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손병철 박사/시인] 통일신라(統一新羅) 때 활동한 승려 충담사(忠談師)는 향가 문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삼국유사》에 그의 작품 두 편이 전한다. 하나는 임금의 덕을 찬미한 〈안민가(安民歌)〉, 다른 하나는 노모에 대한 기파랑 화랑의 효심을 노래한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다. 이 두 작품은 모두 불교적 세계관 위에서 인간의 도리와 마음의 바른길을 노래하고 있어, 향가가 단순한 민요가 아니라 수행과 교화의 문학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충담사와 관련된 가장 유명한 고사는 '차(茶)'와 연결되어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충담사는 해마다 3월 3일과 9월 9일이면 남산 삼화령(三花嶺)에 올라 차를 달여 미륵불에게 공양을 올렸다고 한다. 임금이 이를 듣고 사람을 보내 그를 불러오게 하자, 충담사는 “나는 항상 부처에게 차를 올리는 사람입니다”라고 답하며 산에서 내려와 임금을 알현했다. 임금이 그의 덕행을 기려 국사(國師)로 삼으려 하였으나, 충담사는 이를 사양하고 수행자의 삶으로 돌아갔다고 전한다.
이 짧은 일화 속에는 신라 시대 차문화의 성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당시 차는 오늘날처럼 일상의 음료라기보다, 불보살에게 올리는 공양물이자 수행자의 청정한 마음을 상징하는 매개였다. 우리의 차문화는 중국에서 전래한 불교와 결합하여, 선(禪) 수행의 맑은 정신을 돕는 음료이자, 향ㆍ등불ㆍ꽃과 함께 공양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충담사가 차를 달여 미륵불에게 올린 행위는, 차가 곧 마음을 씻는 의식이자 깨달음을 향한 공경의 몸짓이었음을 보여준다.
충담사의 향가를 떠올리면, 그 시적 정조 역시 차의 성품과 닮았다. 〈안민가〉에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자 하는 자비의 마음이 흐르고, 〈찬기파랑가〉에는 덧없는 세상 속에서도 빛나는 이상적 인물에 대한 찬미와 그리움이 담겨 있다. 이는 쓴맛과 맑음을 함께 지닌 차(茶)처럼, 삶의 고단함을 껴안되 마음은 흐리지 않는 태도와 닮았다. 끓는 물에 찻잎을 우리면 처음에는 떫고 쓰지만, 잠시 후 맑은 향이 우러나듯, 수행자의 삶 또한 고행과 고독을 거쳐 청정한 향기를 남긴다.
삼국ㆍ통일신라시대의 차문화는 아직 귀족과 승려 중심의 제한된 문화였지만, 그 안에는 이미 차를 통해 마음을 다스리고 세속을 관조하려는 동아시아적 정신이 싹트고 있었다. 충담사의 차 공양은 단지 종교적 의식이 아니라, 자신을 비우고 중생과 부처 사이를 잇는 매개로서의 차를 실천한 행위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한 잔의 차는 흔한 일상처럼 보이지만, 그 잔 속에는 천여 년 전 경주 남산 삼화령 자락에서 충담사가 달였을 법한 고요한 물소리의 솔바람과 향기가 겹쳐 있다. 빠르고 소란한 시대일수록,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는 일은 작은 수행이 된다. 충담사의 향가가 노래한 ‘바른 마음’과 ‘자비의 길’은, 지금, 이 순간에도 차의 온기를 통해 우리 삶 속으로 조용히 스며들고 있다. 필자의 40여 년 단골 전통찻집인 인사동 뒷골목 '삼화령(三花嶺)'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그리운 장소다.
라석(羅石) 손병철(孫炳哲)
북경대학 미학ㆍ철학전공 철학박사/시인
물파공간화랑 서울ㆍ북경 관장 역임
《라석심물시》, 《손병철시전집》 등 9권 시집 펴냄
국제복희역학회 회장, 한국불한선차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