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1911년,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망명한 안동지역 출신 인물들 가운데는 단연 일송(一松) 김동삼(金東三, 1878~1937) 선생을 빠트릴 수 없다. 그는 1878년 경북 안동 임하면 소재의 내앞마을[천전]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의성, 호는 일송이며, 본명은 긍식(肯植), 이명으로 종식(宗植)을 쓰기도 했다. 내앞마을은 의성김씨 입향조 청계(靑溪) 김진(金璡)의 후예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약 600여 년 동안 무수한 명망 있는 학자ㆍ관료를 배출한 안동지역 명문이자 유교문화의 산실로 평가된다. 또한, 이곳은 세계 식민지해방운동사에서도 우뚝한 경북 안동인의 독립운동 흔적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마을이기도 하다. 나라가 어려움을 겪던 한말, 이들은 의병항쟁에 뛰어들기도 하고, 특히 보수적인 기조가 강한 이 지역에서 신식학문을 받아들이고 애국계몽운동을 펼쳤던 이른바 “혁신유림”을 많이 배출하기도 했다. 안동지역 첫 근대식 중등교육기관인 협동학교가 1907년 이곳에 설립된 바탕에는 초대교장을 역임한 대종가 종손 김병식(金秉植), 자신의 거처를 교실로 희사한 김대락(金大洛), 협동학교의 설립 주체로서 혁신유림으로 평가되는 김후병(金厚秉), 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광복회(회장 김원웅)는 오늘22일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의 당론채택 요청하는 공문을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정의당, 열린민주당 등 4당에 보냈다. 광복회는 공문을 통해 “해방 이후, 친일에 뿌리를 두고 분단에 기생하는 반민족세력이 남한에 점령군으로 진입한 미군에 다시 빌붙어 동족을 괴롭히는 폭력과 탄압을 자행했다”라면서 “이에 맞선 백성들의 정의로운 항쟁인 ‘제주4·3항쟁’은 독립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는 처절하고 위대한 투쟁이었다”고 주장했다. 광복회는 “‘제주4·3항쟁’의 진실규명, 가해자의 불법과 잔혹성, 희생자의 명예회복과 보상은 지난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고,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데 필수적이다.”라면서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의원과 국민의힘 이명수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개정 법률안』이 이번 회기 내에 법 개정이 될 수 있도록 각 당에서 동 개정 법률안의 통과를 당론으로 채택하여 달라고 요청했다.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고려시대 꿈 같은데 새만 부질없이 울어대고 봄비 젖은 홍릉은 풀빛이 가지런하네 북쪽의 구름 속에 송악산 숲이 있고 절로 푸른 한강물은 서쪽으로 흘러가네 - 화남(華南) 고재형(高在亨: 1846~1916) - 화남 선생이 읊고 있듯이, 강화 흥릉(洪陵, 사적224호.1971년 지정 )을 찾은 날은 고요함 속에 까마귀만 울고 있었다. 겨울의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하던 날, 강화읍 국화리 산 180에 있는 홍릉으로 이르는 길은 상당한 비탈길이었다. 홍릉에 잠들어 있는 분은 고려 23대 고종(1192-1259, 재위 1213-1259)이다. 고종 재임 때에 몽골군과 거란족의 침입이 있어 고종은 재위 39년 되던 해인 1231년, 강화도로 천도하여 이들에 대항하였다. 피난 중에 고종은 이곳에서 16년(1236-1251) 동안 고려대장경(팔만대장경) 판각에 힘쓰며 국난 극복의 힘을 모았다. 한편으로 고종은 몽골군의 침입을 막아내면서 몽골과 강화(講和)를 하기 위해 1259년 태자(원종)을 몽골에 보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해 6월, 67살의 나이로 승하했다. 피난지에서 승하했던 터라 주검을 개경으로 옮기지 못하고 이곳에 장사지냈다. 왕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설을 앞두고 일본에서는 ‘카도마츠(門松)’를 만드느라 분주하다. 일본은 메이지(明治, 1868년) 때부터 양력설을 쇠고 있으며 이제 설날은 일주일 남짓 남았다. 카도마츠란 설날을 맞아 집 대문 앞 또는 출입문 앞에 세우는 소나무 장식물을 말한다. 카도마츠는 길고 두툼한 토막의 대나무를 가운데 세우고 그 둘레에 소나무를 세운다. 소나무는 조상신이 찾아든다는 속설이 있어 소나무 장식을 즐기며 여기 쓰이는 대나무는 천수를 누리며 장수하라는 뜻을 지닌다. 설날 장식품인 카도마츠는 12월 23일부터 새해 1월 7일까지 세워두는데 지역에 따라서는 15일까지 세워두는 곳도 있다. 이렇게 카도마츠를 세워두는 기간을 가리켜 ‘소나무가 세워져 있는 동안’이라는 뜻으로 ‘마츠노우치(松の內)’라고 한다. 22일(화) 북일본신문에는 오야베 원예고등학교(토야마현 오야베시) 학생들이 미니 카도마츠를 만들어 손에 들고 찍은 사진을 크게 보도했다. 이들은 미니 카도마츠 50개를 만들어 학교에서 판매한다고 한다. 미야코시 히데아키(宮腰秀明) 선생으로부터 지도를 받은 학생 3명은 이번 달 초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원예고등학교 학생들은 목화버섯과, 학교 터 안에서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 “제가 특별히 한 일이 있겠습니까? 일제가 임청각을 훼손하기 위해 철도를 부설한 지 80년 만에 철거하게 된 것은 오로지 임청각에 대한 많은 분의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으로 가능했던 것이지요.” 이는 안동 임청각의 증손인 이항증(79세) 선생이 전화 통화에서 들려준 이야기다. 일제는 독립운동의 산실인 임청각의 정기를 끊고자 1942년 2월 중앙선(청량리-안동) 철로를 부설했다. 안동역으로 가는 직선코스를 놓을 수 있었음에도 일제는 일부러 임청각을 가로지르는 우회 철로를 놓았던 것이다. 민족의 자존심이던 임청각 집 앞에 철로를 놓아 밤낮으로 굉음을 울리게 하던 그 ‘징그러운 괴물 열차’는 지난 16일(수)밤 마지막 열차 운행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 역사적인 순간을 기억하고자 임청각에서는 마지막 열차가 도착한 16일(수) 밤 7시 30분, 안동역에서 작은 행사가 있었고 다음날일 17일(목), 임청각에서 조상에게 고하는 고유제가 열렸다. 코로나19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임청각에 드리운 일제의 흔적을 지우는 행사’에 참여하여 지난한 세월 속에서 묵묵히 버텨온 임청각의 꿋꿋함에 크게 손뼉을 쳐주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광복회(회장 김원웅)는 15일 광복회관 3층 대강당에서 유인태 전 국회사무총장에게 ‘독립운동가 최재형 상’을 주었다. 광복회는 “유 전 총장은 국회사무총장 재임 시, 독립유공자와 후손의 복지에 애씀으로써 민족정기 선양에 기여했으며, 특히 국회 헤리티지 815 카페의 광복회 운영에 이바지한 바가 매우 컸다”라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유 전 총장은 이어 소감을 통해 “해방 후 이 나라의 주역이 되어야할 분들이 완전히 서자처럼 설움을 겪게 된 역사가 참으로 안타까웠다”라면서 “광복회가 정관을 바꾸어 수익사업을 하게 되어 국회 카페운영이 가능하게 된 것은 매우 잘한 일”이며, “국회카페를 더욱 투명하게 운영하면, (기회는) 더욱 확장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광복회는 지난 5월, 생전에 독립유공자의 품위유지를 위해 예산 확보에 애썼던 고 김상현 의원(아들 김영호 의원 대리 수상)에게 ‘독립유공자 최재형 상’을 시상한 바 있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는 일제에 폭탄을 투척해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린「매헌 윤봉길 의사 순국 제88주기 추모식」이 19일(토) 낮 11시, 효창공원(서울 용산구, 삼의사 묘역)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추모식은 (사)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회장 명노승) 주관으로 진행되며,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해 외부인사 초청 없이 기념사업회 관계자와 유족이 참석하는 자체 행사로 진행된다. 추모식 식순은 약전 봉독 및 어록 낭독, 추모사, 헌화ㆍ분향, 추모가, 유족대표 인사 등의 순으로 거행되며, 행사의 진행 과정은 유튜브(https://youtu.be/0NIK8IKIEq4)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윤봉길 의사 주요 공적 (공훈록 자료) ㅇ 윤봉길 의사는 1908년 6월 21일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5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8년 덕산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19년 3ㆍ1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일제의 식민교육을 배척하여 학교를 자퇴하고 사설 서당인 오치서숙에서 한학을 수학하였다. 1928년에는 부흥야학원을 세워 농민의 자녀를 교육시켰고, 이듬해에 월진회를 조직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경자년(庚子年)은 참으로 피곤하기 짝이 없는 한해였다. 쥐띠해가 저물어가는 마당에 쥐가 옮긴 전염병으로 알려진 중세 유럽의 흑사병(페스트)이 떠오른다. 인류 역사상 큰 재앙이었던 흑사병은 1347년부터 1351년 사이, 약 3년 동안 2천만 명에 가까운 희생자를 냈다. 올해 유행한 ‘코로나19’도 인류를 위협하고 있어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다. 이 고통이 끝은 어디인가? 일본도 올 한해 코로나19로 올림픽마저 연기하는 등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 맞이하는 연말이라 예년과 같은 분위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연말 분위기라고 하면 시메카자리(금줄, 注連飾り)를 빼놓을 수 없다. 시메카자리는 연말에 집 대문에 걸어두는 장식으로 짚을 꼬아 만든 줄에 흰 종이를 끼워 만드는데 요즈음은 편의점 따위에서 손쉽게 살 수 있다. 이러한 장식은 농사의 신(稻作信仰)을 받드는 의식에서 유래한 것인데 풍년을 기원하고 나쁜 액운을 멀리하려는 뜻으로 신도(神道)에서 나온 것이라는 설도 있고 한편으로는 일본의 나라신(國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과 관련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시메카자리는 전염병 같은 액운을 막아준다는 믿음이 있는 만큼 새해 신축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내년 2021년은 만주 망명 110돌 되는 해다. 1910년 나라가 일제에게 빼앗기자 경북, 특히 안동지역에서는 유교 값어치를 몸소 실천하며 명망 있는 무수한 학자를 배출했던 많은 명문가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하기 위해 대거 만주 지역으로 망명하였다. 1911년 1월 초 무렵 만주로 갔던 고성이씨 문중의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 집안이 대표적이다. 경북 출신들은 주로 서간도 지역에 정착하여 한인 동포사회의 안정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독립운동을 위한 인력ㆍ물자공급 기지 건설에 힘썼다. 이러한 독립운동의 길에 앞장선 이들로 이상룡, 일송(一松) 김동삼(金東三) 등이 있다. 이러한 만주 망명과 독립운동 기지 건설 등에 고령으로 동참하여 정신적으로 이들을 이끌었던 독립운동가 가운데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내앞마을 출신 의성김씨 백하(白下) 김대락(金大洛, 1845~1914) 선생이 있다. 김대락 선생은 본관은 의성, 자는 중언(中彦), 호는 비서(賁西)로 ‘백하’는 그가 만주로 망명한 이후 ‘백두산 기슭에 자리 잡았다’는 의미로 사용된 별호였다. 그는 명망 있는 가문의 후예로서 전통 유학을 계승한 보수유림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날씨가 추운 요즈음, 구수한 된장찌개가 그 어느 때 보다도 입맛을 돋운다. 된장찌개의 맛은 무엇보다 '맛난 된장'에 있다. 그 된장을 위한 첫 작업이 메주 쑤기다. 예전 같으면 어느집이나 할 것 없이 메주를 쑤어 장 담글 준비를 하는 계절이지만 요즘은 직접 메주를 쑤는 집이 드물다. 특히 도회지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포천에 사는 동생이 메주콩을 사서 메주를 쑤었다고 사진을 보내왔다. 통통한 국산콩을 사서 메주콩을 삶아 으깨고 적당한 크기로 메주를 만들어 짚으로 열십자로 묶어 매다는 작업까지 쉬운 일은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식구들이 손수 담근 메주로 일년 내내 맛있는 된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즐겁게 메주 만들기를 했다고 한다. 내년에 좀 얻어먹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