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관찰해 보면, 직선은 매우 드물며 대개는 곡선을 이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천과 강, 해안선은 모두 곡선이며 나뭇잎, 조개, 조약돌 등도 모두 곡선을 이룬다. 그러나 자연물에 인공이 가해질수록 곡선이 변하여 직선이 된다. 옛날 길은 구불구불 곡선이었고, 논두렁도, 기와집도 곡선이었다. 그러나 산업화가 되면서 도로도 논두렁도 건물도 모두 직선으로 변하고 말았다.
얼마 전에 친구와 함께 수원대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조그만 섬인 제부도에 가 보았다. 제부도는 화성 8경 중 하나로서, 썰물 때에는 육지와 이어지지만 밀물 때에는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마침 썰물이어서 쉽게 자동차로 섬 안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양쪽 바다에는 온통 시커먼 갯벌이 드러나 있었다. 동행하던 친구가 말했다. “아, 이렇게 아까운 땅을 놀리다니. 방조제를 막아서 땅을 이용하면 좋을 텐데…….”
사실 내가 보기에도 갯벌은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시커먼 땅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어쩌다가 한번 보게 되는 갯벌은 분명 쓸모없는 검은 땅처럼 보인다. 삼십년 쯤 전에 어느 토목공학과 교수가 <한반도개조론>이라는 제목으로 모 월간지에 기고한 내용이 생각난다.
“내륙의 하천 곳곳에 댐을 막아 공업용수와 생활용수를 공급한다. 댐을 막을 때 생기는 수몰민에게는 서해안 인천에서부터 전남의 흑산도까지 방조제를 쌓고 갯벌을 메워서 논과 주택 용지를 만들어 제공하면 별 문제가 없다. 구불구불한 해안선이 모두 직선으로 변해 이용할 수 있는 토지는 엄청나게 늘어나고, 물은 풍부하게 공급할 수 있으니 이거야말로 일석이조이다.” 이런 내용이었다.
갯벌은 수많은 생물자원의 보고다
이러한 견해는 요즘도 개발 위주의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행정가들과 계획가들에게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잘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갯벌에는 여러 가지 생물이 많이 살고 있다. 갯벌에 사는 전형적인 생물은 게, 갯지렁이, 낙지, 바지락, 망둥어 등이다. 갯벌에서 퇴적물의 입자가 미세한 곳, 곧 펄에는 게와 갯지렁이가 많이 살고, 입자가 굵은 모래 갯벌에는 조개가 많이 살고 있다.
펄 갯벌에는 참방게, 농게, 콩게, 밤게, 칠게 등의 게 종류가 사는데, 게는 개흙을 먹고 산다. 게는 종류에 따라 다양한 규모와 형태의 굴을 파고 생활한다. 참방게는 약 30센티미터의 굴을 파는데, 직경은 5센티미터나 되는 경우도 있고 입구가 두 개인 Y자 형태이다. 하나는 통로로, 다른 하나는 흙을 나르는 곳으로 이용한다. 또한 칠게는 질퍽한 펄에 서식하므로 펄 표면에 활 모양으로 휘어진 얕은 굴을 파고 생활한다.
갯지렁이도 개흙을 먹고 산다. 어떤 종류의 갯지렁이는 U자형 굴을 파고 사는데, 한쪽 구멍으로는 개흙을 먹고 반대쪽 구멍으로는 소화된 흙을 버리며 생활한다. 개맛은 30cm 이상의 구멍에서 사는데 딱딱한 껍질에 세 개의 구멍이 있다. 좌우의 구멍은 물이 들어오는 곳이고 가운데 구멍은 물이 나가는 곳이다. 이들은 이렇게 물속의 유기물을 걸러 먹고 사는 것이다.
모래 갯벌에는 동죽, 바지락과 같은 조개와 서해비단고둥 등이 살고 있다. 동죽이나 바지락은 물속의 유기물을 먹고 산다. 이들은 5~10cm의 구멍에 숨었다가 물이 차면 산소와 먹이를 구하기 위해 굴 밖으로 입수공과 출수공을 내밀어 해수를 빨아들인다. 갯우렁이나 큰구슬우렁 등은 조개나 고둥을 잡아먹는 갯벌의 포식자들이다.
이들은 조개나 비단고둥의 껍질에 치설이라는 억센 기관을 이용하여 구멍을 낸 뒤 육질을 꺼내 먹는다. 갯벌에 구멍 뚫린 조개껍질이 널려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까닭이다. 또한 따개비라는 것이 있는데, 이들은 바위에 착 달라붙어 있어 파도에 쓸리지 않는다. 8개의 발을 가지고 있는 낙지는 연안 갯벌에도 살지만 다소 깊은 바다 속에서도 많이 살고 있다.
갯벌은 자연이 준 큰 하수처리장
갯벌에는 갈대나 칠면초 같은 식물이 많이 살고 있다. 갯벌은 바다로 들어온 오염 물질이 걸러지는 곳이다. 갯벌에 있는 염생 식물은 영양 염류를 빨아먹고 사는데, 영양 염류란 유기물이 분해되어 나온 물질이므로 이를 빨아들이면 바닷물이 정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갯벌은 자연이 준 하수처리장이라고 보면 된다.
또한 갯벌에는 많은 새들이 서식하고 있다. 철새들은 긴 부리로 갯벌에서 먹이를 찾아 꺼내 먹는다. 갯벌이 바다생물에게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물고기들은 갯벌에서 먹이를 찾고, 또한 갯벌을 산란장이나 새끼를 기르는 보육장으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조기와 같이 먼 바다에서만 사는 물고기도 있지만 대부분의 바다 고기는 연안에서 알을 낳고 먹이를 구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갯벌을 없애면 갯벌에 살고 있는 게와 조개는 물론 연쇄 반응으로 연안의 물고기 수도 줄어들게 된다.
해양수산부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갯벌은 2,400km²로, 이는 전 국토면적의 2.4%에 해당한다. 서해안은 완만한 지형에 조수 간만의 차가 커서 갯벌이 잘 발달되어 있는데, 우리나라 전체 갯벌의 83%를 차지하고 있다. 갯벌을 농지로 바꾸는 간척 사업은 옛날부터 있었지만 일제 때에 간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1980년대부터 대규모 간척이 국토 확장과 식량 공급이라는 명분으로 추진되었다. 1980년대 초에 현대건설에서 추진한 서산 A, B지구 간척 사업으로 160km²의 갯벌이 사라져 버렸고, 시화 간척 사업으로 89km²의 갯벌이 사라졌다. 새만금 간척 사업으로 200km²의 갯벌이 사라졌다.
지금까지 간척 사업이 큰 반대 없이 추진될 수 있었던 것은, 대부분의 국민들이 ‘쓸모없는 갯벌을 농토로 바꾸는 것이 경제적이다’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화 간척사업으로 만들어진 시화호의 수질이 나빠져서 농업용수로 쓸 수 없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국민들은 간척 사업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갯벌의 기능과 가치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환경단체의 주장을 받아들여 정부에서는 1996년에 우리나라 갯벌의 가치를 경제학적으로 평가하는 연구를 한국해양연구원에 맡겼다.
한국해양연구원에서는 그동안 외국의 사례를 인용하여 갯벌의 가치를 막연하게 논의하던 것에서 벗어나 우리나라 갯벌의 경제적 가치를 구체적이고 종합적으로 평가한 최초의 연구를 수행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대부도, 군장지구 등 4개 지구를 선정하여 갯벌의 수산물 생산 가치, 어류 서식지 가치, 오염 물질 정화 기능, 심미적 기능 등을 돈으로 환산하였다.
갯벌, 농지로 바꾸었을 때보다 경제성 3.3배나 높아
그리고 갯벌을 농지로 바꾸었을 때의 쌀 생산량과 판매 가격을 곱하여 농업적 가치로 환산하였다. 연구 결과를 보면 같은 면적의 갯벌은 농경지에 견주어 미곡의 생산성과 수산물의 생산성만으로 비교하면 1.5배, 그밖에 갯벌의 다른 기능까지 고려하여 비교하면 3.3배나 경제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우리들이 지금까지 갯벌을 경제성이 낮은 쓸모없는 땅으로 생각한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 학술적으로 밝혀졌다. 갯벌을 양식과 어업의 장소로 이용하는 것이 많은 돈을 들여 방조제를 막고 농토로 이용하는 것보다 유리하다는 것이다. 간척 사업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경제성 있는 땅을 만든다.’라는 말은 잘못된 것이다. 더욱이 생활수준이 높아진 요즘에는 쌀의 소비량이 줄어서 기존의 농지도 경제성이 맞지 않아 다른 용도로 전환하는데 굳이 갯벌을 농지로 바꿀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간척 사업은 갯벌 어업을 농업으로 전환하는 사업이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씨를 뿌리고, 농약을 살포하고, 비료를 공급하는 등 일손이 많이 든다. 갯벌에서 자라는 게와 조개는 비료를 주지 않아도 물속의 영양 물질을 먹고 살며, 농약을 뿌릴 필요도 없다. 어부는 오로지 수확만 하면 된다. 우리가 조개와 게를 멸종되지 않을 정도로 절제해서 잡는다면 갯벌은 수산 자원을 무한정 공급할 수가 있다. 어업은 농업보다 생산성이 높으므로 갯벌은 그대로 두는 것이 낫다.
어업은 축산업에 비해서도 생산성이 매우 높다. 50g 무게의 달걀이 1,500g의 닭으로 30배 자라는 데는 5달이 걸린다. 그동안 끊임없이 사료를 먹이고 돌봐 주어야 한다. 그러나 0.1g의 어란은 먹이를 주지 않아도 5달이 지나면 500g의 고기로 무려 5,000배나 자란다. 축산업은 결코 어업의 생산성을 따라갈 수 없다.
갯벌은 세계적으로 희귀한 자원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서남해안 갯벌은 세계 5대 갯벌의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심미적인 기능을 잘 활용한다면 어업 외에도 관광 자원으로 이용할 수 있는 귀중한 자원이다. 독일은 갯벌을 모두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나라다. 독일은 연근해가 오염된다는 보고서가 나오면서 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갯벌을 보전하는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독일, 갯벌을 국립공원으로 지정
이에 북해 연안 3국 곧 네덜란드, 독일, 덴마크가 공동 선언문을 채택했고, 독일은 1988년에 갯벌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기 시작했다. 독일의 갯벌 국립공원 관리청은 갯벌의 보존 상태를 조사할 뿐만 아니라 관광객에 대한 안내도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갯벌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규모로 이루어진 새만금 간척 사업은 그 출발부터 정치적인 결정에 의해서 왜곡되었다. 새만금 사업은 전북 주민들의 표를 얻기 위한 선거용 정책을 찾는 데 골몰해 있던 노태우 후보에 의해 추진되었다. 사업 규모로 볼 때 1~2년은 걸려야 하는 타당성 조사는 서둘러서 7달 만에 끝냈는데 경제성이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노태우 후보는 대통령 선거를 불과 5일 앞둔 1987년 12월 11일 새만금 간척 사업을 선거 공약으로 발표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긴 33km의 방조제를 막아서 여의도의 140배에 해당하는 1억 2,000만 평의 토지를 공급한다는 이 엄청난 계획의 타당성 조사에서 간척으로 인해 사라지는 6,100만 평의 갯벌의 가치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막상 공약 사업으로 발표하였지만 노태우 정부는 새만금 사업에 소극적이었다. 경제 부처에서 경제적 타당성이 없다는 이유로 예산을 주지 않아서 새만금 사업은 자꾸 지연되다가 노태우 정부의 임기 4년차인 1991년 11월에야 새만금 사업은 착공식을 치르고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착공 뒤에도 정부 예산 투입은 더디기만 하였고, 환경단체는 갯벌을 살려야 한다고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1998년 2월에 출범한 김대중 정부에서는 환경단체의 의견을 받아들여 1999년에 새만금 사업 공사를 중단하고 민관공동조사단을 구성하여 1년간 새만금 사업의 경제성, 환경성 등을 재조사하였다.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 정부에서는 2001년 5월에 새만금 사업을 친환경 순차적으로 개발하겠다는 결정을 하여 공사는 재개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종교계에서 생명 파괴를 이유로 반발하였다. 갯벌에 사는 수많은 생명체를 인간의 욕심을 위해서 죽여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불교의 수경스님, 천주교의 문규현 신부, 기독교의 이희운 목사, 그리고 원불교의 김경일 교무 등 4인은 2003년 3월 28일 부안의 해창 갯벌에서부터 3보1배 순례를 시작하였다.
3보1배 순례단은 서울까지 310km를 65일 동안 걸으면서 새만금 반대 여론을 형성하였다. 당시 한명숙 환경부 장관은 3보1배 순례단을 평택 근처로 방문하여 격려하였고, 환경단체에서는 새만금 공사 중지 가처분신청 소송을 제기하였다. 소송이 시작되자 정부에서는 2003년 6월에 전체 길이 33km 중에서 2.7km를 남기고 방조제 공사를 중단하였다.
공사가 중단된 가운데 진행된 소송에는 3년이 걸렸는데, 1심에서는 환경단체가 승소하고, 2심에서는 공사 주체인 농어촌공사가 승소하였다. 2006년 3월 16일,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새만금사업을 승인하였다. 농어촌공사는 공사를 빠르게 진행하여 2006년 4월 21일 최종적으로 물막이 공사를 완료하였다. 그렇지만 마무리 공사에 예산 투입이 늦어져서 4년이 지난 2010년 4월 27일에 새만금 방조제 준공식을 거행하였다.
19년 만에야 완공한 새만금 사업, 잘 살게 될 것이란 꿈 실현 안 돼
노태우 정부에서 1991년에 착공한 방조제 공사가 19년이 지나 이명박 정부에서 2010년에 완공되었다. 방조제 공사가 끝나 군산과 부안을 해상 도로로 연결하였지만, 내부 개발은 시작도 하지 못했다. 최초에 전북 도민들이 기대했던 “새만금 사업을 하면 잘 살게 될 것”이라는 꿈은 정권이 3번이나 바뀌었는데도 실현되지 못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에 전북 도민에게 다시 한 번 꿈을 선사하였다. 새만금에 25조원을 투입하여 2030년까지 명품복합도시를 만들겠다는 계획이 발표되었다.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된다면 ‘새만금’이라는 전북 도민들의 꿈은 39년이 지나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도로로만 이용되는 새만금 방조제의 일부 구간을 바닷물이 드나들도록 조정하여 원래의 갯벌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으므로 여전히 새만금 사업의 미래는 불투명하다고 말할 수 있다.
갯벌과 관련하여 ‘람사협약’이라는 것이 있다. 1971년 2월 2일 이란 람사에서 지구적 차원의 습지(내륙 습지와 갯벌) 보호와 습지의 현명한 이용, 그리고 생물종 다양성 보호를 위해 조인된 국제 협약이다. 1996년부터 매년 2월 2일을 ‘세계 습지의 날’로 기념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1997년에 람사협약에 가입하였다. 현재 강원도 대암산 용늪과 창녕의 우포늪 등 내륙 습지, 순천만 갯벌과 무안 갯벌 등의 갯벌, 한강의 밤섬 등 모두 19곳의 습지가 람사협약에 따른 습지보호구역으로 등록되어 있다.
갯벌이 쓸모없는 땅이라는 인식은 개발 만능 시대의 잘못된 생각이다. 갯벌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으며 경제적 가치가 있는 소중한 자원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도시의 아이들은 자연과 접할 기회가 적은데 올 여름에는 서해안의 갯벌로 가서 아이들과 함께 맨발로 갯벌을 밟으며 조개도 캐고 게도 잡는 생태 체험을 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