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지금 일본은 장마철이다. 한국보다 한 달 정도 빠른 일본의 장마는 남북으로 긴 일본열도의 특성상 가장 아래 지방인 오키나와가 5월 5일부터 시작되고 동북 지방은 6월 6일 정도에 장마가 시작되어 무려 1달이나 장마 시작이 차이가 난다. 그에 견주면 일본의 중부지방이 장마가 끝날 무렵 한국의 남부지방이 장마가 시작된다. 장마 기간 동안에는 밖의 활동이 적어지고 집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은데 이렇게 비가 지루하게 내릴 때 일본에서는 데루데루보우즈, てるてる坊主라는 인형을 처마 밑에 매달아 두는 풍습이 있다. 흰 천을 펴서 솜을 넣고 실로 묶으면 꼭 사람 머리통 모양인데 여기에 눈코입을 그려 넣고 처마 끝에 대롱대롱 매달아 두면 비가 그친다고 믿는 풍습인 것이다. ▲ 비가 그치길 바라는 인형을 데루데루보우즈, てるてる坊主라고 하며, 처마 밑에 매단다.(왼쪽), 비가 내리길 바라는 인형은 거꾸로 매달며 아메아메보우즈, あめあめ坊主라고 한다. 일본의 데루데루보우즈 풍습은 헤이안시대(794-1192)의 《카게로우닛키》라는 작품에 나올 정도로 오래되었지만 오늘날과 같이 일반적으로 널리 확산된 것은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8
[그린경제/얼레빗=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 속풀이에서는 무형문화재 전수회관과 6월 8(일) 오후 3시 성동구 소재 소월 아트홀에서 열리게 될 선소리 산타령 보존회의 제22회 정기 공연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선소리 산타령이란 말에서 선소리는 서서 부르는 소리, 즉 입창(立唱)이고, 산타령은 산천경개를 읊는 노래라 하였다. 한국의 산타령은 늦어도 1800년 초기부터 불리기 시작했다고 추측되며 1900년대 초에 문을 연 원각사, 광무대, 연흥사, 장안사, 단성사 등의 사설극장들은 낮에 선소리패(일명, 놀량패)를 초빙하여 공연을 벌린 점으로도 당시의 대중적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는 이야기, 특히, 산타령은 답교(踏橋)놀이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노래였으며 전문 소리패들인 뚝섬패, 왕십리패 등 10여개 유명 선소리패 등이 있었으나, 전문 소리패에 의한 연창(演唱)은 이미 맥이 끊어진지 오래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경기지방의 산타령은 불규칙 리듬이 많고 서도산타령은 비교적 규칙적이란 점, 서도는 템포가 빠르고 요성이 격렬한데 비해 경기는 비교적 느리고 매끈하다는 차이점을 이야기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사설 내용이 비교적 건전하며 리듬형이나 선율선, 활달한 창법, 다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의 지진과 해일(츠나미)은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앗아갔다. 당시의 참상은 일본뿐 아니라 세계인들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러한 재난 앞에 사람들은 하나둘 모여들어 슬픔에 빠져있는 사람들 곁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재난을 당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임시 천막촌에는 각지에서 보내오는 구호품이 넘쳐나고 자원 봉사자들 또한 전국 각지에서 앞 다투어 달려와 고통을 함께 나누고 있다. 일본재단(日本財團)의 사사카와요헤이(笹川陽平) 회장은 누리집 인사말을 그렇게 시작했다. 일본재단은 50년이 넘는 자원봉사 단체로 사회 전반적으로 활동분야를 넓혀가고 있다. 고령화문제, 맞벌이시대의 육아문제를 포함하여 지구환경과 자원문제, 식량문제 등으로 고통을 받는 이웃과 사회를 위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 고려박물관의 자원봉사자 가키바타 씨 사사카와 회장은 특히 지난 2011년 동일본대진재 이후 시민들의 자원봉사활동 인식이 한층 높아가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이 단체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일반 시민, 기업, 비영리단체(NPO), 공적기간 등 다양한 층에서 관여하고
[그린경제/얼레빗=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삼성동 소재 중요무형문화재 전수회관에서 열렸던 최창남 경기명창의 발표회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건강하게 70을 넘기는 수명도 하늘의 축복일진대, 나이 80 넘어 개인의 소리발표회를 준비한다는 열정은 소리에 대한 자신감이라는 이야기, 일본의 목각장인이 107세의 나이에도 30년 작업분량의 재료들을 준비해 두었다는 이야기를 통하여, 열정이 있다면 마음은 청춘이라는 사실과 열정이 사라지고 할 일이 없어지면 그때부터 늙기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최창남 명창은 타고난 목과 현란한 기교로 민요계의 거목이며 강유(剛柔)와 명암(明暗), 농담(濃淡)을 표현하는 기교가 독보적이어서 그를 일러 소리의 마술사라고도 부른다는 이야기, 한국을 대표하는 명창 중, 그 앞에 소리를 다듬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는 이야기나 최창남이 빠지면 지방공연의 흥행이나 계약이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로도 최창남 명창의 소리는 증명이 된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 속풀이에서는 2014년, 5월 30(금)서울 강남구 삼성동 소재 무형문화재 전수회관에서 오후 늦은 8시에 열린 산타령 공연과 또 하나는 6월 8(일) 오후 3시에 성동구 소재 소월 아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함께 1박 2일로 떠나온 아하메드 군으로부터 배운 말은 쇼코랑이라는 말이다. 아라비아 말로 고맙다는 말이라고 한다. 아랍어를 쓰는 그가 평소에는 무척 먼 나라 사람이라고 느꼈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아주 가까워졌다. 아하메드 뿐만이 아니라 중국, 한국, 미얀마, 인도, 태국에서 온 유학생들과도 교류의 시간을 가지면서 나는 멀리 떨어져 있는 그들의 나라가 바로 내 고향집과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에서 얻은 가장 값진 것은 바로 그들과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싱가폴 유학생 람슨메이 씨의 1박 2일 유학생 교류를 다녀와서 - 일본에는 수많은 나라에서 온 젊은이들이 싱가폴 유학생 람슨메이 씨처럼 저마다의 꿈을 갖고 유학 생활을 하고 있다. 낯설고 물선 나라에서 사는 일이 어디 한두 가지 어려움이 있겠는가만 가장 큰 어려움을 든다면 고향이 그리운 향수병일 것이다. 그러한 유학생들의 마음을 다독여주고 비록 유학생이지만 일본 내에서 당당한 한사람의 인격으로 살아 갈 수 있도록 다양한 보살핌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쵸후물레모임(調布ムルレの會) 사람들이다. ▲ 쵸후물레모임(調布ムルレの會) 의 한국과 교류 모습
[그린경제/얼레빗=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까지 창작국악극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해 왔다. 이와 같은 국악극이 관객의 사랑을 받으며 오래도록 생명력을 유자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따라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첫째는 극본의 소재가 건전하고 감동적인 메시지를 전해주어야 한다는 점과, 둘째로는 어떤 어법의 성악도 그 뿌리는 전통음악에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개인의 음악성을 살린 창작이나 창의력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자칫 뿌리 없는 어법 등을 차용해서 겉모양만 화려하게 꾸미는 예를 방지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세 번째 조건으로는 등장인물들의 소리 공력이 승패를 좌우하는 요인이라는 점, 그리고 전문 연출가의 역할이 절대적이란 점을 강조하였다. 음악극은 여러 장르의 협업이 종합적으로 이루어지는 예술이란 점에서 최고의 기술력은 배우들이나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만들어 갖추고, 이러한 기술들을 조화롭게 디자인 하는 역할이 전문 연출가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하였다. 그리고 경서도 소리극의 활성화를 위해 서울시나 경기도, 또는 인천시에 경서도 소리를 기본창으로 하는 소리극단 하나는 설립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중재를 바란다는 점, 대형화보다는 소극장무대나 단막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일본 그림에 우키요에(浮世繪)라는 것이 있다. 우키요에는 한자말 그대로 덧없는 현세의 그림이란 뜻으로 목판화로 찍어내는 그림을 말한다. 처음에 목판화는 흑백이었으며 오늘날과 같은 다양한 색채를 쓰게 된 것은 스즈키 하루노부(1725~70)에 의해서였다. 그는 여러 장의 판목을 사용하여 10가지 이상의 색으로 그림을 표현하였다. 우키요에는 에도시대의 생활 모습이나 여성을 그린 그림이 많은데 특히 기타가와 우타마로(1753~1806)는 유곽(遊廓)의 여성들을 즐겨 그렸다. 기모노를 입고 교태를 부리는 모습의 춘화와 여성의 표정을 섬세하게 나타내는 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미인화의 대가로 꼽힌다. 특히 그의 그림은 명치(明治)이후에 서양으로 많이 유출되었는데 춘화의 경우 음부를 크게 부각시켜 그리는 바람에 서양에서는 그의 이름을 따 우타마로(Utamaro)라는 말로 거근(巨根)의 일본인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기도 했다. ▲ 기타가와 우타마로 작품 우타마로와 쌍벽을 이루는 화가로는 가츠시카 호쿠사이(1760~1849)를 들 수 있다. 호쿠사이는 주로 일반서민들의 모습과 풍경을 그렸다. 유명한 그림으로는 후지산 36경으로 수 많은
[그린경제/얼레빗=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민간들의 음악극이나 연희물 등이 국가의 지원 없이 힘겹게 명맥을 유지해 올 수 밖에 없었기에 한 때, 인기 절정에 있었다고 해도 새로운 연주목록을 준비하지 못한다면, 일반 대중들은 다른 오락물을 찾아가게 마련이라는 이야기, 그것이 전통물이든 현대물이든 고민해야 할 숙제라는 이야기와 함께 지난해 말, 창작국악극 시상식 제도가 일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이야기, 차제에 창작국악극 활성화를 위해서 어떠한 문제점들이 보완되어야 하는가 하는 점 등을 짚어 보았다. 국악극의 활성화 문제는 어느 한 사람이나 단체가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국악 전문가, 정책입안자, 집행자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연구해 나가야 될 숙제라는 이야기와 함께, 첫째는 극본의 소재가 건전하고 감동적인 메시지를 전해주는 작품이어야 한다는 점과, 둘째로는 어떤 어법의 성악도 그 뿌리는 전통음악에 두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물론 개인의 음악성을 살린 창작이나 창의력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전통에 바탕하지 아니하고 외래풍을 모방하는 뿌리 없는 어법 등을 빌려서 겉모양만 화려하게 꾸민다면 이는 모래위에 화려한 건물을 세우는 것과 다름없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사람들에게 아사쿠사(淺草)라는 곳에 대한 느낌을 물으면 몬젠마치(門前町)라고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몬젠마치란 우리말로 하면 사하촌(寺下村) 곧 절 주변에 형성된 도시라고나 할까? 아사쿠사에는 628년에 세운 천초사(淺草寺,센소지)란 절이 있는데 관동 지방에서는 유명한 고찰이다. 이 절은 백제계의 히노구마다케나리 형제와 관련이 있는 절이라 더 없이 정겨운 곳이기도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아사쿠사의 매력을 꼽으라면 나카미세(천초사 대웅전에 이르는 길 양 옆의 기념품 가게) 를 빼놓을 수 없다. ▲ 그림을 받으면서 환하게 웃고 있는 가미야 우동집 주인(왼쪽), 이무성 화백이 그린 가미야 우동 그림 음식점이라고 해야 거창한 곳은 아니고 우동집 정도인데 지난번 이곳에 들른 일행 가운데는 아직까지 이 골목에 있는 가미야라는 우동집을 잊지 못하고 자주 입에 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일본의 음식점은 대개 규모가 작은데 기껏해야 10여 명이 들어 갈만한 곳이 대부분이고 그보다 더 작은 집도 많다. 가미야도 음식을 만들어 내는 주방을 앞에 두고 빙 둘러 앉아 먹는 구조로 되어 있다. <날마다 쓰는 한국문화편지> '얼레빗'에 맛깔스런
[그림경제/얼레빗=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국립으로 창극단이 생겨 보다 활발하게 국악극 운동이 전개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좀처럼 꺾이지 않을 것 같던 여성국극의 기세도 50년대를 지나 6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점차 쇠락하기 시작하였는데, 많은 까닭 가운데 하나가 재미있으면서 감동을 전해 줄 수 있는 극본의 부재나 스타의 부재, 때를 같이 해서 영화나 TV 등 다른 대중 오락물의 증가가 주원인이 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덧붙여 국립의 국극단이 새로 창단되어 여성국극의 스타 및 중심인물들이 국립단체로 자리를 옮기게 되면서 여성국극단의 작품제작이나 규모가 한계에 봉착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1980년대 말부터는 마당극 형태의 공연물이 꾸준히 제작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해 왔다는 이야기, 그리고 1990년대 말부터《국립국악원》을 중심으로 창작 경서도 소리극이나 정가극, 재담극 들도 선을 보이기 시작하였는데, 사명감을 지닌 명창이나 단체들이 단발성 협찬을 받기도 하지만, 자비를 들여 제작에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 그 중에서도 이춘희를 비롯한 경서도 명창들은 이 분야의 초기 활동을 주도하였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 대동가극단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