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엘리자베스 키스. 1919년 처음 한국을 찾은 뒤 한국의 여러 가지 풍속과 사람을 그린 화가다.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근무하는 언니 부부를 따라 일본에 왔다가 동양에 매혹되어 머물렀다. 그 뒤 언니 제시와 함께 1919년 3월 28일, 조선에 와서 한국의 다양한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이렇게 그린 그림을 1946년 《올드 코리아》라는 책으로 펴냈다. 엘리자베스 키스의 작품은 색동옷을 입고 마당에서 노는 아이들, 좁은 방에 마주 앉아 학문을 논하는 노인들, 추운 겨울바람을 막아주는 남바위 등 1900년대 초 한국의 모습을 따뜻하면서도 정교하게 담아내 지금까지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배유안이 쓴 이 책,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 그림에서 우리 문화 찾기》를 보면 경성시대 한국의 모습이 한층 정겹게 느껴진다. 물론 식민지배 치하의 엄혹한 시대, 사는 것이 신산하다고 고달팠을 테지만 그럼에도 일상은 무심히 흘러갔던 것 같다. 책에 실린 그림들은 ‘정겨운 사람들’, ‘마음에 남는 풍속들’, ‘아름다운 사람들’, ‘기억하고 싶은 풍경들’의 네 가지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엘리자베스 키스는 어떤 모습을 그리든 따뜻하고 애정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우리나라 지형의 특징은 동고서저(東高西低)입니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큰 강은 서쪽인 서해로 흘러갑니다. 그런데 중국은 우리와 반대여서 서고동저(西高東低) 지형입니다. 황하나 양자강이 모두 동쪽으로 흘러 황해로 들어가지요. ‘만절필동(萬折必東)’은 충북 괴산군 화양구곡에 새겨져 있기도 하고 가평 조종천의 만동묘에 새겨져 있기도 합니다. "만 번 꺾여도 반드시 동쪽으로 흐른다."라는 의미의 글은 우리나라와는 상관없는 중국과 관련된 글귀이지요. 어쩌면 ‘사필귀정(事必歸正)’과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중국에 대한 사대(事大)의 의미가 큽니다. 우리나라의 서쪽에서 물이 동류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형상 사행천으로 굽이굽이 흐르다 보면 잠시 동쪽으로 흐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곳이 중국과 닮았다고 여겨서 중국 황제를 기리는 만동묘를 세웠습니다. 만동묘는 중국의 만력제와 마지막 황제인 의종을 모시는 사당입니다. 그런데 만동묘를 오르는 마지막 계단은 중국 황제를 상징하는 9층으로 만들어졌고 경사를 70도 안팎으로 가파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는 조선의 백성이 천자를 뵈러 올라가면서 똑바로 서서 올라갈 수 없도록 만든 의도가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윤 대통령이 12월 3일에 요건에도 전혀 맞지 않는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국회가 재빨리 계엄 해제 요구 의결을 하였습니다. 발표한 포고령에서 볼 수 있듯이 비상계엄은 국민의 자유를 심대하게 제약하는 엄청난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요건에도 전혀 맞지 않는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윤 대통령을 탄핵소추할 수 있다고 할 것입니다. 게다가 그 뒤에 하나, 둘씩 드러나고 있는 것을 들으면서는, 저는 “이럴 수가!”하면서 제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뉴스에서 본 몇 가지만 들면, 한동훈, 이재명 등 자신의 맘에 들지 않는 많은 인사들을 체포하고 심지어는 사살까지 하려고 했더군요. 그리고 중앙선관위 직원들을 체포하려고 할 때 준비물을 보면 직원들을 고문하여 부정선거 자인서를 받아내려고 했으며, 심지어는 북한을 자극하여 북한의 무력도발을 유도하려는 정황까지 나옵니다. 저는 이 정도만으로도 탄핵사유는 차고도 넘칠 뿐만 아니라, 이는 내란죄에도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공수처에서는 이를 조사하기 위해 출석요구서를 3번이나 보냈는 데도, 윤통은 불응하였습니다. 이렇게 연속 출석을 불응하면 보통 당연히 체포영장을 발부합니
[우리문화신문=김순흥 교수] <의병 연구가 김남철 선생>이 힘들여 쓴 《남도 한말의병의 기억을 걷다》가 2024년 <세종우수도서>에 뽑혔습니다. 작금의 국가변란 시국에, 혹한에도 불구하고 응원봉을 들고 나와 길에서 밤을 새우는 20, 30대 소녀 의병들을 보면서, 새삼 우리의 의병 핏줄을 뼛속 깊이 느낍니다. 오늘의 젊은 의병들의 기록도 글로, 사진으로 남아 후세에 전해질 것입니다. (글쓴이) 우리가 5천 년의 역사를 이어온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세계사에서 어느 민족도, 어느 나라도 이만큼 긴 세월을 동질성을 지키면서 꿋꿋이 버텨온 사례가 없다. 그 밑바닥에는 저항의 역사와 함께 기록이 있다. 끊임없이 저항하고 이를 모두 기록하면서 반성했기 때문에 드물게 5천 년을 이어오는 민족이 될 수 있었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소통할 수 있는 언어라는 수단(문화)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이 마을에 들어오면 온 동네 개들이 떼창으로 짖어댈 수는 있지만, 우리 마을에 무슨 일이 있는지 다른 마을에 알릴 수 없고, 어제 우리 마을에 낯선 사람이 왔었다고 전할 수도 없다. 기록은 우리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우리가 살아가면서 기본적으로 충족해야 하는 세 가지 분야는 의식주(衣食住)인데, 옷이 제일 앞에 나온다. 예로부터 세속적인 성공을 나타내는 표현으로써 호의호식(好衣好食), 금의환향(錦衣還鄕)이라는 말은 매우 시사적이다. 모든 사람은 좋은 옷을 입고 싶어 한다. 여자는 물론이거니와 남자들도 멋진 옷으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고 싶어 하는 원초적인 욕망이 있다. 경제 발전 이전의 시대에는 물자가 풍부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많은 가정에서는 형이 입던 옷을 동생에게 물려주는 일이 허다했다. 이웃끼리도 옷을 물려주는 일이 흔했다. 학교에서는 교복을 후배에게 물려주기도 했다. 어른들은 옷이 열 벌 있으면 많은 편이었다. 옷장에는 여러 사람의 옷이 함께 들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옷이 너무 많아져서 입지 않고 버리는 옷이 많아졌다. 연예인들이나 웬만한 부잣집에 가보면 옷 방이 따로 있고 사계절 옷이 가득하다. 한번 입고 그냥 버리는 옷도 있다. 아예 한 번도 입지 않고 버리는 옷의 비율이 21%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즉석식품(패스트푸드)이 식(食)생활을 바꾸어 놓았다면 패스트 패션이 의(衣)생활을 크게 변화시켰다. 패스트 패션이라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1885년 꽃들이 만발한 4월 3일, 한양의 사대문과 종각(보신각)에 이런 취지의 공고문이 붙어 있다. 정부에서 병원 하나를 설립했는데 북부 재동 외아문(외교부) 북쪽으로 두 번째 집이다. 미국 의사 알렌을 초빙하였고 아울러 의학도와 의약 및 여러 도구를 갖추고 있다. 오늘부터 매일 미시(오후 1-3시)에서 신시(오후 3-5시)까지 병원 문을 열어 약을 줄 것이다. 알렌의 의술은 정교하고 양호한데 특히 외과에 뛰어나서 한 번 진료를 받으면 신통한 효과를 보게 될 것이다. 본 병원에는 남녀가 머물 병실이 있으니 무릇 질병에 걸린 자는 병원에 와서 치료받을 것이며 약값은 나라에서 대줄 것이다. 이를 숙지하여 하등 의심을 품지 말고 치료를 받으러 올지어다. 한편, 당국은 한성부에 지시해 모든 계(契, 동의 상위 조직인 계는 당시 한성에 300여 개가 있었다.)에 공고문을 게시토록 했으며, 지방에도 읍마다 공고하게 했다.(황상익, 《근대의료의 풍경》)이 첫 서양식 병원은 처음엔 광혜원으로 불리다가 곧 제중원으로 개명되었다. 오늘날의 헌법재판소 경내에 있었다고 한다. 의사 알렌의 일기(1885년 4월 10일 자)다. 병원은 어제 개원했는데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눈을 들어 앞을 보니 8개의 기둥이 수평으로 길게 늘어져 있다. 기둥 사이 7칸의 공간이 하나하나 병풍의 면처럼 보인다. 둥글넓적한 자연 그대로의 돌을 다듬지 않고 주춧돌로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세운 <덤벙주초>의 누각 건물, 2층에는 마루를 깔았다. 정면이 7칸이지만 측면은 2칸이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쭉한 건물이라고 하겠다. 이 건물이 만대루(晩對樓)다. 이 만대루가 새해부터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모 방송국에서 드라마를 찍으면서 만대루에 소품으로 청사초롱을 걸어놓기 위해 기둥에 못을 박은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당연히 난리가 났다. 어떻게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에 못질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드라마 제작진의 부주의 혹은 실수에 대한 질책이 쏟아졌고 이 문화재를 관리 감독하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문제도 거론되었다. 그런데 만대루는 뭐 하는 곳이고 만대루는 무슨 뜻인가? 만대라, 늦을 ‘만(晩)’, 마주볼 ‘대(對)’, 늦게까지 마주 본다라는 뜻이란다. 무엇을 마주 볼까? 만대루 앞에는 강이 흐르고 강 건너가 병산(屛山이다. 병풍산이란 이름 그대로 만대루 앞에 산이 병풍처럼 수직으로 펼쳐져 있다. 나무계단을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조선은 철저한 ‘사농공상’의 나라였다. 벼슬하는 선비가 으뜸이었고 물건을 만드는 ‘장이’들은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아무리 손재주가 좋아도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어려웠던 사회 분위기는 조선의 발전이 늦어지는 원인이 되었다. 그런 척박한 환경에서도 자신의 전문성으로 꽃을 피운 이들이 있었다. 이수광이 쓴 이 책, 《조선의 프로페셔널》에서 소개하는 조선의 명인들은 자신이 ‘꽂힌’ 한 가지 분야에 미친 듯이 빠져들었다. 어찌 보면 사회적 인정과는 별개로 자신이 원하는 일에 푹 빠지는 것이 진정한 명인의 기질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한 가지 일에 조건 없이 도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부제처럼, 자신의 열정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던 장인들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조선에서 황기와를 처음으로 구웠던 역관 방의남의 이야기다. 광해군은 즉위하자 대궐의 중건에 나섰고, 이에 기와를 굽는 와장들이 많이 동원되었다. 특이한 점은 광해군은 대궐의 기와를 청기와나 황기와로 올리려 했다는 것이다. (p.177-178) “대궐을 중건할 때 청기와나 황기와를 사용하도록 하라.” 광해군은 대궐을 중건하면서 새로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계엄령과 탄핵으로 필자의 슬픔이 채 사그라지기도 전에 지난 29일 갑작스러운 여객기 사고 소식으로 깊은 아픔이 밀려왔다. 필자는 아프고 애석한 마음까지 겹겹이 쌓이며 숨이 막힐 듯했다. 그래서 필자는 연말을 의미와 값어치가 있는 공연으로 마음을 다스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지난 12월 30일 저녁 7시 30분 문래예술공장 박스시어터의 ‘무명씨의 아홉 짐’의 공연이 눈에 띄었다. ‘무명씨의 아홉 짐’은 전통적인 지게꾼들의 노동요를 바탕으로 창작된 마당극이다. 여기에서 ‘아홉 짐’은 세시풍속에서 유래한 것으로 나무를 아홉 짐하고, 새끼를 아홉 발로 묶으면 부자가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 공연은 2018년부터 서울문화재단 예술 창작 활동 지원사업에 뽑힌 <가락프로젝트> 연속물 가운데 하나다. 급속한 산업화로 공동체 문화가 무너지면서 마을의 민속 문화가 더 이상 전승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시작되었다. 이창훈 감독은 “민속 문화가 사라지는 것에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시작하였다. 사라져가고 있는 민속 문화를 만나기 위해 가락프로젝트의 길을 계속 가겠다.”라고 말했다. 무대는 양쪽에 계단을 놓았고 악단이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얼마 전에 보려고 책상 한편에 쌓아놓은 책들이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전에는 바닥이 드러나기 전에 미리 책을 주문하여 항상 볼 책이 쌓여있었는데, 이번에는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가만히 있었습니다. 새 책만 계속 볼 것이 아니라, 그동안 보았던 책 가운데서 기억에 남는 책을 다시 보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바닥이 드러나자 ‘무슨 책을 볼까?’ 하며 책장을 둘러보는데, 그런 내 눈에 먼저 《미술쟁점》이란 책이 들어왔습니다. 최혜원 씨의 호 청련(靑蓮)은 푸른 연꽃이란 뜻이겠지요? 청련은 서울대 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직접 화가로도 활동하면서 아트컨설팅, 경매기획자 등의 일도 하고, 학생들은 물론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강좌에서도 미술을 가르칩니다. 그러다가 조선일보에 「명화로 보는 논술」을 연재하였는데, 이 책은 그렇게 연재한 글을 중심으로 세상에 나온 것입니다. 책 제목이 《미술쟁점》이지요? 책 제목에서부터 시중에 널려있는 일반 미술이야기 책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다. 청련은 책을 내며 이렇게 말합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지금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수많은 명화를 보고 있자면 수백 년 전의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