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길을 인도하는 거위 할아버지 할머니 병아리 주변으로는 엄마 아빠가 호위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길을 인도 합니다. 병아리를 호위하는 가족 여유로운 나들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다시 뒤를 따릅니다. [그린경제/얼레빗 = 최우성 기자] 이른 봄에 고이 품었던 알들이 아기거위로 깨어나 봄나들이 합니다. 깨끗한 연못을 여유롭게 노니는 거위가족의 가족사랑이 정말로 평화롭습니다.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사진활동은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해리티지채널사진기자, 포토클럽 회원으로 활동 중
[그린경제/얼레빗 =최우성 기자] 어처구니 없다는 말이 있다.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생긴 경우에 하는 말. 하지만 이외에도 '어처구니'라는 말은 맷돌의 손잡이를 이르는 말이기도 하고, 또 궁궐이나 성문 왕릉의 정자각등 권위 있는 건물 기와등에 조각으로 만든 흙으로 만들어 기와처럼 구워만든 조각상들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기와집 내림마루의 등에는 건물의 권위에 따라 적게는 3개에서 많게는 11개의 잡상이 올라간다. 사진은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의 내림마루에 있는 어처구니(잡상)들이다. 잡상의 이름은 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이구룡, 마상귀, 삼살보살 등으로 서유기의 주인공과 조연들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사진활동은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그린경제/얼레빗 = 최우성 기자] 고요한 산사에도 고요를 깨는 작지만 큰 소리를 내는 '풍경(風磬)'이 있다. 추녀나 사래끝에 매달린 풍경은 산들바람에도 땡그렁 소리를 내며 고요한 공간에 풍파를 일으킨다. 풍경은 범종의 모양을 축소한 작은 종이나 범종과는 달리,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아 흔들리도록 납작한 물고기를 풍경의 안쪽에매달아 놓았다.가볍고 납작한 물고기의 옆면으로 바람이 스치면 물고기는 여지없이 흔들리면서 정적을 깨는 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러면 왜 절의 처마 밑에는 풍경을 매달아 놓았을까? 그 연유는 여러 설이 있으나, 어떻든 스님은수행자로서의 본분을 잊지 말고 열심히 정진하여 성불할 때까지 수행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것이다. 물고기는 흐르는 물속에서 살기에 잠을 자지 않고 늘 깨어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늘잠자지 않고 깨어있는 물고기를 본받아 출가수행자는 이생에 성불을 목표로 정진하라는 의미가 들어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가 깊은 '풍경'이지만 막상 풍경을 주제로 작품을 구상하기는 녹녹치가 않았다. 산들바람에도 늘 흔들거리는 붕어가 그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 나간 경우도 많았고, 또 있다하더라도 주변의 산천과 절의 전각들과도
[그린경제/얼레빗 = 최우성 기자] 한국의 사찰 가운데는 계단이 설치된 곳은 많지 않다. 계단(戒壇)이란 불교에 입문한 스님들이 출가하면서 기초 수행을 마치고 스님으로서의 지켜야할 철저한 계율을 지켜서 스님으로서의 삶을 살겠다고 스승님들을 모시고동료스님들 앞에서 자신을 향해 맹세하는 곳이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맹세를 아무곳에서나 할 수는 없는 것! 그래서 선택된 곳이 계단인 것이다. 한국에는 통도사 금강계단이 가장 유명하지만, 전북 김제 금산사에도 방등계단이 있다. 금산사는 백제 법왕 원년(서기 599년)에 창건한 절로 그 창건 연대만도 1,400년이 넘는 유서깊은 절일 뿐 아니라, 백제에서 융성했던 미륵신앙의 본거지이기도 하였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에는 진표율사가 금산사를 중창하여 참회도량으로 크게 융성시켰다고 한다. 미륵불이 지상에 온다면 바로 이곳이 미륵불의 하강지라는 미륵성지신앙이 깊은 이곳에는 국내 유일의 3층정각인 미륵전과 더불어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것으로 알려진 방등계단이 있다. 방등계단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기 때문에 그 앞에 지은 전각에는 부처님의 상이 없이 방등계단이 보이는 곳에 유리창을 설치하였다.부처님의 진신이 있
[그린경제/얼레빗 = 최우성 기자] 아름다운 봄꽃이 거울 같은연못에 잔잔하게 되비칩니다. 전남 화순의 세랑지에는 새벽 물안개가 피어 오르는 가운데 봄꽃이 투영되는 모습을 찍기 위해 전국의 사진가들이 몰려 들어 진을 치고 있습니다. 새벽 3시! 기자도 밤새 포토클럽 동호인들과달려 와 일찌감치 좋은 자리에 카메라를 세우고 물빛 속을 바라다보았습니다. 아직 어둠이 가라앉은 세랑지는 잠에서 깨지 않았지만 사진기를 앞에둔 사진애호가들은 숨소리를 죽이며 여명 가운데 하나 둘 연못 속에 피어날 봄꽃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입니다. 세랑지의 봄꽃은 아스라이 피어오르는 아침 물안개와 어우러져야 제격입니다만 오늘은 아쉽게 물안개가 그 모습을 나타내주지 않눈군요. 아쉽지만 비가 내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며 렌즈 속에 세랑지를 담아봅니다. 대충 오늘 전국에서 모인 분들이 200여명은 족히 됨직합니다. 날이 밝은 아침까지 카메라 맨들은 오직 '걸작 한 점' 을 찍기 위해 그 물빛 속에 시선을 담근채 무아지경에 빠져있습니다. -전남 화순 세랑지에서-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그린경제/얼레빗 = 최우성 기자]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오니 연등들이 달립니다. 관세음보살의 상주처라는 낙산사에도 화사한 연등들이 달렸습니다. "깨닫고 보면 중생도 부처요, 깨닫지 못하면 부처도 중생이라" 깨달음에 대한 알듯 모를듯한 부처님의 말씀을 되새겨 봅니다.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사진활동은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해리티지채널사진기자, 포토클럽 회원으로 활동 중
[그린경제/얼레빗 = 최우성 기자] 철감선사는 신라(798년 원성왕 14 ~ 868년 경문왕 8)시대 선사로 선풍을 휘날렸던 스님이다. 그의 사리탑은 전남 화순군에 있는 쌍봉사의 경내에 자리잡고 있는데 사리탑의 조형성으로 보아 무척이나 화려하고 세밀하게 조각된 각 부분의 모습만으로도 당시 그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철감선사 사리탑의 바로 옆에는 그의 행적을 세세히 기록한 철감선사 사리탑비가 있으나, 그의 행적을 기록한 탑비는 사라지고 탑비를 바치던 이수와 귀부만이 안타깝게 남아 있다. 사리탑의 형태는 거의 완벽하나 안타깝게도 상륜부만이 어디론지 사라졌다. 그러나 기단부와 탑신부 옥개석은 1200년의 세월 속에서도 훼손됨이 별로 없어 다행이라 생각된다.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
[그린경제/얼레빗 = 최우성 기자] 경복궁 경회루에 만개한 수양 벗꽃! 일반 벚꽃과 달리 수양버들처럼아래로 축 즐어지는 벚꽃입니다. 화사한 꽃대궐 이제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사진활동은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해리티지채널사진기자, 포토클럽 회원으로 활동 중
[그린경제/얼레빗 = 최우성 기자] 천불이 조성되어 수백년을 내려왔다지만,융성의 시대가 간 뒤에는 폐사까지 되었던운주사! 천불로 빼곡하던 운주사 경내의 부처님들이 이리 저리 흩어지고 파괴되고 땅에 묻히는 인고의 세월이 지나고 다시금 많은 중생들이 기꺼이 찾는 호남의 고찰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저지른 전란의 소용돌이는 부처님도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 아니 부처님의 말씀처럼 생노병사성주괴공 흥망성쇠에는 그 어느 것도 예외가 없다고 하였으니, 어쩌면 그 진리의 말씀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하기도 합니다. 운주사의 맨 위에 누운 부처부부(?)는 천 분의 부처 중에서도 맨 나중에 조성된 부처라고 하는데 평평한 바윗돌에 마치 마애불을 새기듯 그 윤곽들만 새겨 놓았습니다. 부처님은 완벽한 분으로 그 형상을 조성하자면 32상 80종호를 갖추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 복잡하고 까다로운 정형의 완벽함을 추구하던 다른 절의 부처님들과는 확연히 다르게 그 형체만을 투박스럽게 조성된 와불입니다. 이 누운부처가 반듯이 일어서는 날! 천 년의 태평성대가 도래한다는데... 과연 그날이 언제쯤 올것인지기다려 볼
[그린경제/얼레빗 = 최우성 기자] 창건에 관하여 여러 설이 있으나, 신라말 도선스님이 세웠다는 설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천불천탑은 도선국사가 하룻밤 사이에 다 만들었는데 맨 나중에 가장 큰 부부와불을 만들었으며, 이 불상이 일어서면 1,000년동안 태평성대가 열린다고 한다. 불상의 형태는 정제되고 정형화된 불상이 아니라 단순 소박하고 석탑또한 정형의 아름다움에서는 벗어나있으나, 천불천탑이라는 수많은 불상과 불탑으로 불국토의 실현을 염원한 고려시대 지방토초와 지방민들의 염원을 기원한 것으로 보인다. 정형화되지 않아 오히려 순수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 더욱 친근감이 들기도 한다. 이후 조선시대 임진왜란으로 전각이 다 소실되고 석불과 석탑도 많이 훼손된 뒤 폐사가 되었다가 1918년 박문동, 김여수 등 16인의 시주로 다시 중창하였다. 1942년 까지는 석불 213좌와 석탑 30기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70기의 석불과 12기의 석탑만이 있다. 조선조에 쓰여진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1,000여기의 석불과 석탑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어 천불천탑으로 유명하지만, 임진왜란이후 폐사가 되고 관리가 안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