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소년 이효석이 평화길을 걷지는 않았다. 어린 이효석은 학기 중간에는 평창읍에 있는 하숙집에서 생활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효석은 주말에 친구들과 함께 족대(물고기를 잡는 기구의 하나)를 들고 평창강으로 고기를 잡으러 가지 않았을까? 또 친구들과 노산 정상까지 올라가지 않았을까? 어쨌든 효석은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6년 동안 평창읍에서 살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평화길 중간에 평화샘터를 만들어 놓았다. 산에서 나오는 물을 받아서 먹기도 하고 손도 씻을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샘터 앞에는 긴 의자를 여러 개 만들어 놓아서 여러 명이 앉아서 쉬기에 좋았다. 우리는 50분을 걸었기 때문에 평화쉼터에서 쉬어가기로 했다. 샘터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큰 수조에 담아서 발을 담글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몇 사람이 양말을 벗고 샘물로 족욕을 하였다. 발이 시원해지며 피로가 싹 풀린다고 좋아한다. 쉼터에서 평창강을 내려다보면서 오이와 블루베리를 간식으로 먹고 커피까지 마셨다. 세상에 부러운 것 없는 시간이었다. 평화길은 나무그늘이 져서 걷기에 매우 좋은 길이다. 평창읍 주민들은 평화길을 자주 찾는가 보다. 우리는 평화길을 걸으면서 사람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여덟 번째 만남 김 교수는 그때까지 계속 새벽기도회에 빠지지 않고 나가고 있었다. 아들을 위해서라는데 어떻게 거부한다는 말인가? 입시가 끝날 때까지는 참고 다닐 수밖에. 전에는 입시가 전기와 후기로 2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제도가 바뀌어 가나다라 군으로 4번의 기회가 있게 되었다. 수험생의 처지에서는 기회가 많아져서 좋아졌다고 볼 수 있겠다. 아들의 수능 점수로는 아무래도 서울에 있는 대학은 어렵다는데, 아들은 원서를 한번 넣어 보잔다. 김 교수는 조건을 붙였다. 가군과 나군은 아들이 원하는 대학에 원서를 넣되 다군은 김 교수가 근무하는 수도권의 S대로 원서를 넣자. 수도권의 S대에 합격하면 교직원 자녀로서 등록금이 면제되니까 조건이 좋았다. 이제는 합격자 발표만을 기다리고 있는 어느 날, 이번에는 김 교수가 미스 최에게 전화했다. 만난 지 1주일도 안 되었는데 웬일일까 미스 최는 의아해한다. “웬일이에요 오빠?” “갑자기 네가 만나고 싶어서 전화했다” “오빠, 나 《아리랑》 아직 다 못 읽었어요.” “《아리랑》이 그렇게 중요하냐? 오늘은 너에게 할 말이 있으니 꼭 만나자.” “알았어요, 오빠. 그런데 오빠 바람났나 봐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 날짜: 2024년 7월 1일(월) 답사 참가자: 김수용, 김혜정, 송향섭, 윤석윤, 이상훈, 최동철, 황병무 (7명) 답사기 쓴 날짜: 2024년 7월 7일 효석문학100리길 제5-2구간은 평창 바위공원에서 평창 전통장에 이르는 거리 약 4.5km 구간이다. 평창군 발행 소책자에서 제5-2구간은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수석바위 테마공원인 평창바위공원을 둘러보고 장암산이 병풍처럼 펼쳐진 평창강을 따라 걸으며 강변의 정취를 즐기고 숲길을 따라 삼림욕을 즐기면서 평창 전통장과 공연장에 이르는 길이다. 평창바위공원에서 아침 9시 10분에 7명이 출발하였다. 장마전선이 북상하면서 전날까지 평창에도 비가 쏟아져서 걱정했었다. 다행히 장마전선이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평창 지역에 비는 오지 않았다. 구름이 조금 끼면서 날씨가 흐렸다. 여름이 시작되었지만, 기온은 23도 정도로 그리 높지 않고 걷기에 좋은 날씨였다. 전날 쏟아진 비로 평창강물이 불어나 물소리가 요란했다. 강폭이 많이 넓어져서 풍성한 평창강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효석 이야기를 마저 하자. 효석은 나이 33살이던 1940년에 부인 이경원과 사별하였다. 그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한 주일쯤 지난 뒤 미스 최가 전화를 걸어왔다. 여느 때처럼 금요일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김 교수는 은근히 금요일이 기다려지면서 한편으로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언제까지 미스 최를 만나야 하나? 이번에 만나면 무슨 결단을 내려야 할까 보다. 금요일은 마침 대학 입시의 면접일이었다. 김 교수가 속한 면접 팀은 음악 대학 지원자를 면접하게 되었다. 면접은 간단한 질문을 두세 가지 던지고 응시자의 답변 태도와 행동을 살펴보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점수 차가 크게 나지 않게 채점하지만 1, 2점의 점수는 가감할 수 있다. 질문은 아무 것이나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김 교수는 그날 음악대학 입시생이라는 점을 살펴 평소에 궁금하던 질문을 던졌다. “국악과 서양음악과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응시자는 여학생이 대부분이었는데, 학생들의 답변은 대개 비슷하였다. 이들의 답변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얻어진다. 서양음악은 7음계인데, 국악은 5음계이다. 서양음악은 화성을 중요시하여 벽돌 같은 몇 개의 음이 합쳐져야 아름다운데, 국악은 음 하나하나가 수석(壽石)처럼 중요하게 여겨진다. 서양음악은 쉼표의 길이가 정해져 있는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조금 더 오르자, 삼거리가 나오는데 평창바위공원으로 향하는 길은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왼편 길로 가면 임진노성전적비가 있다고 표시되어 있다. 나는 혼자서 왼편으로 10여 미터 내려가 보았다. 커다란 임진노성전적비와 노성산성지 비석이 보인다. 노성산성지의 기록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곳은 조선조(朝鮮朝) 중기 흉폭한 왜적(倭賊)의 침입이 있었을 때 이 고장을 지키려는 조상들이 피 흘려 싸운 곳이다. 이곳에 처음 성을 쌓은 것은 조선 중기라 하나 성을 쌓은 모양으로 보아 그보다 더 오래인 고려시대 이전에 이 고장을 지키려는 선민들이 쌓은 산성이라고 보는 편이 옳은 것 같다. 특히 이곳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평창군수 권두문(權斗文) 공이 이 산성을 수축하고 전란에 대비한 바 있으며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많은 관민이 함께 피란했던 응암굴이 있다. 산성의 규모는 둘레 400여 미터의 작은 산성이나 천험(天險)을 이용하여 수축한 산성이다. 이 고장을 지켜온 호국의 유적지를 길이 보존하고자 표석을 세워 옛일을 후세에 전한다. - 1984. 10. 7 평창군수 노성산성지 비석은 이곳이 “왜적의 침입이 있었을 때 이 고장을 지키려는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한해가 바뀌고 나서 며칠 후 김 교수는 미스 최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몇 번 울리더니, ‘기다리세요. 녹음을 남기려면 1번, 무얼 하려면 2번 어쩌고...’ 젊은 여자 목소리의 안내음이 수화기를 타고 흘러나온다. 편리하다기보다는 번거로운 생각이 들어서 수화기를 내려놓아 버렸다. 며칠 후, 미스 최에게서 전화가 왔다. “새해 복 많이 받아라.”라고 인사를 나누고, 그러더니 “오빠, 나 《아리랑》 제6권도 다 읽었어요. 한 번 만나 주셔야지요”라고 애교를 부리며 협박한다. 처음에 3권짜리 장편소설을 시작했더라면 벌써 끝났을 텐데, 12권짜리 《아리랑》을 선택한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내가 만든 인과응보이니 어쩔 수가 없지. 토요일에 한번 만나자고 하니, 주말에는 용평스키장에 갈 계획이라고 한다. 이것 참... 술집 아가씨가 대학교수 기죽이네. 나는 스키의 ‘스’ 자도 모르는데. 그러면 잘 갔다 오고 다음 주에 다시 연락하자고 말하고서 전화를 끊었다. 아무래도 이 아가씨는 김 교수와 격이 안 맞는 것 같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산다는 속담이 있는데... 겨울 방학이지만 김 교수는 날마다 학교에 나갔다. 방학이 되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이효석문학관에서 해설사로 근무하는 황병무 선생에게 다리외 사진과 관련하여 질문을 해보니 <향수>라는 글에 단서가 있다고 한다. <향수>는 효석이 1939년 9월에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소설의 내용은 평양의 도시 생활에 지친 아내가 모처럼 경성의 시골집으로 쉬러 떠나는 이야기이다. 효석과 아내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소설에서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혼자 내빼구 집안은 어떻게 하려구.” 그러나 마침 일가 아이가 와 있던 중이었고 아내의 시골행 결심도 사실은 거기에서 생겼던 까닭에 이것은 하기는 헛걱정이기는 했다. “나 혼자 남겨 두구 맘이 달지 않을까.” “에이구 어서 없는 새 실컷 군것질 해두 좋아요. 얼마든지 하라지. 지금에 시작된 일인가 머. 이제 다 꿈만 하니.” “큰소리 한다. 언제 맘이 저렇게 열렸던고. 진작.....” 소설에서 아내는 남자의 바람기를 흥미롭게도 ‘군것질’이라고 비유하였다. 아내인 이경원은 미술학도로서 여고 졸업 작품 전시회에서 효석을 처음 만났다. 집안이 부자였던 그녀는 미술 공부하러 동경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효석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혼인하고 애를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돌아서 새해가 되었다. 젊었을 때부터, 아니다, 아마도 초등학교 시절부터 새해에는 항상 올해의 계획을 세웠다. 책을 1주일에 1권 이상 읽겠다. 매일 아침 5시에 일찍 일어나서 새벽 공부를 하겠다. 자격증을 하나 따겠다. 일본어를 배우겠다. 아들과 하루에 한 번 이상 사랑의 대화를 나누겠다. 교과서로 쓸 책을 한 권 쓰겠다 등등. 그러나 그러한 새해 결심은 항상 지켜지지 않는 법이다. 작심삼일에 그만 무너지는 결심도 있고 두세 달 가는 결심도 있다. 그러다가 연말에 돌이켜 보면 새해 결심이 무엇이었는지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린 시절, 그때는 방학 숙제가 많았다. 매일 일기를 쓰고, 곤충 채집을 하고, 명승고적 방문기를 기록하고 등등... 방학이 끝날 무렵이 되면 ‘방학숙제를 해야 하는데...’라며 걱정만 했다. 그러다가 개학 날짜가 내일모레로 다가오면 그때야 방학숙제를 한다고 온 야단법석을 치르고도 언제나 한두 가지 숙제는 하지 못했던 기억이 아직 새롭다. “다음 방학 때에는 꼭 방학숙제를 먼저 하고 놀아야지”라고 결심하지만, 그러한 결심은 초등학교 6년 동안 한 번도 지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 날짜: 2024년 6월 24일(월) 답사 참가자: 김수용 김혜정 송향섭 윤석윤 윤희태 이상훈 전선숙 황병무 (8명) 답사기 쓴 날자: 2024년 6월 29일 효석문학100리길의 제5구간은 평창 용항리 경로당 ~ 평창바위공원 ~ 평창 전통장(평창초교)까지 걷는 길로서 소책자에서는 ‘마을길 따라 노산가는 길’이라고 이름붙이고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강, 들, 숲과 역사 그리고 옛 정취가 남아있는 평창 전통장 등 다양한 테마를 가진 그림처럼 아름다운 평창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구간이다. 5-1구간은 용항리 경로당에서 평창바위공원까지의 거리 7.5km 구간이다. 5-1구간은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숲길을 따라 작은 고개를 넘고 마을길을 걸으며 시골의 정취를 느끼고 평창강과 기암절벽, 임진왜란 때 격전지였던 노산성을 둘러보고 평창강변에 위치한 평창바위공원에 이르는 길이다. 용항리 경로당에서 아침 9시 30분에 8명이 출발하였다. 이날 날씨는 여름이지만 구름이 끼고 흐려서 덥지 않았다. 기온은 25도 정도로서 답사하기에 좋은 날씨였다. 용항리 안쪽 마을을 한 바퀴 도는 길은 원래는 4구간에 포함되어 있으나 지난번에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올여름은 유난히도 더웠다. 열대야는 저녁 6시 1분부터 이튿날 아침 9시까지 기온이 25도 이상을 유지하는 현상을 말한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8월 25일 아침 6시 12분에 서울의 기온이 24.9도까지 내려가 8월 24일 밤은 열대야가 아니었다고 한다. 이로써 34일간 계속된 서울의 최장 열대야는 끝났지만, 올해 여름에 서울에서 열대야가 발생한 날 수는 모두 37일로 이 역시 기상 관측 이래 제1위에 해당한다고 한다. ‘님이 그리워’ 잠 못 이루는 밤이 아니고 ‘날씨가 더워서’ 잠 못 이루는 밤은 해마다 반복되며 해마다 길어질 것으로 염려된다. 이처럼 열대야가 길어지는 것은 지구가 더워지는 지구온난화 현상 때문이다. 환경학자들은 산업 혁명 이후 지구의 평균온도가 빠른 속도로 높아지는 것이 관측되자 지구온난화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었다. 인류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일어난 산업혁명 이후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가능해졌다. 모든 나라에서 경제가 발전하면서 화석연료의 소비가 늘어나고 연쇄적으로 이산화탄소의 발생이 증가하였다. 이산화탄소는 이른바 온실가스로서 태양열을 붙잡아두기 때문에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높아지면 지구의 온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