻지 않고 목욕탕으로 향했다. 목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한 마디 하셨다. "내일시간 되니?" "무슨 일이 있어요?" "래일 나와 함께 병원에 가볼래?" 엄마는 언제나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지 않고 늘 요점만 추려서 얘기를 했다. 그러기에 엄마의 얘기면 꼭 리유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래일의 스케줄을 고려할 사이도 없이 얼른 “예”하고 대답했다. 하지만 대답을 해놓고 보니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엄마 어디 아파?” "응 감이 안 좋다." "엄마 몹시 아픈 것 맞구나. 어디가 안 좋은 거요?” 내가 급히 다잡아 묻자 엄마는 감이 안 좋다는 얘기만 반복할 뿐 더 이상 입을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도 “-”도 아닌 “연변표” 아줌마 석화시 감상과 해설 19 아줌마는 아주머니의 준말이다 ‘아주머니는 아와 주머니의 합성어이다’라는 말이 맞는지 안 맞는지는 언어학자 렴광호 박사와 물어보면 알겠지만 아줌마는 어쩔 수없이 아줌마다 옛날에 앞뒤가 구별 안 되는 “몸뻬”바지와 코신에 그리고 요즘엔 다양한 헤어스타일을 머리에 쓰고 있지만 대체로 앞으로 보나 옆으로 보나 비슷하게 평평한 립방체로 절반하늘이 아닌 옹근하늘을 든든히 받치고 서있는 아줌마는 어쨌든 아줌마다 해와 달이 뜨고 음과 양으로 나뉘는 이원적인 세상에서 “+”도 “-”도 아닌 존재로 인류 속에 나타나 수많은 과학자들의 머리카락을 새하얗게 한다는 아줌마는 역시 아줌마다 아줌마 아줌마 중에 “연변표” 아줌마는 이 세상 아줌마 중에서도 희귀품이라 한다. < 해 설 > “〈연변표〉아줌마 ―연변․3”의 시적대상은 희화(戱畵)화되고 부호화된 인물이다. “〈몸뻬〉바지와 코신에”, “다양한 헤어스타일을 머리에 쓰고”, “앞으로 보나 옆으로 보나 비슷하게 평평한 입방체”가 외모적인 파악이라면 “절반 하늘이 아닌 옹근 하늘을 든든히 받치고 서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어느 때부터 남편이 미안한 눈길을 보내더니 올해 한가위는 오빠와 함께 내 친정아버지의 산소에 가보자고 청들었다.(그동안 오빠와 형님 수고했어요! 해마다 잊지 않고 아빠의 산소를 찾아주셔서… 이 못난 동생을 용서해주세요!) 해마다 찾아오는 아빠의 산소지만 올해 따라 낫질하기 바쁠 정도로 이렇게 풀이 컸는가고 혼자서 중얼거리면서 오빠가 낫부터 꺼내든다. "아빠, 막내딸 왔어요. 아빤 그래도 이 막내딸 알아볼 수 있죠? 어릴 적 오빠와 엄마의 꽁무니를 따라 아빠의 산소를 찾아 뵌 뒤로, 시집간 딸은 친정집 산소를 찾아뵈면 나쁘다는 봉건의식에 30여년이 되도록 여태껏 아버지의 산소를 찾아뵙지 못했어요. 제가 '못 된 딸년' 맞죠?"하고 내가 입으로 주절주절 댄다. 오늘따라 아빠의 무덤 위에 꺼칠하게 자란 저 풀이 마치 길게 자란 아빠의 머리 같아 보여 오빠의 손에 쥐였던 낫을 빼앗으며 "불효한 딸"의 감투를 벗어보려고 나는 아빠의 "머리"를 다듬어본다. 그동안 아빠가 많이 노여워 했나보다. "머리"가 이렇게 더부룩할 정도로 자랐으니… 올해 따라 하늘에서 물함지가 륙속 터지는 바람에1 억세게 자란 저 풀~ 그동안 아빠가 이 막내딸 와주길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가을하늘, 어느 분의 손길이 스쳐갔을까? 어느 분의 손길이 스쳐갔기에 저처럼 말쑥하게 닦여졌을까 한 점 티도 없는 옥색 하늘 가진 것 모두다 비어내고서 푸르청청 높게도 열린 가을 하늘 어느 분의 손길이 스쳐갔을까 해설 시인 석화는 생명 시학에 대한 진지한 추구로부터 인간을 자연속의 생명체로 관찰하였다. 하기에 그는 자연의 모든 생명에서 인간생명의 연속과 참뜻을 확인하였는바 푸르른 하늘과 출렁이는 바다와 강물, 무성한 숲과 한그루의 꽃과 나무, 해와 달과 별과 산과 돌, 나는 새와 바람과 구름 등등 모든 자연의 물상들을 인간과 함께 살아 숨 쉬는 존재로 보았고 그 속에서 인간생명의 의의를 확인하였다. “가을”, “하늘”은 시인에 의하여 창조된 무욕의 이미지로 되어있다. 시 “가을하늘” 등에서는 “버림”의 영원성과 아름다움, “버리지 못함”의 자책과 부끄러움이 표현되어있다. 가을 하늘은 무르익은 만물로 하여 가장 큰 영예의 소유자로 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나 “가진 것 모두다 비어내고” 있다. 그것은 그대로 무욕의 세계요, 버림의 세계이다. 그러므로 하여 영원한 아름다움이 있기도 하다. 무욕의 세계인 가을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신랑 없는 집은 휑뎅그렝한 게 텅 빈집 같다. 왜서인지 애들도 아빠만 없으면 완전 군대기율로 얌전해진다. 찰칵찰칵 시계소리가 고요한 집안의 적막을 깨뜨리고 가슴을 허비며 또렷이 들려온다. 집에 있을 때는 별로 못 느끼던 신랑의 빈구석이 그가 밖에만 나가면 이렇게 너무나도 크게 안겨온다. 나는 애들이 잠든 깊은 밤에 초조히 창가에 서서 애들 아빠가 또 어디선가 과음하지나 않는지 괜한 근심만 하고 있다. 세월이 참 빠르다. 어느덧 신랑이랑 같이 살아온 지도 거의 20년 세월이 된다. 신랑은 나한테 참으로 고맙고 귀인 같은 사람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 사람이 옆에 있어야만 반짝반짝 빛을 뿌릴 수 있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지금도 눈앞에 선히 떠오른다. 20년 전의 그 그림이, 가정형편이 어려워 고중 2학년에서 자퇴한 나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던 어느 날 마음씨 좋은 이웃의 소개로 지금 시댁에서 하는 쇼핑가게에서 일하게 되었다. 여직 내가 살던 세상이랑 너무 다른 환경에서 나는 이 세상에서 돈을 이렇게 많이 벌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로 큰 장사가 아니었지만 당시 돈 없어 대학시험도 못 치고 중학교를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