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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태조 왕건의 초상화를 모셨던 안성 봉업사터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 그 이름도 생소한 봉업사(奉業寺)는 안성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폐허지만 한때 봉업사는 양주 회암사, 여주 고달사와 함께 고려시대 경기도 3대사찰로 꼽히는 거대한 규모의 절이었다. 절 이름 "봉업"이란 고려의 왕업을 받든다는 의미로, 조선조 서울 근처 왕릉들을 보살피기 위하여 지었던 절들처럼 왕실과 관련된 절 이름이다. 현재 서울 근교에는 왕능과 관련된 절들로 남양주 봉선사, 강남 봉은사가 대표적인데, 봉선사는 세조의 광릉, 봉은사는 성종과 중종의 능을 관리하기 위한 절이었다. 안성의 봉업사는 고려의 첫 임금인 태조 왕건의 초상을 절에 모시고, 그의 극락왕생을 기원하였던 절로 고려가 창건된 뒤 고려광종때 봉업사로 새롭게 중창된 뒤 조선이 들어설 때까지 고려왕실의 보살핌을 받고 융성했던 절이었다, 그러나 절의 흥망성쇠도 왕조의 흥망성쇠에 따랐기에 조선이 들어선 이후 고려의 흔적 지우기 영향으로 봉업사는 조선시대 언제인지도 모르게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안성 봉업사가 있던 곳은 안성 죽주산성 바로 아래로 넓은 평지로, 지리적으로 영남에서 서울로 오르는 길목이어서 많은 선비들이 과거를 치르러 지날 수 밖에 없는 곳이다. 조선조에

천년고찰 개심사서 만난 '나를 찾아 가는 문화기행전'

가국일,조항오,안준탁 시화 수석전, 개심사 경내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가시는 초행길에 흔들릴 수 있으니 두려워 마소서 처절한 몸짓으로 부르는 한 소절의 곡소리 되돌릴 수 없는 아픈 여운에 그 몸짓에 숨죽여 물든 지금 기억 저편에서 문득 밀려오는 그리움 - 안준탁 '아버지'- 천년고찰 개심사 안양루에서는 '제5회 나를 찾아가는 문화기행전'이 지난해 11월 4일부터 열리고 있어 절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한다. 가국일, 조항오, 안준탁 작가의 시화와 수석으로 꾸며진 이번 전시회가 열리는 안양루(安養樓)는 바로 대웅보전 앞에 자리하고 있어 누구나 손쉽게 관람할 수 있다. 보는 각도에 따라 제각기 달리 보이는 수석의 자태는 흔히 볼 수 없는 작품들로 방문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돌 하나에 새겨진 세월의 무게는 다채로운 무늬로 , 빛깔로 무언의 말을 건넨다. 현란하고, 수선스럽고, 꾸밈과 이간질 등 '말로써 말 많은 세상'을 조롱하듯 침묵으로 '묵직함'을 선사하는 수석을 감상할 수 있는 것 만으로도 개심사 나들이는 흡족할 만하다. 개심사는 현재 충남의 4대고찰로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찾는 절이다. 이곳은 바다가 인접한 절로 뱃사람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절이기도 하였다. 서산 간척지 사업의 완성으로 지

고려시대 국립숙박시설 '혜음원터'에 가다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파주시에 있는 혜음령 고개는 내가 살고 있는 고양시와 인접해 있어서 가끔 지나다녔지만 혜음원(惠蔭院)은 들어보지 못하던 곳이다. 코로나19로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집에서 머지않은 용미리 마애불상을 보러 갔다가 우연한 기회에 혜음원터(惠陰院址)를 가게 되었다. 혜음원터는 용미리 마애불상으로부터 차로 10여분 거리에 있었다. 길찾개(내비)는 평소 익숙하던 도로를 지나 약간 낯선 좁은 골목길로 안내했다. 겨우 차 한 대 지나갈만한 산길에 이르러 길찾개가 도착이라는 안내를 해줬다. 차에서 내려 산길 쪽으로 조금 올라가니 드넓은 계단식 집터가 눈에 들어온다. 혜음원터와 마주친 순간 양주의 회암사터가 떠올랐다. 한눈에 봐도 어마어마한 규모의 집터였다. 이곳에 왜 이렇게 어마어마한 집터가 있는 것일까? 혜음원터 안내판의 깨알 같은 글자를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궁금증이 이내 풀렸다. 한마디로 이 집터는 고려시대에 세운 혜음원(惠蔭院)이라는 국립숙박시설이 있던 자리였다. 당시 혜음원은 남경(서울)과 개성을 통행하는 관료 및 백성의 안전과 편의를 위하여 고려 예종 17년(1122)에 건립한 숙소 건물과, 절 그리고 임금의

[화보] 오련지(5蓮池) 전설을 품은 강화 고려산 '백련사'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 지난 번 찾았던 강화도 고려산 적석사 주변에는 여러 절들이 있다. 그중에 적석사와 같은 시절 세워진 것으로 전하는 절들을 찾던 중 오늘은 백련사를 찾았다. 백련사는 인도에서 온 스님이 고려산에 올라 산꼭대기에 있는 연못에 피어있던 아름다운 5색깔의 연꽃 가운데 하얀연꽃이 떨어진 곳에 세웠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고구려 장수왕 시절 인도에서 온 스님은 고려산 주변에 절을 짓기 위하여 몇날 며칠을 살폈다. 그러다가 하룻밤 꿈속에 나타난 노인이 고려산 꼭대기에 올라보라는 말을 하고 사라진 뒤 고려산엘 올랐다. 가서 보니 산꼭대기에 연못이 있고, 그 연못에 아름답게 피어난 화려한 연꽃5송이가 있어, 이를 하늘 높이 날려 그 연꽃이 떨어진 곳이 명당터라 생각하고 5곳에 절을 지었다는 것이다. 그때 그 스님이 창건한 절은 동쪽에 청련사, 남쪽에 적련사(현재 적석사), 가운데에는 황련사, 서쪽에는 백련사, 북쪽에는 흑련사로 전하고 있다. 5곳의 절 가운데 흑련사의 존재는 확인이 안되고 있지만 이곳을 뺀 4곳의 절은 지금도 같은 전설을 간직한채 그 전설의 명맥을 잇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절들은 고구려시절의 유적이나 유물은 찾을 수 없고,

[화보] 강화도, 고구려시대 창건된 적석사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 강화도는 한민족의 태고적부터 역사유적이 있는 유서깊은 고장이다. 선사이전으로 따지면 수많은 고인돌들이 있고, 마니산에는 한민족의 시조인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산성과 산의 꼭대기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참성단이 있다. 그리고 이후로 많은 유적들이 있지만, 고려시대 세계를 휩쓸던 몽골과의 투쟁과정에 임시왕도가 되었던 곳이 강화도다. 그런 까닭으로 강화도에는 읍내의 중심에 강화산성이 있고, 그 가운데는 고려궁지가 있었다. 지금은 고려궁지가 얼마나 컸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어 아쉽지만 고려궁지의 일부만이 남아서 옛 역사를 증거하고 있다. 고려는 세계를 휩쓸던 몽골과 싸우기 위하여, 개경을 떠나 급한 물줄기로 나뉘어 섬이된 이곳 강화도에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투쟁하였다. 그 과정에서 그 힘이 무한하다는 부처님의 능력에 의지하고자 대구 부인사에 있었던 대장경을 대신할 팔만대장경을 다시 만들었는데, 그 팔만대장경의 판각지도 또한 강화도였다. 그렇게 몽골과 투쟁시절 만들어진 팔만대장경은 지금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다. 그런 강화도에는 오래된 절들도 많은데, 오늘은 그 가운데서도 고구려시대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절들 중 하나인 적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