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이면 빨간 단풍이 드는 단풍나무 아래로 본 향원정 ▲ 연못 속에 작은 연꽃 어리연이 핀 향원정 ▲ 수련은 연꽃 중에 물위로 잎과 꽃이 솟아나지 않고 앉아있는 듯 피어난다. ▲ 연잎이 피어나는 모습 ▲ 연꽃과 연봉 [그린경제/얼레빗 = 최우성 기자] 여름이 되고보니 궁궐의 운치와 정자의 아름다움을 찾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경복궁의 후원향원정에 둘러 보았다. 요즈음에는 한국인들 보다 외국인 특히 중국인들과 동남아시아인 들이 많이들 찾아와서 한국의 아름다운 궁궐을 감상하고 사진들도 많이들 찍어간다. 전에는 일본인들도 많이 찾았었는데, 근래는 소수의 일본인들만이 찾고 있어 한일간의 역사문제가 관광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을 실감한다. 연꽃은 그 꽃자체도 아름답지만 그 향기 또한멀리 멀리 퍼져서 혼탁한 세상에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꽃중에 꽃이 연꽃이라. 연 뿌리는더럽기로 소문난 진흙 뻘속에 두고 있지만, 물 밖으로 내민 둥글고 원만한 잎이 참 곱다. 그 꽃은 세상 어느 꽃에 견줄 바가 아니다. 연꽃은 꽃을 피운 뒤에 열매가 맺히는 것이 아니라, 꽃봉우리 속에 이미 연자를 간직한채 꽃잎을 피워낸다. 불교에서 스승의 법을 마음에서 마
[그린경제/얼레빗 = 최우성 기자] ▲ 다과상을 마련한 뒤 보자기로 덮어놓은 모습 ▲ 주전자에는 뜨거운 물과 차와 함께 먹을 떡을 준비한다. ▲ 사범이 시범을 보이는 장면으로 찻상을 펼치기 전에 맛좋은 샘의 물을 떠다가 끓인 물을 주전자에 담아서 가지고 옴 ▲ 사범이 찻잔을 펼치고 시범을 보인다. 다포를 걷어내고 다구를 펼친다 ▲ 주전자에서 수구로 1차 식힌 물로 다관과 찻잔을 한 번 데워서 퇴수기에 버린다음 다시 다관에 차를 넣고 주전자에서 수고에 따른 물을 다관에 부어서 차를 우린다 ▲ 숙우에서 1차로 식은 물을 차잎을 넣은 다관에 물을 부을 때에는 적절한 높이(다관의 높이 정도) 떼어서 또로록 하는 물소리를 들리게 따른다. 이렇게 함으로서 귀로도 차를 마시는 즐거움을 느낀다. ▲ 다완에서 우려진 차를 찻잔에 따른다. 퇴수기에는 다관과 찻잔을 데운 물이 담겨있다. ▲ 우려낸 차를 두손으로 감싸고 마신다. 차잎은 한번만 우리는 것이 아니라 3회 이상 우려내 마신다. 찻잎은 처음 우릴 때에는 2~3분 걸려 우리지만, 2번째는 더 빨리 우려진다. ▲ 손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차를 마신다. ▲ 사범의 시연을 보고 시연에 참가
▲ 서울 시청앞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노란 리본들 ▲ 리본이 걸린 추모의 숲을 지나는 사람들 ▲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참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추모리본 사이를 놀이터 삼아서.. ▲ 이제는 한적해진 본양소 앞을 무심히 지나는 행인들. 분향하는 사람들은 가뭄에 콩나듯 하고 행인들만 분주히 지나친다. [그린경제/얼레빗=최우성 기자] 어느 덧 2달이 지났건만 아직도 깊은 바다 칠흑같은 지옥의 바다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희생자들이 남아있다. 그래서 저 추모의 리본숲과 분양소를 치우고 싶어도 치울 수가 없다. 그 책임은 일차적으로는 배를 운행하는 선박회사와 그 배의 안전운행을 책임졌던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이지만, 이는 결국 이 나라를 이끌어 간다는 국가 경영의 지도자들의 책임이기도 하다. 배를 타고 젊은 날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고자 나섰던 제주행 수학여행 뱃길이 밤을 새고 나자 부풀었던 꿈은 날라가고, 참혹한 지옥이 현실이 된 것이다. 그들이 돈을 내고 꿈을 꾼 이유는 국가가 인정해준 기준에 따라 적합하다고 확인 받은 배의 성능과 그 배를 운행하는 사람들의 자격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배를 잘못 운행해서 순식간에 그 큰 배가 뒤집혔고, 그 순간에도 구
[그린경제/얼레빗= 최우성 기자] ▲ 대전 금강변 로하스공원내 차윤주 차윤도 형제 정려각. 간단한 사방 1칸짜리 기와집에 형제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이 2기 있다.그 외부에는 최근에 세운 비각의 유래가 기록된 비석이 서있다. 금강 로하스 공원에 있는 차윤도 차윤주 효자 정려각 !! 인간으로 당연히 해야할 일이라 하여 본받기를 바라며 세운 비석과 비각이다. 효자 차윤주 윤도의 행적을 조사해보니 다음과 같다. 조선 정조때 태어난 효자 차윤주 윤도 형제는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하였는데 동생인 윤도가 17세에 어머니가 깊은 병에 들었다고 한다. 그러자 '윤도'는 자신의 허벅지 살을 떼어내 인육개탕을 달여서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하였다고 한다. 한편 형인 차윤주는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3년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20리길을 성묘하고 호곡을 하여 그 효행이 널리 알려졌다. 그런 사연을 그들이 죽은 뒤 소문으로알게된 고종은 1891년 고종 17년 우부승지를 보내서 사실을 확인하고 효자로 인정하는 교지 그리고목수와 목재를 내리고 효자문과 효자비를 세웠다. 이후 나라가 일제강점기로 접어들면서 고종이 내린 편액은 소실되고 다면 비석2기를 보호하는 비각이 퇴락해가는 것을 해방이
[그린경제/얼레빗=최우성 기자] ▲ 주상절리 해변 경주시 양남면 읍천리 바닷가에 위치한 주상절리해변이다. 주상절리는 태고적 지구 내부에 있던 마그마가 지표면으로 상승하면서 갑자기 굳어지면서 6각기둥모양으로 형성된 지질학적 현상으로 한국에는 제주도 중문 단지근처에 있는 주상절리와 광주 무등산 입석대 주상절리 그리고 이곳 경주 읍천의 주상절리가 있다. 그런데 경주 읍천의 주상절리는 세계적으로도 특이하게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지면서 굳어있어 특히나 귀중한 지질자료로 평가된다. 얼마 전까지는 군부대가 위치하여 제대로 볼 수도 없었지만, 이제는 경주시에서 산책로를 잘 정비하여 많은 사람들이 산책도 하고 지질공부도 할 수 있는 명소가 되었다. ▲ 육각 기둥을 모아놓은 듯한 주상절리 ▲ 소나무사이로 본 부채꼴 주상절리 ▲ 부채꼴 주상절리가 펼쳐져 있는 해변 ▲ 기둥을 포개놓은 듯한 주상절리 그런데 이곳을 찾는 사람들뿐 아니라, 관광지 유적지를 찾는 국민들의 주인의식이 요구된다. 아름다운 문화유적을 찾으면서 자신이 가지고 와서 맛있게 먹은 각종 음식물 포장지들을 근처 덤풀속에 버리거나, 바닷가에 돌틈에 끼워놓고 가는 사람들이 있어 많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
[그린경제/얼레빗=최우성 기자] ▲ 연오랑 세오녀 광장 ▲ 연오랑 상 ▲ 연오랑과 세오녀상 삼국유사에 기록된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의 유래가 된 곳이 바로 포항이라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신라 8대 아달라왕 4년(157년) 동해 바닷가에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연오'가 바닷가에서 해초를 따고 있었는데 큰 바위에 오르자 바위가 갑자기 욺직여'연오'를 태우고 일본으로갔다. 그런데 '연오'를 본 일본인들은 '연오'의 생김이 비상함을 보고연오를 왕으로 삼았다. 한편 '세오'는 남편인 '연오'가 돌아오지 않음을 이상히 여겨 바닷가로 나가서 찾아보았으나, '연오'가 벗어놓은 신발만 발견하고 바위로 올라가 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바위가 욺직여 '세오'를 싣고 '연오'왕이 있는 곳까지 데리고 왔다. 그러자 그나라 사람들이 놀라서 그녀를 왕에게 데려오니 부부는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되자 '연오'와 '세오'가 사라진 신라에는 해와 달이 빛을 잃게 되었고, 일관이 점을 쳐보니 신라에 있던 정기(연오랑 세오녀)가 일본으로 가버린 때문이라하여 왕은 사자를 보내서 '연오랑' '세오녀'를 다시 데리고 오려고 하였다. 하지만 '연오'는
▲ 왼손에 잡힐 듯 한 태양 ▲ 왼손-1 ▲ 왼손-2 ▲ 왼손과 꺼지지 않는 횃불 [그린경제/얼레빗=최우성 기자] 호미곶 새천년 광장에 세워진 거대한 조형물인 상생의 손. 오른손은 바다에 솟아나 있고, 왼손은 광장의 중심에 세워져 있다. 두 손은 서로 마주 보면서 한국의 육지에서는 가장 먼저 태양을 맞이 한다. 서로 마주만 볼 뿐 영원히 만날 수는 없는 두 손이지만, 그 이름처럼 서로가 서로롤 돕고 이해하는 상생의 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왼손 앞에 설치된 영원히 꺼지지 않는 횃불이 어찌된 일인지 꺼져있어서 아쉬움이 크다.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문화재청 해리티지채널사진기자, 불혹의 포토클럽 회원
[그린경제/ 얼레빗 = 최우성 기자] ▲ 새들도 자리 다툼을 한다. 원래 자기 자리를 달라는 듯 날개짓으로 몸부림 쳐보지만... ▲그러나 먼저 차지한 놈이 임자라며 버티는 녀석이 있다. ▲ 날마다 그런 다툼으로 호미곶의 하루 해가 지고 그리고 또 6월 14일 아침해는 떴다. ▲ 떠 오르는 해를 바라다보면서 카메라 렌즈에 눈을 고정하다 잡은 기막힌 장면으로 새끼 손가락에 앉은 새 너머로 아침 해가 떠오른다. 언뜻보면 새끼 손가락에 등불을 밝힌 느낌이다.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문화재청 해리티지채널사진기자, 불혹의 포토클럽 회원
[그린경제/얼레빗 = 최우성 기자] 호미곶의 손 정미자 그래 보고 싶지 않는 것은 손을 저어라 옳거니 바르지 않은 것에는 손을 빼들어라 비록 손목을 자르더라도 불의에 더는 더는 참지 말아라 포항 호미곶으로 출사 나와 있습니다. 정확히 호미곶의 위치는 경상북도 포항시 구룡포읍ㆍ동해면ㆍ호미곶면에 속하며 서쪽은 영일만, 동쪽은 동해에 접해있습니다.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으로, 일출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명소이며, 호미곶 등대로도 유명한 곳이지요.. 호미곶은 16세기 조선 명종 때 풍수지리학자인 남사고(南師古)가 『산수비경(山水秘境)』에서 한반도는 백두산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형상으로 기술하였고, 백두산은 호랑이 코, 호미곶은 호랑이 꼬리에 해당한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김정호(金正浩)는 대동여지도를 만들면서 국토 최동단을 측정하기 위해 영일만 호미곶을 일곱 번이나 답사 측정한 뒤 우리나라에서 가장 동쪽임을 확인하여, 호랑이 꼬리 부분이라고 기록하여 한자로 호미곶(虎尾串)이라 불리며 다른 말로는 동외곶(冬外串), 장기곶(長鬐串)으로도 불립니다. 오늘 아침에 운무가 끼어 사진 찍기에는 썩 좋지 않
▲ 마곡사 일주문 ▲ 일주문을 지나서 태화산 계곡으로 ▲ 계곡의 초록빛 물과 나무 ▲ 사찰로 가는 극락교 ▲ 금강문(금강역사) ▲ 극락교를 지나며 ▲ 돌거북이 사는 바다 ▲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광명전 앞에서 ▲ 대광명전 앞의 5층석탑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상륜부에 특이한 모양의 라마탑이 있다. ▲ 5층석탑의 상륜부 ▲ 대광명전 위에 대웅보전이 있다. ▲ 대광명전에 모셔진 비로자나불부처님의 상호(얼국과 몸)은 비슷하나, 손의 모양이 다르다. ▲ 경내에 걸린 연꽃등 [그린경제/얼레빗 = 최우성 기자] 통일 신라초기에 자장율사가 절을 세우고 낙성식을 하는데 사람들이 하도 많이 와서 마치 삼밭에 삼나무가 빼곡히 들어찬 듯 사람이 많이 들어찾다고 하여 이름을 마곡사라 했다고 전한다. 하지만,통일신라 말기부터 고려 초기까지 약 200년 동안은 폐사지가 되어 도둑들의 소굴이 되었다가 1172년 고려 명종 2년 보조국사 지눌이 왕명을 받들어 다시금 중창을 하였다. 최근세에는 나라 잃은 민족의 지도자로 중국의 각지를 떠돌면서 임시정부를 이끌어오던 백범 김구 선생이 중국으로 떠나기 전 젊은 시절 행자스님으로몇 개월을 지냈던 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