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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안중근의사 공판기록물 국가문화재 등록 신청

[우리문화신문=전수희 기자] 안중근(安重根) 의사(義士)는 1909년 10월26일 만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 현장에서 체포돼 중국 뤼순 감옥에 수감됐다. 이듬해인 1910년 단 7일 만(2.7.~14.)에 6회에 걸쳐 공판(公判)을 받았으나 재판은 일본인만에 의해 형식적으로 진행됐고, 14일 열린 마지막 공판에서 일제의 각본대로 사형이 선고됐다.

 

서울시가 안중근 의사와 관련된 유물 총 5점을 문화재청에 국가 문화재로 등록‧지정 신청했다고 11일(수) 밝혔다. 1910년 공판 당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관련 자료 2점(등록문화재)과 40일 간의 옥중에서 남긴 유묵 3점(보물)이다.

 

 

우선, 공판 관련 자료는 당시 참석한 일본 도요신문사(土陽新聞社) 기자가 스케치한 그림 <안봉선풍경 부 만주화보(安奉線風景 附 滿洲畫報)>와 공판 방청권(公判 傍聽券)이다. 공판 스케치는 1910년 2월10일 열린 제4회 공판 장면을 시간의 흐름대로 총 4쪽에 걸쳐 구체적으로 그렸다. 시는 이 2점을 국가 등록문화재로 등록 신청했다.

 

정확한 공판 날짜와 재판 참석자, 재판장 분위기 등이 그림과 함께 기록된 현존 유일본이자, 근대 동아시아 국제법 사료의 일면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고 시는 설명했다. 과거에도 공판 모습이 담긴 사진자료들은 공개된 적이 있지만 정확한 공판 날짜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또, 문화재를 소유하고 있던 일본인 후손이 안중근 의사의 애국정신과 동양 평화사상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국내 단체에 기증했다는 점에서도 한일관계의 융화적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서 남긴 유묵 3점은 일본인들의 요청으로 묵서됐다는 점에서 역설적 의미가 있다. 재판 과정과 옥중에서 보인 안중근 의사의 언행에 감복한 일본인들이 직접 비단과 종이를 구입해 안중근 의사에게 요청한 것. 시는 이 3점을 보물로 지정 신청했다.

 

특히, 문화재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실시한 글씨 조형 분석 결과 31세의 젊은 사형수 안중근의 심리적 동요와 번민이 글씨로서 고스란히 표현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시는 전했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은 현재 50여 점이 전해지고 있으며 총 26건이 보물로 지정돼 있다. 시는 이미 다수의 안중근 의사 유묵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상태에서 추가로 보물로 지정 신청하는 것에 대해 오랜 논의와 검토를 했다. 그 결과 적대 관계였던 일본인들에게 관용을 베푼 안중근 의사의 깊은 대의와 애국정신이 서체에 담겨있어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깊은 귀감이 된다는 의미에서 가치가 크다고 보았다.

 

 한편, 오는 12월25일부터 「문화재보호법」(제70조)과 「서울특별시 문화재 보호조례」(제62조)에 따라 서울에 소재한 다양한 근현대 문화재를 ‘서울시 등록문화재’로 등록해 관리 가능해진다. 건설‧제작‧형성된 후 50년 이상이 지난 문화유산 중 기념이 되거나 상징적 가치가 있는 것에 대해 국가 차원뿐 아니라 지자체 차원의 체계적 보존‧관리도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