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어제(9일) 한글날아침 10시 30분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앞 공터에서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이 열렸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경성방직이 있던 곳으로 어린 소녀들이 여공으로 노동력을 착취당하던 곳이라 더욱 뜻깊은자리다. 제막식은 화창한 가을 날씨 속에 영등포 평화의 소녀상 건립시민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 최문원 씨의 사회로 두 시간 동안 이어졌다. 영등포 평화의 소녀상은 1,762명의 시민과 94개의 시민사회단체가 하나되어 이뤄낸 결실이었다. 특히 영등포 평화의 소녀상은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18번째로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다른 소녀상보다 더욱 값진 것은서울시 자치구 가운데 영등포구 의회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념사업 지원 조례를 처음 가결시켰다는 점이다. 어제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는 시민추진위원회 관계자들, 채현일 영등포구청장, 윤준용 영등포구의회 의장, 신경민ㆍ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과 함께 동상 제막에 함께 한 수많은 시민, 학생들이 모여 축하했다. 제막식은 먼저 영등포평화의소녀상 건립 시민추진위원회 공동대표단이 시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들은 영등포 평화의 소녀상 건립운동을 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어제(8일) 저녁7시, 서울 동자아트홀에서 ‘유라시안 오페라 산쇼다유’ 공연이 열렸다. 이날 공연한 <산쇼다유>는 일본의 소설가 모리 오가이(森鷗外, 1862~1922) 원작을 감독이자 작곡가인 카와사키 준이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원작은 헤이안시대(794~1185)를 배경으로 아버지를 찾아나선 한 가족이 인신매매로 어머니와 두 남매가 생이별을 하게되어 수전노인 ‘산쇼다유’ 집안으로 팔려가 겪는 이야기인데 이는 1954년 미조구치 겐지가 영화화하여 폭발적인 인기를 끈적이 있다. 어제 공연한 ‘유라시안 오페라 산쇼다유’는 원작이나 영화와는 또 다른 감흥을 주어서인지 객석은 숨소리하나 없이 조용했다. 막이 오르자 화면 가득히 한 여인이 춤을 춘다. 온 몸을 비틀며 이어지는 춤사위는 어린 남매와 헤어져 사도섬으로 팔려가 눈먼 장님이 된 어머니 같기도 하고 수전노 집안에서 수년간 노예살이를 하며 탈출을 꿈꾸다 결국은 물에 뻐져 죽는 여주인공 안주 같기도 하다. ‘유라시안 오페라 산쇼다유’ 는 원작이 일본 소설인 만큼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무대 중앙의 대형 화면에 이해하기 쉬운 설명이 있어 보기 편했다. 배우들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한 남자가 있다. 남자의 이름은 칸다타. 이 남자가 불지옥에서 허둥대고 있을 때 지상에서 부처님은 이 남자를 응시하고 있다. 부처님이 연꽃 향이 물씬 풍기는 연못 밑을 우연히 내려다보니 발아래 저 멀리 지옥이 훤히 보였다. 지옥은 아비규환 이었다. 서로 물어 할퀴고 뜯고 난리도 아닌 가운데 어디서 낯이 익은 남자 칸다타를 발견했다. 가만있자 이 남자를 어디서 보았더라. 그렇지 이 남자가 지상에서 거미 한 마리를 밟아 죽일 뻔한 상황에서 이를 살려준 것을 부처님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 불쌍한 지옥의 칸다타를 위해 부처님은 은실로 된 거미줄 같이 가는 줄을 지옥으로 내려 보냈다. 칸다타는 기쁜 나머지 이 줄을 잡고 지상으로 오를 꿈에 젖어 잠시 행복했다. 있는 힘을 다해 줄을 움켜쥐다가 힘이 빠져 잠시 발아래를 보니 개미떼처럼 몰려드는 죄인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들은 한결같이 칸다타가 움켜쥔 거미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순간 칸다타는 기겁을 했다. 이 많은 인간들이 거미줄에 매달리면 줄은 곧 끊어지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영영 지옥에서 허덕일 것이라고 생각하니 아찔하였다. 그리하여 몰려드는 죄인들을 향해 고래고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안중근(1879.9.2~1910.3.26) 의사’를 ‘2019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안중근 의사는 1879년 9월 2일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1905년 을사늑약의 소식을 듣고 중국 상해로 건너가 산동(山東) 지방의 한인들을 모아 구국운동을 펼치는 한편 일제의 침략 실상을 널리 알리는 외교 방책으로 국권회복을 도모하고자 하였으나 1906년 아버지의 죽음으로 귀국하였다. 이후 평안남도 진남포에 삼흥(三興)학교와 돈의(敦義)학교를 설립하여 교육계몽운동을 펼쳤고, 삼합의(三合義)라는 광산회사를 평양에서 설립하여 산업 진흥운동에도 매진하였다. 의사는 나라밖에서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독립전쟁전략을 구사하기 위해 1907년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하였으며 1908년 연추(煙秋)에서 동의회라는 의병부대를 조직하고 국내진공작전을 펼쳤다. 1909년에는 동지 11명과 함께 동의단지회를 조직, 단지를 하고 구국에 헌신할 것을 맹세하였다. 그러던 중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만주를 시찰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 침략의 원흉이며 동양평화의 파괴자인 이토를 처단할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도쿄 한 복판에 있는 전몰자 묘지인 ‘국립치도리가후치 묘원(國立千鳥ケ淵戦没者墓苑)’은 1959년에 세웠으며 ‘묘지’가 아닌 ‘묘원’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곳의 총면적은 16.063㎡(4,867평)으로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때에 나라밖에서 죽은 일본의 군인, 군속, 민간인 가운데 신원이 불명하여 인수되지 않은 유골을 안치하고 있다. (신원이 확인된 사람들은 가족에게 인계하여 가족 무덤에 안치) 유골을 안치한 납골당인 육각당(六角堂)에는 35만 8,000주(柱, 일본에서 신을 세는 단위) 이상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으나 전범급(戰犯級) 인물은 안치되어 있지 않다. 이곳에서는 일본 후생성이 해마다 전몰자를 위해 배례식(拝礼式)을 거행하며 황족(皇族)과 내각총리대신이 참석한다. 이 묘지는 1950년 필리핀에서 숨진 전몰자 4,822주가 송환되었을 때 이들의 유골을 안치할 곳을 찾지 못해 일본 후생성이 1952년 5월 1일 ‘전일본무명전몰자합장묘건설위원회(全日本無名戦没者合葬墓建設会)를 발족하여 만든 것이다. 처음에 터를 선정할 때에 묘지 터로 여러 곳이 후보로 올랐으며 그 가운데는 야스쿠니 신사 경내에 두어야 한다는 소리도 있었다.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어제(27)일 낮 2시부터 전남 여수시 여수문화홀에서 여수시와 여수지역독립운동가유족회(회장 오룡) 주최로 “의혈지사 윤형숙을 기억한다” 학술세미나가 열렸다. 3.1만세운동 100돌 기념으로 열린 이 날 학술세미나는 추모제를 겸한 행사였다. 남도의 유관순이자 호남의 유관순이라 불리는 윤형숙(1900.0.3~1950.9.28, 다른 이름 윤혈녀) 열사는 광주 수피아여학교(현, 수피아여자중고등학교) 재학 중 이 학교 교사 박애순 선생의 지도 아래 급우 60여명과 함께 광주교(光州橋)밑 천변에서 이 지역 주민 수백 명의 군중과 함께 만세시위에 앞장섰다. 시위 도중 일본 헌병대에 의해 왼팔이 잘리고오른쪽 눈의 부상에도 불굴의 의지로 항일정신을 드높였던 윤형숙 열사는평생을 실명 상태로 지내면서도 생애(50살로 순국) 마지막까지 독립정신과 문맹퇴치 등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어제 열린 학술세미나에 앞서 식전행사에서는 고세영(광주수피아여고) 교장과 김유정(광주수피아여고) 총동창회장의 ‘윤형숙 열사’를 기리는 시낭송과 ‘의혈지사 윤형숙의 생애’를 다룬 동영상 상영 등이 있었다. 이어 김성천(여수제일교회 목사), 오준(여수지역독립운동가유족회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나가츠 에츠코(永津悦子, 70살) 씨는 자신이 쓴 《식민지하의 생활의 기억, 농가에 태어나 자란 최명란 씨의 반생 (植民地下の暮らしの記憶 ‘農家に生まれ育った崔命蘭さんの半生’)》(三一書房. 2019.8)이란 책을 얼마전 기자에게 보내왔다. 이 책은 나가츠 에츠코 씨가 재일동포인 최명란(92살) 씨와의 대담을 통해 일제침략기 조선여성의 농촌의 삶을 엿볼 수 있게 한 책이다. 나가츠 씨가 이 책의 막바지 교정을 볼 무렵인 지난 5월 20일, 기자는 일본 가마쿠라(鎌倉)에서 나가츠 씨를 만났다. 나가츠 씨는 일본 고려박물관(1990년 9월, 조선침략을 반성하는 뜻에서 양심있는 시민들이 만든 단체) 조선여성사연구회 회원으로 2014년부터 재일동포인 최명란 씨를 만나 5년 동안 대담에 성공, 이번에 이 책을 펴내게 되었다. 가마쿠라의 한 찻집에서 나가츠 씨는 교정본을 내게 내밀었다. 그리고는 이 책을 쓴 계기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2014년 고려박물관 주최로 ‘식민지 시절 조선의 농촌 여성’ 전시회가 있었는데 그때 만난 최명란 씨를 수년 동안 대담하는 과정에서 얻은 자료가 있어 책으로 만들고 싶었다. 어느 때는 아침 10시에 만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빨강, 노랑, 연두빛, 초롱이 내걸린 구 남원역 플랫폼에서 어제(25일) 낮 1시부터 저녁 8시 30분까지 뜻깊은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제16회 만인의사 추모 및 만인문화제(아래 '추모문화제')’였다. 구 남원역 플랫폼에서 추모문화제를 연 까닭은 이곳이 422년 전 정유재란 당시 치열한 혈전이 오고간 남원성 전투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정유재란이 일어났던 1597년 (음력) 8월 14일부터 16일까지 3일 동안왜군들에 맞서 성민(城民), 의병, 남원부사 임현, 전라병사 이복남 등 1만여 명이 왜군대장 우키다 히데이 등 왜군 56,740여명과 혈전분투하다 1만여 명이 순절하신 곳입니다. 이를 추모하기 위해 남원시민들은 해마다 제향(祭享)을 지내며(올해 제향일은 26일) 하루 전날 추모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이는 하진상(남원사회봉사단체협의회 부회장) 씨의 말이다. 기자는 이날 추모제에 앞서 남원의 역사와 문화에 해박한 하진상 씨를 만나 정유재란 당시 구 남원역의 쓰라린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가 남원성 북문터입니다. 지금 발굴하고 있습니다만 여기서 422년 전 수많은 병사와 의병, 민간인들의 희생이 있었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야스쿠니 경내 안에 자리하고 있는 유슈칸(遊就館)은 태평양전쟁을 비롯한 침략시기에 사용했던 전리품, 전몰자의 유품, 대포 등의 무기를 전시하고 있는 전쟁박물관이다. 1945년 종전(終戰)과 함께 폐지되었다가 1986년 재개관한 뒤 2002년에 새로 단장한 유슈칸은 전쟁을 모르는 세대에게 황국사관을 심어주는 중요한 시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유슈칸은 1880년 이전에는 ‘게액및무기진열장(揭額幷武器陳列欌)’으로 불렸다. ‘게액(揭額)’이란 액자를 건다는 뜻으로 전사자들과 관련된 사진 등의 액자를 봉납 받아 전시함으로써 신령을 위로하고 살아생전의 업적을 기리고자 하는 뜻이며 이와 더불어 무기진열을 위해 만든 것이 유슈칸이다. 명치정부는 막부정권을 타도하는 과정에서 획득한 무기를 비롯하여 각 번(藩)이 소장했던 무기를 확보하여 유슈칸에 진열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청나라 군함 조강호 부속품과 청나라 국기, 청룡도, 삼우창, 러시아군함 바이야크의 군함기 등 전리품을 전시하여 일본의 위력을 과시하기에 이른다. 1910년 4월 1일, 유슈칸은 칙령으로 무기역사박물관으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당시 공포된 관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3·1운동 만세시위 중 일본 헌병이 휘두른 군도에 왼팔이 잘리는 극한상황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윤형숙(1900~1950) 열사의 투쟁과 삶을 체계적으로 규명하는 학술대회가 열린다. 여수지역 출신 독립운동가를 집중 조명하는 학술세미나가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의혈지사 윤형숙을 기억한다’가 주제인 이번 행사는 9월 27일 오후 2시 여수시청 여수문화홀에서 여수시 주최, 여수지역독립운동가유족회 주관으로 개최된다. 학술세미나에 이어 오후 5시 여수시 화양면 창무리 윤형숙 열사 묘소에서 추모제가 이어진다. 윤 열사 순국 69주기에열리는 이날 행사는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후원한다. 학술세미나는 2개 주제발표로 구성돼 있다. 제1 주제발표에서는 한규무 광주대 교수가 '항일애국열사 윤형숙 관련자료 검토 및 생애와 활동 재조명'을 주제로 한 논문을 발표하고 김인덕 청암대 교수, 김병호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이 토론에 나선다. 이어 제2 주제발표에서는 김호욱 광신대 교수가 '일제강점기 호남 기독교 선교와 윤형숙의 항일운동'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고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윤치홍 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