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스리랑카는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가 최초로 외국으로 전파한 나라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부처님은 생전에도 3번에 걸쳐 스리랑카에 직접 왔었다고 하지만, 불교가 그때 부터 전해진 것은 아니라고 한다. 불교가 스리랑카에 전해진 것은 기원전 300년 즈음, 인도대륙을전쟁으로통일한 마우리아 왕조의 전륜성왕 제3대 임금인 아쇼카왕 때다. 아쇼카왕은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구현하고, 모든 사람이 평화롭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인도 전역에 부처님의 사리를 분양하여 불탑을 세우고,자신의 아들이었던 왕자를 출가시켜 스리랑카로 보내 불교를 전파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전해진 불교는 스리랑카 전체를불국토로 만들었고, 스리랑카 이곳 저곳에 거대한 불탑을 세우고 절을 지었다. 스리랑카 절 중심에는 거대한 불탑이 있는데, 이곳 불탑은 임금의 명령에 따라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탑은 탑 아래 원형의 지름이 50m 이상으로 매우 크다. 그 넓은면적에 둥근 지붕의 높이는 30m이상이고, 상륜부 또한 둥근지붕 끝에서30m이상으로 높이 솟아나 탑의전체 높이는 60m이상이나 되는큰 탑이다. 탑의 재료는 진흙을 구워서 만든 붉은 적벽돌로, 이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불국토를 꿈꾸었던 신라의 도읍 경주에는 왕궁의 남쪽에 있다하여 남산이라 이름 붙은 큰 산이 있었다. 한 때 남산에는 수백개의 절이 있고, 그곳마다 탑이 세워지고, 바위에는 당시 사람들이 상상하던 부처와 보살의 모습을 그리고, 널다란 바위가 있는 곳은 바위면을 다듬어 그 위에 석탑을 수없이 만들어 세웠다. 그래서 경주남산을 불국토라고 하였다. 그 중에 오늘은 경주남산 탑곡에 있는 커다란 사각바위를 찾았다. 탑곡에는전체적으로 사각형의 커다란 자연석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면에는 빼곡하게 불상과 보살 그리고 협시신장과 동물 식물들의 그림이 있고, 당시 사람들이 성스럽게 여기던 불탑의 모양도 새겨져 있다. 현재까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이 탑곡의 사모바위면에는 34점의 그림(불상, 보살, 신장,탑 동물, 식물등)이 있는데 특히 현재는 전하지 않는 신라가 자랑하던 구층목탑의 형상이 그려져 있어, 신라 황룡사구층목탑의 형상을 추정하는 중요한 자료로 여기고 있다. 옛 신라 고려시대에는 많은 절에황룡사의 구층목탑 등목탑이 있었고, 그밖에 칠층목탑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기도 하다. 일본에 많이 있는 오층탑도 있었을 것이다. 한국에 오층목탑은
[우리문화신문=최우성기자] 대통령의 비선실세라는 측근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촉발된 대통령의 탄핵이 마무리 되었다. 처음 한 언론매체가 최순실의 테블릿피씨를 입수하여 그 컴퓨터에 들어있었던 대통령의 연설문 등 국가기밀 유출과 대통령을 통한 사사로운 이익추구 등국정농단들이 만천하에 밝혀지면서추측과 그 추측이 부풀린 의심만이 떠돌던 것들이 그 실체를 명확히 드러냈다. 의심은 현실이 되었고, 재벌을 통한 사익추구의 각종 재단설립과, 재벌들에 주어진 특혜에 국민은 분노하였다. 뿐만 아니다. 박근혜 전대통령의 국정통치는 국민을 위한 통치가 아니라 국민을 종부리듯 부리기만 할 뿐이었고, 아픈 국민의 마음을 달래고 어루만지지 않고 오히려 불을 질렀다. 3년이 다 되어가는 세월호침몰사건의 진상은 밝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덮으려만 하였고, 이것은 세월호에 희생된 가족은 물론 보통 서민들의 마음에는 도저히 지울 수 없는 지도자에 대한 반감으로 자리잡았다. 또 재벌들의 돈을 모아 설립한 재단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비선실세 최순실과 그의딸만을 위하여 각종 특혜와 비리를 저질렀고, 재단의 구성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겨우수 백명이 서울 광화문광장에모여서평화로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강릉 대관령 옛길을 오르다 보면 유서깊은 대관령 성황사가 있다. 그 유래가 오래되고 특이한 것은 물론 세계유산으로 저정된 강릉의 단오제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여 근래더욱 유명해졌는데, 이곳에는 신라 후기 불교 선종의 고승으로 구산선문의 하나인 굴산사파를 개창했던 범일국사를 모시고 있어 더욱 특이하다 범일국사는 신라 후기 헌덕왕 2년(810) 강릉에서 태어나 진성여왕 3년 (559년) 굴산사에서 입적한 고승이다. 범일국사는 15살에 출가하여 경주에서 구족계를 받고 831년 당으로 유학을 떠나 당시 선풍이유행하던 당나라에서 보철선사의 선법을 계승하고 문성왕 9년(847년) 귀국하여 자신의 고향인 강릉지방에 대찰 굴산사를 창건하였다. 그는 굴산사와 함께 삼척의 삼화사, 양양의 낙산사, 강릉의 신복사 등을 창건 또는 중창하였고 당시 신라왕실이 신봉하던 교종과 대립하는 위치에서 지방호족들의 정신적구심점이 되어 선종을 키워나갔다. 당시 큰 절이었던 굴산사는 국내 가장 큰 당간지주만이 서있을뿐,지금은 전각하나 없는 빈터로 논밭으로 변해 버렸으며, 그 큰 굴산사지 당간지주를 보면서 굴산사의 규모를 짐작할 뿐이다. 그런데 불교의 고승이 대관령의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 보물 136호 신라시대 경주 남산의 동쪽에 있던 보리사의 석불좌상이다. 전체 높이는 4.36m 이고, 석불좌상의 높이는 2.44m로 당당한 규모의 석불이다. 연꽃으로 장식된 연화대좌에 왼손은 선정인((禪定印,양손을 펴서 위아래로 포개고, 엄지손가락 끝을 서로 맞댄 손 모양), 오른손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부처가 악마를 항복시키는 손 모양)을 한 석가모니불로 불상의 상호(얼굴을 높여부르는 말)는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으며, 광배에는 연꽃줄기가 늘어져 있고, 사이사이에 연꽃이 피어있으며 작은 불상들도 새겨져 있다. 아침 햇살이 비칠 때 잠시 석불의 상호가 잘 보이는데, 마침 시간을 잘 맞추어 상호에 비치는 미소까지 볼수 있어 무척 행운이었다. 광배의 뒷면에는 약사여래불이 선각으로 새겨져 있으나, 햇살이 비치지 않아 잘 보이지 않았다. 모신 세월 속에서도 온전한 모습으로 노천에 그대로 있으면서도 손상되지 않아 무척이나 다행스럽다. 경주시 배반동에 현재도리사가 관리하고 있으며 도리사 바로 옆에 야외불로 있다.
[우리문화신문=최우성기자] 석남사(石南寺)는 울산의 외곽가지산(迦智山)에 깃들어있는 절이다. 석남사의 창건은 신라 후기헌덕왕(신라제41대憲德王 서기809-826) 때 중국의 선종을 받아들여 신라땅에 최초로 선풍을 일으킨 도의국사가 신라땅에 그 선풍을 일으킬 명당을 찾던 중 이곳 가지산에서 터를 찾아 세운 신라 구산선문 최초 가람이다. 도의국사는 당시 선불교를 꽃피운 당나라에 들어가 지장스님의 제자가 되어 그의 불법을 물려받고 "도의"라는 이름을 받았다. 이후 도의는 헌덕왕 때인821년 신라로 돌아와신라에 중국에서 크게 유행한 선종을 받아들여 한국 선종의 시조가 되었다. 당시 신라는 화엄종을 비롯한 부처의 가르침믈 책으로 기록한 것을 최괴의 교재로 공부하는 교종이 번성하고 있었다. 따라서 참선을 통하여 부처님처럼 깨달음을 얻는다는 선종에 대하여는 낮선 상태였기에 선종에 대한 불교계의 이해가 깊어질 때를 기다리며잠시 강원도 양양의 진전사에 들어가 참선 수도하며 있다가, 3년 뒤 이곳 울산으로 내려와구산선문 중 최초의 가람인 가지산파를 창립하고석남사를 창건하여 신라 땅에 선종사찰을 개창하고 제자들을 양성하여 선종이 한국땅에 뿌리를 내리게하였다 석남사에는 도의국사의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동해 거친 파도가 몰아치면 거친 화산암에 부딛혀부서지는 파도가 포말이 되어 바다의 역동성을 느낄 수 있는 곳이 경주 감포앞바다이다. 하지만 바람이 없어 역동적인 바다의 모습을 볼 수 없어 또 아쉬운 날이었다. 감포에 사는 갈매기를 불러모아먹이를 찾아 날아드는 갈매기떼 모습을 멋지게 담고자 하였으나, 이 또한 쉽지가 않았다. 이른 아침 아름다운 해와 파도와 갈매기를 상상하며 나섰지만, 결과는잠만 설치고 일어나 별 성과도 없이 촬영하고 보니, 아직 차가운 감포에서바람을 맞은 하루 였다.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석가모니 부처님이 인도에서 도를 이루어 생겨난 불교는 인도에서 힌두교와 경쟁하며 성장하고번성하며 세를 얻어갔다. 그런불교는 인도를 벗어나 외국으로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그 최초의 전파지는 다름 아닌 인도의 아래 작은 섬스리랑카였다. 부처님 입멸후 300년 뒤 인도대륙은 마우리아왕조의 통일 대왕이었던 아쇼카왕이 인도대륙을 통일하였다. 여러 수십개의 작은 나라들로 이루어졌던 인도를 최초로 통일한 아쇼카왕은 통일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었고, 그 전쟁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살생으로 인간적고민과 갈등을 하였다. 그런 고민속에 부처님의 유적을 발굴하고 그 유적속에서 부처님이 예언한자신의 현재 모습이 부처님과의 전생인연과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현생 모습은 부처님 당시 자신의 과거생에 모래로 지은 밥을 부처님께 바쳤던 선한 인연으로 오늘날 자신이 왕이 되었다는 예언을 알게 된 것이다. 자신의 전생과 현생의 인연을 알게된 아쇼카왕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죽어갔던수많은 사람들의 원한도 씻고, 다시는 전쟁이 없는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불교에 귀의하였고, 자신이 믿게 된 불교를 인도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입춘, 우수가 지나고 봄이 찾아온다. 우수에는 대동강물도 풀린다고 하지만, 전국은 꽃샘추위로 움추러 들었다. 그러나해 주위를 돌고 있는 지구가 그 축이 바뀌지 않는 이상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올 수 밖에 없다. 한국에서 가장 먼저 봄을 느낄 수 있는 곳은 남쪽나라 제주도다. 봄을 느낄 수 없이 추운 꽃샘추위 속에서도 제주는 이미 봄을 맞이하는 듯, 봄꽃 유채가 노랗게 피어나고 있었다. 이제 곧 그 봄은 바다를 건너 뭍으로 올라올 것이다.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싱가포르는 2차세계대전 이후 독립된 작은 도시국가이다.2차 세계대전 이후 버려진 땅이었떤 이곳은 말레이지아 반도의 끝에 위치하여 말레이지아가 자신들의 땅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여 별도의 도시국가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곳에는 여러 문화속에 살던 사람들이 몰려들어 통일된 사상이 없이 혼재하여 하나의 나라로 다스리기에는 여러모로 어려운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그런데 이곳이 싱가포르를 통치한 한 정치가의 노력으로 이제는아시아의 다양한 문화가 혼합하여 공존하는 곳으로 자리잡았다. 싱가포르는 지역적으로 인도와 중국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사이에 있어, 고대의 아시아 문화가 모조리 융합되어혼재하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2600년 전에 성립된 불교와 흰두교 유교등 아시아의 문화와 이후 들어온 근세에는기독교와 이슬람교까지 다양한 종교들이 상호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기자는 이중에 티벳에서 번영하던 티벳불교사원으로 유명한 석가사를 방문해 보았다. 티벳불교는 중국의 불교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대승불교와 라마불교의 혼재된 듯한 모습이었다. 같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긴 하지만, 우리가 늘 보아오던 한국의 절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의 전각에 우선국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