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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들이

'1212회 수요집회' 더는 겨레의 자존심을 짓밟지 마라

 

   

무너지는 억장에 너무도 외롭지만 시민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되고 있다.


   

세월이 흘러도 잊을 수가 없다는 듯 악다문 소녀의 입


   

꼭 쥔손을 펼수가 없구나 !


   

맨발소녀를 위로하며..


   

▲ 24년의 한이 더이상 응어리지지 않도록!


   

▲ 소녀와 할머니는 서로가 하나다. 처음 정신대를 고백한 고 김학순 할머니상


   

▲ 조각상으로 되살아난 할머니에게 추위를 이기도록 목도리를 둘러주고


   

▲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는 춤.


   

▲ 그 때 소녀가 오늘은 이렇게 노인이 되고.


   

▲ 소녀상을 밤새워 지킨 소녀들의 즉석 항의 무용.


   

함께하기를 다짐하는 지자체장들


   

 끝이 보이지 않는 시민들이 분노를 함께하는 모습


   

만24주년 수요집회에 참석한 시민들! 마음을 새롭게 다짐하며 회담 무효를 선언하였다.



[우리문화신문=최 우 성 기자]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히고 살아간다는 것은 사람으로서 이 보다 큰 수치가 아닐 수 없는 일이다.  사람도 동물이기에 먹고사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인격을 갖춘 사람이기에 먹고사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인간의 존엄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존엄을 짓밟히고 산다는 것은 차라리 죽음만도 못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침략전쟁의 희생양으로 끌려가 어려서 짓밟힌 자신의 존엄을 세상에 외쳤더니, 국가는 나라망신 시키는 짓 그만하라고, 윽박지르고, 그런 수치를 어떻게 제 입으로 말하느냐고 오히려 면박을 주기도 했다. 그러다 국제적으로 양심세력들이 동조해주니 마지 못해 협상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다가, 문득 당사자인 할머니들과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갑자기 협상을 끝냈다고 선언하였다. 그 협상의 결과란 것은 너무도 허무하게도, 단돈 10억엔( 우리돈 100억원 남짓)이다.


국가는 제나라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여 나라를 빼았기고, 그 빼앗긴 땅에 살고 있다는 죄아닌 죄로 백성은 재산과 육체와 정신의 착취를 당하면서 고통속에 살아야 했다. 그러는 가운데, 철모르는 어린 소녀들을 전쟁하는 군인들의 노리개로 삼기 위하여 강제 납치를 자행하여 끌고갔고, 끌려간 이들은 차마 질긴목숨 죽지 못하고 살아남아 전쟁이 끝난 뒤에 돌아왔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있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수치였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에게도...


그 수치를 과감히 세상에 밝힌것은 전쟁이 끝난 뒤 47년이나 지난 후에야 처음 나왔고, 그런 고백을 한 사람은 자신의 수치를 밝힘으로써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를 눈감기전에 응징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올랐다. 그러자 그 때까지 숨어살던 할머니들이 여기 저기서 고백하게 되었고, 한국뿐 아니라 중국 대만 필리핀의 여성들이 고백에 동참하였다. 이리되자 전쟁의 피해국들과 세계 여성인권연맹의 관심이 고조되었다. 본래 그 피해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가해국인 일본의 문서에 소상히 기록되어있을 것이나, 그들은 그런 사실이 수치임을 알고 발견하는대로 모조리 지워나갔다.


우리말에 "때린자는 발뻗고 못자고 맞은자는 발뻣고 잔다"는 말이 있지만, 그와는 정 반대로 청춘을 짓밟힌 위안부 희생할머니들은 일제의 성노리개로 끌려간 그날부터 전쟁이 끝나고도 숨어서 살아야 했고, 돌아와 살았지만 사실을 고백하던 그날 까지 하루도 고통스럽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 사실을 남이 알까싶어 발뻗고 잘 수도 없었다. 꿈에서도 차마 다시 생각하기 싫었던 그런 수모가 다시는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서 용기를 내 세상에 고백하였다. 그러면서 그것은 내잘못이 아니라 끌고간 나라의 잘못이니 이제라도 가해자인 일본으로부터 그 잘못을 솔찍히 고백받고 그런 연후에 당당히 용서를 하고 싶다며 최소한의 인간으로서 자존심을 외쳤다. 그러나 그 책임자인 일본은 그런 사실을 숨기기에 바빴고, 남은 자료가 나오면 쥐도새도 모르게 폐기하기에 혈안이 되었으며, 사실을 더욱 왜곡하여 짓밟힌 자존심에 더 큰 상처를 내고 말았다.


그일본은 자신들이 그런 파렴치한 행위를 한 사실이 없으며, 설사 정신대라는 것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자발적 자원에 의한 것이며, 또 돈을 벌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는 뻔뻔한 변명으로 일관 하였던 것이다. 그러자 할머니들은 당시 60이 넘는 노구를 이끌고 일본대사관 앞에서 농성시위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외치고 여론을 환기시킨다면 곧 해결 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겼다. 세계여론이 동조하고 국민들이 들고 일어난다면, 적어도 1년 정도면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정기집회를 행한지 5년이 가고 10년이 가도 일본은 숨기기에 바빴고, 한국정부는 엉거주춤 일본이 알아서 해주기만을 바랄뿐 해결의 기미가 없었다. 그러자 할머니들은 노구를 이끌고 일본으로 미국으로 유럽으로 유엔으로 달려가 자신들이 당한 치욕을 당당히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세계 인권운동가들의 호응을 얻어 정신대문제는 일제의 전쟁범죄 중 가장 극악한 문제로 제기되었다.


하지만 일본은 결코 자신들의 선조들이 저지른 만행을 인정하지 않고, 또 그렇다 하더라도 보상은 이미 끝난 것이라는 말장난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렇게 20년이 흘러가자, 이제는 할머니들이 소녀시절 당시의 모습을 새긴 소녀상이 수요집회가 열리는 일본대사관 앞에 들어서게 되었고, 그 뜻을 이해하는 나라들에도 똑같은  소녀상이 세계 곳곳에 들어서게 되었다. 하지만 일본은 그 소녀상만을 자신들의 수치로 여길뿐 할머니들에 대한 사과는 아직까지 제대로 한 적이 없다가, 갑자기 지난 12월 28일 한일외교장관 회담이란 것을 하더니 덜컥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고 발표하고 만 것이다.


그러나 그 회담의 과정이 어떠했는지 할머니들의 희망사항이 무엇이었는지,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서의 협의도 없이 그냥 일방적으로 자기들만의 권한이나 되는 듯이 일방적으로 해결했다고 하고, 더 나아가 다시는 이문제를 거론하지도 않겠다고 약속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 소식을 들은 당사자 할머니들과 지금까지 수요집회를 주체한 정신대문제협의회는 물론 온 국민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회담이라며 회담의 무효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다시 해가 바뀌어 오늘은 1월 6일이 되었다. 수요집회를 시작한지 만 24년이 되는 집회가 된 것이다. 그 집회 횟수만으로도 장장 1212회째가 되는 어제 온국민의 염원을 모아 많은 국민들이 참여한 집회가 열린 것이다.


할머니들은 외친다. 되돌릴 수 없는 세월을 탓하지 않는다, 짓밟힌 자존심을 몇푼의 돈으로 배상하려 하지말고, 잘못을 당당히 고백하고 사과하고, 그리고 다시는 그런 파렴치하고 반 인륜적인 행위를 할 생각을 못하도록 일본의 역사책에 밝히라고 요구하고, 그런 후에 후세에 교육의 장이 되도록 역사기념관을 세운 뒤에 그리고 최소한의 인간존엄에 대한 배상을 하라고 요구한다.


너무도 오랜 기간인  24년동안 똑같은 주제를 가지고 시위를 하는 것이 너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요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의 자존심 한민족의 자존심은 결코 저절로 지켜질 수 없는 것이고, 남이 알아서 챙겨주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게된 24주년 수요집회였다.


아 ! 슬프도다.!

나라가 기울어 백성을 보호하는 언덕노릇을 하지 못하니,

나라는 망하고, 그 땅에 살아가는 민초는 사람으로 존엄성도 찾지 못하도다.

백성들은 죽지 못해 그저 살아가는 비굴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백성을 지키지 못하는 그런 나라의 존재의미는 어디에서 찾는단 말인가??

우리는 이제 누구를 믿고 의지하며 인간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북촌한옥마을 가옥 보수설계, 혜화동주민센타 개보수설계,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낙산사칠층석탑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문화유산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