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낱말 풀이 * 경리, 로반: 조그만 기업체 사장을 낮춰서 부르는 말 < 해설 > 석화의 시는 “능청스러움”에서 알 수 있다시피 감정과잉보다는 감정절제가 잘 되어 있다. 어쩌면 지극히 객관적인 담시 속에 감정적인 가치판단은 녹아있다. 시 “륙촌형”을 보자. 여기서 보다시피 우연히 “륙촌형”을 만난 반가움이나 그의 비극적 삶에 감정파문이 없을 수 없겠으나 시적 자아는 조용하고 담담하기만 하다. 감정적인 가치판단은 독자들의 몫이다. 그래서 석화의 시는 음미할 만하다. 한마디로 말하여 석화 시는 내용과 형식에 걸쳐 풍부하고 다채로운 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다. 그의 시는 생활을 민감하게 포용하고 시대와 더불어 호흡을 같이 하며 조선족의 실존적 삶에 예각을 맞추어 예술적 승화를 가져왔다. 특히 그는 개혁개방 초기 조선족시단의 현대시에로의 변신 및 포스트모던시대 조선족의 정체성을 비롯한 삶의 실존에 대한 조명에 있어서 독보적인 존재가 되겠다. 이로부터 적어도 그의 시는 중국조선족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당당하게 장식하게 됨은 더 말할 것도 없다.(우상렬 “석화의 시세계”에서)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 《해란강문학성》, 2016년 10월 26일 < 해 설 > 석화 시는 3행의 짧은 시이나마 이미지화 및 의경창조, 그리고 상징화가 잘 되었다. “한국삼행시 -1”에서 “감 감 노란 감”을 “등잔 두 점”으로의 이미지화, “천 번 흔들려/피어난다 말거라/그럼 뽑힌다”“한국삼행시 -5”의 꽃을 은유로 끌어들여 창조한 전반 시의 상징적 카테고리도 참신하고 감칠맛이 난다. 실로 “점철성금(点鐵成金)”의 신기함이 있다. 한국은 너무 익숙하고 친절한 나라라 어쩌면 독특한 시적 영감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시인은 인생본연의 실존을 노래하는 데로 나아간다. 그리고 우리 삶에 “한국삼행시 –5” 모난 돌이 정을 맞지 않던가. 그리고 "한국삼행시—6" 삶의 바람직한 정설과 다른 한 진실한 역설에 가슴 아프겠지. 그리고 “한국삼행시 –8” 꼬리 없는 사람이 된 인간, 꼬리 있는 동물과 어울리지 못하는 허전함의 역설로 일종 생태평형을 갈구하지 않던가. “한국삼행시 –9” 세월의 덧없음과 인생무상, 이 세모에 더 절실히 느껴지겠지. 결국 “걸어 가거라 / 이 세상 모든 길은 / 집에 가는 길” “한국삼행시 -1”을 보자.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시선집 《연변》, 45쪽 * 오얏 : 자두 < 해 설 > 석화시인의 이 시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감칠맛이 나는 서정시다. 시인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예언하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이 작품은 기승전결의 내적 구조를 가진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시다. 제1연은 기(起)에 해당하는데 여기서는 칠월 장마뒤끝의 오얏이 애기엄마 젖꼭지만큼 하다는 기발한 비유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비유는 독창성을 전제로 하고 원칙적으로 한 번 주어지는데 그것은 시인의 특허다. 분홍바탕에 자주빛이 감도는 오얏을 애기엄마 젖꼭지에 비유한 것은 아마 석화시인이 처음이 아닌가 한다. 이게 바로 모양과 색깔의 동질성에 바탕을 둔 “이질동구(異質同構)”, 즉 이질적인 사물들 간의 비유가 성립될 수 있는 까닭이요, 형식주의 자들이 말하는 “낯설게 하기”다. 제2연에서는 기(起)를 받아 물고 꽃잎을 나비에 비유했고 오얏이 어제 오늘 다르게 굵어진다고 했다. 승(承)에 해당되는 대목이다. 쉽게 말하자면 분위기를 조성하고 능청을 떨었다. 제3연과 제4연의 첫 구절에서는 “노랗게 단물이 들었다”는 시각적 이미지와 “입술을 톡 쏘는 싱싱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 《연변일보》, 1987년 2월 28일 < 해 설 > 이 시는 1989년에 간행한 시인의 첫 시집 《나의 고백》 첫 페이지에 실린 시집의 머리시 “나의 노래”다. 여기서 필자가 방점을 찍은 “님”이 나타내는 것이 무엇인가를 구태어 밝힐 필요가 있겠는가. 우리가 그 후 시인의 대표적 작품을 거론하면서 많이 회자하는 시구인 “나는 나입니다 / 그리고 당신도 당신이시기를 바랍니다.”를 석화의 자아의식, 독립인격의 선언이라고 본다면 이 시에서 표현한 자기의 노래를 “그리운 님, 님에게만 바쳐지는 것이랍니다.”라고 피력하였으니 이를 석화의 시대적 사명감과 사회적 책임감의 선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시집 《나의 고백》은 예술상에서 석화와 그의 동갑들의 곤혹과 충돌과 모순을 훌륭하게 체현하고 있다. 또한 시집 《나의 고백》에는 살아 볼만한 이 세계에 대한 젊은 시인의 열정적인 포옹의 자세가 보이며 또 끊임없는 과제, 그것도 아름찬 과제 앞에서 분투하다가 지친 모습도 보이며 뜨거운 정감의 불길도 보이지만 또 냉정한 사색의 궤적도 보인다. 물론 우리는 시를 평할 때 시인의 선언에만 머무를 수 없다. 시인과 시에 대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시선집 《연변》 28쪽 < 해 설 > 석화의 "사랑 - 연변 20"은 최근 년간 조선족시단에 나타난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이고 그 예술적 기교도 아주 성숙된 경지에 오른 애정시의 하나이다. 이 시의 예술적 표현에서의 가장 큰 특징은 용전과 패러디의 묘미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시 창작에서의 적절한 용전(用典, 전고의 인용)은 마치도 금반지에 다이아몬드나 귀중한 보석을 박아 넣음으로써 반지가 더욱 광채를 띠게 하고 값이 가게 하는 데에 비유할 수 있다. 남자의 갈빗대를 뽑아 여자를 만들었다는 것은 기독교 《구약성서ㆍ창세기》에 나온다. 석화시인은 이 전고(전례-典例와 고사-故事)를 억지로 가져다가 인위적으로 박아 넣은 것 같은 감을 주지 않게 아주 암시적으로 처리하였다. 하기에 이 시를 다 읽고 나서야 사람들은 이 시가 사실은 《구약성서ㆍ창세기》 인간창조의 이야기를 빌어다가 부부의 사랑을 암시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전고를 인용해도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고 아무런 작위의 흔적이 없이 처리한 기교가 대단히 돋보인다. 이 시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암시로 일관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시에서의 서정적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 해 설 > 순결하고 진실하고 달콤하고 영원한 사랑을 위해서는 “하나의 동산”을 선뜻이 버려야 하며 가려진 모든 것을 벗어야만 한다. 시인에게 있어서 인간의 과다한 욕망은 생명의 의의와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서 반드시 “버림”의 대상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지성적인 추구로부터 시인은 그에 가벼운 풍자와 냉소를 던져주기도 한다. “사과를 먹자”, 이 시에서의 사과는 물론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상징적 이미지로 볼 수도 있겠지만 무의식 이미지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의식된 사랑세계는 벼슬과 금전과 문호 등을 사랑 조건으로 하는 “얻음”을 위한 사랑 세계와는 성격을 달리한다하겠다. “버림”의 시학은 비단 인격형성에서 뿐만 아니라 사랑 실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시인은 참사랑의 실현을 위해서는 모든 허울과 이해타산을 버려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벗어버리는”데 사랑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고 진실이 있고 영원히 있다고 보았다. 시 “사과를 먹자”와 “그 모습 다 벗고 포도들은 포도주가 된다”,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처럼”, “코스모스여-누나”, 등과 《사랑학개론》 계열 시편들은 허울 벗은 무공리성만이 참사랑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 해 설 > 한국 독자들에게 중국 조선족 문학이 다른 지역 한국계 이주자 문학보다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간단히 말해 공용어 이외의 각 민족의 독자적인 언어, 문화를 허용해온 중국 특유의 소수민족 정책 때문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에는 민족언어와 공동체의 고유문화를 가르치는 교육제도, 민족의 역사문화를 연구하는 연구기관, 민족어를 사용하는 매체(방송, 신문)와 독자적인 문단이 형성되어 있다. 앞에서 인용한 석화 시에는 중국의 동북3성 연변지역에 처음으로 이주, 정착했던 시인 자신의 조상 이야기가 들어 있으며 가족을 주제로 한 시에도 그 가족이 살아온 이야기가 등장한다. “수십 년을 하루같이 / 조밭 김 매시 듯 가꿔오신 살림살이에 / 즐겁던 일 노엽던 일 아프던 일이 / 두벌김 가라지만큼이나 많았겠지만 / 말로 해서 조 이삭 영근다더냐는 듯이 / 언제나 몸을 먼저 움직이던 아버지” 그의 시작품은 이렇게 조상들이 살아온 땅과 자연에 뿌리박고 있으며 중국 조선족 사회가 대대로 이어온 역사, 풍속, 문화를 창작의 원천으로 대하면서 이를 작품 속에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최근 해외 이주자 문학, 동포 문학에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고백-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남들이야 나를 무엇이라 하던 나로서는 내가 이 세상 가장 사람다운 사람인줄 압니다. 남들은 나를 두고 “혼”이 나갔다고 하지요. 뜨는 해와 마주 웃고 흐르는 냇물과 속살거리며 지는 꽃을붙잡고 우는 나를 두고… 허나 그들이야 어찌 해가 품은, 냇물이 실은 꽃이 안은 그 깨끗하고 성스러운 혼을 알 것입니까. 남들은 나를 “넋”이 없다고 하지요. 웃으면 허파가 터져라 미친 듯 웃고, 울면 마구 뒹굴며 마음껏 울고 가슴을 두드리며 하늘도 실컷 욕하는 나를 두고… 허나 웃을 줄도 울 줄도 모르는 그따위 “혼”이나 “넋”이야 천만 개 있은들 어디에 쓰리까. 남들이야 나를 무엇이라고 하든 님이여, 님께서는 나를 이 세상 가장 사람다운 사람이라 할 것입니다. 1979년 6월 3일 -《아리랑》 제22호, 1986년 2월 < 해 설 > 이 시에는 시인의 주체의식이 잘 표현되었다. 이 시에서 석화는 인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우리말, 우리라는 말 맑은 물결이 조약돌사이로 굴러가는 소리와 부리 고운 산새 서로 친구들을 부르는 소리와 얄포름한 꽃잎이 파르르 입술을 여는 소리와 아름답고 신비한 모든 소리들이 모여 하나로 울려퍼지는 우리말 어머니의 품속에서 숨결로 이어지고 아버지의 눈빛을 거쳐 온 세상 만물을 이름 지으며 해 달 별 천만년을 이어온 그 빛발과 같이 또다시 천년만년을 이어갈 우리말 현애절벽*이면 막아선다더냐 만경창파라면 막아낸다더냐 몇 가닥 철사줄이야 또 어찌 막는다 하더냐 하나의 핏줄 속에 굽이쳐오면서 두만강 대동강 한강을 다 합하여 백두의 폭포수로 쾅쾅 쏟아질 줄도 아는 우리말 고개 높이 들어 저 먼 곳을 바라보며 한가슴에 응어리진 내 넋과 내 혼을 다하여 “하아 느으을—” 불러보면 끝없는 하늘처럼 아득히 푸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나는 돌이 아니외다 내 앞에서 그리고 내 뒤에서 “자넨 돌이야” 하는 이들이 두루 있어도 나는 정말 돌이 아니외다 길가에서 돌, 돌, 돌 구른다고 다 그저 돌이라고 하지 마시우다 들판에 널려있는 이름 없는 것들 중의 하나이라고 어찌 다 돌이겠수 더군다나 정과 마치를 손에 쥐고서 “모난 돌이야”라고는 더욱 마시우다 돌이 아닌 것을 자꾸 돌이라 해서 돌이 되겠수마는 그래서인지 나도 돌이 되고 싶을 때도 정말 있수다 그러나 나는 돌이 아니외다 풀이나 귀뚜라미나 바람일지는 몰라도 진정 돌만은 아니외다 《한국서예》, 1991년 제4호 < 해 설 > 이 작품에서 시인은 소박한 언어와 평이한 이미지로 자신의 시적주제를 선명하게 제시한다. 석화시에서 보면 몽롱시의 의식들이 그의 작품에서 많이 드러난다. 이러한 시들을 보면 상기의 시와 “나의 장례식”, “나는 나입니다” 등과 같은 시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