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의 열째 하지(夏至)다. 해는 황도상에서 가장 북쪽인 하지점(夏至點)에 자리 잡게 되는데 북반구에서 밤이 가장 짧아졌지만, 낮시간은 14시간 35분으로 1년 중 가장 길다. 정오의 해 높이도 가장 높고, 해로부터 가장 많은 열을 받는다. 그리고 이 열이 쌓여서 하지 이후에는 몹시 더워진다. 북극 지방에서는 온종일 해가 지지 않으며, 남극에서는 수평선 위에 해가 나타나지 않는다. 남부지방에서는 단오를 전후하여 시작된 모심기가 하지 이전이면 모두 끝나며, 장마가 시작되는 때이기도 하다. 하지가 되면 모내기도 끝나가지만 가뭄이 들면 기우제(祈雨祭)를 지낸다. 예전에는 기우제를 어떻게 지냈으며, 다른 나라는 어떨까? 그리스ㆍ로마 신화에 보면 주신(主神)인 제우스가 비를 내린다고 믿었기 때문에 제우스의 신목(神木)인 떡갈나무 가지에 물을 적시며 비손했다고 하며, 로마에서는 소형 신상(神像)을 티베르강에 흘려보내면서 비 오기를 빌었다고 한다. 게르만 민족 사이에서는 처녀를 발가벗겨 물을 뿌리면 비가 내린다고 믿었다. 인도에서는 개구리에게 체를 통해 물을 뿌리거나 뱀의 모조품을 만들어 물을 뿌리거나 물을 끼얹는 풍습이 있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곡우(穀雨), 봄비가 내려 백 가지 곡식을 기름지게 한다는 날이다. 그래서 이 무렵 농가에서는 못자리할 준비로 볍씨를 담근다. 또 곡우 무렵부터는 찻잎을 따서 덖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즈음 언론들은 이를 취재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언론이 죄다 녹차라며 보성 차밭만 취재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녹차는 우리 고유의 전통차가 아니라는 것이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여러 차 관련 문헌을 봐도 차(茶)라고만 나오지 녹차(綠茶)는 없다. 그 까닭은 우리 전통차가 녹차와는 다를뿐더러 예전부터 그냥 차라고만 했기 때문이다. ▲ (그림 뉴스툰 제공) 2천 년 전통차와 일본 역수입 녹차 전통차와 녹차는 우선 품종이 다르고 가공 방법이 다르며, 우려내면 빛깔이 다르다. 먼저 전통차는 삼국시대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래 야생으로 맥이 이어져 왔다. 그리고 가공방법은 솥에 열을 가하면서 비비듯 하는 덖음방식이다. 그렇게 해서 만든 차를 우려내면 빛깔은 다갈색을 띈다. 그러나 우리 차나무가 일본으로 건너가 오랫동안 토착화 과정을 거치며 녹차가 되었다. 가공방법은 찐차(증제차)이고 차를 우
[우리문화신문=진용옥 명예교수] 고종의 전화 봉심(奉審- 능 참배) 《고종실록》 고종 37년(1900년) 3월 14일에 함흥과 영흥의 본궁으로 떠나는 윤용선과 이용직을 소견하다는 제목으로 아래와 같은 기록이 나온다 [전략] 상이 이르기를, 마땅히 전화과 주사(電話課主事)가 기계를 가지고 동행하여야 할 것이니, 전화로 먼저 아뢰면 필경 빠를 것이다.하였다. 윤용선이 아뢰기를,그렇게 하면 이보다 더 편리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북도(北道)의 능침(陵寢)을 봉심(奉審)하는 것은 원래 연한이 있는데 갑오년(1894) 변란 이후로 오랫동안 예를 행하지 못하여 항상 송구스러웠다. 경이 어진(御眞)을 배종(陪從)하는 일로 북도에 내려 가거든 예조(禮曹)의 당상(堂上) 함께 각릉(各陵)에 봉심하고 만약 고쳐야 할 곳이 있으면 편의대로 잘 처리하라. 해도의 도신(道臣)과 겸장례(兼掌禮)에게 분부하여 일체 봉심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그동안 고종과 순종이 문상 또는 봉심을 전화로 했다는 사실이 구전으로 전해오기는 했으나 기록으로 처음 확인되었다. 능침 봉심에 전화과 주사가 기계를 가지고 동행한다는 것이다. 봉심이란 왕명을 받들어 찾아본다는 뜻인데 참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의 다섯째 절기 청명(淸明)으로 청명은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뜻을 지닌 말이다. 청명은 한식(寒食) 하루 전날이거나 같은 날일 수 있는데 이번엔 하루 차이로 내일이 한식이다. 임금이 내려준 불, 모든 백성에게 나눠주는 사화(賜火)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청명조(淸明條)에 따르면, 이날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 새 불을 일으켜 임금에게 바치며, 임금은 이 불을 정승과 판서를 비롯한 문무백관 그리고 360 고을의 수령에게 나누어주는데 이를 사화(賜火)라 한다. 수령들은 한식날 다시 이 불을 백성에게 나누어주는데,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을 수 없기에 찬밥을 먹는다고 해서 한식이라고 했다. ▲ 임금이 내려준 불, 모든 백성에게 나눠주는 사화, 이래서 찬밥을 먹는 한식이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불씨를 꺼트리면 안 되는 예전에는 이렇게 온 백성이 한 불을 씀으로써 같은 운명체임을 느꼈다. 꺼지기 쉬운 불이기 때문에 습기나 바람에 강한 불씨통[장화통-藏火筒]에 담아 팔도로 불을 보냈는데 그 불씨통은 뱀껍질이나 닭껍질로 만든 주머니로 보온력이 강한 은행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의 넷째 춘분(春分)으로 해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하여 적도를 통과하는 점 곧 추분점(春分點)에 왔을 때다. 이날은 음양이 서로 반인만큼 낮과 밤의 길이가 같고 추위와 더위가 같다. 음양이 서로 반이라 함은 더함도 덜함도 없는 중용의 세계를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24절기는 단순히 자연에 농사를 접목한 살림살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세계를 함께 생각하는 날이기도 하다. 빙실(氷室)의 얼음을 내기 전 현명씨에게 사한제를 지냈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는 이날 조정에서 빙실(氷室)의 얼음을 내기 전에 작은 제사로 북방의 신인 현명씨(玄冥氏, 겨울ㆍ북방의 신)에게 사한제(司寒祭)를 올렸다. ▲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빙고에서 얼음을 꺼내기 전 겨울의 신 현명씨에게 사한제를 지냈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고려사(高麗史)》 길례(吉禮) 소사(小祀) 사한조(司寒條)에 “고려 의종 때 정한 의식으로 사한단(司寒壇)에서 초겨울과 입춘에 얼음을 저장하거나 춘분에 얼음을 꺼낼 때에 제사한다. 신위는 북쪽에 남향으로 설치하고 왕골로 자리를 마련하며 축문판에 ‘고려 임금이 삼가 아무 벼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셋째 경칩(驚蟄)이다. 원래 이름은 중국 역사서 한서(漢書)에 열 계(啓) 자와 겨울잠을 자는 벌레 칩(蟄)자를 써서 계칩(啓蟄)이라고 되었었는데 뒤에 한(漢) 무제(武帝)의 이름인 계(啓)를 피하여 대신 놀랠 경(驚)자를 써서 경칩(驚蟄)이라 하였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겨울잠 자던 동물은 음력 정월에 활동하기 시작하는데, 절기로는 경칩에 해당하며, 음력 9월에는 겨울잠을 자기 시작하는데 절기로는 입동(立冬)에 해당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기(禮記)》 「월령(月令)」에는 “이월에는 식물의 싹을 보호하고 어린 동물을 기르며 고아들을 보살펴 기른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경칩이 만물이 생동하는 시기이므로 이를 보호하고 관리하는 때임을 뜻한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임금이 농사의 본을 보이는 적전(籍田)을 경칩이 지난 해일(亥日)에 선농제(先農祭)와 함께 행하도록 정하였으며, 경칩 이후에는 갓 나온 벌레 또는 갓 자라는 풀을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불을 놓지 말라는 금령(禁令)을 내리기도 했다. 《성종실록(成宗實錄)》에 “우수에는 삼밭을 갈고 경칩에는 농기구를 정비하며 춘분에는 올벼를 심는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하늘에 보름달이 휘영청 떠 있다. 구름 타고 천천히 운명을 항해하는 저 보름달을 본다. 뒷동산에 올라 너그럽고 따뜻한 달빛에 온몸을 맡긴 채 지난 어린 추억을 더듬는다. 오늘은 우리 명절의 하나 정월대보름(음력 1월 15일)이다. 정월 대보름의 달은 한해 가운데 달의 크기가 가장 크다고 한다. 가장 작은 때에 비해 무려 14%나 커 보인다는데 그것은 달이 지구에 가장 가깝게 다가서기 때문이란다. 조선 후기에 펴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초저녁에 횃불을 들고 높은 곳에 올라 달맞이하는 것을 ‘망월(望月)’이라 하며, 먼저 달을 보는 사람에게 행운이 온다.'라고 적혀 있다. ▲ 정월대보름 달맞이, 맨 먼저 본 사람에게 행운이 온다고 믿었다.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우리나라는 농사를 기본으로 음력을 사용하는 전통사회였다. 또 음양사상(陰陽思想)에 따르면 해를 '양(陽)'이라 하여 남성으로 인격화하고, 달은 '음(陰)'이라 하여 여성으로 본다. 달의 상징적 구조를 풀어 보면, 달-여신-땅으로 표상되며, 여신은 만물을 낳는 지모신(地母神)으로 출산하는 힘을 가진다. 이와 같은 우리 문화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동제(洞祭)의 형태는 산신제(山神祭)를 비롯하여 서낭제, 탑신제(塔神祭) 같은 여러 가지가 있다. 산신제는 온 나라에 분포하며, 서낭제는 주로 한강이북에, 탑신제는 한강이남에서 지낸다. 충북 제천시 수산면 오티리에서 지내는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8호 오티별신제(吾峙別神祭)는 한강이북에 분포된 북방계의 서낭제이고 그 제의(祭儀)가 별신제(別神祭, 마을 수호신에게 드리는 제사)의 형식을 갖고 있다. 오티 별신제의 유래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오티마을이 약 400년 전에 이루어졌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별신제의 유래도 400년 전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 특히 오티마을의 뒷산에 봉수대가 있었고 오티마을에 봉화군이 상주했다는 역사적 배경에서 보면 오티별신제는 봉수대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마을 공동의 민간신앙으로 옛날부터 전승되어 왔다. 또 오티별신제는 2년마다 별신제를 지내는 것이 특징이며, 충청북도에서 현존하는 유일한 서낭 별신제이다. ▲ 제천 오티별신제 가운데 서낭당제 오티별신제는 정월 14일 밤, 산신제는 15일 아침부터 다섯고개 곧 봉화재, 해너물재, 흰티재, 구실재, 말구리재에 있는 상당(上堂)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 김남주 시인은 <옛 마을을 지나며>라는 시에서 이 즈음의 정경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바로 겨울이 다가왔다는 손짓이다. 무서리 내리고, 마당가의 감나무 끝엔 까치밥 몇 개만 남아 호올로 외로운 때가 입동이다. ▲ 백양사 들머리의 감나무와 까지, 스님들은 아예 까치들에게 모두를 내주었나 보다. 입동은 24절기의 열아홉째이며, 이 날부터 '겨울(冬)에 들어선다(立)'이라는 뜻에서 입동이라 부른다. 이때쯤이면 가을걷이도 끝나 바쁜 일손을 털고 한숨 돌리는 시기이며, 겨울 채비에 들어간다. 겨울을 앞두고 한 해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때인데 농가에서는 서리 피해를 막고 알이 꽉 찬 배추를 얻으려고 배추를 묶어주며, 서리에 약한 무는 뽑아 구덩이를 파고 저장하게 된다. 입동 전후에 가장 큰일은 역시 김장이다. 겨울준비로 이보다 큰일은 없는데 이 때를 놓치면 김치의 상큼한 맛이 줄어든다. 큰집 김장은 몇 백 포기씩 담는 것이 예사여서 친척이나 이웃이 함께했다. 우물가나 냇가에서 부녀자들이 무, 배추 씻는 풍경이 장관을 이루기도 하였다. 이것도 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열입곱 째인 한로(寒露)로 찬이슬이 맺히기 시작하는 때다. 음력으로는 9월의 절기로서 공기가 차츰 선선해짐에 따라 이슬(한로)이 찬 공기를 만나 서리로 변하기 직전이다. 《고려사(高麗史)》 권50의 한로 관련 기록을 보면 “한로는 9월의 절기이다. (중간 줄임) 초후(한로 15일 동안을 5일씩 끊어서 첫째)에 기러기가 모여들고, 중후에 참새가 줄고 조개가 나오며, 말후에 국화꽃이 누렇게 핀다(寒露 九月節 兌九三 鴻鴈來賓 雀入大水化爲蛤 菊有黃華).”라고 했다. ▲ 한로 때 농촌은 오곡백과를 거두기 위해 타작이 한창이다. "김홍도의 <벼타작>" 한로 즈음은 찬이슬이 맺힐 시기여서 날씨가 더 차가워지기 전에 추수를 끝내야 하므로 농촌은 오곡백과를 거두기 위해 타작이 한창이다. 한편 여름철의 꽃보다 아름다운 가을 단풍이 짙어지며, 제비 같은 여름새가 가고 대신 기러기 같은 겨울새가 오는 때다. 한로와 상강(霜降) 무렵에 사람들은 시절음식으로 추어탕(鰍魚湯)을 즐겼다. 《본초강목(本草綱目, 중국 명나라 때 이시진이 쓴 의학서)》에는 미꾸라지가 양기(陽氣)를 돋우는 데 좋다고 하였다. 한방에서는 한로 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