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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빛에 물든 보각국사 승탑과 그의 행적을 기록한 탑비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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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각국사의 석등 승탑 탑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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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등 사이로 본 모각국사 승탑과 석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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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각국사 승탑과 특이한 석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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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각국사 승탑(탑명을 정혜원륭탑이라 부름) |
▲ 보각국사탑비
[우리문화신문= 최우성 기자] 충주시 소태면 오량에 가면 산비탈에 범상치 않은 스님의 탑과 부도와 석등이 자리하고 있다. 그 주인은 고려말 고승이었던 보각국사다.
보각국사는 1320년 원나라 시기에 충숙왕시절에 예천 용궁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권유로 13세에 대선사 계송의 문하에 들어가 1341년 충목왕때 승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1348년 금강산에 들어가 수행과 공부를 계속하였고, 선원사 식영감 화상에게 능엄경을 계승하였다.
이후 명성을 날리던 스님은 공민왕에 의해 궁궐에서의 설법을 요청받아 설법하고 공부선장에 단독으로 선발되었으나 궁궐에 머무르는 것으로 알고 도망쳐나와 봉황산에 머물렀다. 1374년 궁궐의 내불당에서 설법하였고, 이후 송광사 서운사를 거쳐 다시 충주 연회암으로 돌아왔다.
1383년 우왕에 의해 국사로 책봉되어 개천사에 머물다 왜구들의 침략으로 충주가 기습당하자 광암사에 머물렸다. 1392년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자 축하의 표문을 지어 올린 뒤 그해 입적하였다.
그가 입적하자 이성계는 그의 승탑을 "보각국사 정혜원융탑"이라 이름짓고 그의 행적을 적어 탑비를 함께 세웠다. 그의 승탑은 8각원당형으로 기단과 탑신은 8각형에 용들이 섬세하게 새겨진 전체적으로 둥근 구형이다. 조각이 섬세하며, 탑신을 덮고있는 옥개석은 8각형의 기와지붕형상으로 옥개석의 아래에는 목조건축물의 공포와 서까래가 잘 나타나있다.
옥개석 상부에도 상륜부가 잘 새겨져있으며 상륜부 보륜까지 잘 남아있어 더욱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보각국사 승탑과 탑비는 산속에 위치한 때문인지 많은 전란 중에도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되어 있어 다행이다.
현재 보각국사승탑은 국보197호이며, 탑비는 보물658호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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