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최미현 기자] 구미 쌍암고택은 조선 영조 31년(1755)에 건립되어 진사 최광익선생이 살았던 것으로 전해지는 조선시대 주택이다. 안채·안대문채·사랑채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문채는 이미 소실되어 근래에 대문을 새로 지었다.
안채는 'ㄷ'자형으로 동쪽을 향하였고, '一'자형의 대문채는 안채와 마주 향하여 전체적으로 트인 ㅁ자형 구조를 보인다. 안채의 중심은 6칸 크기의 대청으로, 이 지역 민가 형식으로는 매우 드문 규모이다. 대청의 오른쪽에는 찬방이 있고 그 아래쪽으로 큰 규모의 안방과 부엌이 연달아 있다. 안방을 안마당의 트인 곳과 접하게 함으로써 자연채광을 직접 받을 수 있게 하였다. 대청 옆 찬방의 출입문은 안방에만 두어 안방에서만 출입할 수 있다.
안방의 맞은편 쪽으로 보이는 건넌방을 이 집에서는 '웃방'이라고 부르는데, 비교적 큰 규모이다. 이 방의 옆으로 마루와 방,부엌이 있는데 부엌은 안방 옆에 있는 부엌과 마주보는 대칭을 이루고 있다. 안방 문 앞과 건넌방 문 앞에는 긴 쪽마루를 설치하였다. 특이한 것은 대청 왼쪽 윗벽에 설치되어 있는 긴 시렁과 앞 기둥에 부착된 5단 탁자형의 시렁이다. 시렁은 세면도구와 간편한 소도구를 얹어두는 고정 탁자의 구실을 하는 매우 보기 드문 설비이다.
사랑채는 대문채 바깥 마당의 한단 낮은 터에 따로 두었는데 사랑방이 안마당 구역에서 분리되어 따로 배치된 예는 드물다. 대청과 큰사랑방·골방·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청의 뒷면 2칸은 한단 높은 마루로 꾸며 위계를 두었다. 이런 수법은 경북지방 양반집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를 지닌 것으로 높은 품격을 보여주는 건물이다.
지정 당시 명칭은 '해평최상학씨가옥(海平崔相鶴氏家屋)'이었으나, 집 앞에 2개의 큰바위가 있어 '쌍암고가' 또는 '쌍암 고택'으로 불린 것을 반영하여 ‘구미 쌍암 고택’으로 지정명칭을 변경(2007.1.29)하였다.
※ 위 문화재는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자료: 문화재청>
대문채는 이미 소실되고 새로 지은 문간은 좀 허술해서 외정(外庭)에 따로 내 앉힌 사랑채 주위가 낯설어 보인다. 사랑채는 넓은 마당을 앞으로 해서 一자로 남향해 있는데 이 마당이 안으로 내왕하는 통로인 셈이나 사랑 뒤로 출입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사랑마당보다 높게 돋구어진 축단위에 안대문채가 사랑마당을 동으로 향해 一자로 세워져 있다. 이 안대문채는 근년의 개축이다. 이 안대문채를 아래채로 하는 ㄷ자형 안채가 1간상거(間相距)를 두고 역시 동향해서 튼ㅁ자의 배치를 이루었다. 안채의 서북편에 일곽의 담장을 돌리고 3간가묘(家廟)를 동향으로 두고 있다. 안채의 대청은 6간이나 되는 넓이로 보기드문 예이며 대청 끝기둥에는 그 곁에 보조기둥을 하나 더 세워서 그 사이에 탁자식 선반을 5단으로 매어 일용기구(日用器具) ·기명(器皿)들을 얹어두는 방법을 보이고 있다. 6간이라는 넓은 대청과 함께 대청설비로서 큰 특색을 지니는 희귀한 예라 하겠다. 안방은 대청의 북편에 두었으나 머리쪽으로 1간의 찬방(饌房)을 먼저 두고 그 아래로 2간반 길이의 안방과 부엌 2간을 연이어 두고 있다.
대청과 안방, 안방과 부엌과의 상호 배치관계는 순수한 영남형식이 아니며 종렬적(從列的) 중부형식과 상통하는 것이라 하겠다. 찬방의 출입문은 안방 웃목에만 있고 안방의 남벽 아래쪽 분합창호는 대청처마밑을 벗어나 있어 일광을 직조(直照)로 받게 되어 있다. 찬방을 안방머리에 깊숙이 들여 앉히고 안방을 아래로 끌어낸 녹유(綠由)는 안방의 채난(採暖)과 조명을 자연적이며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방법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건넌방을 여기서는 웃방이라 부르는데 대청의 너비와 똑같이 2간의 웃방을 두고 그 아래 1간의 마루와 온돌방과 그에 딸리는 부엌을 두었다. 이 온돌방을 이 집에서는 건넌방이라 부른다. 뒷방의 기능은 일반적인 건넌방의 기능과 같은 것이지만 그 아래 건넌방과의 사이에 1간마루를 둔 것은 영남의 대가들에서 더러 볼 수 있는 배치라 하겠다. 마루 다음간인 건넌방의 기능은 다른 집에서의 “안사랑 ”과 같은 것이었다. 안방문앞과 건넌방문앞에는 각기 긴 쪽마루를 부설하였다. 안채의 동단(東端)에서 1간상거(間相距)해서 대문채가 가로 놓여 있다. 안채에서 보면 아래채가 되는 셈이다.
사랑채는 대문채 외정(外庭)으로 2간상거를 두고 있다. 사랑채는 길이가 4간반(間半)이고 너비가 2간반의 一자겹집이다. 사랑방인 4간의 온돌방이 전자(田字)로 한편에 상접(相接)해 있고 이에 연해서 4간 대청이 있다. 온돌방 전면은 2간의 툇마루이고 대청의 실제 크기는 5간이다. 대청 4간중 후 2간은 전청(前廳)보다 한단 높인 층마루이며 그중 내(內) 1간은 사면(四面)에 분합들문을 단 마루방 설비를 갖추어서 유고시(有故時) 빈청(殯廳)으로 쓰이는 후온돌(後溫突)과 상접(相接)하였다. 큰사랑 2간 사이에는 장지문을 달았고 천장에는 간이 넓은 소란반자를 탄탄히 짜고 모두 백지로 싸발랐다. 큰사랑방의 아랫방 안쪽에 접한 1간방은 “골방 ”이며 그 옆에 붙은 방이 빈청방이다. 골방이 이처럼 큰 예는 하회북촌택(河回北村宅) 안방의 예와 같이 간혹 큰집에서는 볼 수가 있다. 대청에 면한 상하 온돌방에는 불발기 사분합(四分閤) 들문을 갖추었고 사랑채의 대청과 퇴청(退廳)의 전열주(前列柱)는 모두 두리기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