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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건너 뿌리내린 백제의 차, 일본서 피어나

백제의 차는 기록 밖에서 더 깊이 살아 있다.
[라석의 차와 시서화] 9

[우리문화신문=손병철 박사/시인]  백제의 차는 한반도 기록 속에서보다, 바다를 건너 더욱 또렷한 형상으로 드러난다. 이는 단순한 역사의 공백이 아니라, 문화가 이동하고 정착하는 방식에 대한 하나의 상징적 장면이다. 신라의 차가 비교적 문헌 속에 또렷이 남아 있는 것과 달리, 백제의 차는 국내 정사에서 직접적으로 확인되는 기록이 매우 희박하다. 그러나 이 결핍은 곧 다른 방향에서의 충만으로 이어진다. 그 흔적이 일본의 절 문헌 속에서 오히려 더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일본 나라에 있는 《동대사요록(東大寺要録)》이다. 이 기록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전한다. "여러 지역에 절을 세우고, 아울러 차나무를 심었다. (諸国に堂社を建立すること四十九ヶ所、並びに茶木を植う)”

 

이 문장은 일본의 고승 행기(行基)의 활동을 서술하는 가운데 등장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단순한 절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차나무의 심기’가 명시적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절은 공간을 세우는 일이라면, 차나무를 심는 행위는 시간을 심는 일이다. 이 둘은 함께 놓일 때 비로소 하나의 문화가 완성된다.

 

 

차는 이 지점에서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수행의 환경이자 삶의 은율을 구성하는 요소로 나타난다. 절 마당에 심긴 차나무는 계절을 따라 잎을 내고, 그 잎은 다시 물과 불을 만나 수행자의 몸과 마음으로 스며든다. 이 순환은 곧 수행의 또 다른 형식이며, 생활 속에서 구현된 불교적 실천이라 할 수 있다. 행기(行基)는 일본의 승려로 알려져 있으나, 오래전부터 백제계 도래인 혈통과 관련된 인물로 이해되어 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동대사요록(東大寺要録)》의 기록은 단순한 일본 내부의 문화사적 사실을 넘어, 백제 문화가 일본 사회 속에서 구체적인 실천으로 뿌리내린 장면으로 읽힌다.

 

물론 “백제 성왕이 차를 일본에 전했다”라는 식의 전승도 일부 전해지지만, 이는 《일본서기(日本書紀)》 원문과의 엄밀한 대조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많아, 학술적으로는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데 있어, 상상과 전승은 언제나 매혹적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렇기에 현재 우리가 확실히 붙잡을 수 있는 것은 하나의 조용한 연결고리이다. 곧, ‘행기–동대사요록–차나무 심기’로 이어지는 문헌의 흐름이다. 이 흐름 속에서 우리는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발견한다.

 

 

백제의 문화는 단순히 전달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형태로 정착되었다는 점이다. 차는 씨앗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도착한 곳에서 그것은 더 이상 씨앗이 아니다. 그것은 뿌리를 내리고, 계절을 견디며, 새로운 풍토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마침내, 수행과 공양의 형식으로 완성된다. 이 과정은 보이지 않는 마음이 보이는 형식으로 드러나는 과정과도 닮았다.

 

건너간 것은 물건이 아니라, 하나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삶을 바라보는 태도, 몸과 마음을 다루는 법, 그리고 시간을 견디는 법. 그것이 바로 백제가 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백제의 차는 기록 속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기록 밖에서 더 깊이 살아 있다. 일본의 산과 절, 오래된 차나무들, 그리고 그 나무 아래에서 이어져 온 수많은 손길 속에.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누군가 잎을 따고, 물을 붓고, 향을 맡는다. 그 순간, 오래전 바다를 건너온 어떤 방식이 다시 살아난다. 백제의 차는 그렇게, 말없이 이어진다.(중국 북경에서)

 

라석(羅石) 손병철(孫炳哲) 

 

북경대학 미학ㆍ철학전공 철학박사/시인

물파공간화랑 서울ㆍ북경 관장 역임

《라석심물시》, 《손병철시전집》 등 9권 시집 펴냄

국제복희역학회 회장, 한국불한선차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