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무덥던 여름이 한풀 꺾이고 서늘한 가을 바람이 불어 땅속에도 그 바람이 들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꽃이 있다. 꽃무릇이다. 꽃무릇은 땅속에서 무더운 여름을 견디다 찬기운이 땅으로 스며들면 그 찬기운을 알아차리고 두껍고 딱딱한 흙을 뚫고 푸른 꽃대를 솟아올리고 그 꽃대 끝에 열정으로 가득한 빨간 꽃을 피운다.
이렇게 피어나는 꽃무릇은 꽃대는 올라오지만 다른 풀처럼 잎은 보이지 않는다. 특이하게도 꽃을 피우기 위해서 솟아나는 줄기는 꽃만 피우고 시들어버린다. 그리고 그 꽃이 진 다음 뿌리에서 다시 푸른 잎이 자라나 추운 겨울동안 푸르게 있다가 봄에 다른 초목이 푸르게 싹을 티우면 꽃무릇의 푸른 잎마저 시들어버린다. 그리고 아무런 자취도 남기지 않고 여름내 땅속에 잠들어 지낸다.
보통 초목과는 반대로 살아가는 꽃무릇의 정체가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 독특한 생태는 삭막하게 변해가는 가을 한철을 꽃세상으로 바꾸어주고, 그 붉게 피어나는 열정적인 색과 독특한 꽃송이는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킨다. 그것도 몇송이가 아니라 온 절주변과 계곡을 뒤덮어 버리는 꽃무릇 세상은 남쪽 지방 고창 선운사와 영광 용천사, 영광 불갑사를 물들이는데, 앞으로 15일 동안 화려한 꽃세상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꽃무릇을 찍으러 선운사에 내려갔으나 아직 그 시기가 일러 아쉽다. 다만 그 가운데서 일찍 올라온 몇 송이의 꽃무릇이라도 만날 수 있어 다행이다 싶었다. 꽃무릇은 꽃과 잎이 서로 피어나는 시기가 달라서 잎과 꽃이 땅속에서는 한 뿌리이지만 땅 위에서는 영원히 만날 수 없다고 하여 사람들이 더욱 애틋하게 여기는 듯 하다.
꽃무릇은 다른 이름으로 상사화라고 부르는데 꽃과 잎이 '그리워만 할 뿐 만날 수 없다'는 뜻에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앞으로 한가위가 지나고 2주일 동안 온통 붉은 꽃무릇 세상이 되는 남쪽지방 선운사와, 불갑사, 용천사! 시간이 나는 분들은 가서 즐기기를 바란다.
밤길을 달려 도착한 고창 선운사에는 여명이 걷히자 스님들이 선운사 경내 구석구석을 말끔하게 빗자루로 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속 티끌마저 씻어내는 듯 하였다. 꽃무릇의 계절, 이제 가을도 슬슬 깊어갈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