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조지 포크는 1884년 11월 7일 관촉사의 은진미륵을 본다. 다음과 같은 그림을 그렸다. 그림 곁에 관련 정보를 세밀히 기록해 놓았다. 모자 부분의 끝에 달린 고리의 도안이 특히 인상적이다. 그림은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아름다운 느낌을 준다. 과학성과 미학을 나름대로 갖추고 있는 작품이 아닌가 한다. 포크는 이 날짜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다. “은진(unjin) 고을에서 미륵상으로 가는 길은 대체로 북쪽 방향이다. 풀이 자란 언덕을 넘어가 굽이진 길로 5리 거리였다. 언덕에 무덤이 매우 많았고 다랑이논들도 보였다. 차츰 내리막길로 내려가 들가에 이르렀다. 언덕 정상 부근에는 화강암 바위들이 솟아있다. 미륵상은 평야 위로 솟은 동산의 100피트 30m가량 높이에 세워져 있다. 미륵상의 이마에는 황금 명판이 새겨져 있다. 지름이 10인치(25cm)는 되어 보였다. 그 가운데에 수정구슬이 박혀 있다. 모자 부분이 무척 크고 아래 면으로 조각이 잘 되어있다. 나는 6장의 사진을 찍었다.” 다음에는 사진을 감상해 본다.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지난번 글에서 첫 한글 지도는 한국인이 아니라 미국 군인이자 외교관인 조지 포크(George C. Foulk, 1856-1893)가 제작(의뢰)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 한글 지명을 직접 쓴 사람은 누구였을까? 조지 포크의 의뢰를 받은 조선인일까? 아니면 조지 포크가 직접 썼을까? 아직 학계에서 밝힌 바 없는 것 같다. 확언할 수는 없지만 조지 포크가 직접 썼을 가능성이 있다. 그는 한국어를 구사하고, 한자와 한문 및 한글을 알고 늘 썼던 첫 미국인이었다. 그의 한글 공부와 한글 필치를 그가 지니고 다녔던 대학노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자료는 현재 미국 버클리대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지 포크는 조선의 외교부서와 국한문 혼용 문서를 자주 교환하였다. 다음은 포크가 조선 외무대신에게 보낸 공문(음력 1886. 3월 20일자)의 일부다. 포크의 손글씨를 외무부서에서 등록한 것이다. 포크와 조선 정부 사이 주고 받은 문서가 모두 서울대 규장각에 보존되어 있다. 단, 손글씨 원문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다. 확인하지 못했다. 어쨌든 포크는 늘 한글을 썼다.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한글표기 서울 지도를 처음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한국인이 아니다. 미국의 해군 장교이자 외교관이었던 조지 포크였다. 그는 1884년부터 1887년까지 3년 동안 조선에서 해군무관 혹은 대리공사로 일했다. 그 기간에 아래와 같은 서울 지도를 제작(의뢰)하였다. 이 한글 지도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수록된 경조오부도( 京兆五部圖)의 지명을 한글로 바꾼 것이다. 경조오부도는 도성 밖을 중심으로 그린 지도다. 경조(京兆)는 도읍을 뜻하고 한성부(漢城府)의 행정구역이 5부(部)로 나누어져 있었기에 ‘경조오부’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조지 포크의 한글 서울 지도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대동여지도상의 한자 지명을 기계적으로 옮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땅에 살고 있는 조선인들이 부르는 토박이 조선어 이름을 한글로 옮긴 것이다. 아래는 그 사례들이다. 왼쪽에는 대동여지도상의 지도를, 오른쪽에는 포크의 한글 지도를 나란히 놓아 쉽게 대조해 볼 수 있도록 했다. 이 한글 지도는 의문을 던져 준다. 한글 지명을 표기한 사람이 누구냐는 것이다. 포크로부터 의뢰받은 조선인이었을까 아니면 조지 포크가 직접 써넣은 것일까? 다음에 같이 생각해 본다.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조지 포크가 1885년 무렵 작업한 조선 팔도 지도 가운데서 이번에는 함경도 지역을 유람해 보자. 글쓴이의 논평 없이 직접 감상해 보기로 한다. (아래 그림들의 출처: 미국지리협회 누리집 https://collections.lib.uwm.edu/digital/collection/agdm/id/918/rec/2) 이 미국인은 이처럼 조선 팔도의 모든 고을, 산과 강, 섬들은 물론 산성과 창고(세곡창)까지 수천 개를 헤아리는 한자 지명을 남김없이 영자로 표기하였다. 1만 개도 넘을 것으로 보이는 한자 하나하나의 음을 정확히 옮긴 것이다. 그가 조선인의 도움을 받았다 하더라도 이는 상상키 어려운 작업이 아닐까? 손글씨 해독이 어렵다. 다음번에 같이 도전해 보겠다.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다음 지도를 보자. 포크의 손글씨가 촘촘히 적혀 있다. 포크는 일찍이 1886년 무렵에 조선팔도 지도상의 모든 고을, 산과 강, 섬들(독도 포함), 성(城), 심지어 창고(세곡창-稅穀倉)에 이르기 빠짐없이 영어로 표기했다. 1만 개가 넘을지도 모르는 한자 정보를 모두 영어로 옮겼다. 조선 강토를, 탁본을 뜨듯 새긴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지도의 여백에 인문지리, 명승지, 지방 특산물 등에 대한 정보까지 수록해 놓았다.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었다. 충무공의 명량대첩 일대를 보자 특히 가운데 위쪽을 보면 글자가 마모되어 해독하기 어렵지만 ‘丁酉忠武公破倭處(정유충무공파왜처)’ 곧 ‘정유년에 충무공이 왜구를 격퇴하다’라는 뜻으로 보이는 부분이 있다. 이를 포크는 이 한문 문구를 해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음과 같이 글 풍선을 달아 관련 역사 정보를 적어 놓았다. In the year called chong yu nyon I-sun-shin(Posthumous name=Chhung Mu Kong) fought & defeated Japs in naval battle. (정유년이라고 불리던 해에 이순신(시호=충무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지난해 민기 원년 김옥균에 관한 이야기를 몇 번 올렸다. 못다 한 이야기는 훗날로 미룬다. 해가 바뀌었고 마침 글쓴이가 어떤 미국인에 관한 책을 준비 중이므로 그에 대해 짤막짤막한 이야기를 올려볼까 한다. 주인공은 미국인이지만 개화기 때의 조선과 우리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애옥살이에 지친 민중이 수백 년 아니 수천 년 동안 가장 자주 내는 목소리가 있다. “아이고 죽겠다!” 이 탄식을 평생 한 번도 토하지 않고 사는 한국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 기묘한 소리의 성조(聲調)를 처음 채록한 사람은 놀랍게도 조지 포크(GeorgeC. Foulk, 1856-1893)라는 미국인이다. 지금으로부터 140여 년 전인 1884년 11월 7일 그는 여행일기에 이렇게 썼다. 짐의 무게에 짓눌려 지칠 때 pokeyo man(보교꾼 곧 가마꾼)는 이렇게 말한다. “O-u-i-go,chuketta!(아이고 죽겠다!)”. 곧 “ O-ui-go(아이고, 감탄사), I’ll die!(죽겠다)”다. “아이고”는 늘 내는 감탄사로 기묘한 느낌을 준다. “아이”는 힘없고 낮은 소리로 시작하는데 ‘이’에서는 길게 목소리를 끈다. 그다음에 ‘고’가 나오는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지금으로부터 근 140년 전 어느 한때 서울의 종각 인근에서 둥지를 틀었던 한 미국 청년이, 어둠에 잠겨가는 조선왕국을 바라보며 애상에 젖은 글을 남겼다. 밤이 오면 어두운 남산 꼭대기, 봉수대(烽燧臺)의 불꽃이 줄지어 신속히 꺼진다. 남산의 봉홧불은 이 나라의 가장 먼 곳으로부터 뻗어 있는 제4 봉수로(烽燧路) 의 마지막 봉화다. 그 신호로써 사람들은 오늘밤 온 나라가 평안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남산 맞은편 궁궐의 임금은 왕국의 평화를 알리는 이 무언의 메시지에 안도하며 침전에 들 것이다. 잠시 뒤 도심의 큰 종에서 울려 나오는 부웅, 부웅, 부웅 소리가 나의 귓전에 닿는다. 사람들에게 이제 집으로 돌아가라는 뜻이며 밤에는 성문이 닫힌다는 신호다. 이 땅에 밤이 내리면 이처럼 봉홧불이 신호를 하고 큰 종이 밤공기 속에서 부웅부웅 소리를 내온 지 4백 년이 넘었다!( The signal has flashed out nightly, and the great bell has boomed thus in the night air nightly for more than four hundred years! ) 「출처: 카터 에커트(Cart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조선 말 근대의 여명기에 조선의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위해 그 어떤 사람보다 여러 가지 이바지를 하고 자기를 희생한 외국인이 있었으니 바로 미국인 조지 포크(George Clayton Foulk, 1856-1893)였다. 그의 주선으로 1886년 조선에 온 헐버트만큼 그를 잘 아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헐버트의 말을 들어보자. “조선의 개방과 관련된 문제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고인이 된 조지 포크의 조선살이를 살펴보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1856년 펜실바니아에서 태어난 포크는 14살의 어린 나이에 아나폴리스의 해군 사관학교에 입학했다. 너무 혈기방장하여 사관학교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지만 그건 기우였다. 4년 뒤 그는 선두의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는 모든 분야를 기민하게 통달했으며 나이를 앞지르는 조숙성을 보였다. 그는 졸업한 뒤 곧 극동지역으로 발령받았다. 그의 명민함은 전문적인 학식과 기술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는 곧 상관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으며, 제독의 눈에 들어 부관이 되었다. 일상적인 근무와 별도로 그는 놀라운 속도로 일본어를 습득했다. 그는 타고난 언어학자였다. 나가사키에서 일본인 아가씨를 사귀게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북대서양에는 아조레스(Azores)군도가 있다. 이 섬은 어떤 대륙으로부터도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가장 가까운 포르투갈의 로카(Roca) 곶과는 830km, 아프리카의 가장 가까운 곳은 900km 이상, 아메리카 대륙의 가장 가까운 곳인 뉴펀들란드의 레이스(Race) 곶 까지는 1,000km 이상 떨어져 있다. 이 섬을 1883년 12월 조선인들이 방문한 사실이 동행한 미국 해군 소위 조지 포크(George Foulk)의 부모님 전 상서에 기록되어 있다. (전회 글 참고). 12월 24일 밤 11시 조지 포크가 트렌턴호 선상에서 쓴 부모님 전 상서의 일부를 여기 번역하여 공개한다. 트렌터호가 12월 1일 낮 11시에 출항했다는 건 알고 계시겠죠. 순탄하게 바다로 나아가는가 싶었는데 이 계절 대서양이 늘 그렇듯이 악천후를 만났습니다. 증기와 돛을 겸용하는 우리 배는 등 쪽에 강풍을 받으면서 놀라운 속도로 이틀 동안 달렸습니다. 그런 다음 돛만으로 만류(灣流)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3일과 4일 험한 날씨가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배가 덜컹대며 요동칩니다. 우리는 갑판 아래 깜깜한 곳에 몸을 납짝 엎드립니다. 총포 더미와 보트에 눌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2025년 5월 1일 <지도 포럼 창립 총회>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나는 그 날의 세미나에서 강리도(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壹疆理歷代國都之圖, 1402년 조선에서 만들어진 세계지도)에 대해 발표하고 싶다고 자청하였다. 까닭이 있다. 최근에 구한 미의회도서관의 자료에서 북대서양의 아조레스섬(Azores)을 조선인이 1883년 12월 어느날 방문한 기록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기록은 조선인이 쓴 것이 아니고 동행한 미국인 조지 포크(George Foulk) 소위가 쓴 것이다. 1883년 12월 1일 조선인 3인과 함께 미군함 트렌턴호(Trenton)에 몸을 싣고 뉴욕항을 출항한 조지 포크가 조선인들과 함께 악천후로 죽을 고생을 한 뒤 지브롤타로 향하고 있던 중에 부모님 전 상서를 썼다(위 편지). 여기에서 그는 며칠 전의 아조레스 방문에 대해 적었다. 그 내용이 매우 여실하여 인문지리학자의 보고서로서 손색이 없는 것 같다. “…… 11일(1883.12.11) 우리는 다시 돌풍을 만나 밤새 악전고투했습니다. 자정께 큰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습니다. 12일 날이 밝자 돌풍은 사라지고 날씨가 좀 좋아졌습니다.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