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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종승의 무속신앙 이야기

삼신신앙과 고깔 그리고 산악신앙

양종승의 무속신앙 이야기 (3)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여기서는 고깔을 삼신신앙과 관련하여 설명하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알아보고자 한다.

 

고깔은 머리에 쓰는 모자이다. 모자이지만 추위 또는 더위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거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것과는 그 쓰임새가 다르다. 고깔을 쓰는 것은 소망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신앙 대상에 대한 예를 갖추는 것이다. 동해안 지역 세존굿에서는 무녀가 종이로 접은 고깔을 머리에 쓰고 제석님에게 인간의 재복, 수명, 자손생산을 기원한다. 경기, 서울과 이북지역에서도 무당이 제석을 모시는 굿거리에서 고깔을 쓴다.

 

경기, 서울과 이북지역에서도 무당이 제석을 모시는 굿거리에서 고깔을 쓰는데 이는 세삼국유사에 나오는 환인. 환웅. 왕검을 의미하며 재복, 수명, 자손생산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형태의 고깔은 충청도 무속의례의 경우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삼불제석을 상징하는 고깔로써 삼각형으로 접어 신령상에 진설하는 것이며, 다른 형태의 것은 법사가 쓰는데 이를 의관이라고 부른다.

 

하나는 삼불제석을 상징하는 고깔로써 삼각형으로 접어 신령상에 진설한다. 다른 하나는 법사가 쓰는 고깔인데 이를 의관이라고 부른다. 법사들이 읊는 경문 정심경 서두에 엄정의관 절수좌계 등심정귀 고치연흠이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는 의관(고깔)이 법사에게 중요하게 쓰이는 의례 복식임을 말해 주고 있다.

 

조선시대 말엽 서울굿 모습을 알게 하는 자료가 무당내력(巫堂來歷)이다. 19세기 경 난곡(蘭谷)이 조선시대 말엽을 배경으로 한양굿의 굿거리 내용을 채색하여 그려 놓은 두 권의 무속 화보집 무당내력무당성주기도도(巫黨城主祈禱圖)에 나타난 제석거리에서 무당이 머리에 고깔을 쓰고 있는 그림이 있다.

 

백장삼을 입고 허리에 홍띠를 두르고 어깨에는 홍가사를 맨 후 펼쳐진 부채와 방울을 양손으로 들고 굿청을 바라보고 있는 그림이다. 그런데 여러 굿거리 중에서도 유독 제석거리에서만 고깔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제석과 고깔이 연관성을 갖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 내용을 황해도평산 소놀음굿 제석님에 관한 사설로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단군천년 기자천년 이천년 도읍지에 말머리는 뿔이 나고 까막까치가 말씀헐 때 옷나무에서 옷 따 입고 밥나무에서 밥 따 먹을 때 하늘 위에 옥황상제 서천서역국에 분부 내려 조선국에 나가서 인간도입을 허라구 분부내리셨으니 어느 영이라고 거스를 소냐 삼신지석 세인지석 복립지석 지석님 세분을 골라 세우고 네 귀에다가 주머니 지워 곡석 종자 가득히 담아 띨 방아를 걸어 신농씨 부러 세워 놓고 애미보살 지장보살을 옆에 세우고 약대() 마부를 앞에 세워 놓고 초신에다 감발하고 짚신에다 들메 매고 뭍으로도 천리요 강산으로도 천리로다 무지개 서깃발로 팔선녀를 따라 내려올 때 앞바다도 열두바다 뒷바다도 열두바다 이십사강이 막혔으니 무슨 배를 모아 타나 나무선을 모아 타니 나무가 되어 썩어져서 다 흩어지네 돌선을 모아 타니 돌이라서 가라앉네. 흙선을 모아 타니 흙이라서 풀어지네. 모래선을 모아 타니 모래라고 다 헤진다. 허릴없이 천상일월을 쳐다보니 계수낭그 서 있으니 옥도끼로 찍어 내고 금도끼로 다듬어서 밑가지는 밑을 놓고 옆가지는 옆을 쳐서 중가지는 닻을 놓고 상가지는 돛을 달아 대선 소선을 모아(지어)놓고 한 켠에는 명을 실고 한 켠에는 복을 실고 옥동같은 유리동자를 봉박아서 흥자보물 녹수철량을 웃짐치고 화산대 간은 물결을 낳아 용마(龍馬)삼아 눌러 탈 때 광풍은 젖혀 놓고 순풍에다가 돛을 달아 소슬바람 부는대로 명주결에 결을 눌러 외깍재깍 건넜으니 한양 서울에 한강으로 당도허니 삼각산에다 의지허고 인왕산에다 닻을 놓아 뭍에 내리시니 오백년 도읍지가 여기로다(양종승, 중요무형문화재 제90호 황해도평산소놀음굿국립문화재연구소 1998).


 

위와 같이 난곡(蘭谷) 책에 나오는 제석은 무속과 단군신화 속에 나타나는 삼신신앙과 관련되어 있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고깔은 삼신(三神) 즉 환인, 환웅, 단군왕검으로 상징화되어 무속신앙의 대동의례에서는 물론이고 가신신앙에서도 신주 또는 조상의 신체로 상징화되는데 우리말은 곳갈이다.

 

은 뾰족한 모서리나 삐죽 나온 것을 뜻하고, ‘은 머리에 쓰는 변() 모양의 모자를 의미한다. 모자를 의미하는 한자어 변() () 윗부분 은 세 개의 선분으로 된 삼각형으로 형상화되고 있으며 아랫부분 는 모자의 끈을 표현한다. 기원 전후부터 4세기경까지 낙동강 하류 김해, 마산 등의 지역에 존속했던 변한(弁韓) 또는 변진(弁辰)이라는 국가 이름은 고깔 모습을 형용한 변()에서 따온 것이다(정형진, 고깔모자를 쓴 단군백산자료원 2003).

 

당시 변한(弁韓)은 한반도 남부에 있던 마한(馬韓) 및 진한(辰韓)과 함께 삼한 중 하나로써 지금의 경상북도 일부 및 경상남도 지역으로, 남해에 접하고, 서쪽은 마한, 동쪽은 진한에 접해 있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의하면 12개국이 있었다고 전하고 있는데, 이곳 변한(弁韓) 땅에서 여러 작은 나라들이 공동 목적을 갖고서 연맹 왕국을 성립한 것이 가야(伽倻)이다.

 

한편, 부여족(夫餘族)을 한민족의 중심 종족으로 보는 견해(신채호, 박기봉 역, 조선상고문화사 독사신론, 조선사연구초, 사론, 비봉출판사 2007; 최진열, 대륙에 서다 2천 년 중국 역사 속으로 뛰어든 한국인들미지북스 2010)는 단군을 계승하였기 때문인데, 이것이 상고사 서술에서 핵심적 논점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되고 있다(신채호, 독사신론(讀史新論), 이만열 역주, 역주 조선상고문화사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1998).

 

그런데 부여족(夫餘族)은 중국 동북부(만주)에 존재했던 민족과 국가인데 삼국사기(三国史記)삼국유사(三国遺事)등의 기록에 보면, 두 개의 부여 즉 북부여와 동부여가 존재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이들이 동일 분파였다고 하고, 부여족 건국 전에는 예()족이 있었다고 한다. ()족은 맥()족과 함께 예맥족이라고 불리는 고대 한민족으로써 한반도 북부와 중국의 동북부에 살았던 한민족(韓民族)의 근간이 되는 종족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런데 예()족과 맥()족을 갈라서 보는 견해가 있는데, 전자는 요동과 요서에 있었고 후자는 그 서쪽에 분포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고조선 말기 이르러 합쳐진 것이라 한다. 이와는 달리, 예맥(濊貊)족을 단일 종족으로 보는 견해에서는, 이들이 고조선의 한 구성 부분을 이루던 종족이었으며 중심 역할을 하였던 고조선의 세력이었다는 것이다.

 

이후, 부여(扶餘), 고구려, 옥저, 동예 등의 족속들은 모두 예맥족에 포함되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이 부여족이 단군조선의 정통을 이어 받아 기원전 2세기 때부터 두막루(豆莫婁, 대막루(大莫婁), 대막로(大莫盧), 달말루(達末婁)라고도 부르는데, 부여의 유민들이 건국한 나라라고 알려져 있다. 300년간 존재하다가 726년 발해 무왕에게 멸했으며, 그 영토는 발해와 흑수말갈로 양분되었다가 결국 발해로 흡수되기까지 중북부 만주에서 활동하였다고 한다.

 

이 부여족은 철기를 사용하였고 영고(迎鼓)라는 제천 의식을 행하였으며 순장과 일부다처제의 풍습을 갖고 있으면서 15세기 혹은 12세기에서 기원전 7세기 초까지 소아시아(Asia, 아시아의 서쪽 끝에 있는 흑해, 에게 해, 지중해에 둘러싸인 반도로써 터키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예로부터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중요한 통로였음) 지역에서 활동했던 주도 세력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주목되는 것은 바로 이들에게 중요한 복색 중 하나가 고깔이었다는 것이다(정형진, 고깔모자를 쓴 단군 백산자료원 2003) 고구려에서도 읍락사회를 지배한 유력자층 소가(小加)는 부여와 고구려 등 고대 초기국가에서 읍락사회를 지배한 유력자층을 말한다. 후한서》 「동이전」 「부여조읍락은 모두 여러 가()에 소속되어 있다.’라고 하였는데, 읍락 지배자는 가라고 하고 있다.

 

삼국지》 「동이전」 「부여조에서 제가(諸加)들이 관할하는 곳 중, 큰 것은 수천가(數千家), 작은 것은 수백가(數百家)였다. 이와 같이 읍락사회 지배자 가는 수천가를 주관하는 대가(大加)와 수백가를 주관하는 소가(小加)로 나뉘어져 있었음)들이 위로 솟고 밑으로 퍼져 있는 삼각형 모양의 절풍변(折風弁)을 착용했는데 그 모양새가 고깔과 같다고 했고(其小加著折風形如弁, 소가는 절풍을 쓰는데, 그 모양이 고깔과 같다, 삼국지권제 30, 27장 앞쪽, 위서30 오환선비동이전 고구려) 그 모습은 고분벽화에서도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고깔에서 주시할 것은 모양새이다. 삼각형으로써 세 곳에 모서리가 형성되도록 만든다. 여기서의 세 곳은 천지인을 상징하며 이는 산의 모습을 이루는 삼각형이다. 따라서 고깔은 숫자 삼()과 산()을 상징화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양종승의 고깔민족민족정서와 영적에너지로 우리 삶 속에 내려 온 고깔문화[종이나라] 75/19: 12-14 그리고 2016326일 정릉 샤머니즘박물관에서 있었던 샤머니즘사상연구회 발표회에서 곳깔 민족의 삼()사상과 산()신앙이란 논제로 발표되었음) 위쪽 뾰족한 끝 부분은 하늘과 맞닿는 꼭짓점이면서 초자연적인 영적 존재와 연결되는 통로가 된다.

 

따라서 고깔은 그 자체로써 존엄함을 상징하는 것이고 이를 착용함으로써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고깔을 쓴 사람의 역할은 하늘과 연결 짓는 매개자인 것이다. 이와 같이 고깔로 상징화되고 있는 산()의 내력은 삼국유사(三國遺事)의 단군신화를 통해 확인된다. 환인의 아들 환웅이 하늘로부터 수많은 무리를 거느리고 하강한 곳이 산(태백산)이요, 나라를 세워 백성을 다스린 단군왕검이 산신으로 좌정되었다는 것 등이 그것들이다.

 

이는 국토 70%가 산으로 되어있는 지형적 여건과 산악 환경을 배경으로 고대사회로부터 있어온 장구한 한민족의 산악신앙을 알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양종승, 산신제, 한국민속신앙사전마을신앙 (1) 국립민속박물관 2010; 양종승, 산과 산신령 민속소식 85국립민속박물관 2002) 그래서 초능력 영험력을 발휘하여 인간세상을 지배하여 온 산신령(山神靈)은 오래 전부터 산악숭배사상의 핵심으로 군림하여 왔다.

 

초능력적 영험력을 발휘하여 인간세상을 지배하여 온 산신령(山神靈)의 존재는 삼국유사 처용랑 망해사조에 헌강왕이 오악신(五嶽神)에게 제사를 올렸다는 기록을 통해 오래전부터 한민족의 산 숭배사상을 알게 하고 있다. 신라시대에 삼신산(三神山)이라 하여 금강산지리산한라산이 숭배되었고, 오악산으로 불린 토함산계룡산태백산북악지리산에도 제사를 지냈다.

 

고려 때에도 지리산, 삼각산, 송악산, 비백산의 사악신(四嶽神)에게 제를 올렸고, 조선시대에 와서는 금강산, 묘향산, 백두산, 지리산, 삼각산을 오악산이라 하여 숭배되었다. 뿐만 아니라 전국 500여 고을에서도 주산(主山)이나 진산(鎭山)을 설정하여 정기적 산신제를 봉행하면서 민족의 산악신앙 맥을 이어 왔다.

 

이러한 산악신앙 의례는 지역민의 평화와 안녕을 도모하고 나라의 국태민안(國泰民安)과 시화연풍(時華年豊)을 염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산을 매개로 하여 하늘과 연결 통로를 만들어 신과 교감대를 형성하여 신인합일사상(神人合一思想) 완성하려는 소망을 담고 있다(유동식, 한국 무교의 역사와 구조(연세대학교 출판부, 1975); 양종승, 황해도 맞이굿 형식과 특성 고찰, 한국무속학 16 한국무속학회 2008, 53-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