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 경기도 하남시는 고대 삼국시대 백제가 처음 도읍지로 삼았다는 설이 있는데, 그 근거로는 하남시 이성산성이 백제시대 쌓은 성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고대사를 연구한 학자들의 의견이 모두 같지는 않지만, 백제의 처음 도읍지가 바로 한강이 흐르는 남쪽의 요충지인 이곳에 산성을 쌓아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그 근처에 왕궁과 관가를 짓고 성을 쌓아 백성들이 살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 근거가 옳다면 도읍의 근처에는 백성들의 마음을 한데 모을 수 있는 신앙의 중심처로 서기 400년 대에 지어진 절도 있었을것이나, 현재 하남 위례성으로 추정되는 근처에서 절터가 발굴된 적은 없다. 그런데 확실히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하남시 이성산성 아래에는 오래된 절터가 있고, 그곳에 고려시대 초기로 평가되는 석탑도 있어, 어쩌면 그 절의 시작은 백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남시 춘궁동에는 고골 저수지 옆에 석탑이 2기가 서있는데, 하나는 5층이고 다른 하나는 3층이다. 두 석탑은 바로 옆에 세워져있지만,그 규모가 서로 달라 같은 시대에 세워진 것 같지는 않다. 탑의 규모로 보아서는 예부터 매우 큰 절이 있었을 것으로
[우리문화신문=윤지영 기자] 새해가 되었지만 여전히 '코로나19' 비상 상황이라 마음놓고 바깥나들이 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다지 모이지 않는 곳이라면 한번쯤 발걸음을 해도 좋을 일이다. 서울에서 가까운 강화도에 '강화 부근리 고인돌(지석묘)'이 있다. 드넓은 공원을 산책하면서 점점이 흩어져 있는 고인돌을 둘러보는 것이 마치 보물찾기처럼 흥미롭다. 때마침 춥던 날씨가 풀려서인지 가족단위로 고인돌 공원에 나온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띈다. 강화고인돌 유적지는고창, 화순 지역 고인돌과 더불어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강화고인돌은 부근리 지석묘(사전 제137호), 내가 오상리 고인돌(인천광역시 기념물 제 16호), 대산리 지석묘(인천광역시 기념물 제31호) 등 고려산 기슭을 따라 모두 120여기가 흩어져 있다. 어제 찾은 부근리 고인돌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강화대로 994-12에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1964년 7월 11일 사적 제137호로 지정되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북방식 고인돌 가운데 대형에 속하는 것으로, 지상 높이 2.6m, 덮개돌 크기는 길이 7.1m, 너비 5.5m이며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부근리 고인돌은 모두 10기(基)로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 보원사는 충남 서산군 운산면 용현리에 있었던 큰 절이었다. 보원사의 창건은 백제 후기로 생각되는데, 보원사터 근처에는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서산 《용현리마애삼존불》이 있다. 이로 미루어보아 《용현리마애삼존불》은 백제 후기에 세운 보원사의 주변 기도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보원사에 대한 기록은 장흥 보림사의 보조선사 체징의 탑비에 나오는데, 보조선사 체징은 827년(흥덕왕2)에 보원사에서 구족계(비구와 비구니가 받는 계율)를 받았다고 한다. 또 신라 후기 효공왕8(904) 보원사는 신라 화엄 10찰의 하나로 융성하였다고 최치원이 법장화상전에 기록하기도 하였다. 이런 보원사는 고려초 광종26년(975)에 당대 고승인 법인국사 탄문이 입적하였다고 기록하고 있고, 정종 2년(1036)에는 보원사의 계단(戒壇)에서 승과고시로 경전시험을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현재는 계단(수계를 받는 제단)이 어디였는지 알 수 없으나 보원사에도 통도사 금강계단이나 금산사 방등계단 처럼 계단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조선조에 이르러 중종 25년(1530)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상왕산에 보원사가 있다고 한것으로 보아 조선 중기까지 사세가 계속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