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소띠해 첫날, 마치 연하장이라도 받는 느낌으로 오색 족두리에 연지를 찍은 고운 새색시 얼굴이 표지에 새겨진 책 한 권을 받았다. 책의 이름은 《춘희의 꿈 이야기, 색실로 그리다》다. 책 제목의 ‘색실로 그리다’라는 말처럼 이 책은 자수 작가 김춘희 씨가 한 땀 한 땀 수놓은 작품을 해설과 함께 책으로 엮은 것이다. 《춘희의 꿈 이야기, 색실로 그리다》는 각 자수 작품에 대해 한국어와 영어 그리고 일본어로 해설을 하고 있는 데 나는 책이 나오기 전 <도서출판 토향>의 도다 이쿠코(戶田郁子) 대표의 부탁으로 한글 부분 교정을 본 터라 책을 받아 들고 남다른 기쁨을 느꼈다. “어느 날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려고 연필을 들었는데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눈을 감고 조금씩 기억을 더듬어보니 십여 년 전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고우셨던 얼굴에 주름이 지고 수척해지신 모습이었다. 너무 소중한 추억이라 마음속에서 조용히 꺼내보면 가슴이 아파 저려올 때가 있다.(후략)” -9쪽, 전통혼례 새색시- “가끔 가을꽃들을 수놓다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랑 닮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이제 막 피려고 하는 꽃망울과 활짝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기우만(1846~1916), 박원영(미상~1896), 김익중(1851~1907) 선생을 2021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뽑았다고 밝혔다. 기우만ㆍ박원영ㆍ김익중 선생 모두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발하여 1896년에 일어난 호남지역 의병들이며, 호남지역 유학자인 노사 기정진(奇正鎭)의 학맥을 계승하여 서양 및 일제의 국내정치 개입을 거부하고 임금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장성,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먼저, 조부 기정진의 영향을 받은 기우만 선생은 전남 장성 탁곡에서 출생했으며, 호는 학정거사(學靜居士)ㆍ송사(松沙) 등이다. 선생은 1896년 2월 장성향교에서 처음 호남의병을 일으켰다. 장성, 나주에서 기반을 다진 선생은 광주에서 대규모로 의진(義陣)을 결집하여 회맹(會盟)을 하고 서울로 북상할 계획을 세웠으나, 임금의 해산 조칙으로 1896년 봄을 전후하여 해산했다. 선생이 일으킨 의병은 단발령의 철폐와 일제 축출, 개화 정책의 반대, 옛 제도의 복구 등을 내세웠다. 또한, 임금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인 체제를 유지할 것을 주장했으며, 의병해산 뒤에는 의병의 정당성을 알리기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친일재산 국가귀속법’이 노무현 정부 때 제정되어 실시되어 오다가 이명박 정부에서 중단되었다. 김원웅 광복회장 취임이후 친일재산 귀속작업에 다시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친일재산 찾기를 추진해온 광복회는 3일, 지난 한 해 모두 26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 은닉재산 모두 171필지(면적 2,939,525㎡ 공시지가 520억 원, 시가 3,000억 원 상당)을 찾아내어 법무부에 국가귀속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이 중에는 광복회가 지난해 순국선열의 날에 국가귀속을 신청한 민영휘 등 한일합병 주모자들을 포함한 9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은닉재산 31필지(면적 2,218,670㎡, 공시지가 190억 원 상당)가 포함되어 있다. 광복회가 찾아낸 친일재산에는 동학농민운동을 말살하려고 청(淸)에 군사적 지원을 요청하고, 일제하 중추원장과 헌병사령관을 역임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일합병’에 이바지한 공으로 자작 작위를 받아 친일재산을 가장 많이 소유한 민영휘와 ‘한일합병’추진단체인 한국평화협회 회장을 맡은 공으로 자작 작위를 받은 민영소, ‘한일합병’을 주도하고 그 공으로 자작 작위를 받은 민영규 3명의 공동명의 친일재산 6필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가시는 초행길에 흔들릴 수 있으니 두려워 마소서 처절한 몸짓으로 부르는 한 소절의 곡소리 되돌릴 수 없는 아픈 여운에 그 몸짓에 숨죽여 물든 지금 기억 저편에서 문득 밀려오는 그리움 - 안준탁 '아버지'- 천년고찰 개심사 안양루에서는 '제5회 나를 찾아가는 문화기행전'이 지난해 11월 4일부터 열리고 있어 절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한다. 가국일, 조항오, 안준탁 작가의 시화와 수석으로 꾸며진 이번 전시회가 열리는 안양루(安養樓)는 바로 대웅보전 앞에 자리하고 있어 누구나 손쉽게 관람할 수 있다. 보는 각도에 따라 제각기 달리 보이는 수석의 자태는 흔히 볼 수 없는 작품들로 방문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돌 하나에 새겨진 세월의 무게는 다채로운 무늬로 , 빛깔로 무언의 말을 건넨다. 현란하고, 수선스럽고, 꾸밈과 이간질 등 '말로써 말 많은 세상'을 조롱하듯 침묵으로 '묵직함'을 선사하는 수석을 감상할 수 있는 것 만으로도 개심사 나들이는 흡족할 만하다. 개심사는 현재 충남의 4대고찰로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찾는 절이다. 이곳은 바다가 인접한 절로 뱃사람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절이기도 하였다. 서산 간척지 사업의 완성으로 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격렬한 투쟁성을 지녔던 한국 독립운동의 중심에는 나라가 일제에 의해 무너지기 전부터 대대적으로 일어난 의병전쟁 등이 있었다. 그리고 경술국치 이후 만주 등지로 망명한 독립투사들에 의해 독립군 항쟁으로 발전하는 등 해방되기까지 꾸준히 무장독립투쟁의 맥을 이어갔다. 이 가운데 단연 두드러지는 것이 바로 의열투쟁이다. 이는 자신의 생명을 던져 온 인류에게 자유와 정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민족 독립의 대의를 밝히려는 목적으로 일어난 무력적 투쟁이다. 이러한 인류공영의 투철한 목적성을 토대로 진행된 의열투쟁이 단순히 개인 또는 일부 집단의 사적 이익을 도모하고자 자행한 테러와 명확히 구분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서 드러난다. 경북 안동 풍산읍 오미리에서 태어난 추강(秋岡) 김지섭(金祉燮, 1884~1928) 선생은 거의 반평생을 민족의 해방을 위한 의열투쟁에 헌신한 독립투사였다. 그는 팔련오계(八蓮五桂)로 유명한 풍산김씨 오미마을의 명문가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집안 숙부인 운재(雲齋) 김병황(金秉璜, 1845~1914)에게 한학을 공부했다. 김병황은 당시 한학자로서 명망이 높았고, 의병이 일어날 당시 풍산김씨 문중을 대표하여 의병을 지원하기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2021년 새해를 맞아 김원웅 광복회장은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신년인사를 했다. 김 회장은 신년사에서 ‘해방 이후 우리사회의 갈등과 분열은 친일 미청산에 기인하며, 현재 우리사회의 갈등은 친일반민족세력의 부당한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저항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김 회장은 ‘우리 사회의 지배구조는 위험할 정도로 기형화, 노후화 되어 있고, 우리세대에 친일청산에 실패하면, 대한민국은 애국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다음 세대에게 절망을 넘겨주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김 회장은 ‘지금 우리가 친일반민족세력에게 무릎 꿇으면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라고 물으며, 독립운동 후손들이 모인 광복회가 친일청산에 앞장서는 것이 선열들의 뜻을 이어받는 것임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광복회가 올해 해나갈 일들을 명시했다. 특히 친일ㆍ친나치 행위로 얼룩진 애국가 작곡가 안익태에 대한 역사적 심판과 함께, 변화된 시대정신이 담기고 부르면 부를수록 우리 국민의 애국심과 자긍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국가(國歌)제정’을 위한 국민적 공감대를 광복회가 조성해 나가겠다.”라고 강조했다. 또 새해는 조선의열단 박재혁 의사와 대한광복회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장기간 서울중앙보훈병원에 입원 중이신 여성독립운동가 오희옥 지사께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새해 덕담을 써주셨다. "행복하세요, 가화만사성" 이라는 덕담이다. 손에 힘이 빠져 펜을 잡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오희옥 지사께서는 끊임없이 우리들을 위해 덕담을 써주고 계신다. 지난 성탄절에는 대국민을 위로하는 '2020 코리아 퍼레이드' 방송에서 '다시 일어선 대한민국을 기대합니다'란 덕담을 써주셔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준 바 있다. 소띠해를 맞은 올해 95세이신 오희옥 지사께서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곁을 지켜 주시길 간절히 기원해 본다. 【여성독립운동가 오희옥 지사는 누구인가?】 오희옥 지사는 할아버지대(代)부터 ‘3대가 독립운동을 한 일가’에서 태어나 1939년 4월 중국 유주에서 결성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韓國光復陣線靑年工作隊), 1941년 1월 1일 광복군 제5지대(第5支隊)에서 광복군으로 활약했으며 1944년에는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의 당원으로 활동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오희옥 지사 집안은 명포수 출신인 할아버지 오인수 의병장(1867~1935), 중국 서로군정서에서 활약한 아버지 오광선 장군(1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레미제라블이 프랑스 소설이라면, 뮤지컬 페치카는 우리의 자랑스런 역사 실화다" 이는 독립운동가 최재형을 그린 뮤지컬 <페치카>를 잘 대변하는 말이다. 어쩌면 이는 프랑스의 레미제라블을 모르는 사람이 없듯이 대한민국의 <페치카>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전문예술단체 "랑코리아"의 창작 뮤지컬 <페치카>는 시베리아에서 대한민국을 지킨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디아스포라 인간승리의 이야기를 담은 창작 뮤지컬이다. 우리가 잘 몰랐던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선생의 일생을 다룬 <페치카>를 만든 예술총감독 주세페 김은, "<페치카>를 무대에 올리는 일에 대해 모두가 무모한 도전이라 했습니다. 패배할 수 밖에 없는 싸움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최재형이 그랬듯이 우리도 앞으로 앞으로만 나아 갈 것입니다." 라는 각오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했다. 열악한 재정 속에서도 오로지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을 알리는 뮤지컬 작업에 혼신을 다 불어 넣어 만든 <페치카>는 3.1운동 100주년, 최재형 선생 서거 100주년을 맞아 무대에 올랐으나 올해는 코로나19로 더 이상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저는 일본의 신사(神社)나 신궁(神宮)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의 하나는 전쟁 중에 강제로 신사참배를 한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군국주의의 맹호를 떨치게 한 곳이 신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후(戰後, 1945년)에 알고 보니 일본 각지에 조선에 없는 고구려, 백제, 신라와 같은 3국 이름이 들어있는 고마신사(高麗神社), 백제신사(百濟神社), 신라신사(新羅神社)가 많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실 일본의 신사(神社)나 신궁(神宮)은 고대 조선의 신라에서 건너온 것입니다.” 이는 재일조선인 작가 김달수 씨의 《고대조선과 일본문화》(일본 강담사, 1987) 26쪽에 나오는 말이다. 김달수 씨를 작가라고 부르기보다는 역사학자라고 불러야 좋을 만큼 그는 “일본 속의 고대 한국문화”를 평생 찾아낸 사람으로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알려진 작가다. 지금 일본의 가나가와현에 있는 가나가와 근대문학관에서는 12월 12일부터 김달수(1920~1997) 작가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 열리고 있다. 가나가와 근대문학관에서 소개하고 있는 김달수 씨의 면모를 보면, “김달수 씨는 조선인으로서의 경험을 살려 작품을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파주시에 있는 혜음령 고개는 내가 살고 있는 고양시와 인접해 있어서 가끔 지나다녔지만 혜음원(惠蔭院)은 들어보지 못하던 곳이다. 코로나19로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집에서 머지않은 용미리 마애불상을 보러 갔다가 우연한 기회에 혜음원터(惠陰院址)를 가게 되었다. 혜음원터는 용미리 마애불상으로부터 차로 10여분 거리에 있었다. 길찾개(내비)는 평소 익숙하던 도로를 지나 약간 낯선 좁은 골목길로 안내했다. 겨우 차 한 대 지나갈만한 산길에 이르러 길찾개가 도착이라는 안내를 해줬다. 차에서 내려 산길 쪽으로 조금 올라가니 드넓은 계단식 집터가 눈에 들어온다. 혜음원터와 마주친 순간 양주의 회암사터가 떠올랐다. 한눈에 봐도 어마어마한 규모의 집터였다. 이곳에 왜 이렇게 어마어마한 집터가 있는 것일까? 혜음원터 안내판의 깨알 같은 글자를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궁금증이 이내 풀렸다. 한마디로 이 집터는 고려시대에 세운 혜음원(惠蔭院)이라는 국립숙박시설이 있던 자리였다. 당시 혜음원은 남경(서울)과 개성을 통행하는 관료 및 백성의 안전과 편의를 위하여 고려 예종 17년(1122)에 건립한 숙소 건물과, 절 그리고 임금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