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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륵대불의 측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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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륵불과 팔상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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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동미륵대불입상 |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충북 보은의 법주사는 서기 553년 의신스님이 창건하였다. 이후 백제지역에서는 미륵신앙이 깊어졌는데. 김제 금산사를 중창했던 진표율사가 법주사도 증창하여 미륵불을 모시고 절의 규모와 격을 높였다.
미륵신앙은 미래에 이세상에 올 부처님을 뜻하는데, 늘 하루 하루가 살기 어려운 중생들이 이런 고통스러운 세상이 끝이나고 극락세계가 펼쳐질 것을 기원하는 신앙이다. 부처님이 있는 곳이 극락인데, 이 세상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한 이후 또 다시 끝없은 전쟁과 질병으로 고통속에 살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석가모니 부처님은 자신이 살아생전에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제자인 미륵이 세상을 떠난 뒤에 도솔천에 환생할 것이라 예언(수기)하였다. 그리하여 도솔천에 미륵보살로 오랜 세월 있다가 도솔천에서의 삶이 다 하고나면, 다시 이세상에 부처로 온다고 했는데, 그 미륵보살이 세상에 빨리 내려와 이세상을 살기 어려운 중생계가 아닌 극락세계로 변화시켜줄 것을 기원하고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미륵불신앙이다.
미륵불은 세상에 온다면 3번의 설법을 통하여 세상의 모든 중생들을 모두 성불시킨다고 한다(미륵경) 그러니 중생들은 하루 하루 살기 어려운 세상이 미륵불국토가 되길 바라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특히나 세상이 살기 힘들수록 사람들은 미륵불의 출현을 더욱 더 기원하였다.
그런 까닭으로 신라말에는 정치가 혼탁해지고 전쟁으로 아비규환이 된 세상에 스스로 미륵불을 자처하며 나타난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에 대표적인 인물로 궁예가 있다. 궁예는 스스로를 미륵불이라 칭하며 자신의 아들들에게도 보살칭호를 주고, 정치를 했으며, 자신의 부하들에게는 미륵불의 관심법을 칭하여 사람들을 현혹시켰다.
그러다 그 관심법에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다.
백제지역은 많은 미륵불신앙의 큰 절들이 있다. 백제가 멸망한 뒤 의지할 곳 없었던 망국민들은 속히 이세상이 미륵정토가 되길 고대했던 모양이다. 백제지역 미륵불신앙의 증거로 김제 금산사, 보은 법주사, 논산 관촉사 서산 마애삼존불이 있는 성주사지, 익산 미륵사지 등이 있다. 통일신라 시대에도 크게 유행했던 미륵신앙은 세상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려는 사람들의 소망을 신앙화 한 것으로 근세에 조선이 멸망할 당시에는 또 많은 미륵신앙이 생겨났다. 그중에 대표적인 신흥종교로 증산도가 있다.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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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북촌한옥마을 가옥 보수설계, 혜화동주민센타 개보수설계,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낙산사칠층석탑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문화유산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