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지난해 민기 원년 김옥균에 관한 이야기를 몇 번 올렸다. 못다 한 이야기는 훗날로 미룬다. 해가 바뀌었고 마침 글쓴이가 어떤 미국인에 관한 책을 준비 중이므로 그에 대해 짤막짤막한 이야기를 올려볼까 한다. 주인공은 미국인이지만 개화기 때의 조선과 우리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애옥살이에 지친 민중이 수백 년 아니 수천 년 동안 가장 자주 내는 목소리가 있다. “아이고 죽겠다!” 이 탄식을 평생 한 번도 토하지 않고 사는 한국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 기묘한 소리의 성조(聲調)를 처음 채록한 사람은 놀랍게도 조지 포크(GeorgeC. Foulk, 1856-1893)라는 미국인이다. 지금으로부터 140여 년 전인 1884년 11월 7일 그는 여행일기에 이렇게 썼다. 짐의 무게에 짓눌려 지칠 때 pokeyo man(보교꾼 곧 가마꾼)는 이렇게 말한다. “O-u-i-go,chuketta!(아이고 죽겠다!)”. 곧 “ O-ui-go(아이고, 감탄사), I’ll die!(죽겠다)”다. “아이고”는 늘 내는 감탄사로 기묘한 느낌을 준다. “아이”는 힘없고 낮은 소리로 시작하는데 ‘이’에서는 길게 목소리를 끈다. 그다음에 ‘고’가 나오는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역(歷)세권. 역사적 장소가 가까이 있는 지하철역 주변을 재치 있게 이르는 말이다. 제목에서부터 재기발랄함이 뿜어져 나오는 이 책, 《역사를 품은 역, 역세권》은 종각역, 쌍문역, 안국역, 독립문역 등 일상생활에서 흔히 이용하는 지하철역 인근에 있는 역사적 장소를 풍부하게 담아냈다. 지은이 박은주는 <역사스테이 흔적>, <만권의 북살롱>, <공감사람> 등을 연출한 PD다.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지하철역이 품고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맛깔나게 들려준다. 책에 나온 몇 군데 역들을 소개해 본다. #4호선 쌍문역 2번 출구 쌍문역으로 나와서 마을버스를 타면 간송 전형필 선생의 옛집이 모습을 드러낸다. 흔히 ‘간송’이라 하면 성북동에 있는 간송미술관을 떠올리지만, 미술관과는 별도로 간송의 옛집과 묘역이 있는 장소가 ‘간송옛집’이다. 간송옛집은 19세기 말 전형필의 양부 전명기가 곡식 등 소출을 관리하기 위해 지은 집이다. 그가 죽은 뒤에는 한옥 부근에 묘소를 꾸미고 제사나 차례를 지내는 집이 되었다. 한국전쟁 때 일부가 훼손되기도 했다. 2013년 간송미술문화재단과 도봉구가 함께 퇴락한 본채와 부속 건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이야기] “이쿠노에서도 투표를 할 수 있었지만 일부러 영사관까지 갔는데 오빠가 없었습니다. 혹시 점심 먹으러 가지 않았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김길호 소설 <오사카 투표 참관인> 가운데, 《월간문학》 (683호) 2026.1월호- 처음에 《월간문학》 신년호를 펴들고 ‘이달의 소설’에 실린 김길호 작가의 <오사카 투표 참관인>이라는 제목을 발견하고는 ‘소설’이 아니라 ‘수필’이 아닌가 싶었다. 소설 제목이라는 게 본래 따로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왠지 투표라는 말도 그렇고 참관인이라는 말이 소설의 세계가 아닌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설이냐 수필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이리라고 생각하고 다시 첫 줄부터 읽어 나갔다. 김길호 작가의 글을 읽다보니 지난해 대통령 선거까지 나 자신이 숱한 선거를 해왔던 기억이 새롭다. 투표를 해온 횟수보다 앞으로 투표할 횟수가 얼마 남지 않은 나이지만 솔직히 투표가 어떻게 이뤄지는 지에 대한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한표를 찍는 행위 외에는 무관심 그 자체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재일동포인 주인공 민우는 여차여차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폭설(暴雪) 눈이 내린다 어지러운 땅에 (빛) 폭탄처럼 휘몰아쳐 내린다 (돌) 천박한 다툼 꾸짖는 사자후 (초) 저 눈 녹은 후에 똑똑히 보라 (달) ... 24.1.27. 불한시사 합작시 폭설이 내리면, 온 천지가 하얀 몸에 눈꽃비단을 두른 듯 화려한 장관이 펼쳐진다. 어렸을 때라면, 산에, 들에 핀 하얀 눈꽃들 사이를 쏘다니며 미끄러지고 넘어지며 깔깔 대었을 것이다. 그 시절이 다 가고 지긋해졌어도, 폭설이 내리면 여전히 설레이기 마련이다. 자질구레한 다툼으로 어지러워진 세상에서도, 잠시나마 새하얀 순결의 순간을 누릴 수 있으니까 말이다. 지난해에는 100여 년 만의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 습설이어서 산에서는 쌓인 눈의 무게에 나무둥치가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메아리치기도 하였다. 특히 아름답게 곡선미를 자랑하던 토종 소나무들의 굵은 줄기가 힘없이 부러져서 무척 안타까웠다. 요즘에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새로운 패턴의 폭설이 내리고 있다. 얕은 바다인 서해의 해수면 온도가 유달리 높아지면, 북서쪽에서 내려오는 찬바람과 온도차가 20도 이상 벌어진다. 그러면 서해바다에 눈구름이 크게 발달하여 한반도에 폭설이 몰아친다. 올해도 매서운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고등생물이 양성생식을 채택하자 대가가 따랐다. 성의 구별이 없던 때에는 개체의 죽음이 없었다. 생물은 분열을 되풀이하여 종족은 무한히 보존되고 죽음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그러나 양성으로 나뉘면서 생물은 분열 대신 결합이라는 방식을 채택하고 자손의 탄생이라는 개념이 나타나고 동시에 부모의 죽음이라는 개념이 나타나게 되었다. 먹이의 한계라는 틀 안에서 자손의 보존을 위하여 부모는 죽음을 강요받게 된 것이다. 양성으로 나뉘어 짝짓기를 하면서 정절 문제가 대두되었다. 동물의 세계에서 일부일처제는 매우 희귀하다. 암수가 서로에게 정조를 지키는 일부일처제는 동물의 세계에서는 규칙이 아니고 예외인 것이다. 오래 전부터 생물학자들은 새들 중에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면서 새끼를 길러내는 종이 많다고 생각했다. 어떤 학자는 조류의 94%가 일부일처제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 새끼들의 아버지를 밝혀내는 유전자 지문법을 도입하여 연구해 본 결과, 한 둥지에서 자라는 새끼 새들의 평균 30% 이상이 함께 사는 수컷의 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예로부터 바람을 피운다고 알려진 동물들도 그 정도가 생각보다 심하다는 것이 밝혀졌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나쁜 놈은 나뿐인 놈이다.” 이외수 작가의 명언 중에 필자가 자주 인용하는 말이다.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다. 자기밖에 모르는 놈 곧 나뿐인 놈이 나쁜 놈인 것이다. 어렵게(?) 말해서 이기주의자가 나쁜 놈이라는 뜻이다. ‘우리’라는 말은 나의 범위를 넓힌 말이다. 우리 어머니, 우리 아들, 우리 딸, 우리 집, 우리 학교, 우리나라 등에서 보듯이 우리말에서는 우리의 범위가 매우 넓다. 우리라는 말을 자주 쓰고 있다. “우리가 남이가?”라고 외치면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고 만다. 심지어는 ‘우리 마누라’라는 말도 어색하지 않다. 영어로 ‘우리 마누라’를 번역해 보라. our wife? 마누라를 공유한다는 뜻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 마누라 또는 우리 남편이라는 표현은 우리나라 부부들이 어색하지 않게 자주 쓰는 말이다. 나를 강조하는 ‘개인주의’가 발달한 서구 문화와 공동체를 강조하는 ‘우리주의’가 발달한 우리 문화의 차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198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인간과 애완동물의 관계에 관한 국제 토론회”가 열렸다. 이 국제회의에서 동물행동학의 권위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콘라드
[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부탄을 행복하고 아름다운 나라라고 말하면, 사람들의 생각은 종종 엇갈린다. 많은 이들은 나라의 부유함, 기술 수준, 생활 환경 등을 기준 삼아 국가의 질을 판단한다. 세계에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나라가 있는가 하면, 아직도 가난과 결핍 속에 살아가는 나라들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룩셈부르크나 스위스와 견주면, 아프리카 남수단이나 브룬디는 여전히 최빈국의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체로 기반시설과 산업 경쟁력이 강한 나라가 경제적으로 발전해 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발전의 이면에는 환경 파괴, 자원 고갈, 사회적 갈등, 과도한 도시화와 소비문화와 같은 그림자도 함께 존재한다. 빠른 속도의 개발은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인간성과 자연, 공동체 정신을 잃게 만든 대가를 요구했다. 그런데 이러한 세계적 흐름 속에서, 조용히 다른 길을 걸어온 나라가 있다. 바로 부탄이다. 부탄은 빠른 개발을 선택하지 않았다. 물질적 풍요가 곧 행복이라고 단정하지 않고, 자연의 흐름과 조화를 이루며 천천히 삶의 기반을 만들어 왔다. 그들은 알고 있다. 빠른 개발이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지금은 민기 2년 새벽 2시 15분. 어둠을 극복한 민기원년이 이제 막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 후광이 새로운 날의 여명을 부르고 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산맥 정상의 자작나무처럼 모진 시련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 때문에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으며 소멸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 공명이 탁월할 수밖에 없다. 지금 서양의 민주주의는 옛 영화를 뒤로 한 채 희미한 그림자를 끌며 뒷걸음치고 있다. 이때 돌연 아시아의 한 나라에서 빛이 솟았다. 빛의 무혈혁명이다. 지구촌의 민주주의가 어둠에 잠길 때 이곳 코리아에서 희망의 빛이 솟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눈 감을 수 없다. 외치고 싶다, 아테네에서 지는 해 서울에서 떴노라고. 이 천고(千古)의 빛은 이 땅의 민주주의를 도약시키는 것을 넘어 인류의 문명사에 파동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아니 꼭 그랬으면 좋겠다. 새날 새 빛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며 두 편의 시를 올린다. 어울러 새로 탄생한 민기 달력을 신고한다. K-민주주의와 민기시대의 무궁한 발전과 영광을 위하여. 밤이다. 이제 솟아오르는 샘들은 더욱 소리 높여 이야기한다. 나의 영혼 또한 솟아 오르는 샘이다. 밤이다. 이제야 비로소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오우천월(吳牛喘月)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중국 남쪽 양쯔강 아래는 열대성 기후로 매우 무덥습니다. 그쪽에 오(吳)나라가 있었지요. 오우천월(吳牛喘月), 오나라의 소들은 태양을 보고 괴로워하며 헐떡이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밤에 뜬 달을 보고도 태양으로 착각하고 헐떡이며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곧 한 번 겁을 먹으면 그 공포가 계속 남아 합리적인 사고를 방해하는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나라 속담에도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말이 있으니 한 번 겪은 두려움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쳐 사소한 일에도 과민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감염병이 지구를 강타한 적이 있습니다. 메르스가 사스가 코로나가 맹위를 떨치고 인간 세계를 위협했지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질병으로 사망에 이르렀으니 질병의 전염을 막고자 사회적으로 많은 희생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그 시절 전염병에 걸린 사람은 그 사람이 훌륭하든 그렇지 않던 똑똑하든 그렇지 않든, 착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경멸의 대상이 됩니다.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닌데도 말이지요. 오나라 소들이 달을 태양으로 착각했듯이, 우리는 바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양반. 양반은 조선시대 관료층의 양대 축이었던 문반과 무반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양반은 양반과 중인, 상민, 천민으로 나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사회를 이끄는 지도층이었다. 양반이 조선의 법, 제도, 문물과 불가분의 관계였기에 조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양반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양반의 생애를 시기별로 보여주는 이 책, 《조선시대 양반은 어떻게 살았을까》는 김 판서댁 아들로 태어난 똘이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일생 전체를 혼인이나 과거급제와 같은 굵직굵직한 사건과 함께 보여주는 책이다. 똘이의 인생을 따라가다 보면, 명문가 자제로 태어나 높은 관직에 올랐던 양반의 인생을 생생히 체험할 수 있다. #장면1. 즐거운 책거리 날 옛날 서당에서는 훈장이 학동들이 배우는 책을 완전히 다 익혔다고 판단하면, 자그마한 잔치가 열렸는데 이를 ‘책거리’, 또는 ‘책씻이’라 했다. 책거리는 책을 뗀 학동의 부모가 감사한 마음을 담아 조촐히 음식을 준비해 마련했다. 왕실에서도 이런 풍습이 있어 정조 역시 책거리를 했던 기록이 《홍재전서》에 남아 있다. (p.31) 지난 어린 시절 책 한 질을 읽고 나면 어머님께서 간략한 음식을 차려 주셨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