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기적소리 바람소리 – 연변ㆍ2 기차도 여기 와서는 조선말로 “붕”--- 한족말로 “우(鳴)”--- 기적 울고 지나가는 바람도 한족바람은 “퍼~엉(風)” 불고 조선족바람은 말 그대로 바람 바람 바람 바람 분다 그런데 여기서는 하늘을 나는 새새끼들조차 중국노래 한국노래 다 같이 잘 부르고 납골당에 밤이 깊으면 조선족귀신 한족귀신들이 우리들이 못 알아듣는 말로 저들끼리만 가만가만 속삭인다 그리고 여기서는 유월의 거리에 넘쳐나는 붉고 푸른 옷자락처럼 온갖 빛깔이 한데 어울려 파도를 치며 앞으로 흘러간다. 《장백산》, 2004년 4호 < 해 설 > 이 작품은 아무래도 경계의 공간과 숙명적인 공존의 주제를 시적으로 형상화한 석화시인의 대표작의 하나라 하겠다. 주지하다시피 디아스포라는 지역적 공간이나 정신적 공간에 있어서 아주 미묘한 중간상태에 처해 있고 경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 보다 넓은 영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컴퓨터시대란다 컴퓨터시대란다 안방에 컴퓨터를 들여놨다 타다닥 타다닥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모니터에 그물이 펼쳐진다 먼저 큰 애가 걸리었다 작은 애도 곧 걸려들 것이다 12년 전 37원짜리 선풍기가 들어와서 종이부채, 향나무부채, 파초부채 싹 쓸어가듯이 텔레비전, 오디오, 세탁기, 청소기, 랭동기……. 하나씩 둘씩 들어올 때마다 그 대신 하나씩 둘씩 밀려나간 집식구들 컴퓨터시대란다 어느 프로그램을 설정하면 할머니와 아버지와 엄마와 아이들을 하나씩 둘씩 다시 불러낼 수 있을까 안방에 컴퓨터를 들여왔다. - 《천지》, 1997년 제8호 < 해 설 > 석화시인은 개혁개방시대가 낳은 나젊은 훌륭한 시인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현대의식에 민감하고 남다른 개성적인 풍격으로 뚝 삐어져 나온 보기 드문 재능 있는 시인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지용시문학상 당선시집 《세월의 귀》에 이렇게 썼다. “거송처럼 멀리 내다보고 맹금처럼 깊이 굽어보면서 시의 의경을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발음문제 - 작품 25 병아리가 엄마를 찾고 있다 삐아— 삐아— 아무리 고쳐 들어봐도 그 발음이 틀린다 구개음동화 아니 자음탈락이다 그럴 수밖에 찬찬히 볼수록 양계장 부화기에서 나온 것 알루미늄 냄새가 난다 병원의 소독수냄새도 나는 같다 무정란—체외수정—인공배태—실험관아기 엊저녁 TV화면에서 펼쳐지던 새 아침이 로보트의 손가락에 베일처럼 벗겨지고 어마—어마— 자음이 탈락된 발음이 어데선가 들려오는 것 같아 섬뜩 몸서리 쳐진다 —≪도라지≫, 1993년 제2호 < 해 설 > 시인이 문명에 대한 회의와 비판은 발전에 따라 인간이 점점 왜소해지고 소외되어 설자리를 잃기 때문이다. 인간의 소외는 현대를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이 공동으로 앓고 있는 치유되기 어려운 병이다. 문명에 대한 회의와 비판은 시집 ≪세월의 귀≫의 주요한 주제 가운데의 하나이며 “작품 25 – 발음문제”와 같은 시에서 선명하게 나타난다. 양계장 부화기에서 나온 병아리에게서는 알루미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한배를 타고(渡江) 물위엔 제갈공명 같은 안개가 낮고 안개 너머 대안에선 조승상 같은 뱃고동소리 길다 대륙을 가로지르는 긴 강, 장강 이 강을 건너기 위해 우리는 관광버스 안에 허리 곧게 펴고 앉아있다 저기 한창 시공 중인 대교가 반공중에 신기루처럼 떠 있고 문뜩 나타나서 입을 벌린 뚜룬(渡輪)* 십여 대의 관광버스를 차례차례 삼킨다 북방사람은 돌아가는 길 강남사람은 떠나가는 길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 버스는 배를 타고 이제 모두 저쪽 기슭으로 건너가려고 한다 이게 무슨 인연일가 시간 전 만해도 동서남북 각지에서 그들은 저 각각의 방언으로 나는 또 조선말로 자기 삶을 사느라 떠들었거니 지금 모두 입 다물고 앉아있다 앞뒤 그리고 옆의 좌석에서 차례차례 적벽지전 나가는 삼국군사들 얼굴을 하고 있다 안개는 사방에 짙게 깔리고 강물은 철석철석 뱃전을 두드리고 그리고 우리는 모두 한배를 타고. 2004. 04. 15. * 뚜룬(渡輪) : 버스 등 큰 차량을 싣고 다니는 배 < 해설 > 석화시인의 시에서 중국의 고전에서 인용한 전고들이 적지 않다. 당시(唐詩), 송사(宋詞)나 《삼국연의》 같은 중국 고전에서부터 모택동의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누나! 우리의 달은 마을 뒤 재 너머 할아버지산소로 가는 휘우듬한 언덕마루에서 고무뽈처럼 튕겨 올랐는데 여기 도시에서는 높은 아파트와 커다란 빌딩 사이를 비집고 간신히 떠오르고 있습니다. 누나! 우리의 달은 조잘거리는 도랑물소리와 벌끝 논두렁위에서 은은하게 울려오는 단소소리에 둥둥 떠있었는데 여기 도시에서는 가로등불빛이 희미한 네거리에서 목메게 흐느끼는 색소폰의 부르스와 비발치듯(빗발치듯) 커피색 창유리를 두드리는 나이트클럽의 디스코에 박자를 맞추지 못한 채 이리저리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누나! 우리의 달은 고래등 같이 덩실한 기와집 추녀 끝에 보름달로 걸터앉아서 토끼와 계수나무의 꿈이 되고 옛 구리거울의 그리움이 되고 은쟁반에 흘러넘치는 서러움이 되고 하였는데 여기 도시에서는 색 바래고 구겨진 광고종이 한 조각처럼 깜박거리는 네온등의 오색불빛에 파리해져버린 밤하늘 저켠에 겨우 붙어있습니다 누나! 도시의 달은 이젠 모든 의미를 잃어버린 채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처럼 멀건 흔적 한 점을 남길까 말까하며 밤하늘과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스스로 조금씩 지워져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꿈과 우리의 그리움과 우리의 서러움도 정말 아무런 흔적도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해설> “연변ㆍ5찰떡”은 자칫 연변의 교육열과 아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사랑을 떠올릴 수 있는 시편이지만 보다 많은 함의를 담고 있는 시편이다. 이 시에서 “머리 허연 어른”이 주문처럼 외우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연작시 “연변”의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으리라. 역마살이 낀 것처럼 떠돌아다니지만 말고 찰떡같이 진득이 붙어서 천년만년 살아보자는. 또한 민초들의 원초적인 생의 욕구에 대한 긍정으로 읽히기도 한다. 어려운 환경 속에 어떻게든 뿌리를 내리려는. 다른 한편 “아무데나”, “아무데라도” 붙기만 하면 괜찮다는 생활태도에 대한 성찰과 반성으로도 읽힌다. 시대와 인간의 아픔을 남 먼저 아파하는 것이 시인의 숙명이고 사랑의 방식이며 영원한 숙제라면 연작시 “연변”은 시인이 고향 연변에 바치는 또 하나의 사랑이며 완성된 숙제이다. 새로운 충전을 목적으로 한 시인의 “한국나들이”는 연변에 대한 사랑을 새롭게 확인하는 과정이었으며 이 작품도 그러한 결과물의 하나다. 시의 묘미는 여운에 있다. 좋은 시란 말은 끝났어도 여운이 남아있는 시다. 그렇다면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것을 제한된 언어로써 번역해내는 시평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 《장백산》, 1987년 제4호 < 해설 > "바람이 분다", 이 시에서 나타나는 "문풍지를 바른 집"이라는 공간은 인위적인 "막힘"의 공간으로서 "안전"을 의미하는 동시에 "폐쇄"와 "보수"를 의미하기도 한다. 시에서는 "고금중외"로부터 불어오는 "락타"같이 거센 바람이 "집"에 사정없이 불어칠 때 처음의 부적응에서 오는 맹목적인 저항과 거부에서 초래한 "숨막힘", 그리고 주동적으로 바늘로 "문창"구멍을 뚫어 호흡을 하던 데로부터 나중에는 벽까지 없애치울 의향을 가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는 "막힘" 공간에서 "트인" 공간에로의 진출의 지향을 말해준다.(광천 <공간의 미학>에서)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연변일보≫, 1997년 11월 8일 - 해 설 시인이 시를 쓴다는 그 자체가 창조적인 복잡하고 간고한 작업으로서 테두리를 벗어났을 때만이 시의 가능성이 이룩된다. 석화시인은 ‘곡선의 이미지’에서 이 테두리를 벗어났음이 확연하다. 제목은 곡선이라는 명사를 들고 나왔지만 해돋이 전야의 산과 강(1연에서)은 해돋이 황홀경을 펼쳤고(3연에서) 쏟아지는 해살 속에 클로즈업된 우리 민족의 여성을 눈부시게 세워놓는다. 곡선과 산, 강, 언덕, 하늘, 무지개, 해, 여인은 의미론적으로 말할 때는 이질성을 띤 사물이지만 관조적으로 말할 때는 동질성이 있는 것이다. 그 동질성이 바로 곡선이다. 이질적인 사물의 공통점을 유추해내여 시작을 진행하는 것은 테두리사유를 벗어나는 하나의 비결이 아닐까? 석화시인은 곡선을 기하학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찾았고 자연에 서있는 “옥색 한복차림의 / 저 여인”한테서 찾았다. 주목해야 할 것은 시인의 목적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자연보다 우리 민족 여성이 더 아름다운 극치를 이룬다는 것을 꾀함으로서 인간애—사랑의 목적에 도달해보려는 시인의 착상이다. 석화시인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작품 해설 시인은 작품에서 ‘누나’를 향하여 무슨 말인가 연신 ‘발신(発信)’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일방적인 ‘발신’이다. ‘누나’라고 불리는 ‘대상’에서부터 한번도 ‘답신’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나’는 다만 ‘수신’할 뿐 한 차례도 ‘발신’하지 않는다. ‘누나’는 마지막까지 ‘수신’만 한 것이다. ‘내’가 겨울과수원의 한가운데서 ‘누나’에게 말을 건넨다기보다 ‘누나’에게 일방적인 ‘통신’을 하고 있었으며 ‘누나’는 한 마디 말도 없었으며 마지막까지 듣기만 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응답이 없는 ‘통신’이였다. 하늘을 향하여 ‘통신’을 발송하였지만 무수한 전파는 공중에 분해되고 흩어져버렸을 뿐이다. 거기에는 ‘누나’가 없었다. ‘겨울과수원’의 한 가운데에도 그 밖의 어디에도 ‘누나’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확실히 ‘누나’를 향하여 ‘통신’을 진행하고 있다. “누나, 지금 꽃은 피어있지 않고 있습니다.”라고. 석화시인의 작품에서 보이는 ‘누나’의 이미지는 이와 같이 은근하게 표현되지만 ‘남자’의 상대로서의 ‘여자’가 아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어린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누나’이며 ‘어머니’와 같고 대자연속의 꽃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연변라지오텔레비죤신문>, 1997년 5월 작품 해설 예술이란 그 분야를 막론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도전정신과 그것을 내 것으로 하려는 의지를 필요로 한다. 쉽게 서정이라 불리는 자칫 무력한 시풍에서 벗어나 사물을 기호화하고 끊임없이 뻗어 가는 정신세계를 시로 끌어들이려는 그의 노력은 그래서 귀한 것이다. 산문형태로 씌여진 위의 시는 시인의 언어적 탐구가 외적 세계에 대한 응전의 방식과 연관지어보려는 노력과 맥을 같이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한국에 사는 우리가 읽어도 전혀 이질감이나 시적 성취 면에서 떨어지지 않음을 위의 시에서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모더니즘적인 시적 세련됨은 물론이요, 시인의 사물을 바라보는 엄정한 내부의 시선이 항상적으로 유지되고 있음도 알 수 있다. [임헌영(한국 문학평론가) <중국조선족 시인 석화의 작품세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