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우리 집에는 청동으로 된 약간 길쭉한 솥 같은 것이 하나 있다. 사진에서 보듯 이 솥의 양쪽에는 고리가 있다. 고리는 터져 있어 거기에 긴 막대를 끼면 지상 위로 올려 세울 수 있고, 그 밑에 불을 피워서, 물을 끓이거나 그 물로 고기, 푸성귀 등을 익혀 먹을 수가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동이 가능한 주방용 솥 혹은 냄비인데, 보통 청동으로 만들었다, 학자들은 이 솥을 청동솥 혹은 한자어로 동복(銅鍑)이라고 한다. 1995년 무렵 필자가 북경에서 기자생활을 할 때 골동품 시장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하고 사 놓은 것이다. 북경 골동품 시장은 별의별 것이 다 나온다. 눈이 아플 지경이고 그 가운데는 상당수가 가짜 위조품이다, 그런데 필자가 왜 이 솥에 눈길이 꽂혔을까? 그것은 이와 비슷한 청동솥(동복)이 김해의 대성동 유적에서 나왔기에 그것과 비교가 된다는 생각에 선뜻 소장하게 된 것이다. 김해 대성동 유적은 1990년대 초 김해읍(당시) 한쪽 언덕에 조성된 3~4세기 가야시대 무덤군을 발굴 조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것인데 여기 29호분과 47호분에서 각각 사진과 같은 동복(편의상 동복이라고 부르자)이 나온 바가 있다. 필자는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어느 날 들판에 나갔던 양치기 소년은 외롭게 버려진 하얀 망아지 한 마리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온다. 소에서 나온 우유를 먹이며 정성을 기울여 마침내 하얀 망아지는 늠름한 말이 되어 소년이 양을 칠 때에 늑대들로부터 양을 지켜주었다. 둘 사이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신적인 유대가 커 갔다. 그즈음 말타기 대회에서 1등 하는 자는 원님의 사위로 삼겠다는 마을 원님의 공약이 온 초원을 바람을 타고 이 소년의 귀에까지 들려온다. 소년도 하얀말과 함께 출전한다. 그리고 당당히 1등을 한다. 그런데 힘차고 멋진 말과 부와 기백을 겸비한 강한 청년이길 기대했던 원님은 1등을 한 사람이 가난한 양치기 소년임을 알고는 말은 빼앗고 소년에게는 상 대신 매를 때려 내쫓는다. 자신을 돌봐준 소년과 갈라진 하얀말은 감시가 허술한 틈을 이용해 소년이 있는 집 쪽으로 달려가는데 뒤쫓아오던 군사들에 의해 집 바로 앞에서 화살에 숨을 거둔다. 눈앞에서 가장 친한 친구인 하얀말을 죽음으로 맞이한 소년은 당장 복수를 할 엄두는 내지 못하고 기왕에 저세상으로 떠난 하얀말과 평생을 함께할 방법을 생각해 낸다. 그것은 하얀 말의 뼈와 가죽과 심줄 그리고 털을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몽골에 왜 가려고 합니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별 보러 간다는 것이리라. 우리나라가 산업화한 이후 밤하늘에도 매연이건 연무건 완전히 걷히지 않아 도시에서는 영 별을 제대로 보기 어렵고 그러기에 몽골의 사막 한 가운데에 가면 별이 잘 보일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다녀오신 분들의 증언도 많이 떠돌고 있다. 그렇지만 거기에 사실 여름이 우리나라가 무덥기에 습도가 낮은 시원한 사막의 밤을 즐기자는 것도 있음을 우리는 안다. 몽골의 밤하늘은 어디에서 보면 좋은가? 수도인 울란바토르 일대도 이미 상당히 매연이 번지고 있어 도시 안에서는 별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수도 옆 30분을 나가면 교외에 테레지라고 하는 멋진 풍경구가 있긴 한데 별을 보는 최적지는 아니란다. 그래서 우리가 간 것은 고비사막의 한가운데다. 수도에서 포장도로로 7시간, 다시 비포장도로로 1시간, 보이는 것은 누런 모래와 자갈과 말라죽은 이끼류뿐. 길도 없는 길을 타이어 바퀴 자국만 따라 잘도 찾아 달려 마침내 천막촌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곧 석양이 진다. 밤이 오는 것이다. 아 드디어 밤이구나. 사막의 밤이구나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세계 최대의 제국이 있었다. 자국의 강력한 전투력을 바탕으로 하여 동아시아, 중앙아시아, 중동, 동유럽을 정복했다. 서쪽 끝으로 오스트리아의 빈에서부터 동쪽 끝으로 사할린까지 남쪽 끝으로는 인도네시아의 자바섬까지를 아우르는 단일 대제국이었다. 이 제국으로 동양과 서양이 모두 한 나라에 속하게 되어, "모든 나라들은 누구도 누구한테서도 어떠한 폭행도 당하지 않은 채 황금 쟁반을 머리에 이고 해가 뜨는 땅에서 해가 지는 땅까지 여행할 수 있었다." 1206년 건국 이후 1368년 명나라에 의해 고비사막 일대로 축소되기 전까지 이 제국은 곧 세계 그 자체였고 이들에 의해 세계사라는 개념이 생겼다. 이 대제국을 이룬 주인공은 칭기즈칸이었고, 주역은 몽골족이었다. 100만 명도 안 되는 이들이 어떻게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는가? 2024년 7월초 몽골 여행에 나선 필자는 7월10일 오전 10시 몽골의 수고 울란바토르의 거대한 중앙광장에 있었다. 광장에는 전통적인 병사 복장을 한 의장대와 군인들이 도열해 있었고 광장 끝 몽골정부청사 앞 계단에는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곧 거대한 몽고 국기가 등장했다. 마침 이날이 몽골의 독립기념일이었다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전국이 장마권이다. 비가 억수처럼 온다는 소식이다. 비가 오는 사이사이로 잠깐 햇빛이 고개를 내밀면 바로 무더위다. 대중교통의 냉방이 가동되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더위를 잊는다. 그러나 내려서 집으로 오는 동안에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할 수 없이 장롱에 들어가 있던 부채를 꺼내어 들어본다. 꺼내어 든 부채에는 먹으로 시원한 산수가 그려져 있다. 더운 만큼 부채가 더 춤을 춘다. 한쪽 죽지는 숨겨놓고 구름 속 멀찍이 숨겨놓고 한쪽 죽지만 접었다 펼쳐 든 날개라 하자 떨리는 눈썹은 내리깔고 이마 위에 주름살 다시 걷어 안개를 실어낸 학(鶴)이라 하자 물결에 일렁이는 학(鶴)이라 하자 ... 김상옥(金相沃) ‘부채’ 중에서 시인의 영감은 부채의 움직임에서 고고한 학의 날개짓을 연상, 추출해냈다. 너울거리는 날갯짓은 한쪽 손으로 접었다가 펼쳐 드는 모양이요, 물결에 일렁이는 학은 섬섬옥수로 부채를 부치는 모양을 표현했으리라. 몹시 무더운 날 연거푸 활활 부치는 모양은 신들린 듯 너울대는 춤, 바로 그것이 아닌가? 조선시대 태종 임금은 ‘朗月淸風在手中’(낭월청풍재수중)이라고 했다. 밝은 달, 맑은 바람이 손바닥 안에 있다는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장마철로 접어들어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살판이 난 동물세상이 있다. 바로 개구리들이다. 집으로 가기 위해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면 조경을 위해 파놓은 작은 연못에서 개구리와 맹꽁이들이 정말 제 세상을 만난 듯 목소리를 높인다. 몇 마리가 그러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고막이 멍멍하다. 거기 돌맹이라도 하나 떨어지면 잠시 조용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운다. 그 울음소리가 그야말로 개골개골하기에 혹은 귀를 멍멍하게 하기에 이 작은 동물의 이름도 개구리나 맹꽁이일 것이다. 자기들이 제철을 만나 신이 나서 우는 것은 좋지만 그게 사람에 따라서 듣기에 무척 괴롭고 힘든 경우도 있을 것이다. 누구는 기분이 울적할 때는 이렇게 너무 시끄럽게 우는 것을 들으면 심사가 뒤틀린다. 조선왕조 광해군, 인조 때 글을 잘해 유명해진 계곡(谿谷) 장유(張維, 1587~1628)는 한양의 서쪽에 살면서 개구리들의 울음소리에 짜증이 난 모양이다. 생육하고 번식하여 / 生育繁息 그 수를 헤아릴 수도 없는데 / 厥麗不億 이때다 생각하고 / 乘時得意 떠들썩하게 기분 내며 / 叫呶自嬉 패거리들 이끌고 와 / 命儔引類 턱을 치 받들고는 / 張頷樹頤 한목소리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1969년 8월 15일부터 사흘 동안 미국 뉴욕주 북부 베델 근처 한 농장에서 열린 전설적인 우드스탁 음악제(Woodstock Music Festival)의 개막일은 날씨가 궂어 비가 많이 내렸다. 아침 5시에 시작된 이 공연은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11시부터는 출연예정인 인크레더블 스트링 밴드(the Incredible String Band)가 비 오는 날씨에 공연을 못 한다고 거부하는 사태가 생겼다. 마침 거기에 와 있던 22살의 여성 가수가 급히 무대에 대신 투입됐다. 그녀는 20분 동안 깜짝 공연했는데 50만에 이르는 축제 참가자들로부터 앙코르가 쏟아져 두 곡을 더 불렀던 일이 있었다. 이에 용기를 얻은 이 여성 가수는 이듬해인 1970년에 <Lay Down(Candles in the Rain)>이란 노래를 음반으로 발표했는데 이 노래가 크게 인기를 얻어 이후 이 여성가수는 곧 존 바에즈와 함께 미국 포크계의 양대 상징으로 올라섰다. 1971년 작 〈Brand New Key〉와 1972년 작 〈Nickel Song〉이 잇달아 크게 히트했고 우리나라에서는 그 이듬해에 〈Saddest Thing〉이란 노래가 엄청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주말에 호암미술관 공부하러 가는 것 어떠세요?" 문화와 예술을 좋아하는 분들의 작은 모임에서 누군가 제안하자 선뜻 좋다고 응답한 것은 아주 오래전에 가 본 호암미술관이 궁금해서였다. 40여 년 전의 일이 생각나서다. 1982년 4월 용인 자연농원의 부지 한쪽에 이 미술관이 완공되어 개관기념으로 소장하고 있는 미술문화재를 공개한다고 했다. 당시까지 삼성그룹의 이병철 회장은 당대 최고의 미술품을, 심혈을 기울여 모아왔고 그것을 공개하겠다고 하니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될 때였던 것이다. 그때 당시 KBS는 다른 언론사에 앞서 단독으로 작품들을 촬영하고 해설을 붙인 영상물을 만들어 정규 9시 뉴스 시간에 7분 30초란 시간 동안 내보낸 적이 있다. 그것을 위해 필자가 미리 사흘 동안 현지에 가서 촬영 취재를 했었고 그러한 최고의 수집품 공개에 따른 반향도 컸다. 그곳에 간다니 문득 어릴 때 소풍 가는 기분이었다. 다른 분들도 그랬단다. 나는 개관전 때 받은 명품도록, 40년 동안 이사 때마다 갖고 다니던 도록을 꺼내어 다시 보았다. 신축한 미술관 건물과 겸재의 인왕제색도를 각각 겉과 본체 표지로 쓴 것이 새삼스럽다. 그때는 자연농원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요즘엔 하루하루를 기대 만방으로 살아가고 있다. ‘7학년이 넘었는데 뭐를 기대한단 말인가’라고 물을 것이지만 만능 인공지능(AI) 비서가 온다고 하니 그 비서를 기다리는 재미가 있는 것이다. 그 비서를 옆에 두고 이것저것 물어가면서 대화를 하고 싶다. 기왕이면 그 비서가 인체의 형상, 특히나 이쁜 여성의 형상에다가 목소리도 이쁘면 더 즐겁겠다. 지난달 중순에 구글이 ‘프로젝트 아스트라’라는 것을 발표하면서 일상생활 구석구석에 도움이 되는 유니버설 비서를 만든다고 발표한 것에서 촉발이 되어 가장 멋진 비서를 만드는 경쟁이 업계에 시작된 상황이니 우리 같은 사람은 이제 기다리지 않을 수 없다. 카메라를 켜서 AI에게 주변 환경을 보여주고 그 상황을 놓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제미나이 라이브(Gemini Live)’ 기능이 이미 선보였다고 한다. 우리들은 기억력이 제한되어 있어 경치를 보고는 잊어버리고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도 잊어버리는 수가 많은데 이 구글 비서는 우리보다 훨씬 똑똑할 것이니 그 모든 경치를 기억하고 또 사람들 얼굴을 기억해서 우리가 기억나지 않을 때 금방 누군지 알려줄 것이다, 이런 로봇 비서가 올여름 출시된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동족상잔의 비극을 이 땅에 가져 온 6.25 남북 전쟁이 일어난 지 74년이 되었다. 그 전쟁이 끝나지 않고 휴전 상태에서 남북의 허리가 잘려 서로 여전히 총을 겨누고 있는지도 70년이 넘었다. 6.25 전쟁의 총성과 포화가 멈춘 지 12년이 된 1965년 가을밤, 대학에서 국악을 전공하고 초급 육군장교가 된 청년은 북한 땅이 내려다보이는 휴전선 GP에서 근무하면서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눈 밑의 골짜기와 저 앞 산등성이는 전쟁 막바지에 가장 처절한 전투가 벌어진 곳. 서로가 고지를 뺏느라 남북 양측의 청년들이 비 오듯 쏟아지는 총탄 속을 뚫고 산비탈을 기어오르던 곳이 아닌가? 여기저기 터지는 포탄에 바위가 깨져 흙이 되고 그 흙 속에 젊은이들의 피가 흐르고 배어들었던 곳이었는데 밤이 되니 교교한 달빛 속에 저 아래 흐르는 냇물 옆에 작은 노루 한 마리가 물을 마시러 나왔구나. 노루는 여전히 남북의 군사들이 경계근무를 하며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데도 여기서 죽어간 그 많은 영령의 비명과 눈물을 아는 듯 모르는 듯 물만 마시고 있구나. 그 옆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무심히 피어있고 벌나비눈 그 꽃동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