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구로다니의 서운원을 연 종엄화상의 발자취를 찾아서- 교토 구로다니 (京都市 左京 黑谷町121)에 있는 서운원(西雲院, 사이운인)이 자리한 금계광명사는 일본 3대 문수도량으로 알려진 정토종 대본산 절로 이 절을 연 법연 (法然, 1133-1212, 호넨) 스님은 전수염불(專修念佛) 스님으로 널리 알려졌다. 전수염불이란 복잡하고 어려운 경전을 파고들기보다는 일심으로 염불함으로써 성불한다는 사상을 실천하는 일종의 염불불교이다. 수은주가 36도를 오르내리는 교토의 더위는 무덥다는 말보다는 살인적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정도였지만 더위를 무릅쓰고 7월 15일 구로다니에 있는 서운원을 찾아 나섰다.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18살의 나이로 조선에서 끌려와 갖은 고생 끝에 큰스님이 되어 일본인들에게 추앙받고 있는 종엄화상(宗嚴和尙, 1575-1628)의 향기가 배어 있는 곳이다. 그런데 어째서 교토의 구로다니에 조선인 승려 종엄이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일까? 《일본전사(日本戰史)》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왜장 오노기시게카츠가 종엄을 1593년 9월 일본군이 퇴각 할 때 끌
한국인들은 자신만의 비상금을 어디다 숨겨둘까? 한 보도에 따르면 모 은행 관계자는 "시골의 노인들은 아직도 용돈을 구들장에 보관하는 것 같다."라면서 "장판 밑에 눌린 돈을 새 돈으로 바꾸러 오는 분들은 어머니나 어른들이 가지고 있던 돈이라고 귀띔한다."라고 말했다. 또 주부들은 전자레인지에 비상금을 숨겨 놓는 사례도 발견됐는데 한 주부는 1만 원짜리 90장을 보관하던 전자레인지를 작동하던 중 돈에 불이 붙는 바람에 새돈으로 바꿔가기도 했다는 기사가 재미나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은 쌈짓돈이나 비상금을 어디다 숨겨둘까? 한국처럼 구들장이 없어서인지 그런 기사는 안 보이는데 일본말 가운데 헤소쿠리へそくり란 말이 있다. 우리말로 비상금을 가리키는 말로 여기서 헤소(へそ)란 배꼽을 뜻한다. 예전에 헝겊에 돈을 싸서 배꼽둘레에 묶어두었음 직한 헤소쿠리에 대한 한 생명보험회사의 조사가 흥미롭다. 7월 5일 자 손해보험회사 제팬 DIY생명에서 조사한 전국 20~50대 샐러리맨 세대의 주부 500명에게 ‘2012년 여름 보너스와 가계 실태’를 주제로 한 설문을 실시한 적이 있는데
"최 참판댁의 기둥 군데군데 초롱이 내걸려 있고 행랑의 불빛도 환하게 밝았다.” 박경리의 토지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초롱이라고 하면 왠지 귀여운 등불이 연상된다. 전기가 없던 시절 불을 밝히는 도구였던 초롱은 꽃이름에도 붙어 있는데 금강초롱이 그것이다. 꽃모양이 흡사 신랑신부 가마 타고 시집가던 날 들던 청사초롱 모양을 하고 있어 더욱 정겹다. 그런데 이 꽃이름의 학명은 ‘Hanabusaya asiatica’로 이 꽃에 이름이 붙은 하나부사(花房義質, 1842-1917)는 25살 때 유럽과 미국을 순방한 경험을 토대로 일제가 조선을 강점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던 시기의 조선주재 초대 공사이다. 금강초롱은 1902년 강원도 금강산 유점사 근처에서 자생하는 꽃으로 알려졌으나 지금은 태백산·오대산·설악산·향노내봉·금강산을 거쳐 함경남도에서도 자라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최근에는 경기도 가평군 명지산에서도 금강초롱이 발견되어 화제를 모았다. 그런데 어째서 이 꽃에 하나부사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하나부사의 한자는 화방(花房)으로 사람들은 여기에 초(草)자를 붙여 화방초라 불렀는데 금강초롱에 하나부사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은 일본의 식물분류학자인 나카이 타케노신(中
'착한 일본인 괴롭힌 한국인', 이 말에 삶이 바뀌었다 [대담] 독립운동가 오정화 애국지사 손녀, 아그네스씨의 '신 독립운동 이야기' 12.07.06 18:23 ㅣ최종 업데이트 12.07.06 18:23 이윤옥 (koya26) 아그네스안, 요고이야기, 신독립군 ▲ 미국에서 일본의 역사왜곡 바로잡기에 앞장서고 있는 독립운동가 오정화 애국지사의 손녀 한인 3세 아그네스씨. ⓒ 이윤옥 아그네스 안 지난3일 화요일 오전 11시 아그네스씨를 만난 것은 서울 시내 한 커피숍에서였다. 까만 원피스에 초록빛 스카프가 잘 어울리는 아그네스씨는 단발머리에 아담한 체구의 밝은 모습으로 내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서로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우리였지만 그녀는 한복 차림의 나를 먼저 알아보고 손을 내밀었다. 방한 중인 아그네스씨는 미국 보스턴에서 외과의사로 일하고 있는데 그가 건넨 명함에는 'Dr. Agnes Rhee Ahn' 이라고 쓰여 있었다. 한인 교포 3세인 아그네스씨를 알게 된 것은 여성독립운동가 오정화(1899.1.25~1974. 11.1) 애국지사 때문이었다. 오정화 애국지사는 아그네스씨의 할머니로 3·1운동 때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붙잡혀 유관순 열사와 함께
개봉된다면 가족들과 한번 가서 보셔도 좋을 영화입니다.(7월12일개봉) 남을 이해하고 역사를 이해하는 일은 우리 삶의 가장 큰 중심에 둘 일이라고 봅니다. 바쁠수록.................. 아래 글은 인터넷신문 대자보 2012년 7월 2일자 기고문입니다. ------------------------------------------------------- 조선의 흙이 된 일본인을 아십니까? [시사회] 조선을 사랑한 아사카와다쿠미의 삶을 그린 영화 “백자의 사람” 이윤옥 조선을 사랑한 아사카와다쿠미(浅川巧, 1891.1.15-1931.4.2)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농상공부산림과(朝鮮総督府農商工部山林課)에 직원으로 고용되어 24살 때인 1914년 5월 경성에 첫발을 디딘 이래 급성폐렴으로 40살의 나이로 숨지기까지 16년간 조선에서 살다간 일본인이다. 그 조선 사랑의 삶을 다룬 영화 “백자의 사람”이 오는 7월 12일 개봉된다. ▲ 영화 백자의 사람 전단(왼쪽), 아사카와다쿠미의 생전 모습 날개(주) 아사카와다쿠미가 평범한 임업시험소 직원으로 살다 갔다면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물론 영화나 소설도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심심치 않게 나타나는 곰의 습격 때문에 불안한 일본 6월 25일 오전 11시 50분쯤 야마가타현(山形縣)의 한 초등학교 체육시간에 곰이 나타나 소동이 빚어졌다는 카호쿠신보(河北新報)의 기사가 눈에 띈다. 마침 운동장에는 1학년생 14명과 담임교사가 있었는데 이들은 곰의 출현을 보고 놀라 인근 농협으로 피신을 했다고 한다. 출동한 경찰에 따르면 곰의 크기는 120센티 정도인데 이 곰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학교 현관 유리창에 몸을 부딪쳤다가 문이 잠겨있자 근처 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부수는 등 10여 분 난동을 부리다가 인근 산으로 달아났다고 한다. 이러한 곰의 출몰 기사는 일본에서 심심찮게 뉴스에 등장한다. 그만큼 곰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곰의 습격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사건을 말하라면 아마도 1915년 12월 9일에서 14일에 걸쳐 홋카이도에서 일어난 곰 습격 사건일 것이다. 이날 덩치 큰 불곰(ヒグマ, 히구마)이 민가를 덮쳐 당시 개척민으로 홋카이도에 갔던 7명이 사망하고 3명이 중상을 입어 일본열도는 발칵 뒤집혔다. 이 사건을 소재로 요시무라아키라(1927-2006) 씨는 소설 《비람》을 써서 커다란 화제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아마도 홋카이도의 곰 습
일본인은 왜 한국 김을 좋아하나? 일본사람도 김을 먹는다. 그러나 한국처럼 고소한 참기름을 발라 구워 먹진 않는다. 윤기가 반질반질한 햇김에 갓 짠 참기름(예전에는 들기름을 많이 썼지만)을 골고루 바르고 맛소금을 살짝 뿌려 석쇠에 얹어 가마솥에 불 땐 아궁이 앉아 살짝쿵 살짝쿵 구워내면 이것이야말로 밥도둑이다. 그 고소한 향내가 부엌을 넘어 마당을 쓸던 할아버지 코를 자극하여 “흠흠, 고놈 맛나겠구나”하던 기억이 새롭다. 고마아부라(胡麻油、ごまあぶら)는 우리말로 참기름이다. 이 고소한 참기름을 일본에서는 음식에 거의 쓰지 않는다. 왜일까? 답은 간단하다. 참기름이 들어가는 음식을 먹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참기름이 들어가는 한국 음식이란 어떤 것이 있을까? 김구이 말고도 참기름을 쓰는 한국의 대표적인 음식은 나물이다. 날마다 밥상에 오르는 콩나물부터, 시금치, 고사리, 도라지, 숙주, 비듬나물, 냉이, 달래, 씀바귀, 깻잎 무침 등 한국인은 들과 밭 또는 산에서 나는 식물은 못 먹는 것을 빼고는 거의 다 나물로 무쳐 먹을 정도로 나물을 좋아한다. 이러한 나물은 살짝 데쳐낸 뒤 파, 다진 마늘, 고춧가루, 깨소금, 참기름 같은 갖은 양념을 넣어 무치면
무사시대의 유명한 세 명의 장수를 들라 한다면 단연코 오다노부나가, 도요토미히데요시, 도쿠가와이에야스를 들 수 있다. 두견새가 울지 않는다면 죽여 버려라 - 오다 노부나가 두견새가 울지 않는다면 울게 만들어라 - 도요토미 히데요시 두견새가 울지 않는다면 울 때까지 기다려라 - 도쿠가와 이에야스 세 사람의 성격이 비유적으로 잘 나타나있다. 오다노부나가(織田信長, 1534―1582)에 대한 묘사로는 예수회 선교사인 루이스 프로이스의 표현을 빌리는 게 좋을 것 같다. “키가 크며, 마른 체격으로 수염이 적다. 목소리는 꽤 큰 편이며 항상 무예를 좋아해 천하고 상스럽다. 겸손히 자신을 낮추는 일은 거의 없으며, 자신 이외의 다이묘 대부분을 경멸하고, 마치 자신의 부하 다루듯 한다. 명목상 법화종을 신앙하는 듯하지만 조물주, 영혼 불멸, 사후 세계 등의 존재는 없다고 단언한다. 사업을 빈틈없이 하는 한편 공명에 온 힘을 기울인다. 사람과 대화할 때 둘러대는 것을 싫어한다.” 오다 노부나가가 세력을 키울 수 있었던 점에 대해서는 “실력위주의 인재등용, 상업장려, 사회, 경제기반의 안정” 등을 들기도 한다. 도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 1537-1598)
일본인은 1년에 약 84회 카레를 먹는다 카레 천국 일본! 길거리 아무 곳에서나 손쉽게 카레를 사먹을 수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한 사람이 무려 1년에 84회나 카레를 먹는다고 한다. 일본은 카레만 파는 전문 식당도 많고 7~80살 된 노인들도 카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의 카레 역사가 길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반찬이 없어도 먹을 수 있는 간편함 때문에 즐겨 찾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일본 전국의 12,834개 카레 식당을 소개하고 있으며 카레 조리법(레시피)을 소개하는 사진이 2,440,000 건에 이를 만큼 일본인들의 카레 사랑은 가히 폭발적이다. 재미난 것은 ‘카레’라고 하면 인도음식으로 알지만 현지 고유의 언어로 ‘카레’라는 말은 없다고 한다. 대신 드라비다어족이 푸성귀, 고기, 식사, 반찬을 통틀어 말하는 ‘카리(타밀어:kari - 아래 갈무리 참조)’라는 말을 영어로 ‘curry’로 표기한 것을 일본인들 발음에 맞게 ‘카레(kare)'로 바꿔 부르게 된 것이다. 이름만 카레로 바뀐 것이 아니다. 일본과 한국에서 카레라고 하면 카레라이스라는 하나의 음식으로 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