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밀라노 두오모 성당에서 미사를 드릴 때의 얘기다. 기도문을 읽으시다가 '밀라노의 수호성인 성 암브로시오 (Santo Ambrosio da Milano)'를 발음하시는데 이태리어를 잘 하시지만 폴란드 출신이라 발음이 서툴러 'Santo Ambrosio dammi Lano) 라고 읽으니 듣는 사람들은 '암브로시오 성인이시어 나에게 항문을 주소서'로 잘못 알아듣는 황당한 경우가 생기는 바람에 한동안 외설적인 유머가 나돌았던 적이 있다. 나는 어려서 국어 점수가 좋았던 적이 거의 없었는데아마도 정신이 산만하여 주제 파악을 잘 못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맞춤법과 발음법의 경우는 참으로 억울하다. 요즘의 우리말 맞춤법과 발음을 보면 내가 어릴 적에 틀렸던 문제들이 지금은 정답으로 바뀐 것을 보기 때문이다. 우리말을 이렇게 변화시킨 상대가 누군지 알아내어 내 점수 돌려달라고 소송을 걸고 싶은 장난기도 발동한다. 나는 비록 국어 점수는 안 좋았지만 어려서 이미 언어 진화의 선두주자였었다고 농담을 한다. 성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발성과 발음의 중요성을 알게 되어 특별한 관심을 가지다가 유학을 가서는 우
[그린경제=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우리 속담이 있듯이 노래 한 곡으로 만사가 해결된 따뜻한 온정의 나라 이태리에서 생긴 미담이 있다. 한 유학생 부부의 귀염둥이 딸아이가 목욕을 하다가 화상을 입게 되었다. 욕조에 뜨거운 물을 먼저 틀어 놓고 딸의 목욕을 준비하던 엄마가 갑자기 걸려온 전화를 받는 사이에 4살의 어린 딸아이가 그만 욕조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아이의 비명에 놀란 엄마는 이웃 이태리 사람들 도움으로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옮겼으나 전신에 1도, 2도 화상을 입어서 1달 넘게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다행히 서울의 강남에 비교되는 로마의 신도시 EUR(에우르) 지역에 있는 화상 전문병원을 이태리 사람들이 추천을 하여 비교적 좋은 조치를 취하였다. 아이가 회복될 무렵 부모는 병원비가 걱정되었다. 월세도 간신히 내며 어렵게 유학생활을 시작하고 있던 부부는 가진 돈과 동료 유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병원비를 마련해 보았지만 장기 입원과 전문적인 화상치료에 병원비는 터무니 없이 부족하였다. 퇴원을 1주일 앞두고 원무과에서 호출하여 가보니 외국인에게는 의료보험 혜택이 없으니 돈을 준비하라는 담당 여직원이 혹시나 외국인이라 말
[그린경제=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이탈리아에서 살았던 10년간 나의 정신과 삶에 큰 영향을 주셨던 스승이 몇 분 계시다. 내가 이렇게 많은 스승을 동시에 모실 수 있었던 비결은 특별하지 않고 그저 솔직했을 뿐이다. 나는 새로운 선생님들을 만날 때마다 저는 처음에는 심리학을 전공한 후에 대기업에 입사하였으나 음악이 좋아서 이렇게 뒤늦게 배우고 있으며 전에는 어떤 선생님에게 배웠고 지금은 누구에게 배우고 있으며 선생님께도 좋은 것들을 배우고 싶습니다.라고 정중하고 세세하게 말씀드리면 다들매우 좋아하셨다. 아마도 나의 솔직함이 믿음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운명이어서 그랬던 건지 선생님들을 만나고 함께 했던 이야기도 지금 생각하면 마치 소설 같다. 내가 살던 도시 띠볼리(Tivoli) 두오모 성당에서 만난 팔순 고령의 클레오토 실바니(Cleoto Silvani) 선생님은 참으로위대한 스승이셨다. 성 베드로 성당의 오르가니스트와 레스피기를 비롯한 당대의 기라성 같은 음악가들을 스승으로 모셨었다고 자부심이 대단하셨던 분이신데 실제로는 아주 다정하고 소박하신 분이셨다. 예술의 아들(Figlio dellarte)이라는 별명도 붙여질 정도로 유망했던 30대 초반에 실바니
[그린경제=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우리 부부는 언제나 함께 바라보며 노래한다우리가 일상에서 화음을 이루고 화음을 들어줄 상대는 바로 가까이 있는 가족 아닌가 그러나 우리는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사는 게 아닐까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명절 때가 되면 어디서 조사를 했는지 동네 큰 교회에서 불우이웃돕기라며 쌀과 선물박스를 보내왔다. 이를 받아야 할지, 거절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긴 내가 매월 내는 건강보험료가당시 3만3000원밖에 안 되니 거의 준(準)빈곤층에 속해 있긴 했다. 그 덕에 시립유아원에 1순위로 아이들을 맡기고 보육료도 감면받는 처지였다.그러나 나는 명색이 10년간 이탈리아에서 공부하고 온 유학파다. 뒤늦게 음악을 전공하고 아내와 둘이서 함께 노래 공연을 하는 전업 가수이다. 공연할 때마다 화려한 의상을 입고 나오는 유학파가 빈곤층이라니. 귀국한 뒤 여러 대학에 출강하고 지휘, 노래공연을 하며 10년이 지났지만 비정규직인지라 아직까지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족들은 인내심을 갖고 나를 격려해 주지만 해가 지날수록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취직하거나 장사라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들 걱정했다.사실 나는 어릴
[그린경제=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이태리와 우리나라에 귀국한 후까지 셀 수 없이 많은 결혼식 축가를 부르면서 해프닝도 참으로 많았던 것 같다. 우리 풍속으로 함재비에 견주는 세레나데는 유럽에서 신랑이 신부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동네 사람들에게 신고식도 겸한 결혼 전야제인데 신랑이 노래를 못 부르면 돈을 주고 가수가 대신 부르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아주 친한 이태리 동네 친구의 세레나데를 내가 대신 불렀던 날, 노래도 내가 불렀고 신부도 내 노래들 듣고 허락했으니 첫 날밤 잠자리는 신랑이 내게 양보해야 한다고 진한 농담을 하여 모인 사람들이 박장대소했던 기억이 난다. 아베마리아 소동도 있었다. 나의 이태리 양아버지인 빈첸초의 딸 루치아가 결혼을 할 때였다.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를 라틴어로 불러주기로 오래전부터 약속했었는데 정작 동네 성당의 돈 아고스티노(Don Agostino) 신부님은 완고한 분이라 이 아베마리아가 세속음악으로 작곡된 것이라는 이유로 혼배미사에서 못 부르게 하는 것이었다. 여러 번 신부님을 설득하였으나 꽉 막히신 분이라 나도 은근히 아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수긍하는 척했다가 당일에는 혼배미사 중에 기습으로 신랑신부가 원했던 라틴어 아베마
[그린경제=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8월 26일. 2013한강생명(살가지)문화제의 발대식을 겸한 유엔군 추모제가 열리는 날이다. ▲ 연천 유엔군 화장장 시설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 610) 교통혼잡을 피해 아침 일찍 도착한 연천 유엔군 화장장 시설은 입구부터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다. 사실 미리 받아본 화장터의 사진은 잡초밀림 뿐이어서 어떻게 이런 곳에서 추모제 공연을 할지 걱정이 앞섰었다. 관계자 말로는 이번 행사를 계기로 벌초와 진입로가 정리되었으며 처음으로 유엔군 전사자를 위한 추모제가 이곳에서 열리는 것이라고 하니 부끄럽다. 유엔군 추모제 겸 발대식의 시작을 기다리면서 이번 한강생명문화제의 주제곡으로 내가 작곡한 구상 시인(1919~2004)의 노래시 강에는을 학생들과 함께 연습하는 시간을 잠시 가졌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음향팀에 문제가 생겼다.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지역이라 나는 깜짝 아이디어로 자동차를 가까이 주차하여 음악CD를 크게 틀고 노래하기로 하였다. ▲ 구상의 노래시 강에는 을 제창하는 전인자람학교 학생과 참가자들 전인자람학교 학생들이 줄지어 국화꽃 헌화를 시작하면서 우리 부부는 이국만리에서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 유엔군 전사
[그린경제=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언젠가부터 먹거리문화라는 용어가 자주 거론되더니 이제는 전국 어디를 지나든 자동차 네비게이션에서 근처의 맛집들을 알려준다. 처음에는 몇 집 안되었는데 요즘은 여러 맛집들을 알려주기에 어디로 가야 할 지 방황하게 된다. 거기에 스마트폰의 다양한 서비스도 한 몫을 한다. 복 중에도 먹을 복이 따로 있다는데 요즘은 진수성찬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저 고기는 혹시나 나쁜 고기 ? / 저 야채에는 혹시나 농약이 ? / 저 생선은 혹시나 ?혹시나 병이 생기면 ? / 혹시나 ? / 역시나 ?(그러다가 주인이 이거는 유기농, 저거는 자연산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손이 그쪽으로만 가는 요지경 세상이 되고 말았다.)이제는 좋은 것을 적은 듯이 먹는 것이 현명하다고들 한다. 어짜피 먹어야 사는 것이 인간인데 농약이나 방부제등 환경 호르몬의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적절히 적게 먹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렇게 먹을 것들이 점점 제한되고 있으니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에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해소 된다는 어느 심리학자의 주장은 이제 점점 구시대의 발상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는가. 아무리 과식을 해도 체하지 않고,
[그린경제=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내가 여권을 처음 만들었던 때의 이야기다. 영어에서 D를 느끼한 유성음으로 발음하여 내 이름 '김동규 Kim Dong Kyu' 를 '킴덩~큐' 로 발음되는 것이 영 마음에 안 들어 나는 남들과 다르게 여권이름을 Kim Tong Kyu로 신청하여 '킴통큐'라고 비슷한 소리로 들리도록 하였었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나는 이태리로 유학을 떠나게 되어 또다시 이름으로 인한 은근한 스트레스가 생겼다. 이태리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식 발음을 무시하고 자기네들 식으로 내 이름 김동규 Kim Tong Kyu 를 킴므똥그큐 라고 읽어버리니 내 이름이 너무 우습게 들리는 것이었다. 이태리에 진출해 있는 기업의 이름도 현대(HyunDai)는 윤다이로, 대우(DaeWoo)는 다에부로 발음되며, 한국의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Jung Myung Hun)을 융그뮹그운이라고 읽어버린다. 심지어 어떤 유학생은 콩클에서 우승을 하였는데 자기 이름을 하도 요상하게 부르는 바람에 입상한 줄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야 알게 된 경우도 실제로 있었다. 나는 고민고민 하다가 내 세례명인 요셉 (이태리어로 주세페 Giuseppe)을 닉네임처럼 사용하는 것
[그린경제=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우리 부부는 이태리에서 오래 살면서 성당에서 결혼축가를 여러 번 불렀었는데 신랑 신부가 가장 선호했던 노래 1순위는 역시 아베마리아(Ave Maria)였다. 대부분의 결혼식이 성당에서 혼배미사로 진행되며 엄숙하고 경건한 미사 중에 세속적인 곡을 연주하는 것은 금기사항이므로 그 축가는 성가일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겠다. 이태리 사람들은 슈베르트의 독어로 된 가사대신 그들이 어려서부터 성당에서 암송하는 기도문인 라틴어 성모송으로 가사를 붙여 Ave Maria를 듣기를 좋아한다. 이태리 사람들은 세기의 명곡인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에 가톨릭의 가장 중요한 기도문인 성모송을 라틴어로 붙여서 부른다. 필자도 성악가로서 독일어 발음이 노래하기에 좀 불편함을 느껴 이 노래를 부르게 될 경우 발음하기가 편한 라틴어 아베마리아를 선호하는 편이다. ▲ 아베마리아를 작곡한 슈베르트(왼쪽) 구노 그런데 맹인 가수 안드레아 보첼리가 산레모가요제 데뷔 이후 발표한 깐쪼네 Con te partir (그대와 함께 떠나리)가 발표되자 젊은 연인들은 자신들의 결혼식에서 Con te partir를 축가로 듣기를 원하여 결국 성당에서도 Con te par
[그린경제=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6월 26일에 받아본 휴대폰 문자를 소개하면서 글을 시작해본다. '주세페 김구미 선생님~ 오늘 모처럼 몸도 마음도 건강한 두분 뵈서 반가왔습니다. 7월5일 금요일 저녁 임작가 사진전 오프닝에 오실 수 있으면 함께하시지요. 인왕산! 높지 않아도 장엄하지요? 역시 조선의 궁궐을 호위할 만 하구요. 임작가 사진이 겨울 눈 내린 인왕산 풍광이라 해서 한번 써본 시 입니다. 두분 나날이 기쁨이시길~' 인왕을 깨우다 잠든 인왕을 깨운 것은 바람이었다 오백 년 왕조의 위엄 제국의 탐욕에 스러질 때 펄펄 내리던 눈 호랑이의 포효도 묻혔다 사람들 기억 속 다만 아련한 설화로 남아 있던 산 백두를 넘어 온 겨울바람 녹슨 눈을 쓸어내자 끊어진 금강의 뼈대 다시 이어지고 호랑이 울음소리 들렸다 하얀 힘줄로 인왕을 부둥켜 안았던 소나무 푸른 잎 토해내고 바위에 아로새겨진 종묘사직의 지문 뚜렷하다 겸재의 수묵에서 흐르던 물소리 가슴으로 들려오는 곳 잠 깨어 가부좌 튼 인왕을 만나러 바람 부는 날에는 인왕엘 가자@@@ ▲ 사진작가 임채욱 이 문자메세지를 받았던 날 점심, 나는 아내와 함께 인왕산 아랫동네인 서촌에 지인을 만나러 갔었다. 동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