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도쿄 인근 사이타마현 치치부시(埼玉県 秩父市)에서는 12월 들어 마츠리를 여는데 그 이름은 ‘치치부요마츠리(秩父夜祭)’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치치부밤축제’라고나 할까? 역시 마츠리는 밤이 낮보다 화려하다. 이 지역에서 마츠리때 쓰는 가마, 창, 수레 등은 2016년 12월 1일, 유네스코무형문화유산에 등록된 바 있다. 치치부시의 12월의 명물인 ‘치치부요마츠리(秩父夜祭)’는 치치부신사(秩父神社)가 주관하는 축제로 교토의 기온마츠리(京都祇園祭), 히다의 타카야마마츠리(飛騨高山祭)와 함께 일본의 3대 마츠리 가운데 하나다. ‘치치부요마츠리(秩父夜祭)’는 에도시대 관문연간(寛文年間, 1661~1672)에도 있었던 것으로 3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마츠리다. 에도시대에는 마츠리와 함께 치치부에서 유명한 비단 시장이 서 치치부의 경제를 크게 윤택하게 했다. 당시에 비단 시장이 섰기에 이 마츠리를 ‘누에 축제’라고도 한다. 지금은 비단 시장은 서지 않지만 치치부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 축제는 1년을 총결산하는 자리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축제가 처음부터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다. 회원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점차 지역민들과 밀착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눈을 뜨니 어젯밤 품고 잠들었던 카이로(懷爐, 품에 넣어 가슴ㆍ배 등을 따뜻하게 하는 난로)가 배 위에서 차갑게 식어 있었다. 유리창 넘어 하늘은 잿빛이고 창 넘어 내린 눈은 그대로였다. 목욕탕은 얼음이 꽁꽁 언 채 반질거렸다. 수도는 얼어붙어서 꼭지가 움직여지질 않는다. 방안이 너무 추워 발끝이 아플 지경이다. 글 좀 쓰려고 책상에 앉아 있으니 두 살배기 아들 녀석은 추위에 계속 칭얼대고 있다.” 이는 나츠메 소세키(夏目漱石)의 화로(火鉢, 히바치) 라는 작품 일부다. 원고지 6장짜리의 짧은 소설인 ‘화로’는 주인공이 나츠메 소세키를 연상시키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메이지유신 1년 전인 1867년에 태어나 다이쇼(大正,1912~1926)기를 살다간 나츠메 소세키 때만 해도 방에 앉아서 발끝이 얼어버려 통증을 느낄 정도로 추웠다. 그런 서재에서 그는 글을 썼다. ‘화로’는 나츠메 소세키 당시 일본 가정의 겨울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집안의 지독한 추위가 ‘화로’를 탄생시킨 셈이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마음》, 《도련님》 등으로 널리 알려진 나츠메 소세키는 메이지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이자 일본 근대문학의 개척자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외국인 가운데 한국을 사랑하거나 한국인 또는 한글을 사랑하는 사람은 있어도 이 셋을 몽땅 사랑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여기 그런 사람이 있다. 한국ㆍ한국인ㆍ한글을 사랑한 서예가 다나카 유운(田中佑雲, 1957-2018) 씨가 바로 그다. 1957년생이면 지난해(2018년) 만 60살이다. 아직은 젊은 나이에 서예가 다나카 씨는 ‘비가 그치듯 조용히’ 이승을 하직했다. “사회인이 되고 나서 16년의 세월이 흘러 올해로 서른여덟 살이 되었다. 이십 대에 무언가에 홀린 듯이 이 두 사람(미야자와 겐지와 시몬 베유)의 뒤를 쫓아 살았다. 놀랍게도 두 사람 모두 지금의 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동서(東西)에 출현한 두 사람의 극한상이 서로 포개어지면서, 자신에게 남겨진 인생의 시간 앞에 멈칫하게 된다.(가운데 줄임) 어찌할 바 몰라 혼돈스러웠던 내가 방황하면서 괴로워할 때, 나 자신을 내부로부터 지탱해 준 두 사람의 공통점은 함께하는 고통(共苦)의 지평(地平)이었다. 그리고 나의 이상적인 죽음의 방식은 야기주키치(八木重吉)가 속삭였던 다음의 한 행으로 요약된다. ‘비가 그치듯이 조용히 죽어 가자. ” 이는 1985년에 쓴 <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장남의 시치고상(七五三)은 집 근처 신사에서 치렀으나 동생은 조금 색다른 곳에서 치루고 싶었습니다. 장남 때는 정보가 부족하여 동네 신사에 갔으나 동생 때는 유치원 어머니들로부터 여러 정보를 들어 조금 규모가 큰 신사로 정했습니다. 유명한 그 신사는 무엇이든지 줄을 서서 기다려야했으며 기도 시간에도 단체 기도만 있을 뿐 개인 기도는 해주지 않았습니다. 물론 동네 신사에서는 시치고상(七五三)의 주인공에게 여러 가지 문구들도 선물해 주던데 큰 신사에는 그런 것도 없었습니다. 막내의 시치고상이 돌아올 때는 유명한 신사보다는 장남이 치렀던 동네 신사에 갈 생각입니다.” 이는 지난 11월 15일, 시치고상(七五三) 행사를 치른 어머니의 이야기다. 일곱 살, 다섯 살, 세 살짜리 어린아이가 있는 집안에서는 해마다 11월에 들어서면 어린이를 위한 ‘시치고상(七五三)’ 잔치를 위해 바쁘다. 이날 어린아이에게 입힐 기모노를 파는 가게, 머리 손질을 해주는 미용실, 가족사진을 찍어주는 사진관 등도 덩달아 바빠지는 때다. 예전에는 11월 15일이 거의 정해진 날이었으나 핵가족에, 맞벌이 부부가 많은 요즈음은 ‘10월부터 11월 사이에 형편이 좋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슬프다. 시대의 선각자요, 여성의 등불인 그는 삼일운동 때 피 흘려 청춘을 불살랐고 청운의 뜻을 품고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품은 이상 이루지 못한 채 애달픈 생애 딛고 여기 길이 자노니 지나는 손이여. 비 앞에 발 멈춰 전사의 고혼(孤魂)에 명복을 빌지어다. 여기 뜻있는 이 모여 정성들여 하나의 비를 세우노니 구천에 사무친 외로운 영이여 고이 굽어 살피소서.” 이는 제주시 황사평 천주교 공원묘지에 세워져 있는 강평국(姜平國, 1900 – 1933) 지사의 추도비에 새겨져있는 글이다. 지난 11월 8일(금) 낮 1시, 강평국 지사의 추도비를 찾아간 제주의 하늘은 더없이 맑고 푸르렀다. 추도비가 있는 곳은 공원묘지 입구에서 정면으로 나있는 조붓한 길을 걸어가면 나오는데 중간에 성모상이 서 있고 그 뒤를 조금 더 걸어가면 ‘황사평 순교자 묘역’이라는 커다란 봉분이 나온다. 바로 그 봉분 왼쪽 편에 강평국 지사의 추도비가 작고 아담한 모습으로 서 있다. 추도비에는 ‘아가다 강평국 선생 추도비’라는 글귀가 빗돌에 새겨져 있다. 아가다는 강평국 선생의 세례명이다. 강평국 지사는 1900년도 제주읍 일도리에서 아버지 강도훈과 어머니 홍소사의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는 오늘 17일 ‘제80회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징역 5년을 받은 김희식(金熙植) 선생 등 136명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포상되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31명(애국장 7, 애족장 24), 건국포장 9명, 대통령표창 96명으로, 포상자 중 생존 애국지사는 한 분(지익표, 95세)이며, 여성이 28명이다. 훈․포장과 대통령표창은 제80회 순국선열의 날 중앙기념식장과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기념식장에서 본인과 유족에게 수여된다. 이로써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분은 1949년 포상이 시작된 이래 건국훈장 11,045명, 건국포장 1,317명, 대통령표창 3,463명 등 총 15,825명(여성 472명)에 이른다. 여성가운데 이번에 서훈을 받는 최영보(崔永保) 선생은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다. 선생은 1919년 11월 평남 평양에서 대한애국부인회에 참여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후원할 목적으로 독립운동자금 모집과 독립운동 지원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또한 송계월(宋桂月) 선생은 1912년 함남 북청 출신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내일(17일), 제80회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한국방송공사에서는 아주 뜻깊은 행사를 마련했다. 'KBS시청자역사기행'이 그것이다. 대체적으로 순국선열의 날은 국가 주도의 추도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내일 행사는 추도식이 열리는 순국선열 현충사 제례 참석은 물론 명성황후가 참살당한 경복궁 안 건청궁 곤녕합을 찾아 가는 등 역사의 현장을 시청자들과 함께 순국선열들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매우 의미있는 행사다. 명성황후가 참살당한 건청궁은 1873년(고종 10) 경복궁 북쪽에 세운 건물로 임금이 머무는 장안당 동북쪽에 있었던 명성황후의 처소였다. 이곳에서 국모 명성황후는 일제에 의해 무참히 참살당하는 비운을 겪어야했다. 곤녕합 이후 일정은 서대문형무소의 여옥사와 고문실, 독립투사 사형장 등을 둘러본 뒤 제80회 순국선열의 날 추도식에 참례할 예정이다. 이어서 열리는 KBS기념음악회도 관람한다. 아울러 독립운동의 산실인 정신여자고등학교(교장 최성이)를 찾아가 김마리아 기념관 등을 둘러보면서 김순례, 차경신 등 이 학교 출신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활약상을 살펴볼 예정이다. 'KBS시청자역사기행'은 KBS시청자사업부(이정호 부장)와 (사)대한민국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 아래 보훈처)는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하신 순국선열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해 ‘제80회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을 오는 17일(일) 11시, 덕수궁 중명전(앞뜰)에서 연다고 밝혔다. * 순국선열의 날은 1939년11월21일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에서 유명ㆍ무명 순국선열을 한날에 공동으로 기리기 위하여 기념일을 정하기로 하고, 을사늑약이 있던 1905년 11월 17일을 전후하여 나라를 구하기 위해 수많은 분들이 순국하였고, 국권이 실질적으로 침탈당한 을사늑약 체결일을 ‘순국선열공동기념일’로 정한데서 유래한다. 기념식은 정부주요인사, 각계대표, 독립유공자 및 유족, 시민 등 6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례, 기념공연(1막), 약사보고, 독립유공자 포상, 기념사, 기념공연(2막), 노래제창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특히, 행사 장소인 ‘덕수궁 중명전’은 114년 전 강압적으로 을사늑약이 늑결된 아픈 역사의 현장으로 ‘순국선열의 날’ 중앙행사를 여는 것은 올해가 처음이며, 나라를 먼저 생각한 순국선열들을 기리고, 과거의 역사를 거울삼아 다시는 이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난 9일(토), 제주 내도동 앞바다인 ‘알작지 해안(제주도 향토유형유산 제5호)’을 찾았다. 알작지란 아기자기하고 동글동글한 형태의 몽돌이 모래대신 해변에 깔려 있는 것을 말하며 파도가 밀려왔다가 물이 빠질 때 ‘자자자자작...’하는 소리가 일품이다. 마침 날씨가 좋아 바다는 푸르렀고 ‘알작지 해안’의 몽돌 소리는 아름다운 오케스트라의 조화인 듯 가슴마저 시원하게 해주었다. 이 ‘알작지 해안’ 위 도로 곁에는 제주특별자치도 향토유형유산 제10호로 등록되어 있는 거욱대가 있다. 거욱대는 방사탑(防邪塔)이라고도 한다. 제주시에서 세워둔 설명판을 보면, “방사탑(防邪塔)은 마을의 어느 한 방위에 불길한 징조가 보이거나 지형이 터져서 허할 때 그것을 막기 위해 세웠던 돌탑을 이른다. 내도동 방사탑은 바다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부정(不淨)을 막기 위해 해안가에 세워 놓은 것으로 이 탑의 높이는 185㎝, 하단 지름은 396㎝다. 꼭대기에는 길쭉한 현무암(높이 82.6㎝, 가로 35㎝)을 세워 놓았다. 내도동에는 6기의 방사탑이 있었으나 현재 원형을 볼 수 있는 것은 이 탑이 유일하다.”고 써 놓았다. 원래 이 거욱대는 내도동 514-1번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내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력으로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입니다(뒷줄임) - 김구 ‘저의 소원’ - 나무 하나가 흔들리면 나무 둘도 흔들린다. - 강은교 ‘숲’- 어머니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윤동주 ‘별 헤는 밤- 이것은 일본의 서예가 다나카 유운(田中佑雲, 1957-2018) 씨가 한글로 쓴 서예작품 가운데 일부다. 그는 말했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한글공부를 시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운명이라고 해야 좋을 이 한편의 시와 만남은 이후 나의 서예작업을 더욱더 풍요로운 곳으로 이끌었습니다.” 다나카 씨는 48살 때부터 한글(조선어)공부를 시작했다. 한글을 익힌 뒤부터 그의 서예작품은 주로 현대 일본에 드리워진 사회문제를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 일본의 민족차별문제나 공해문제 더 나아가 한일관계의 역사적인 문제를 포함하여 윤동주, 송몽규, 안중근, 김구, 한용운 등의 어록이나 시를 서예작품으로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