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레미제라블이 프랑스 소설이라면, 뮤지컬 페치카는 우리의 자랑스런 역사 실화다" 이는 독립운동가 최재형을 그린 뮤지컬 <페치카>를 잘 대변하는 말이다. 어쩌면 이는 프랑스의 레미제라블을 모르는 사람이 없듯이 대한민국의 <페치카>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전문예술단체 "랑코리아"의 창작 뮤지컬 <페치카>는 시베리아에서 대한민국을 지킨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디아스포라 인간승리의 이야기를 담은 창작 뮤지컬이다. 우리가 잘 몰랐던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선생의 일생을 다룬 <페치카>를 만든 예술총감독 주세페 김은, "<페치카>를 무대에 올리는 일에 대해 모두가 무모한 도전이라 했습니다. 패배할 수 밖에 없는 싸움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최재형이 그랬듯이 우리도 앞으로 앞으로만 나아 갈 것입니다." 라는 각오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했다. 열악한 재정 속에서도 오로지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을 알리는 뮤지컬 작업에 혼신을 다 불어 넣어 만든 <페치카>는 3.1운동 100주년, 최재형 선생 서거 100주년을 맞아 무대에 올랐으나 올해는 코로나19로 더 이상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저는 일본의 신사(神社)나 신궁(神宮)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의 하나는 전쟁 중에 강제로 신사참배를 한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군국주의의 맹호를 떨치게 한 곳이 신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후(戰後, 1945년)에 알고 보니 일본 각지에 조선에 없는 고구려, 백제, 신라와 같은 3국 이름이 들어있는 고마신사(高麗神社), 백제신사(百濟神社), 신라신사(新羅神社)가 많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실 일본의 신사(神社)나 신궁(神宮)은 고대 조선의 신라에서 건너온 것입니다.” 이는 재일조선인 작가 김달수 씨의 《고대조선과 일본문화》(일본 강담사, 1987) 26쪽에 나오는 말이다. 김달수 씨를 작가라고 부르기보다는 역사학자라고 불러야 좋을 만큼 그는 “일본 속의 고대 한국문화”를 평생 찾아낸 사람으로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알려진 작가다. 지금 일본의 가나가와현에 있는 가나가와 근대문학관에서는 12월 12일부터 김달수(1920~1997) 작가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 열리고 있다. 가나가와 근대문학관에서 소개하고 있는 김달수 씨의 면모를 보면, “김달수 씨는 조선인으로서의 경험을 살려 작품을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파주시에 있는 혜음령 고개는 내가 살고 있는 고양시와 인접해 있어서 가끔 지나다녔지만 혜음원(惠蔭院)은 들어보지 못하던 곳이다. 코로나19로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집에서 머지않은 용미리 마애불상을 보러 갔다가 우연한 기회에 혜음원터(惠陰院址)를 가게 되었다. 혜음원터는 용미리 마애불상으로부터 차로 10여분 거리에 있었다. 길찾개(내비)는 평소 익숙하던 도로를 지나 약간 낯선 좁은 골목길로 안내했다. 겨우 차 한 대 지나갈만한 산길에 이르러 길찾개가 도착이라는 안내를 해줬다. 차에서 내려 산길 쪽으로 조금 올라가니 드넓은 계단식 집터가 눈에 들어온다. 혜음원터와 마주친 순간 양주의 회암사터가 떠올랐다. 한눈에 봐도 어마어마한 규모의 집터였다. 이곳에 왜 이렇게 어마어마한 집터가 있는 것일까? 혜음원터 안내판의 깨알 같은 글자를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궁금증이 이내 풀렸다. 한마디로 이 집터는 고려시대에 세운 혜음원(惠蔭院)이라는 국립숙박시설이 있던 자리였다. 당시 혜음원은 남경(서울)과 개성을 통행하는 관료 및 백성의 안전과 편의를 위하여 고려 예종 17년(1122)에 건립한 숙소 건물과, 절 그리고 임금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1911년,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망명한 안동지역 출신 인물들 가운데는 단연 일송(一松) 김동삼(金東三, 1878~1937) 선생을 빠트릴 수 없다. 그는 1878년 경북 안동 임하면 소재의 내앞마을[천전]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의성, 호는 일송이며, 본명은 긍식(肯植), 이명으로 종식(宗植)을 쓰기도 했다. 내앞마을은 의성김씨 입향조 청계(靑溪) 김진(金璡)의 후예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약 600여 년 동안 무수한 명망 있는 학자ㆍ관료를 배출한 안동지역 명문이자 유교문화의 산실로 평가된다. 또한, 이곳은 세계 식민지해방운동사에서도 우뚝한 경북 안동인의 독립운동 흔적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마을이기도 하다. 나라가 어려움을 겪던 한말, 이들은 의병항쟁에 뛰어들기도 하고, 특히 보수적인 기조가 강한 이 지역에서 신식학문을 받아들이고 애국계몽운동을 펼쳤던 이른바 “혁신유림”을 많이 배출하기도 했다. 안동지역 첫 근대식 중등교육기관인 협동학교가 1907년 이곳에 설립된 바탕에는 초대교장을 역임한 대종가 종손 김병식(金秉植), 자신의 거처를 교실로 희사한 김대락(金大洛), 협동학교의 설립 주체로서 혁신유림으로 평가되는 김후병(金厚秉), 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광복회(회장 김원웅)는 오늘22일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의 당론채택 요청하는 공문을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정의당, 열린민주당 등 4당에 보냈다. 광복회는 공문을 통해 “해방 이후, 친일에 뿌리를 두고 분단에 기생하는 반민족세력이 남한에 점령군으로 진입한 미군에 다시 빌붙어 동족을 괴롭히는 폭력과 탄압을 자행했다”라면서 “이에 맞선 백성들의 정의로운 항쟁인 ‘제주4·3항쟁’은 독립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는 처절하고 위대한 투쟁이었다”고 주장했다. 광복회는 “‘제주4·3항쟁’의 진실규명, 가해자의 불법과 잔혹성, 희생자의 명예회복과 보상은 지난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고,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데 필수적이다.”라면서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의원과 국민의힘 이명수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개정 법률안』이 이번 회기 내에 법 개정이 될 수 있도록 각 당에서 동 개정 법률안의 통과를 당론으로 채택하여 달라고 요청했다.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고려시대 꿈 같은데 새만 부질없이 울어대고 봄비 젖은 홍릉은 풀빛이 가지런하네 북쪽의 구름 속에 송악산 숲이 있고 절로 푸른 한강물은 서쪽으로 흘러가네 - 화남(華南) 고재형(高在亨: 1846~1916) - 화남 선생이 읊고 있듯이, 강화 흥릉(洪陵, 사적224호.1971년 지정 )을 찾은 날은 고요함 속에 까마귀만 울고 있었다. 겨울의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하던 날, 강화읍 국화리 산 180에 있는 홍릉으로 이르는 길은 상당한 비탈길이었다. 홍릉에 잠들어 있는 분은 고려 23대 고종(1192-1259, 재위 1213-1259)이다. 고종 재임 때에 몽골군과 거란족의 침입이 있어 고종은 재위 39년 되던 해인 1231년, 강화도로 천도하여 이들에 대항하였다. 피난 중에 고종은 이곳에서 16년(1236-1251) 동안 고려대장경(팔만대장경) 판각에 힘쓰며 국난 극복의 힘을 모았다. 한편으로 고종은 몽골군의 침입을 막아내면서 몽골과 강화(講和)를 하기 위해 1259년 태자(원종)을 몽골에 보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해 6월, 67살의 나이로 승하했다. 피난지에서 승하했던 터라 주검을 개경으로 옮기지 못하고 이곳에 장사지냈다. 왕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설을 앞두고 일본에서는 ‘카도마츠(門松)’를 만드느라 분주하다. 일본은 메이지(明治, 1868년) 때부터 양력설을 쇠고 있으며 이제 설날은 일주일 남짓 남았다. 카도마츠란 설날을 맞아 집 대문 앞 또는 출입문 앞에 세우는 소나무 장식물을 말한다. 카도마츠는 길고 두툼한 토막의 대나무를 가운데 세우고 그 둘레에 소나무를 세운다. 소나무는 조상신이 찾아든다는 속설이 있어 소나무 장식을 즐기며 여기 쓰이는 대나무는 천수를 누리며 장수하라는 뜻을 지닌다. 설날 장식품인 카도마츠는 12월 23일부터 새해 1월 7일까지 세워두는데 지역에 따라서는 15일까지 세워두는 곳도 있다. 이렇게 카도마츠를 세워두는 기간을 가리켜 ‘소나무가 세워져 있는 동안’이라는 뜻으로 ‘마츠노우치(松の內)’라고 한다. 22일(화) 북일본신문에는 오야베 원예고등학교(토야마현 오야베시) 학생들이 미니 카도마츠를 만들어 손에 들고 찍은 사진을 크게 보도했다. 이들은 미니 카도마츠 50개를 만들어 학교에서 판매한다고 한다. 미야코시 히데아키(宮腰秀明) 선생으로부터 지도를 받은 학생 3명은 이번 달 초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원예고등학교 학생들은 목화버섯과, 학교 터 안에서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 “제가 특별히 한 일이 있겠습니까? 일제가 임청각을 훼손하기 위해 철도를 부설한 지 80년 만에 철거하게 된 것은 오로지 임청각에 대한 많은 분의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으로 가능했던 것이지요.” 이는 안동 임청각의 증손인 이항증(79세) 선생이 전화 통화에서 들려준 이야기다. 일제는 독립운동의 산실인 임청각의 정기를 끊고자 1942년 2월 중앙선(청량리-안동) 철로를 부설했다. 안동역으로 가는 직선코스를 놓을 수 있었음에도 일제는 일부러 임청각을 가로지르는 우회 철로를 놓았던 것이다. 민족의 자존심이던 임청각 집 앞에 철로를 놓아 밤낮으로 굉음을 울리게 하던 그 ‘징그러운 괴물 열차’는 지난 16일(수)밤 마지막 열차 운행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 역사적인 순간을 기억하고자 임청각에서는 마지막 열차가 도착한 16일(수) 밤 7시 30분, 안동역에서 작은 행사가 있었고 다음날일 17일(목), 임청각에서 조상에게 고하는 고유제가 열렸다. 코로나19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임청각에 드리운 일제의 흔적을 지우는 행사’에 참여하여 지난한 세월 속에서 묵묵히 버텨온 임청각의 꿋꿋함에 크게 손뼉을 쳐주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광복회(회장 김원웅)는 15일 광복회관 3층 대강당에서 유인태 전 국회사무총장에게 ‘독립운동가 최재형 상’을 주었다. 광복회는 “유 전 총장은 국회사무총장 재임 시, 독립유공자와 후손의 복지에 애씀으로써 민족정기 선양에 기여했으며, 특히 국회 헤리티지 815 카페의 광복회 운영에 이바지한 바가 매우 컸다”라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유 전 총장은 이어 소감을 통해 “해방 후 이 나라의 주역이 되어야할 분들이 완전히 서자처럼 설움을 겪게 된 역사가 참으로 안타까웠다”라면서 “광복회가 정관을 바꾸어 수익사업을 하게 되어 국회 카페운영이 가능하게 된 것은 매우 잘한 일”이며, “국회카페를 더욱 투명하게 운영하면, (기회는) 더욱 확장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광복회는 지난 5월, 생전에 독립유공자의 품위유지를 위해 예산 확보에 애썼던 고 김상현 의원(아들 김영호 의원 대리 수상)에게 ‘독립유공자 최재형 상’을 시상한 바 있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는 일제에 폭탄을 투척해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린「매헌 윤봉길 의사 순국 제88주기 추모식」이 19일(토) 낮 11시, 효창공원(서울 용산구, 삼의사 묘역)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추모식은 (사)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회장 명노승) 주관으로 진행되며,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해 외부인사 초청 없이 기념사업회 관계자와 유족이 참석하는 자체 행사로 진행된다. 추모식 식순은 약전 봉독 및 어록 낭독, 추모사, 헌화ㆍ분향, 추모가, 유족대표 인사 등의 순으로 거행되며, 행사의 진행 과정은 유튜브(https://youtu.be/0NIK8IKIEq4)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윤봉길 의사 주요 공적 (공훈록 자료) ㅇ 윤봉길 의사는 1908년 6월 21일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5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8년 덕산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19년 3ㆍ1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일제의 식민교육을 배척하여 학교를 자퇴하고 사설 서당인 오치서숙에서 한학을 수학하였다. 1928년에는 부흥야학원을 세워 농민의 자녀를 교육시켰고, 이듬해에 월진회를 조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