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이레끝(주말) 잘 쉬셨습니까? 아침에 일터로 오면서 밝은 해를 보니 제 마음도 환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햇볕이 모인 낮에는 더워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죠. 저는 쉰다고 쉬었는데 이레끝 앞에 이틀 동안 아이들을 데리고 닦음나들이(수학여행)를 다녀오느라 힘이 들었는지 입술에 물집이 잡혔네요. 이레끝이라고 그저 쉴 수만은 없습니다. 해야 할 일들이 있기 때문이죠. 해야 할 것 가운데에는 쉬는 것도 하지만 이레동안 먹을 것, 쓸 것을 사는 일을 빼 놓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저것 사서 집에 오면 또 해야 할 게 있지요. 짐을 풀어서 바로 넣을 것은 바로 넣고 또 나눠 담을 것은 나눠 담아야 합니다. 나누어 담은 것들은 풀매듭을 해서 넣어 둡니다. 그래야 다음에 꺼내 먹을 때 풀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풀매듭'은 '풀기 쉽게 맨 매듭'을 가리키는 토박이말입니다. 맬 줄 아는 사람들한테는 쉬운 거지만 모르는 사람한테는 어려운 것이기도 합니다. 풀매듭을 할 때는 고를 내어 매어야 하는데 고를 내지 않고 마구 옳아 맨 매듭은 '옭매듭'이라고 한답니다. 흔히 신발끈을 맬 때 풀매듭으로 묶는데 자꾸 풀리는 게 싫어서 옭매듭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
[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새벽 서쪽 하늘에 유난히도 밝은 별이 있다. 샛별이라고 했다. 고도 3,600m 산 능선에 자리 잡은 사원에 발을 들어 놓자 붉은 가사를 입고 내게로 다가와 생글생글 맞이하는 어린 동자승의 반짝이는 눈빛이 그러했다. 샛별 같았다. 천진무구한 얼굴, 반짝이는 눈 속에 금방이라도 빨려 들어가 버릴 듯한 유혹을 느끼며 나를 반기는 고사리 같은 어린 동자승의 손을 잡았다.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였다. 아직은 엄마 품에서 응석을 부릴 나이인데 어찌하여 이렇게도 깊은 산골에 들어와 불상 앞에 앉아 염불한다는 것인가? 가슴이 아리고 두 눈이 뜨거워졌다. 필자는 올 3월, 한 달가량 단독으로 히말라야 중턱에 있는 부탄에 가서 문화 취재를 하고 돌아왔다. 그 기간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어린 동자승들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부탄 취재차 돌아본 사원마다 많은 아이들이 붉은 가사를 입고 수행하는 모습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하늘을 찌를듯한 거목들이 울창한 숲속, 그리고 보기에도 아슬아슬한 해발 3,600고지 기암절벽에 있는 ‘추푸네 도지파모’ 사원에서 어른 스님들과 함께 수행하고 있는 어린이들의 모습들이 한국에 돌아온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소설. 말 그대로 ‘작은 이야기’라는 뜻이다. ‘소설’이라 하면 무언가 긴 호흡의 이야기를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 이 책에서 다루는 ‘소설’은 보통 10분 이내로 할 수 있는, 원고지로 따지면 10매 안팎의 짧은 이야기다. 지은이 조용헌은 재야의 기인과 고수들을 두루 만나 천문, 지리, 인사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며 한국 고유의 문화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다. <조선일보>에 ‘조용헌 살롱’을 인기리에 연재하고 있고, 동양철학을 재미있게 풀어내는 작가로 이름이 높다. 이 책, 《조용헌의 소설》은 짧은 이야기 261편을 두 권으로 나누어 전달한다. 조선일보에 연재된 칼럼을 기반으로 구성했고, 10분 이내로 충분히 할 만한 ‘작은 이야기’ 가운데 세간의 여론, 재미, 정보를 두루 담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가운데 눈길을 끄는 이야기 세 편이 있다. 첫째는 ‘푸레독’ 이야기다. 검으면서 푸르스름한, 신비로운 색감을 자랑하는 푸레독은 유약을 바르지 않은 옹기다. 코팅 효과를 내는 유약을 쓰지 않고 1,200도 온도에서 굵은소금을 넣는다. 솔가지를 태우면서 발생한 연기가 그릇으로 침투해 검으면서 푸르스름한 색깔을 빚어낸다. 푸레독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맥주는 1잔만 먹어서 운전하기에는 지장이 없었다. 서울 시내 같으면 운전할 엄두를 내지 못하지만 여기는 시골이고 또 집에까지 골목길로 가면 2km 정도에 불과하므로 염려할 것이 없었다. 집에 도착하여 대문을 여는 순간, K 교수는 “아차, 너무 늦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야간수업은 밤 9시 20분이면 끝난다. 보통 때는 강의 끝나고 손 씻고 바로 퇴근하면 9시 40분에 집에 도착하는데, 오늘은 12시가 넘어버렸으니, 아내는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이 되었을 것이다. 아내에게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K 교수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자지 않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아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본다. “왜 이렇게 늦게 와요? 무슨 일이 있었어요?” “아, 야간 강의 끝나고 원고를 쓸 게 좀 있어서 늦었어요.” “이상하네. 내가 연구실로 전화해도 안 받던데. 두 번이나 전화했는데...” “그래요? 왜 전화가 안 울렸을까? 아, 알았다. 내가 강의하는 동안에 연구실 전화를 학과 사무실로 돌려놓았는데,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지 않아서 그런 모양이지. 조교는 9시 반이면 퇴근하니까.” K 교수는 순간적으로 둘러대었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마음이란 구걸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먼저 타인에게 마음을 다했을 때, 비로소 남의 마음을 물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지요. 봄에 씨앗을 뿌려야 가을에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상대에게 먼저 마음을 주어야 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음은 물질이 아니거든요. 돈으로 살 수도 없고, 힘으로 강요할 수도 없지요. 마음은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것이지,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강물이 끊임없이 흐르듯, 사람도 마음을 끊임없이 주고받으며 성장합니다. 마음을 주는 것은 감정 표현을 넘어 상대를 존중하는 행위입니다. 진심으로 상대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어야 하지요. 컵은 비어 있어야 채울 수 있습니다. 마음도 그러하지요. 상대의 마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마음을 비우고 열어야 합니다. 현대 사회는 너무나 빠르게 변화합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삶에 바빠서 타인에게 마음을 주는 것을 어려워하지요. SNS를 통해 쉽게 연결될 수 있지만, 정작 진정한 소통은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마음은 부메랑입니다. 우리가 던진 마음은 다시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작은 친절, 따뜻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풀돌다: 어떤 둘레를 돌던 쪽과 거스르는 쪽으로 빙빙 돌다 보기월) 꼬인 줄을 풀돌리면 풀린다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날이 오늘도 흐립니다. 어제는 덥기까지 해서 찬바람틀(에어컨)을 켜기도 했는데 오늘은 좀 낫다고 합니다. 제 가까이에 여느 사람들과는 많이 다르게 사는 아이가 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단단히 꼬인 줄처럼 꼬여 있답니다. 꼬인 줄을 풀돌리면 풀린다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래서 풀 수만 있다면 풀어 주고 싶은데 제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이런 제 마음도 모르고 오늘도 아침부터 저를 어렵게 합니다. '풀돌다'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풀돌다'는 '어떤 둘레를 돌던 쪽과 거스르는 쪽으로 빙빙 돌다'는 뜻입니다. 많이 쓰시는 말로 하면 '돌던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빙빙 돌다'는 뜻이지요. '풀돌다'는 말을 처음 보시는 분은 조금 낯설게 느껴지실 겁니다. 강강술래를 할 때나 여러 사람이 손을 잡고 도는 춤을 출 때 한 쪽으로 돌다 돌던 쪽과 거꾸로 도는 것을 보셨을 겁니다. 그렇게 도는 것을 가리킬 때 '풀돌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흔히 쓰는 '역회전'을 '풀돌기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 이베리아반도에서 대정전이 발생한 소식은 국내 언론에서도 모두 보도되었다. 보수 언론의 대표 격인 조선일보는 2025년 4월 30일 <재생에너지 탓인가... 스페인 대정전 미스터리>라는 제목 아래 아래와 같은 기사를 내보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4월 28일 두 나라 전체에 걸친 대규모 정전이 발생했다. 전기로 움직이는 도시 기반 시설 대부분이 멈추면서 사회 전체가 순식간에 멈췄다. 수십만 명이 전차ㆍ지하철 등에 갇혔고, 도로에선 신호등이 꺼져 큰 혼란이 벌어졌다. 비행기 이착륙에 차질이 생겼고, 휴대폰과 신용카드 결제는 먹통이 됐다. 정전은 스페인 기준 낮 12시 33분(한국 시각 오후 7시 33분)에 갑자기 발생했다. 스페인 마드리드·바르셀로나, 포르투갈의 리스본·포르투 등 대도시를 포함한 모든 지역이 피해를 입었다. 스페인과 국경을 맞댄 프랑스 남부 일부 지역도 영향을 받았다. 전력은 10여 시간이 지나서야 순차적으로 복구되기 시작했다.” 바쁜 현대인들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기사를 다 읽지 않고 제목만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조선일보의 기사를 끝까지 읽어보면 대정전의 원인은 아직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오늘은 들여름달 스무하루, 5월 21일이자 '부부의 날'입니다. 어린이날도 있고 어버이날도 있는 들여름달, 5월을 흔히 '가정의 달'이라고 합니다. '가정의 달'을 '집'이라는 토박이말을 살려 '집의 달' 또는 '집달'이라고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렇게 집과 아랑곳한 기림날(기념일)이 많은 달에 두 사람이 만나 하나가 된다는 뜻을 담아 '2'와 '1'이 함께 있는 스무하루 21일을 '부부의 날'로 삼았다고 하죠. '부부'를 토박이말로는 뭐라고 하는지 아시는지요? '부부'라는 말이 널리 쓰이다보니 '부부'를 가리키는 토박이말이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부부'를 토박이말로는 '가시버시'라고 하는데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보니, 이런 토박이말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말집(사전)에 '부부'를 찾으면 비슷한 말로 '가시버시'가 나오지 않습니다. 이러니 '가시버시'라는 말을 알려주지 않으면 알 길이 없기도 합니다. 하지만 '부부'도 알고 '가시버시'도 알고 있으면 때에 따라 곳에 따라 알맞게 골라 쓸 수 있어 좋을 것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가시버시'를 '부부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어둠을 불평하기보다는 차라리 한 자루의 촛불을 켜라 -펄 벅(Pearl S. Buck, 1892∼ 1973)- 지금은 자신의 조국이 사라지는 모습을 목도하고 있지만, 언젠가 민족정기가 어둠에서 깨어나면 잠은 비록 죽음의 가상(假像)이기는 하나 죽음 그 자체는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게 될 한국인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호머 헐버트(Homer B. Hulbert, 1863~1949), 《PASSING OF KOREA(대한제국멸망사)》- 포식자의 느닷없는 기습공격을 찌르레기떼가 현란하고 아름다운 군무(群舞)로 물리치는 모습은 경이롭다. 우리는 그 숨 막히는 광경을 하늘이 아닌 지상에서 보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대한민국의 거리와 광장에서 펼쳐지는 빛의 무혈 혁명이다. 73살을 넘긴 나도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광장에 나가곤 한다. 이 순간도 포식자들은 발톱을 숨긴 채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 조류학자들은 찌르레기떼가 포식자의 공격을 받으면 절묘한 공중 곡예(aerial acrobatics)를 연출함으로써 적을 혼란에 빠뜨려 안전을 도모한다고 한다. 흉맹한 포식자가 쪼그마한 찌르레기를 표적 삼아 거듭 기습공격을 시도하지만, 그때마다 찌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여러 사람들이 말을 한다. 문화재나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이 전시회를 봐야 한다고. 그래서 마침 연휴 뒤끝, 용인에 있는 호암미술관으로 갔다. 그것도 이태원 쪽 리움미술관 앞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아주 편하게... 겸재(謙齋) 정선(鄭敾)의 작품을 모아놓은 용인 호암미술관의 가장 큰 겸재전시회다. 겸재의 원화를 한꺼번에 가까이에서 처음 보는 기회다. 가장 유명한 인왕제색도. 이건희 회장 생전에 아끼며 호암미술관에 보존해 오던 것인데 사후에 나라에 기증되어 공개된 이후 가장 많은 관람객이 몰린, 겸재의 대표작이다. 인왕제섹도(仁王霽色圖), 인왕산의 제색을 그린 그림이란 뜻이다. 제색이란 말의 제(霽)는 비가 그친 상태를 묘사한 글자이니 인왕제색(霽色)은 비가 그친 인왕산의 산뜻한 경치를 말함이다. 비가 걷히면서 바위들이 깨끗한 자태를 드러내는 광경, 가만히 보면 그 광경이 동영상처럼 움직여 피어오르는 듯 착각에 빠진다. 가장 큰 특징은 흰색에 가까운 인왕의 봉우리와 암석들이 먹의 검은색으로 그려진 것. 아주 새롭고 신선한 기법이다(세상을 뜬 한국화가 남천 송수남이 남해 다도해의 풍광을 그리면서 봉우리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