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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화시인이 전하는 연변이야기

눈썹 달 / 조순옥

석화 시인이 전하는 연변이야기 18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하늘을 때리는 요란스런 굉음과 함께 비행기는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벌써 남쪽으로 쏜살같이 날아간다. 공항에서는 울음보를 터뜨리는 애들이며 누가 볼세라 돌아서서 눈물을 훔치는 안해들이며 배웅나왔던 사람들이 삼삼오오 흩어지며 서운한 발길을 돌린다. 그러나 나는 두 발이 자석에라도 붙은 듯이 멍하니 서서 비행기가 날아간 하늘만 쳐다보았다. 텅 빈 사막에 홀로 서있는 기분이다.

 

타향에 가는 언니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 길 옆의 락엽이 쓸쓸히 나뒹굴고 을씨년스런 찬바람에 머리카락이 얼굴을 마구 가린다. 같은 부모한테서 태어났어도 언니와 나는 색깔이 전혀 다르다. 언니는 조용조용한 성격에 배려심도 많다. 단아한 반달눈썹에 새물새물 웃는 눈, 동글납작한 작은 이마에 검고 윤기 나는 단발머리, 소녀 같은 맑은 피부에 호리호리한 몸매까지 누구 봐도 천상 여자였다. 우리 삼남매 중 언니와 나는 년년생이라 유난이 끔찍했다. 어릴 적부터 내가 언니 뒤를 졸졸 따라다녀서 언니친구도 다 내 친구로 돼버렸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친구얘기만 나오면 우리 둘은 신이 나서 밤 세는 줄 모르게 수다를 떤다.

 

엄마의 말씀을 따르면 나도 아주 착했다고 한다. 어릴 적에 새 옷이 생기면 종래로 그것이 내 옷이 아닌 줄 알고 언니가 입던 헌 옷이 언젠가 나한테 물려오나 기다렸다고 한다. 나의 밑으로는 세살 어린 남동생이라 옷도 물려줄 수도 없고 게다가 내가 남자애처럼 살차서 그냥 나한테서 그 옷이 해질 때까지 입어도 그것이 순리임을 잘 알았다고 한다.

 

형부가 한국에 간지 꽤 오래다. 내가 늦둥이를 보면서 언니와 같이 살자고 졸랐다. 그래서 언니는 아들애를 데리고 우리 집에서 함께 살기로 했다. 우리 두 집식구는 여섯 명이 한집 식구가 되여 삼년 동안 동네가 떠들썩하게 재미나게 지내왔다. 내가 낮에 출근하다 보니 아들애는 언니와 같이 있는 시간이 더 많아 아들애는 언니를 제 엄마인줄 알았다. 우리가 늘 애 이름대신에 서로 우리 아들이라 불러서 아들도 제 엄마가 누군지 헷갈려 했다. 하루는 아들이 슬며시 내 이불 속으로 들어오더니 나지막한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난 엄마가 더 좋은데?”

나는 아들의 속셈도 모른 채 그냥 내뱉었다.

나도 아들이 더 좋은데?”

그러자 아들이 걱정어린 목소리로 한마디 더했다.

난 엄마가 내 엄마였으면 좋겠는데

 

그제야 나는 아들애가 이런 고민이 있는 줄 알았다. 하긴 나와 언니가 너무 익살스런 농담을 많이 했었지. 나는 애 엉덩이를 툭툭 두드리면서 달랬다.

 

언니네 아들애도 나를 유별나게 좋아한다. 우리 집 딸애와 동갑이라서 학교를 갔다 오면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 하루 종일 재잘거린다. 아들애도 거기에 끼어들어 알아듣는 듯이 참견한다. 조카애는 생일선물도 사달라며 나를 졸라대고 학교에 갔다 와도 나보고 숙제검사도 해달라고 한다. 심지여 학교 학부형회의까지 나보고 가달라고 한다. 나도 이 모든 것이 다 귀엽기만 하다. 우린 이렇게 네 아들, 내 아들 따로 없이 삼년간을 너무 살맛나게 지내왔다. 그런데 오늘은 그 그림자 같은 언니가 내 곁에서 떠났으니 말이다.

 

오늘은 이토록 외로울 수가 없다. 온통 언니생각에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다. 후닥닥 일어나 창가에 매달려 멍하니 하늘을 쳐다본다. 하얀 눈썹달이 창문 넘어 가까이 걸려 있었다. 똑 마치 언니의 눈썹 같았다. 그 눈썹아래 동그스름한 언니 얼굴윤곽이 보인다. 정다운 미소까지언니도 분명이 남쪽하늘에서 저 눈썹달을 보고 있을 텐데. 그 눈썹 아래서 나의 허전한 얼굴도 보고 있을 거야. 그래도 우린 함께 있진 않아도 타향의 하늘과 고향의 하늘에서 눈썹달을 쳐다보며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스스로 마음을 추슬러본다.


 

진한 커피한잔 마시면서 언니와 같이 마음껏 아들자랑도 해보고 싶고 속시원 하게 남편흉도 보고 싶은데, 감성 깊은 발라드 한 곡 들으면서 언니와 같이 어릴 적에 싸우며 자라던 동년시절도 그리고 싶은데, 멋부리고 싶을 땐 언니와 같이 쇼핑하면서 예쁜 옷도 사구 싶은데, 맛있는 거 먹고 싶으면 언니와 같이 장 보러도 가고 싶은데휑뎅그렁한 공허감에 아무리 참으려 해도 눈이 먼저 슬퍼한다.

 

우린 약속했다. 하늘에 눈썹달이 뜰 때면 서로 하늘을 쳐다보자고. 그 후부터 눈썹달은 우리가 즐겁게 수다를 떠는 공간이 될 것이다. 그 안에서 보는 언니는 나와 아주 가까이 있는 것 같아서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냥 옛날처럼 언니와 친구로 살고 싶다. 올 가을은 유난히 쓸쓸할 것 같다. 곱게 물든 단풍도 나의 마음을 달랠길 없어 그냥 스쳐 지나간다. 그저 눈썹달이 뜨기만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