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전번에 소개한 일본인 스나가(須永)는 김옥균의 진정한 친구였던 것으로 보인다. 김옥균은 절해 고도 오가사와라 섬에서 인편으로 스나가에게 붓글씨를 보내면서 다음과 같은 문구를 곁들였다. 「小笠原島夏日、為試病腕、寄贈知我者」(오가사와라 섬에서 여름날, 병든 팔을 시험해보기 위해 ‘나를 아는 이’에게 보낸다.) 김옥균은 스나가를 ‘나를 아는 이’이라는 뜻의 ‘知我者’(아지자)라 불렀다. 이 말은 원래 중국의 고전 《시경(詩経)》에 나오는 것인데 시경에는 이 단어에 이어서 「謂我心憂」(위아심우: 내 마음을 걱정하다)가 나온다.
스나가의 일기에는 오가사와라 고도에서 보낸 김옥균의 고통이 담겨 있다. 김옥균을 방문하고 돌아온 유혁로가 전해준 김옥균의 실황이다.
“위장병과 류마티즘은 아직 낫지 않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배앓이까지 앓고 있답니다. 여름이 다가오면서 개미와 독충, 뱀의 습격을 받습니다. 극히 쇠약하여 안색이 초쵀하고 몸은 말랐습니다… ”
스나가는 1888년 10월 13일 치 일기에 츠지 카쿠자부로(辻覚三郎)의 사망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그가 누구길래? 바로 김옥균이 혁명에 실패한 뒤 제물포에서 일본배 치토세 마루호(千歳丸)를 탔을 때 그를 구해 준 선장이다. 그 위기의 시간에 조선 관리와 주한 일본 공사가 김옥균의 하선을 명했다. 그 때 “이 배는 나의 관할이오, 김옥균을 내줄 수 없소”라며 김옥균을 보호해 주었던 선장이 바로 그 사람이다. 김옥균의 생명의 은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스나가는 그 사실을 일기에 적어 놓은 것이다.

김옥균이 갑신정변에 실패한 뒤 일본 망명시 선상에서 일본 선원에게 써준 붓글씨 . ‘雲山浩渺(운산호묘: 구름 낀 산들이 넓고 아득하다)’ (출처: 경향신문 2012년 4월 5일자)이 글씨를 스다씨의 증손녀가 오래 오래 보관해 오다가 2012년 한국에 무료 기증하였다. 128년만의 귀향인 셈이다.
일제 강점기 때 이런 일이 있었다. 김옥균이 일본과의 관계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하여 훈장과 작위를 수여하자는 움직임이 일본인들 사이에 일어났다. 일제 요인들이 주동하여 제국의회에 이 건이 상정되었다. 그 때 스나가가 통렬히 비판한다. 취지는 이런 것이다. 조선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다. 이는 김옥균에게 비통한 일일 것이다. 조선의 처지에선 일본이 적국일진대 김옥균이 적국이 주는 훈장과 작위를 달가와 하겠는가? 김옥균에게 훈장과 작위를 주겠다니 그를 능멸하는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두 번 죽이는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어찌 차마 그럴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