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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빌어보는 참배객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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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한 정성으로 추위도 잊은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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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에도 사리탑은 빛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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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진신사리탑. |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설악산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봉정암에는 2560년 전에 열반한 석가모니의 진신사리탑이 있다.그런데 봉정암은 신라 자장스님이 깊고 깊은 이곳을 찾아서 처음으로 암자를 지었다고 한다. 처음 봉정암이 세워질때에는 사리 탑이 없었는데 이후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자장율사가 개창한 이곳에 저 부처님 사리탑이 세워졌다.
그런 까닭으로 현재의 탑은 신라양식이 아니고 고려시대 이후 양식이다. 자장율사는 당에가서 불교를 공부한 뒤 부처님의 진신사리, 가사와 장삼을 받아와 양산의 통도사에 적멸보궁을 세우고 그 중심에 당에서 모셔온 부처님의 사리와 가사를 모두 봉안하였다고 한다. 그 이후 부처님의 진신을 모신 통도사는 불교의 가장 성스러운 곳으로 여겨져 스님으로 출가하는 사람들이 부처님의 계율을 받는 곳으로 그 명성을 이어왔다.
그런데, 그 성스러운 곳이 조선중기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일본인들에 의하여 훼손되고 말았다. 일본인들은 통도사 적멸보궁을 파헤쳐 부처님 진신사리를 가지고 일본으로 갔던 것이다.
조선이 완전히 쑥대받으로 변하고, 이루 말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전쟁에 희생된 뒤, 풍신수길이 죽자 전쟁은 끝을 맺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사명대사는 조선정부를 대신하여 종전 완수를 위한 사절단을 이끌고 일본으로 들어가 강화조약을 맺고 왔다. 그는 일본에 가서 조선 승려의 의연함과 대담함을 보여주고, 많은 이적도 행하였다고 전한다.
또 서슬퍼런 일본 무사들 앞에서 전혀 주눅들지 않고 오히려, 이웃나라를 정벌에 나선 일본의 무도함을 나무라고, 부처님의 설법으로 그들을 감복시켰고, 잡혀온 무고한 백성들과 전쟁포로와 무사들의 애장품으로 전락하여 약탈해갔던 한국의 많은 문화유산들과 함께, 통도사 적멸보궁에 모셔져 있던 부처님의 자장율사의 진신사리를 다시 받아 돌아왔다.
이후 사명당이 찾아왔던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전국의 명당으로 여겨지는 5곳에 나누어 봉안하였다고 한다. 5곳으로 나누어야 혹시 후세에 위험이 처한다 하더라도 없어지지지 않을 것으로 믿은 것이다. 그 5곳을 현재 한국에서는 가장 대표적인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이라 하여 5대 적멸보궁이라고 부른다.
그 5대적멸보궁은 영취산 통도사, 사자산 법흥사, 오대산 상원사, 태백산 정암사 그리고 이곳 설악산 봉정암 적멸보궁이다. 5대적멸보궁 가운데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 이곳 설악산 봉정암이다. 그런 연유로 봉정암은 부처님의 진신을 모신 5층석탑 앞에서 정성으로 기도하면 중생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소원성취의 명당으로 이름을 얻어 지금도 수많은 불자들이 일생에 꼭 한 번은 와봐야 하는 기도처로 유명하다.
지금은 교통이 좋아서 쉽게 올수 있는 곳이라 하지만, 아직도 백담사에서 봉정암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올라도 5시간, 심지어는 7시간을 힘들게 걸어서 와야만 도착할 수 있다. 그 힘든 여정 동안 오로지 꼭 이룩하고자 하는 소원을 품고 왔으니 그 기도의 염원이 지극할 수밖에 없고, 그 지극한 소원이 이루어 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힘겹게 올라와 108배를 하고 불경을 읽고, 다라니를 외우고, 그러다 보면 길고 긴 겨울밤도 금새 지나고 아침이 된다. 그러면 미역국에 밥한그릇 말아서 뚝딱 먹고 또 부지런히 길을 나서야만 해가 저문 뒤 각자 집으로 갈 수 있다. 밤새 북적이던 봉정암 경내도 오전 9시만 되면 적막강산이 된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많은 참배객으로 또 다시 붐빈다. 중생들의 소원을 듣느라 쉴틈이 없는 석가모니 진신사리탑은 오늘도 의연하게 서있다. 또 다른 중생들의 마음을 들어주면서..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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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북촌한옥마을 가옥 보수설계, 혜화동주민센타 개보수설계,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문화유산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