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금으로부터 천여 년 전인 9세기 초에 만들어진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설화집이 있는데 그 이름은 《일본국현보선악영이기(日本國現報善惡靈異記》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 가운데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한국에 번역되어 나온 《일본국현보선악영이기(日本國現報善惡靈異記》 나라(奈良)지방의 한 마을에 다데하라도라는 절이 있는데 이 절에는 영험한 약사여래불이 있었다. 때마침 이 마을에는 눈먼 과부가 어린 딸 하나를 데리고 살고 있었는데 이 모녀는 생활이 너무나 어려워 끼니를 잇기조차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모녀는 그대로 앉아서 죽느니 약사여래불에 가서 기도라도 드리다 죽을 요량으로 어린 딸을 데리고 절로 향했다. 그러나 남루한 행색으로 약사여래불당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절집 앞에서 하염없이 기도를 할뿐이었다. 제 목숨은 아깝지 않으나 제 딸아이의 목숨이 안타깝습니다. 한꺼번에 두 명이 죽을 지경이니 바라옵건대 제 눈을 뜨게 해주시옵소서.라고 빌었다. 여자는 절박한 마음으로 약사여래불이 있는 절을 향해 기도를 드리고 있었는데 그때 절에서 이 모습을 보던 관리인이 나와 이 모녀를 약사여래불상으로 안내하였고 이들은 더욱 열심히 기도했다
[신한국문화신무 = 최미현 기자] 도기 바퀴장식 뿔잔(陶器 車輪飾 角杯)은 수레바퀴가 붙은 높이 18.5㎝, 길이 24㎝의 가야 토기로 출토지는 알 수 없다. 토기의 받침은 이 시대 굽다리 접시(고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밑이 벌어진 나팔형인데 긴 직사각형의 굽구멍(투창)이 4개 뚫려 있다. 받침 위에 U자형의 뿔잔(각배)을 얹어 놓고, 그 등에는 양쪽으로 고사리 모양 장식을 했으나 한쪽은 없어졌다. 고사리 모양의 장식은 가는 흙 줄을 양쪽으로 말아서 만든 특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U자형의 뿔잔은 액체를 담기 위한 그릇으로 보인다. 뿔잔의 좌우 측면에 수레바퀴를 부착시켰는데, 둥근 바퀴는 축을 중심으로 마름모꼴 모양의 창을 6개 뚫어 바퀴살을 표현하고 있다. 회흑색의 바탕 흙은 쇠가 녹슨 듯한 색깔을 띠며, 전형적인 가야 토기의 특색을 보여주고 있는 오리모양인물모양말모양배모양 토기들처럼, 단순하고 환상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 자료: 문화재청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지난주 속풀이에서는 인천이 낳은 국악계의 풍물 명인, 지운하의 풍물인생 60주년을 기념하여 공연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나와 지운하 명인이 가깝게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한중 학술 및 실연교류회장에서의 만남이었다는 이야기, 동포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는 일과 함께 우리의 소리나 장고, 꽹과리 가락이 절대적인 힘이 된다는 사실을 나와 지운하는 공감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는 고향땅 인천에서 동네 어른들이 치는 풍물굿을 자주 들으며 자랐고, 숭의초등학교 시절부터 풍물굿을 배웠으며, 당시의 숭의풍물단이 전국대회에서 수상하면서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는 이야기, 그 뒤 남사당의 각종 예능을 두루 익히면서 이 분야의 정상급 명인이 되었다는 이야기, 그는 조직의 하위그룹인 삐리생활을 하면서 스승을 봉양하였고, 구성원들의 기본질서가 무너지면 그 조직은 경쟁에서 낙오할 수밖에 없다는 철학을 배웠다는 이야기도 하였으며, 지금은 고향땅에서 주민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길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성남의 문화예술인으로 전통문화 살리기에 앞장서 온 방영기씨가 올해에도 어김없이 그의 소리인생 45주년을 기념하는 발표회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예전에 한국인들은 날씨가 추워지면 따뜻한 온돌방 아랫목에서 한 겨울을 보냈다. 지금은 보일러가 보급되어 거의 온돌이 사라졌지만 과거 한국인의 겨울철 난방은 뭐니 뭐니 해도 뜨끈뜨끈하게 불 땐 아랫목이었다. 글쓴이의 어린 시절만 해도 아랫목은 겨울철 온 식구가 모여 오순도순 보내던 곳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사정은 어떠한가? 일본은 우리처럼 온돌문화가 아니라 다다미 문화다. 다다미란 돗자리 문화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따라서 겨울철이 되면 방안이 춥다. 이러한 추위를 견디기 위해 고다츠(こたつ, 火燵炬燵)라는 난방기구가 생겨났다. 요즈음은 전기 고다츠가 주종을 이루지만 예전에는 숯불이 쓰였다. 고다츠를 보지 못한 사람에게 가장 쉽게 설명한다면 난로를 사각 나무판으로 덥고 그 위에 이불을 덮어씌워 놓은 형태로 발을 이불속에 넣는 구조이다. 고다츠는 밥을 먹을 때는 식탁이요, 아이들이 공부를 할 때는 책상으로 쓰고 차를 마실 때는 차탁으로 쓰는 등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쓰이지만 기본적으로 발을 고다츠 속에 넣어 보온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 일본 겨울의 필수품이라고 선전하는 난방기구 고다츠(こた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 속풀이에서는 서울의 권번으로 한성권번, 조선권번, 종로권번이 당국에 의해 합병되면서 삼화권번으로 존재하다가 2차 세계대전이 치열해 질 무렵, 폐쇄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가무연구회 회원들은 사설교습소를 차려 일반인들을 지도했는데, 관청의 허가가 있는 권번 이외에는 예기(藝妓)의 허가장을 받을 수 없었기에 모두 권번 문을 두드려 왔다는 이야기, 당시 이름난 사설학원이나 교습소의 운영자로는 마포의 박춘재와 김경호, 신촌의 김창연, 현저동의 박윤병 등이 있었다는 이야기, 특히 지금의 성동구 신당동이나 왕십리 부근이 그 중심지로, 이명길은 신당동에서 100여명의 제자를 가르쳤고, 엄태영이나 오성렬, 예능보유자였던 김태봉 등은 상왕십리에서, 탁복만은 하왕십리에서 사설 교습소를 운영해 왔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그밖에도 김태운, 이명산, 고전무용의 이칠성, 효창동의 최석조, 이태원의 성수근, 내수동의 이만흥, 사직동의 김종수, 돈암동의 김두식, 예지동의 오봉식, 광희동의 이현재, 와룡동의 강흥태와 강흥식 형제, 익선동의 홍병호, 그리고 당시 제일 젊은 나이로 입회한 정득만과 이창배 등도 포함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동 가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일본에서는 가업을 대대로 이어오는 가게들이 많은데 이를 일컬어 시니세(老鋪)라고 한다. 글자 그대로 오래된 가게라는 뜻이다. 이러한 시니세에는 백화점도 있고 된장가게도 있으며 기모노 같은 옷가게는 물론이고 오래된 여관이나 과자점도 있다. 무엇이든 자기 대에서 끝나지 않고 대를 이어 가는 가게라면 시니세인 것이다. 따라서 그 지방의 전통 있는 물건이나 먹거리 따위를 찾는 사람들은 그 고장의 시니세를 찾으면 어느 정도 목적을 달성 할 수 있을 것이다. 품질은 기본이고 무엇보다도 신용을 목숨처럼 여기는 시니세는 시대에 유행하는 세련된 장식이나 점포 분위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어딘가 모르는 안정된 모습 속에서 정감어린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딱히 시니세가 100년이라든가 몇 백 년이어야 하는 조건은 없지만 그래도 100년은 되어야 시니세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는 창업 100년 이상의 기업이 21,000개나 있다. 200년 이상의 기업은 3,000개가 있다고 한다. 주로 이러한 시니세 가게는 술과 전통과자점, 옷가게 따위의 전통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 20세기 초의 건설회사 금강조 회사 직원들 한 조사에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일제강점기 가무연구회에서 활동했던 회원들의 이야기로 한성권번에서 잡가 선생을 지낸 유개동을 소개하였다. 그는 1960년대 말, 산타령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당시 김태봉, 이창배, 정득만, 김순태와 함께 예능보유자로 인정을 받았던 5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는 점, 12잡가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기록할 정도로 가사의 암기며 사설의 의미를 분명하게 이해하였다는 점을 얘기했다. 특히 서도창으로 수심가를 두드러지게 잘 불렀으며 그 지역 명창 못지않게 독특한 서도의 목을 잘 묘사하였다는 점, 서울 경기의 12잡가 중에는 방물가(房物歌)를 잘 불렀던 명창이었다는 점, 방물이란 여자들의 소용인 패물이라든가 잡화를 말하며 노래 가사에는 방물을 열거하나 속뜻은 남녀의 사랑이 주제가 되고 있다는 점, 이 노래는 과거 8잡가에 포함되지 못하고 잡잡가에 속해 있던 노래였다는 점도 거론했다. 또 과거에는 기생의 양성은 주로 권번(券番)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으나 일제 말기에는 기생조합이었고, 한성권번에서는 가곡, 가사, 시조에 경기잡가, 서도잡가, 민요, 정재무, 묵화 등 다채로운 과목이 있었으며 이곳에는 가곡의 장계춘, 가사와 시조에 조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시치고상(七五三)이란 어린 자녀에게 일본 전통 옷인 기모노를 입혀 신사참배하는 것을 보통 일컫지만 최근에는 가족사진만을 찍는 집도 늘고 있다 이는 11월 7일 일본 잡지 러닝파크(ラニングパク)에서 소개한 말이다. 일본에는 우리나라처럼 아이들 돌잔치라는 게 없다. 하지만 남자 아이는 3살과 5살 그리고 여자 아이는 5살과 7살 되는 해를 맞이하여 부모님을 비롯한 일가친척과 함께 신사참배를 하는 습관이 있다. 당신은 아이의 시치고상 준비를 하고 있느냐?라는 질문에 61퍼센트가 그렇다고 답했다. 물론 여기서 그렇다고 한 것은 아이에게 일본 전통 옷을 입혀 신사참배를 한다는 뜻이다. 61퍼센트 외에 18퍼센트는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시치고상을 하긴 할 것이라고 했고 21 퍼센트만이 별다른 계획이 없다고 했다. 말하자면 79퍼센트가 시치고상을 어떤 식으로든지 치루겠다는 이야기다. 시치고상에 해당하는 나이의 자녀가 있는 부모에게 던진 이날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답 1위는 사진관에서 기념촬영을 하겠다.라는 답이 단연 1위였다. 아이가 태어나면 돌잔치를 하는 한국에서는 돌잔치 사진이 중요하듯 일본 부모들은 기모노를 입힌 귀여운 아이의 사진을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최정식이 작사 작곡한 금강산 타령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이 노래는 처음에는 낮게 조용히 시작해서 점차 상행선율을 그려 나가다가 일만이천 대모에서는 최고조에 달하고 다시 하행하는 형식의 노래라는 점, 장단은 도드리장단의 6박+6박, 도합 12박이 짝을 이루는데, 12박 중에는 가사를 반드시 붙이는 박과 붙이지 않는 박이 거의 규칙적으로 나오고 있다는 점을 얘기했다. 또 금강산에는 무려 40여 개의 절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장안사(長安寺)와 표훈사(表訓寺), 유점사(楡岾寺), 신계사(神溪寺) 등이 유명하며 유점사를 금강 제일의 사찰로 꼽고 있다는 점, 그 이유는 53불(佛)과 인목대비의 친필, 서산대사(西山大師)의 높은 제자 사명당(四溟堂)이 머물며 가르침을 주던 곳이라는 점도 덧붙였다. 한편, 풍등가(登歌)는 농사 열심히 지어 나라를 일으키자는 취지로 1900년대 초에 만들어진 노래인데, 노래말에 논농사에 뿌리는 벼 종류의 이름, 밭농사의 곡식이름이 나오며, 열심히 농사를 지어 부국을 노래하고 있어 놀자판 가사와는 달리, 건실한 내용이라는 점, 처음 시작부분은 국태민안 시화연풍 연년이 돌아든다. 황무지 빈터를 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 김남주 시인은 <옛 마을을 지나며>라는 시에서 이 즈음의 정경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바로 겨울이 다가왔다는 손짓이다. 무서리 내리고, 마당가의 감나무 끝엔 까치밥 몇 개만 남아 호올로 외로운 때가 입동이다. ▲ 백양사 들머리의 감나무와 까지, 스님들은 아예 까치들에게 모두를 내주었나 보다. 입동은 24절기의 열아홉째이며, 이 날부터 '겨울(冬)에 들어선다(立)'이라는 뜻에서 입동이라 부른다. 이때쯤이면 가을걷이도 끝나 바쁜 일손을 털고 한숨 돌리는 시기이며, 겨울 채비에 들어간다. 겨울을 앞두고 한 해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때인데 농가에서는 서리 피해를 막고 알이 꽉 찬 배추를 얻으려고 배추를 묶어주며, 서리에 약한 무는 뽑아 구덩이를 파고 저장하게 된다. 입동 전후에 가장 큰일은 역시 김장이다. 겨울준비로 이보다 큰일은 없는데 이 때를 놓치면 김치의 상큼한 맛이 줄어든다. 큰집 김장은 몇 백 포기씩 담는 것이 예사여서 친척이나 이웃이 함께했다. 우물가나 냇가에서 부녀자들이 무, 배추 씻는 풍경이 장관을 이루기도 하였다. 이것도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