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도라지 ―연변ㆍ8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심심산천에 백도라지 연길 네거리에 내려와서 칼라 도라지로 변신 하였대요 싸리나무 꼬챙이에 꿰인 채로 순진한 촌티 내며 서로 껴안고 동시장 서시장에 몰려있을 때가 첫 걸음이었고 수돗물에 알뜰히 가랑이 씻겨 “경희궁”, “경복궁”에 “서울한식관” 쟁반마다 하나 둘씩 담겨 나가는 것 둘째 걸음이래요 내친걸음 한 달음 확 달려가 된장, 고추장에 식초라 간장 맵고 짜고 시고 단 온갖 것들 뒤집어쓰더니 지지고 볶이고 무치고 데워져 세상의 구미에 맛들어져 가는 것이 넷째 다섯째 걸음이라나요 그 다음엔 해가 진 뒷골목 가로등도 희미한 모퉁이에까지 막 가버려 자정 넘은 노래방 빈 방에서는 가사 없는 우리민요 “도라지” 노래가 반주곡 멜로디로만 울리고 우리말을 잘 못하는 한족사람들이 “또라지, 또라지”* 이렇게 따라 부르더라고요. 도라진지 또라진지 모르겠지만 심심산천에는 백도라지요 연길 네거리엔 칼라 도라지, 또라진가 봐요. |
* 주: “또라지”라는 발음은 중국어로 “쓰레기를 버리다”라는 뜻인 “倒垃圾(daolaji)”라는 말이다.
<해 설>
석화의 아닌 보살하고 슬쩍 튕기는 능청스러운 유머는 일품이다. 석화의 시는 “능청스러움”에서 알 수 있다시피 감정과잉보다는 감정절제가 잘 되어 있다. 어쩌면 지극히 객관적인 담시 속에 감정적인 가치판단은 녹아있다.
“연변” 련작시의 여덟번째 작품 “도라지”를 보자. 이 시는 고전적 민요 “도라지”의 선율에 도라지의 “첫걸음” 찧고, “둘째 걸음” 박고, “넷째 다섯째 걸음” 찧고 박고로 순진한 농촌처녀들, 더 넓게는 농촌사람들의 도시화의 걸음걸이를 나타내고 있다.
그의 이런 능청스러운 유머는 패러디를 많이 구사한 시집 《세월의 귀》에 지천으로 깔려있다. 예컨대 “작품92―나무꾼과 선녀”에서 나무꾼의 “선녀를 돌려주세요 / 선녀를 돌려주세요”를 통한 도시의 타락한 문명에 대한 비판은 전형적인 보기가 되겠다.
(우상렬, “석화시인의 시세계 —50년대 시인세미나 발표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