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서울 종로구 부암동 인왕산 자락에 있는 무계원에서는 올 2018년에도 매주 토요일 오후 4시부터 풍류산방이 시작된다. 풍류(風流)란 음악이고 노래이고 춤이며 넓은 의미로는 다양한 놀이를 의미하는 말이다. 그리고 산방(山房)이란 산에 지어 놓은 집이다. 그러니 산방에서 국악애호가들을 대상으로 소리도 하고, 악기도 연주하는 방중(房中)악회가 바로 풍류산방이 겠다. 올 2018년도에도 종로문화재단이 주최하고 종로구청이 후원하여 4회에 걸쳐 열리는데, 첫회는 11월 24(토)이고 이로부터 12월 1일, 8일, 15일 등 매주 토요일 오후 4시에 열린다. 첫 회는 엊그제 첫 눈이 내리던 11월 24일이었다. 오후 4시부터 시작되었는데, 남녀창 가곡과 가야금 연주를 필자의 해설로 감상하였다. 가곡감상에 앞서 먼저 대금독주곡으로 <상령산>을 전인근의 연주로 소개하였다. 대금 연주자, 전인근은 국악의 명문 중-고-대학을 마치고 현재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젊은 정통파 연주자이다. 그는 낮으막한 소리로 평조회상의 상령산을 불기 시작하더니 곧 <청성잦은한잎>으로 옮겨서 청소리를 쩡쩡 내며 고음으로 치닫는 연주를 하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갈(김영조)은 배달겨레 문화인들을 만납니다. 올곧게 얼넋을 다하여 우리 겨레문화와 함께 살아가는 문화인들의 마음을 열어볼까 합니다. 그 첫 번 순서로 중국 연변 동포 석화 시인을 만납니다. 석화 시인은 연변에서 대학 때부터 문학활동을 해온 문학인으로 널리 알려졌고, 방송인과 출판인으로서도 큰 일을 해왔습니다. 석화 시인의 시에는 민족이 고스란히 담겼으며, 따뜻한 마음이 함께 하고 있음은 물론 늘 새로운 방향을 찾아나가려는 시도를 합니다. - 연변은 우리 동포들이 민족주체성을 지키고 살아온 어쩌면 나라밖 유일한 곳이다. 남의 땅에 발을 붙이며 사는 것만으로도 힘들었을 텐데 연변 우리 동포들이 이렇게 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세상의 모든 것은 자기의 이름으로 존재한다. 그 이름은 내가 원해서 가져지는 것이 아니고 원치 않다고 버려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이름은 “중국조선족”이다. 이는 우리가 원해서 불리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이름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그저 조선사람일 수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경계를 넘어서게 되자 다시 말해 지금으로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 1903.1.25.~ 1926.7.23.) 지사는 2018년 11월 17일 제79회 순국선열의 날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이는 일본인으로 서훈을 받은 두 번째 인물로 첫 번째는 2.8독립선언 때 조선인 유학생 변론을 맡았던 후세 다츠지(2004. 애족장) 변호사다. 스물세 살, 인생에서 이 나이는 얼마나 아름답고 찬란한 시기던가! 가네코 후미코 지사는 바로 그 스물세 살의 나이로 일본 우쓰노미야형무소(宇都宮刑務所) 도치기지소(栃木支所)에서 순국의 길을 걸었다. 독립운동 동지이자 남편인 박열(1902~1974)의사의 부인으로 산 짧은 삶은 ‘일제 침략에 항거한 삶’이었기에 더욱 애처롭다. 그는 일본인이라고는 하지만 한국인 그 어느 누구보다도 더 열렬한 반일론자요, 항일투사였다. 가네코 후미코 지사는 1903년 일본 요코하마 시에서 태어나 아홉 살까지 호적이 없는 무적자였다. 유년시절 조선의 고모 집에서 보낸 7년의 세월은 그가 조선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지니게 된 계기가 되었다. 가네코 후미코 지사는 열일곱 살 되던 1920년 봄에 도쿄로 올라 가 신문팔이, 가루비누 행상, 식모살이, 식당 종업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선소리산타령보존회> 2018 정기공연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였다. 산타령의 이름은 이미 100년 전 발행된 잡가(雜歌)집에 보이고 있으며 답교(踏橋)놀이에서 빠질 수 없던 노래라는 점, 뚝섬패, 과천방아다리패, 왕십리패, 명동, 충무로 일대의 호조다리패나 방아다리패, 용산의 삼개패, 한강패, 쇠붕구패(서빙고), 공덕동의 동막패, 청파동의 청패, 진고개패, 배오개 마전다리패, 성북동패, 자하문밖패, 애오개패 등 등, 전문소리패들이 있었으나 해방이후 단절되었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다 다행히도 60년대 말에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 입타령(口音)이 많고, 장단이 불규칙하며 통성으로 부르지만, 사설 내용이 건전하고, 합창으로 부르는 신명의 소리인 점, 벽파의 고향 성동구에서 열렸고 경기와 서도의 산타령을 한 자리에서 견줄 수 있는 기회였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홍성에서 열린 열네 번째 “가무악 전국경연대회”를 보면서 느낀 이모저모를 소개하고자 한다. 충남 홍성은 옛 홍주였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내포문화권의 중심지로 한국의 역사를 이끌었던 수많은 선현이나 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아오모리라고하면 일본 내에서도 손꼽히는 사과 산지다. 그런데 수확을 앞둔 이곳에 커다란 고민이 생겼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과절도’이다. 사과 절도꾼들은 아예 사과밭에 트럭을 대놓고 사과를 싹쓸이로 털어가고 있다고 과수원 주인들은 울상이다. 특히 올해의 경우 지난해의 13배에 이르는 1만 3천개를 도둑맞았다고 한다. 아오모리 히젠( (青森・弘前)의 한 과수원에서는 ‘후지(富士)’ 품종의 사과를 바로 수확 직전에 털리고 말았는데 “이제 참는 것도 한계다. 너무 화가 난다.”,"수확이 끝날 때 까지 쉬지도 못한다.”와 같은 주인들의 탄식이 줄을 잇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올 들어 처음으로 과일 도난이 드러난 것은 지난 10월 13일로, 아오모리시의 과수원 약 800개(6만 엔 상당) 정도가 손해를 입었다고 한다. 지난 22일에는 히라가와시에서 1,700개(18만 엔 상당), 26일에는 히젠시 사과 과수원 약 4,300개소가 사과털이를 당했다. 30일에는 구로이시에서 1,200개, 10월 1일에는 츠가루시에서 사과 5,000개를 도둑맞는 등 사과털이범들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그렇잖아도 태풍 영향으로 사과 작황이 좋지 않다보니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재담소리 “장대장타령”공연과 <경토리 민요단>의 활동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민요단은 스스로의 발표회, 특별공연, 기획공연 등을 마련하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산골마을이나 해안가의 소외지역을 찾아다니면서 경서도 민요의 멋과 흥을 전파하는 소리의 전도사역을 맡고 있다는 점, 재담극(才談劇)이란 말만 잘하고, 소리만 잘 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 않다는 점을 얘기했다. 또 민요창이라는 소리를 바탕으로 해서 대사처리, 연기력, 춤이나 동작, 등이 종합적으로 훈련되어야 하는 어려운 과정이 소리극이란 점, 장대장이 만포첨사라는 무관 벼슬을 얻어 멀리 떠나면서 또는 한양으로 돌아와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구성한 내용이란 점, 아직 그들의 노래나 연기력, 무대 배경, 소도구 등 부족한 것이 많으나 모든 출연자들이 열연해 주어서 많이 웃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지난 10월 23일 성동문화원 대극장에서 열린 <선소리산타령보존회> 2018 정기공연에 관련된 내용이다. 경기와 서도지방의 산타령을 한 무대에 올려놓아 서로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이 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세탁하는 30분 동안 앞에 앉아있었는데 심심해서 죽을 것 같았어요. 어디가기도 그렇고... 다음 이용 때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가야겠어요.” 이는 오사카에서 코인란도리(셀프빨래방)을 이용하면서 겪은 한 누리꾼이 올린 글이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셀프빨래방이 많다. 가정집이야 웬만하면 세탁기가 있지만 집이 좁거나 방 하나를 세 얻어서 살거나 하는 사람들은 천상 코인란도리를 이용해야한다. 초기의 코인란도리는 좁은 공간에 세탁기와 건조기를 여러 대 들여놓아 정작 빨래를 하러 온 사람들은 앉아서 책을 보거나 할 공간도 없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어느 사이엔가 일본의 코인란도리도 조금씩 변화를 꾀하고 있다. 예전에는 주택가 골목 한 귀퉁이에 자리하고 있던 코인란도리가 어느 사이 대로변으로 나와 커피숍을 겸하는 곳이 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예 이제는 코인란도리 안에서 세탁강좌를 열거나 영화를 상영하는 곳도 생겼다. 11월 5일치 민나노케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도쿄 메구로 쥬오거리에 독일계 체인인 ‘프레디렉 워시살롱 도쿄(FREDDY LECK sein WASHSALON TOKYO)’가 문을 열었으며 이른바 빨래방영화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경기 명창, 노학순의 <재담소리, 장대장 타령> 발표 공연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재담(才談)이란 ‘남을 웃기는 말’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그 말속에 녹아 있는 재치(才致)와 풍자로 사회의 불의(不義)나 불합리한 면을 익살스럽게 비판할 수 있고, 또는 습관화 되었거나 편협된 생각을 유연하고 경쾌하게 흔들 수 있어야 한다는 점, 1900년대 초, 암울했던 시대에 박춘재(1877~1950)명인은 <장대장 타령> 등의 재담소리로 대중들의 주름진 얼굴을 펴 준 것을 얘기했다. 또 박춘재-이순일, 홍경산-정득만-백영춘으로 이어져 온 서울의 재담소리는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는 점, 노학순은 이은관과 이은주 명창에게 배워 국가무형문화재의 이수자가 되었고 무학여고에서 민요강사로 활동했다는 점, 그는 춤과 노래, 연기로 다듬어진 소리극에 남다른 끼를 타고난 사람이어서 백영춘의 <장대장타령>에 입문하여 이수자-전수교육조교의 인증서까지 받아낸 노력형의 소리꾼이란 점 등을 이야기 하였다. 지난 달 16일, 재담소리 <장대장타령>공연은 노학순 이외에 그가 지도하고 있는 <경토리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 마누라가 없는 이 날은 아침부터 프리미엄 『妻いない この日は朝から プレミアム』 →잔소리 하는 마누라가 집을 비우면 더없이 좋다는 뜻 * 늦어도 확실히 늦잠 잤다고 말하는 신세대 『遅れても はっきり寝坊と 言う新人』 →예전 같으면 늦는 경우 버스가 늦게 왔다던가 하는 변명을 하지만 신세대 젊은이들은 ‘늦잠 잤다.’라는 말을 직격으로 한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 내지는 놀라움을 표현 * 체중계 올라가는 용기와 보는 용기 『体重計 上る勇気と 見る勇気』 → 일본 사람들도 다이어트에 신경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시 * 요리가 나오면 사진 찍기까지 기다려야한다 『料理出て 写真撮るまで 待てをする』 → 주문한 음식이 나오면 바로 먹는 게 아니라 일단 사진을 찍느라 바쁜 세태를 말하는 시 * 아버지의 노고를 알고 있는 구두 밑창 『父さんの 苦労知ってる 靴の底』 →아버지의 노고에 민감하지 않은 세태를 구두 밑창을 통해 간접적으로 말하는 시 이는 2018년 2월 15일, 일본 제일생명보험에서 샐러리맨들의 회사생활의 애환을 담은 제31회 “샐러리맨 센류(川柳) 콩쿨대회 100선” 가운데 일부이다. 일본 문학의 한 장르인 센류(川柳)란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화용도(華容道) 좁은 길목에서 조우하게 된 조조와 관우의 이야기를 하였다. 조조가 부하들의 권고대로 관우에게 빌면 관공은 대꾸도 없이 “이 놈, 목 늘여 칼 받으라!”고 호통을 치고, 조조가 “전일을 생각하여 살려 달라.”고 애걸하면 관공은“너는 한(漢)나라 적신이고, 나는 한나라 의장이라. 너를 보고 놓겠는가? 목 늘여 칼 받으라.”고 호통을 친다는 이야기, “살려 달라.”와 “칼 받으라.”의 싸움이 재미있게 펼쳐진다. 마지막 부분이 인상적이다. 수하 장졸이 모두 다 꿇어 엎어져 “장군님 덕행으로 우리 승상 살려 주시면, 여산여해 깊은 은혜 천추만세를 허오리다.”에 관우는 조조를 쾌히 놓아 주고 돌아와 공명께 보고한다. “용렬한 관모는 조조를 놓았사오니 의율시행하옵소서” 공명이 내려와 손을 잡고 회답하되, “조조는 죽일 사람이 아닌 고로 장군을 보냈으니 그 일을 뉘 알리요” 충의가 무엇이고, 사나이들의 의리가 어떤 것인가를 잘 가르쳐주고 있는 대목이 바로 적벽가 끝 대목이 아닌가 한다. 이번 주에는 신념과 자부심이 남다른 경기소리 명창, 노학순의 <재담소리, 장대장 타령> 발표 공연에 관한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